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 특집1
낚시춘추 50년을 돌아본다
596권의 낚시춘추로 보는
한국낚시 50년
50대 뉴스(31~40)
이영규 기자
31 감성돔 회유론은 허구다_본지 96년 3월호 기획보도, 1년 여 사례 조사로 기존 회유론 뒤집어
90년대 중반까지 구멍찌 낚시인들 사이에 폭넓게 퍼져 있던 인식이 감성돔 회유론이었다. 오름감성돔, 내림감성돔이란 용어처럼 봄에 산란을 위해 내만으로 올라붙었던 감성돔들이 여름-가을-겨울을 거치며 점차 먼 바다로 빠진다는 통설이다. 그래서 한겨울에는 먼 바다 원도에서 감성돔이 낚이고 내만은 낚시가 안 된다는 이론이 폭넓게 깔려있었다. 그러나 이런 통설은 낚시춘추 창간 25주년 기념 테마기획으로 마련된 ‘감성돔 회유론은 허구다’라는 기획 기사를 통해 재고되기 시작됐다. 당시 낚시춘추 허만갑(현 유튜브 허기자TV 진행자) 기자는 1년여에 걸친 지역별 감성돔낚시 사례를 통해 ‘감성돔은 근거리를 이동하는 붙밭이성 어종’임을 입증했다. 이 기사가 나간 이후로 감성돔 회유론을 언급하는 낚시인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 봄에 내만에서 산란한 감성돔은 점차 먼 바다로 이동해 겨울이면 원도로 이동한다는 ‘감성돔 회유론’을 반박한 기사가 96년 3월호에 실렸다. ‘감성돔 회유론은 허구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이 기사가 나간 이후 감성돔 회유론을 언급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32 배스토너먼트의 탄생_연천 전곡호에서 최초 개최, 배스낚시 시장 활성화
국내 최초의 배스 토너먼트가 1996년 4월 21일, 연천 전곡호에서 열렸다. 우리나라 최초의 배스낚시단체인 한국배스연맹 KBF(Korea Bass Federation)가 주최한 정규 토너먼트 1전이 그것이다. 이 대회에는 에이스, 새론클럽, 수원서울, 나인배스, 인천프로캐스팅, BNB, LNS 등의 7개 배스클럽이 참가했으며 40여 명의 선수가 30척의 보트에 나눠 타고 경기를 치렀다. 대회 결과 황종선 선수가 첫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형옥인, 전홍래 선수가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를 출발점으로 90년대 말 낚시계에 배스낚시와 배스 토너먼트 붐이 일었다.


▲ 국내 최초의 배스 토너먼트인 KBF 정규 토너먼트1전 소식이 96년 6월호에 실렸다. 작은 사진은 당시 토너먼트에 참가했던 낚시인들의 기념촬영.
33 제1회 코리아오픈 토너먼트가 던진 충격_일본 명인 상위권 독식, 바다토너먼트 활성화 계기 마련
1996년 11월 2일, 전남 완도권 갯바위에서 일본의 구멍찌업체 쯔리켄사 주최로 제1회 코리아오픈 토너먼트가 열렸다. 한국과 일본의 구멍찌낚시 고수들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맞붙은 1회 대회는 일본 명인들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당시 일본에서는 다카조노 미츠루, 에토 히로노리, 다테이시 무네유키 등의 정상급 토너먼터들이 참가했고 국내에서는 현봉훈, 김영국, 강민구, 김종우, 유강현, 정응모, 박기식 같은 찌낚시 고수들이 대거 참가해 불꽃 튀는 경합을 벌였다. 대회 초반에는 홈그라운드의 이점과 더불어 ‘일본 낚시인들은 벵에돔낚시만 해봐서 한국의 감성돔낚시 필드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일본 낚시인들은 저부력 채비만 쓰기 때문에 고부력으로 깊은 수심을 노리는 한국식 구멍찌낚시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라는 예상이 팽배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일본 선수 3명이 모두 결승전에 진출하는 결과를 낳았고 다테이시 무네유키 선수가 우승, 에토 히로노리 선수가 준우승, 다카조노 미츠루 선수가 준준우승을 차지하며 대회를 마감했다(패자부활전을 거쳐 결승전에 진출한 윤재근 선수가 4위에 입상). 제1회 코리아오픈 토너먼트를 계기로 국내 바다낚시계에도 토너먼트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을 비롯, 1호 이상의 고부력 채비를 사용하는 공격적 찌낚시가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96년 11월 2일, 전남 완도에서 제1회 코리아오픈 토너먼트가 열렸다. 일본 명인들과 한국 고수들의 불꽃 튀는 경쟁이 본지 96년 12월호에 생생하게 담겼다.
