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업체가 뛴다]
토피아월드
모자 인생 외길 50년
낚시계의 뉴에라를 꿈꾼다
김진현 기자 kjh@darakwon.co.kr

▲ 모자 인생 외길 50년을 걸어온 토피아월드 은희명 대표. 지난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관계자 기념품으로 제작한 방한모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토피아월드는 서울 구로구 구로중앙로에 있는 모자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중소기업이다. 모자와 의류는 국내외 메이저 브랜드가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토피아월드 은희명 대표는 서울 시내에서 50년 넘게 모자 외길을 걸으며 소비자에게 품질과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은희명 대표는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학교를 다니다 서울에서 늦은 나이에 고등학교를 마쳤다. 서울에서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남대문에서 모자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남대문은 사업 수안이 좋고 열심히만 한다면 누구나 큰 돈을 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과감하게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자등록증도 없이 시작한 사업이지만 은희명 대표가 가진 모자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능력으로 사업은 날로 성장했다. 70년대 초에 정풍상사로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정식으로 모자 생산업체로 등록했다.
“산업화 시대엔 모자의 수요가 아주 많았어요. 주로 근로자가 착용하는 모자를 납품했는데 가장 큰 거래처가 현대그룹입니다. 1982년 정주영 회장이 살아 계실 때부터 백화점, 작업복, 해외 진출 근로자뿐 아니라 현대중공업, 현대오일뱅크, 현대건설 등 현대그룹 33개 계열사에 모자를 납품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정풍상사를 운영할 당시 직원은 120명이 넘었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 대기업 브랜드가 의류, 모자 시장에 진출하고 근로자의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한 데 이어 IMF까지 겹쳐 사업은 기울기 시작했다. 은희명 대표는 1996년에 사업을 축소하고 토피아월드를 설립해 방향 전환을 모색했다.
품질 하나로 현대그룹 33개 계열사에 납품
토피아월드는 ‘미래지향적인 세계’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고향 이름을 따서 지은 정풍상사에 애착이 있었지만 영어로 이름을 짓는 풍토가 퍼지면서 회사명도 영어로 지었다. 회사 규모가 줄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의류 시장에 대응하기에 더 나았다. 모자 관련 특허를 5개 냈고 최근에는 마스크가 부착된 방한모자를 출시해 낚시인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낚시를 가끔 다니면 목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그렇게 싫더군요. 그래서 바람을 완전히 차단하지만 대신 가리개 내에 입체 마스크를 삽입해 숨쉬기 편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바다낚시, 얼음낚시 등에는 필수품이고 사용해본 낚시인들도 뛰어난 기능에 만족하고 있습니다.”모자 산업계에서 은희명 대표는 ‘모자계 은박사’로 불린다. 그만큼 모자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며 실제로 그가 만들지 못하는 모자는 없다고 한다.
“모자는 다 비슷해요. 동대문 같은 재래시장에서 돌아가는 모자가 있고 중고급 브랜드 모자가 있고 군납이나 회사에 납품하는 모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매자가 직접 써보면 모자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인종에 따라 두상이 다르고 여성과 남성은 모자를 쓰는 방식도 다릅니다. 화장을 하는 여성은 모자를 푹 눌러 쓰지 않지만 바람을 맞는 야외 활동가에겐 푹 눌러쓰는 모자가 필수입니다. 이런 것들은 경험에 의한 피드백이 없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두 비슷해 보이는 모자지만 제작 노하우에 따라 써보면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100% 국내 제작 고집
토피아월드의 모자 제작 기술은 납품업체만 봐도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그룹이 대표적이며 퍼시픽링크, 해양소년단, 청소년연맹 등에서도 매년 많은 모자를 주문하고 있다. 프로골프 선수들 중엔 품질을 알아보고 주문하는 이들도 많다. 이중 은희명 대표가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모자는 지난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납품한 방한모다. 베이징에 방문하는 한국 관계자들이 베이징 관계자들에게 선물할 방한모를 주문한 것이다. 방한모에는 코리아 마크와 오륜기, 베이징 동계올림픽 로고가 새겨져 있다.
