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신동현의 낙동강 순례' 6년여 연재 마친
신동현
"낙동강 붕어터 가이드북 역할에 자부심"
김진현 기자 kjh@darakwon.co.kr
신동현 씨가 본지에 6년 3개월 간 연재한 ‘신동현의 낙동강 순례’가 지난 2021년 12월호 ‘54회 밀양 초동천’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4대강 공사 이후 변모한 경남북 지역의 낙동강 곳곳의 숨은 낚시터를 찾아서 실었다. 지면에 실린 낚시터들은 새로운 포인트에 목말라 하는 독자들의 보물창고 역할을 했다. 독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발로 뛰었던 신동현 씨의 애정과 성실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본지에 실린 ‘신동현의 낙동강 순례’를 본 독자들은 필자의 꼼꼼함과 세심함에 놀라곤 했다. 4대강 공사 이후 자전거도로와 차로가 미로처럼 얽혀 있는 낙동강은, 낚시터 특성상 포인트 설명에 앞서 진입로와 주차여건에 대한 정보가 꼭 필요하다. 신동현 씨는 찾기 어려운 소로의 진입로는 사진을 찍어 기사에 싣고 위성지도엔 주변 지형지물과 이정표를 꼼꼼히 표기해놓았다. 차량 한두 대 댈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주차공간도 빠뜨리지 않았다.
또 낚시자리는 몇 명이 앉을 수 있는지, 몇 칸 대 거리의 수심은 얼마인지, 어떤 미끼가 잘 들었는지 낚시를 통해 검증했다. 전체 조황 확인을 위해 늘 3~4명의 낚시인과 동행출조했다. 신동현 씨의 기사를 읽으면 그 낚시터의 면면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발로 뛰어 기록한 54개의 낙동강 명포인트들
지난 11월 20일, 경남 김해시 진례읍의 진례천에서 신동현 씨를 만났다. 1964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난 신동현 씨는 어려서부터 낚시를 즐겼다. 나이가 들어서는 붕어낚시와 바다낚시를 함께 즐겼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어렵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붕어낚시가 자신에 더 맞았다. 현재 울산에 거주하면서 영남과 호남의 낚시터를 오가며 붕어 대물낚시를 즐기고 있다.
“어제는 창원의 학성지로 갔는데 주민들이 저수지 물을 다 뺐지 뭡니까. 4짜가 나온다고 해서 갔는데 허탕을 치고 이곳 진례천으로 왔어요. 그런데 여기서도 꽝이네요. 오늘 오후엔 다른 곳으로 옮길 예정입니다.”신동현 씨는 평일엔 일을 하고 주말에 낚시를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일반 직장 낚시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집안 경조사를 제외하고 휴일은 물론 연월차까지 모두 낚시에 쓴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낚시를 가면 만족할 조황을 거두기 전까지는 서너 곳 정도는 옮기는 일은 예사다.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조황만 확인되면 영천에서 낚시하다가 해남으로 달려가기도 한다.
기자는 신동현 씨의 부지런함은 기사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궁금한 것은 충청도까지 아우르는 넓은 정보망이었다. 울산에 사시는 분이 어떻게 충주호의 조황마저도 꿰차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인터뷰 중 알 수 있었다. 대화가 오가던 중 전화기가 수시로 울렸다. 조황을 알려오기 위한 선후배 낚시인들의 전화다. 신동현 씨는 현재 본지 객원기자 외에도 전국붕어낚시인협회 경남지부장, 강원산업, 파라다이스좌대, 한조크리에이티브 필드스탭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터넷에선 ‘여울’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알려져 있는 신동현 씨는 영남 붕어낚시계의 마당발로 통한다.

▲지난 11월 20일 경남 김해시 진례읍의 진례천에서 만난 신동현 씨.
지난 6년여
동안 낚시춘추에 ‘신동현의 낙동강 순례’를
연재하며 4대강 공사이후 뒤바뀐 낙동강
가이드 역할을 해왔다.
영남 붕어낚시계의 마당발
낙동강 순례는 신동현 씨의 넓은 낚시인 인맥과 꼼꼼함을 눈여겨 본 당시 본지 사진부장 이기선 기자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2015년 9월호 첫 연재로 강정고령보 백천수로를 실었다.