34 일본 남녀군도 최초 단체 원정_낚시춘추 원정대, 해외 갯바위 원정 신호탄
1996년 11월 28~12월 1일, 서울, 수원, 군산, 삼천포, 부산, 제주 등지의 낚시인 15명으로 구성된 낚시춘추 원정대가 꿈의 벵에돔낚시터로 불리는 일본 남녀군도 원정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국내 벵에돔낚시터는 제주도가 유일했고 해외 원정낚시는 꿈도 못 꿀 때였다. 일본낚시인들도 평생에 한 번 가고 싶다는 꿈의 낚시터로 꼽는 남녀군도 원정은 계획 자체부터 화제였고 당시 낚시춘추를 중심으로 활동 중인 취재원과 유명 낚시인들이 원정에 동참했다. 이전까지는 개인적으로 남녀군도를 다녀온 낚시인은 있었지만 전국 연합 형식으로 팀을짜 원정에 나선 것은 낚시춘추 원정대가 최초였다. 당시 가이드는 민병진 씨가 맡았고 이영규 기자가 동행 취재했다. 남녀군도 원정 성공 이후 일본 갯바위 원정낚시 붐이 일기 시작했고 그 열기는 대마도 원정으로 이어졌다.


▲ 국내 최초의 일본 남녀군도 원정 출조 기사가 97년 1월호에 실렸다. 전국 각지의 낚시인으로 팀을 짜 해외 갯바위 원정에 나선 것만으로 화제가 됐다.
35 국내 최초 조구업체 프로스탭 탄생_배스프로 김욱, 석상민, 박형준 씨, 아부가르시아와 계약
국내 최초의 조구업체 프로스탭 조인식이 97년 3월 25일에 열렸다. 당시 JB 배스 프로로 뛰던 김욱, 석상민, 박형준 씨가 배스랜드 소속 아부가르시아 프로스탭으로 선정됐다. 당시 계약은 일정액의 용품과 토너먼트 참가 시 경비 일부를 지원받는 수준이었으나 이후 많은 업체들에서 앞 다퉈 필드스탭, 필드테스터를 지명하는 시발점이 됐다. 본격 연봉 계약으로 자리 잡은 것은 2000년 1월 25일 서울 낚시인 함기현 씨가 반도레포츠와 맺은 계약이다. 당시 함기현 씨는 연봉 1천380만원과 더불어 장비와 용품 일체, 대회 참가 시 경비 등을 지원받는 조건이었다. 이후 바다 부문에서도 필드테스터 열풍이 이어져 1999년 8월, 부산의 박창수, 이택상 씨가 구멍찌 전문업체 아크 인터네셔널과 1천만원에 계약한 것이 최초로 알려진다.


▲ 내 최초의 조구업체 프로스탭 조인식이 97년 3월 25일에 열렸다. 주인공은 배스랜드 소속이자 아부가르시아 프로스탭으로 선정된 김욱, 석상민, 박형준(사진 왼쪽부터) 씨였다.
▲ 본지 97년 4월호에 조인식 소식이 실렸다.