낚시모자는 80년대에 가장 많이 만들었지만 부침이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낚시모자를 많이 생산했습니다. 서울만 해도 봄이면 낚시점이나 동호인들이 시조회와 납회를 하고 여름에는 대회를 치렀기에 모자 주문이 많았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주문이 쇄도했어요. 하지만 낚시점의 활동이 줄고 개인 출조가 성행하면서 점점 주문이 줄었고 조구업체는 적은 비용으로 중국에서 모자를 주문하기에 최근에는 낚시모자를 잘 생산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에 출시한 바람막이 모자와 마스크가 부착된 방한모자가 알려지면서 조금씩 주문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은희명 대표는 100% 국내 제작을 고집한다. 중국에서 수입한 모자와 비교하면 가격도 비싸 경쟁력이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토피아월드에 주문은 끊이지 않는 비결이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품질에있다. 원단부터 제단까지 모자 제작에 관여한 일은 모두 은 대표의 손을 거친다.
“중국에서 모자를 주문하는 업체가 많습니다. 저렴하고 겉으로 보면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니까 당연히 중국을 선택하겠죠. 하지만 저를 찾는 고객의 말은 다릅니다. 중국에서 주문한 모자에서 악취가 난다거나 변색이 빨리 되고 모자의 변형도 빨리 생긴다고 말합니다. 중국의 모든 모자에서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행사용으로 저렴한 것을 찾다보면 그런 봉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중국에서 수입하는 일부 면 원단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원단을 대구에서 직접 주문합니다. 모자에 따라 면이나 기능성 원단을 구매해 직접 제단하고 봉제를 합니다.
현재 서울에 두 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 공장에서는 모자에 들어가는 챙, 외피, 끈 등을 만들고 한 공장에서는 부품을 조립, 완성하고 있습니다. 국내 제작을 고집하는 이유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저마저 국내 생산을 줄이고 중국에서 주문을 한다면 국내에는 점점 생산기반이 줄어들어 마침내는 모자를 생산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자 산업은 모자 제작 기술만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원단 구매부터 판매 시장까지 구축이 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모자 외길을 걸어온 저로썬 쉽게 국내 제작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특허 5개 보유한 ‘모자계의 은박사’
은희명 대표가 현재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은 마스크가 부착된 방한모자다. 특허출원을 할 정도로 보온성과 기능성이 뛰어나고 기존 방한모와 달리 마스크 지지대가 들어가 숨쉬기 편해 낚시인들에게 널리 보급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 다시 재개되는 낚시계 행사에도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크고 작은 행사에 모자 소비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 낚시계 인사들과 자주 대면하고 있다. “모자 주문은 소량이든 대량이든 관계없이 모두 할 수 있으며 시중에 있는 수 천 가지 형태의 모자를 어떠한 것이라도 제작할 수 있습니다.
가끔 회사로 모자 구매에 대한 문의가 오기도 하는데 토피아월드에선 모자 하나도 구입이 가능합니다. 제가 소량 판매도 소홀이 하지 않는 이유는 모자에 대한 애정 때문입니다. 사실 기업에 납품하는 모자만 생산해도 사업을 유지하는 것엔 큰 어려움이 없지만 더 많은 사람이 질 좋은 모자를 썼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에 가든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는 토종 국산 모자라를 것을 항상 강조합니다.”
가끔은 억울한 일도 겪는다고 한다. 100% 국내 제작이라고 소개를 하지만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위 라벨 갈이를 한다고 하는데,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가지고 와서 라벨만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불법이죠. 저는 중국에게 생산력에서 뒤지기도 싫지만 라벨 갈이나 짝퉁 제조로 자존심을 버리는 것은 더욱 허락할 수 없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MLB, 뉴에라도 점점 미국 내 공장을 줄이고 제3국에 제작을 맡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며 브랜드의 위상이 떨어져 지금은 재고가 헐값에 판매되는 제품도 있습니다. 모자는 의류와 달리 인체의 가장 상단에 착용합니다. 써도 되고 쓰지 않아도 되지만 쓴다면 다른 의류와는 달리 상징성을 가지게 됩니다. 낚시를 예로 들면 모자에 찍힌 로고에 따라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명함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모자를 생산하면서 자긍심을 버린다면 소비자들이 그 모자를 선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토피아월드 02-866-1177

▲ 현대그룹 계열사에 납품하고 있는 모자.

▲ 토피아월드 은희명 대표가 제작한 프로 골퍼들의 시합용 모자.

▲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있는 토피아월드 본사 내 작업장. 모자에 들어가는 각종 부속은 다른 공장에서 제작 후 이곳에서 완성한다.

▲ 토피아월드 은희명 대표가 개발해 특허출원한 마스크가 부착된 방한모자. 안면 커버 내에 마스크 형태의 플라스틱 지지대가 들어가 있어 숨쉬기 편하고 착용감도 우수하다.

▲ 은희명 대표가 원단 샘플을 살펴보고 있다.

▲ 대구에서 주문한 국산 모자 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