“아직도 당시 취재 과정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처음에는 제가 잘 아는 곳을 위주로 상세하게 설명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붕어도 안 낚이고 지형이 많이 바뀌었더군요. 주변 지인들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 데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막상 기사를 써서 이기선 기자에게 보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이 기자는 조과가 별로다, 낚시할 자리가 적다, 그림(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지적하더군요. 솔직히 그 얘기를 들으니 짜증이 좀 났습니다. 내가 왜 바쁜 시간을 내서 이것을 해야 하나 그런 거였죠. 하지만 횟수를 거듭하다보니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됐습니다. 기사를 통해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생기고 또 기사를 보고 가서 재미를 봐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게 되니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독자를 생각하는 필자가 된 것이죠.”

▲신동현 씨가 본지에 송고한 초고. 낚시자리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수기로 작성했다.
-기억에 남는 독자가 있다면?
낙동간 순례 연재는 영남지역 독자들에게 ‘낙동강 포인트 가이드북’ 역할을 해왔다고 봅니다. 현지 낚시인조차 모르는 정보가 많았죠. 낚시터근처에 사는 나조차도 모르는 포인트를 어떻게 찾아내서 소개하는 것이냐고 물을 때는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더군요.
-낚시터는 어떻게 선정합니까?
연재를 거듭하면서 나름 선정 기준이 생기더군요. 최우선 기준은 낚시공간입니다. 적어도 20에서 30명은 낚시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진입로나 주차여건,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조황도 좋아야 합니다.
-낚시터 선정 기준이 정말 까다롭군요.
사실 지인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처음에는 아는 곳만 골라서 해도 충분하겠지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습니다. 지인들의 설명을 듣고 막상 그 포인트에 가보면 설명과는 달랐습니다. 수초가 있는지형이라도 포인트가 되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는데 그렇지않은 곳이 많았습니다. 6년여 동안 도움을 준 동료 낚시인 대구 신만희(해적), 대구 이재동(대나무), 대구 김인구(올해도 워리), 구미 노만우(부동심), 구미 류해용(아트), 왜관 구자대(참치), 구미 정철우(우야꼬), 울산 조덕기(한울), 울산 김경운(사월봉), 울산 김두현(삐돌), 울산 김연석(스니커즈), 부산 허영호(용팔이), 부산 류재영, 창녕 석종기(창녕대물), 고령 정경록 씨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 외에 기사에 이름이 나오지 않았지만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낙동강 순례 연재 1회에 소개한 강정고령보 백천수로.
“현지인 나조차 모르는 곳을 어떻게 알고 소개하는 겁니까?”
-힘들었던 취재도 많았을 것이라 봅니다.
처음에는 취미로 생각했지만 연재가 시작되자 내가 맡아서 모든 걸 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컸습니다. 매달 원고 마감일이 이렇게 빨리 돌아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를 전달해야 하는 취재과정도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상황을 부풀리거나 정보를 누락해서도 안 됐습니다. 기사를 보고 현장에 찾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름 취재가 힘들었어요. 낙동강 상류의 보 주변은 연안이 콘크리트고 그늘이 없어서 파라솔 아래에 있어도 비가 억수처럼 쏟아집니다. 그늘이 있는 계곡지라면 샤워를 하고 차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면 더위가 가시지만 그늘이 없는 보 주변은 지옥과 같은 더위가 밀려들죠.
-기억에 남는 취재지가 있다면?
2017년 12월호에 소개한 의성 낙단보 생송리 본류 포인트입니다. 거기서 1박2일 동안 4짜 붕어를 6마리 낚았어요. 이 취재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취재를 해야 하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었고 동행할 낚시인도 섭외가 안 됐습니다. 입장이 난처했는데 마침 구미 대물낚시의 납회에 동행하게 되었고 100명이 모인 납회는 대부분 꽝을 쳤는데 저 혼자 하류에 자리를 잡아 4짜 붕어 6마리를 낚은 것입니다.
-연재가 끝났지만 낙동강 낚시터에 대한 정보를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낙동강 본류와 수로가 아주 넓지만 생각만큼 기사로 쓸 곳이 많지 않습니다. 만약 전문꾼들이 한두 자리를 보고 들어가는 곳까지 기사로 쓴다면 포인트야 무궁무진하겠지만 그런 곳은 대중적인 기사가 못 되더군요. 실제로 낚시인들이 그런 정보를 얻어도 활용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포인트를 찾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연재를 통해 실었던 포인트 중 낚시여건이 바뀐 곳도 있습니다. 그곳을 다시 돌아볼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