[연재] 김범철 교수의 호수의 과학(126)
가을 호수가 갈색을 띠는 이유
김범철 · 강원대학교 환경학과 명예교수 · 전 한국하천호수학 회장
여름내 녹조현상으로 녹색을 띠던 호수가 가을이 되면 서서히 갈색으로 변해간다. 여름에 녹색을 띠는 이유는 남조류 식물플랑크톤이 번성하기 때문인데 남조류는 높은 온도를 좋아하기 때문에 가을이 되면 경쟁력을 잃어간다. 남조류의 감소에 따라 녹색이 사라지면서 호수는 갈색으로 변하게 된다. 가을에 호수의 물이 갈색이 되는 이유로는 식물플랑크톤의 종 천이 외에도 수중 부식질의 색, 그리고 망간의 침전 등이 있다.
수온이 떨어지면 갈색 규조류 번성
우선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식물플랑크톤 우점종이다.
식물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하기 위해 광합성색소를 가지고 있다. 육상 식물이 모두 초록색을 띠고 있는 것은 색소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중의 광합성생물 즉, 조류는 식물과는 다른 색소를 가지고 있는 종이 많기에 종류에 따라 색이 크게 다르다.
식물도 단풍이 들면 색이 변하고, 꽃이 피면 색이 변하여 노란색, 빨간색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색소 조성이 변하기 때문이다. 호수의 식물플랑크톤에는 녹색을 띠는 녹조류, 남조류가 있고, 갈색을 띠는 규조류, 와편모조류 등이 있다.
바다에는 갈색 조류가 녹색 조류보다 월등하게 많다.
파래는 녹색이지만 미역, 다시마 등 대부분의 조류는 갈색이다. 그런데 조류에 따라 좋아하는 온도와 광도가 달라 계절이 바뀌면 우점종이 달라진다. 여름에는 남조류가 우점하여 녹색이 흔하고 겨울이 되면 규조류가 우점하여 갈색을 많이 띤다.
규조류는 바다와 호수에서 가장 많은 조류이다. 간혹 봄가을에 와편모조류가 우점하는 호수도 있는데 바다에서는 붉은 색과 주황색을 띠어서 적조라고 부르지만, 담수에서는 대부분 갈색을 띤다. 와편모조류는 유영능력이 뛰어나 수면에 헤엄쳐 모이면 급격히 물이 커피 같은 짙은 갈색이 된다.


남조류가 번성한 여름의 녹색이 가을에 규조류가 우점하면 갈색이 된 모습. (감돈저수지) (사진; 김범철)
낙엽 등이 분해 후 남은 잔해도 갈색의 원인
갈색을 띠는 둘째 원인은 부식질이다. 부식질이란 식물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 후 남는 물질이라는 뜻인데, 결국 미생물이 잘 분해하지 못하는 물질이다. 화학적으로는 탄소분자 6개가 고리를 만든 물질이 주종인데, 탄소가 직선형으로 결합된 유기물은 미생물이 잘 분해하지만 6각형 고리는 잘 분해하지 못하여 잔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식질이 갈색을 띠기 때문에 물속에 부식질이 많으면 물색이 갈색으로 보인다.
부식질의 대표적인 사례가 탄닌이라는 차 성분이다. 홍차를 우려내면 연한 갈색을 띠는데 이것이 부식질의 색깔이다. 논에 고여 있는 물을 보면 갈색을 띠는 것을 볼 수 있고, 낙엽이 많이 쌓인 산에서 용출되는 하천도 갈색을 띠는 경우가 있다. 부식질이 가을에 특별히 급증할 이유는 없지만 가을 가뭄이 들면 산간 계곡수의 부식질 농도가 증가해 갈색이 짙어진다. 여름의 호수에도 부식질은 많이 함유되어 있지만 남조류 플랑크톤의 녹색이 너무 짙어서 부식질의 은은한 갈색은 가려지고 있다가 플랑크톤이 감소하면서 부식질의 바탕 색깔이 드러나는 것이다.
망간, 철 등 금속이온이 갈색 침전물 생성
가을에 호수가 갈색이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화학적 변화다. 망간과 철 등의 금속이온이 갈색 침전물을 생성하여 발생하는 현상이다. 망간과 철은 호수물에 흔히 함유되어 있는 대표적인 금속이다. 금속의 특성은 쉽게 전자를 주고받으며 산화되거나 환원되기 쉽다는 점인데, 물속에 산소가 많으면 철과 망간이온은 산화되고 산소가 없으면 다시 환원된다.
그런데 호수 심층의 산소는 계절에 따라 변동한다. 여름에 표면 수온이 상승하면 가벼운 따뜻한 물은 표면으로 떠오르고 차갑고 무거운 물은 심층에 가라앉는 성층현상이 강하게 일어나 상하층 물이 섞이지 않는다. 대기중의 산소는 표면에만 전달되고 심층으로 전달되지 않아 호수 심층에 무산소 상태가 만들어진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표면의 물이 식으면서 무거워져 아래로 내려가고 아래층의 물과 섞이는 혼합현상이 나타나면서 심수층에 산소가 공급된다.
심수층의 산소가 변동하면 이에 따라 금속의 농도가 변하는데 그 이유는 금속이온이 산소가 없을 때는 물에 잘 녹아 있다가 산소가 많아지면 침전물로 변하여 서서히 침강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영양호일수록 여름에 심수층의 산소고갈이 심하게 일어나고 금속의 농도가 수십 배 높아진다. 가을이 되면 심수층에 산소가 공급되면서 망간의 용해도가 낮아져 침전이 생성되는데 이것이 갈색을 띤다. 철의 침전은 좀 더 붉은 색을 띤다. 녹슨 쇠붙이의 색이다. 주암호 안동호 등의 대형댐에서도 가을에 수직혼합이 일어나는 시기에 갑자기 물색이 검게 변하는 흑수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바닷가 주변 호수는 황에 의해 검은색 띠기도
바닷가에 있는 호수에서는 황에 의해 더욱 짙은 검은색이 나타나기도 한다. 황은 바닷물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바닷가 부영양호에서는 여름에 산소가 부족하여 심층에 황화수소가 생성된다. 황화수소는 금속이온과 결합하면 검은색 침전을 만드는데 여름에 심수층에 머물러 있을 때는 보이지 않지만 가을이 되어 표수층과 혼합이 일어나면서 심층의 황화물이 표수층으로 확산되어 짙은 색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수질오염이 심하여 산소가 부족한 물은 어디서나 검은 색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이 현상을 검은물(煤水매수) 현상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필자는 호수학 책을 저술하면서 이를 흑수현상이라고 번역하였다.
호수를 방문할 때는 물색을 관찰하고 계절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해 보자.


여름에 우점하여 녹색을 띠는 남조류 플랑크톤과 갈색을 띠는 규조류 플랑크톤 (사진; 김영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