36 떡붕어 전층낚시 도입과 유행_1998년 군포 반월지에서 붐 일어 전국으로 확산
1998년을 즈음해 국내에 떡붕어 전층낚시 붐이 본격적으로 일었다. 경기 군포의 반월저수지에서 상층 가까이 떠오른 떡붕어를 ‘띄울낚시’ 기법인 전층낚시로 타작한 것이 계기가 돼 삽시간에 유행이 퍼졌다. 반월지 호황 후 전층낚시의 인기는 본격적으로 확산됐고 이즈음 은성낚시마트(현재의 다솔낚시마트)에서 마루큐 필드스탭들이 주도한 ‘중층낚시 강의’가 붐을 확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전층낚시 인구는 2010년 중반을 즈음해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떡붕어 자원의 감소와 더불어 기존 떡붕어터였던 곳이 토종붕어터로 변하는 등의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떡붕어 전용 유료터의 감소, 떡붕어 전층낚시 장비와 채비의 고가 정책에 의해 장비 구입에 부담을 느낀 낚시인들의 피로감이 증가한 것도 전층낚시 인구가 감소한 이유로 꼽히고 있다.

▲ 계곡지에서 떡붕어 전층낚시를 즐기는 낚시인들을 표지에 담은 2011년 7월호.
떡붕어 전층낚시는 2008년 이후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됐다.
37 글루텐 떡밥 전성시대 도래_떡붕어 전용에서 토종붕어용으로 인기 확산
일본에서 들어온 글루텐 떡밥은 원래 떡붕어낚시용이었다. 1993년도에 마루큐사의 글루텐 떡밥이 국내에 본격 수입됐는데 떡붕어 전층낚시가 한창이던 2010년까지만 해도 토종붕어낚시에는 큰 인기가 없었다. 토종붕어낚시에 애용되게 된 것은 배스의 확산이 계기가 됐다. 나라 안 전 수면에 배스가 확산되어 토종붕어 유어는 물론 피라미, 새우 같은 고기들이 모두 잡아먹히자 낚시터마다 배스에게 잡아먹히지 않는 9치 이상의 큰 붕어만 남게 되었다. 여기에 살아남은 붕어들도 언제 배스의 공격을 받을지 몰라 경계심이 높아졌고, 그 결과 입질 시간은 짧아지고 흡입력도 약해졌다. 결국 토종붕어들의 입맛이 기존의 거친 곡물성 떡밥보다는 솜처럼 부풀어 부드럽고 먹기 좋은 글루텐 떡밥을 선호하는 쪽으로 변한 것이 글루텐 떡밥이 토종 곡물떡밥을 제치고 붕어 낚시의 간판 미끼로 등장한 계기다.
38 지깅 대유행_낚시춘추, 2001년 연중기획 시작으로 지깅 보급에 앞장 서
본지는 2001년 1월호에 ‘연중기획 바다루어의 문을 넓히자’를 통해 국내 지깅 유행을 주도했다. 2000년 10월호에 제주 북단 관탈도, 남해동부의 욕지도와 연화도 일원에서 메탈지그를 이용한 지깅을 성공시키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연재에 들어갔다. 특히 2000년 가을 남해동부권 해상에서의 지깅 탐사 성공은 비단 제주도뿐 아니라 남해안에서도 지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쾌거였다. 이때부터 불이 붙은 지깅 열풍은 제주도는 물론 서해안으로까지 전파됐고, 당시의 지깅 낚시인들이 대구 지깅에까지 도전하면서 지깅이 국내 바다루어낚시의 대표 장르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 낚시춘추의 바다낚시 자매지 ‘월간 갯바위’ 창간 기념으로 기획된 감성돔 꼬리표 방류사업이 98년 12월 4일 처음 실시됐다. 바다낚시 주 어종인 감성돔의 생태조사, 회유경로 파악, 어자원보호를 위한 기초 연구 자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표지는 2000년 10월 여수 금오도에서 진행된 꼬리표 방류행사를 다룬 2000년 10월호다.
39 감성돔 꼬리표 방류사업 최초 실시_감성돔 생태학의 기초자료 마련 위한 목적
1998년 12월 4일, 본지가 주관한 감성돔 꼬리표 방류 사업이 처음 실시됐다. 낚시춘추의 바다낚시 자매지였던 ‘월간 갯바위낚시’ 창간 기념행사를 겸했던 이 방류 행사는 여수 초도방파제에서 4마리의 감성돔에 꼬리표를 달아 방류하는 것으로 첫 발을 떼었다. 바다낚시 주어종인 감성돔의 생태 조사, 특히 회유경로 파악과 더불어 어자원 보호를 위한 기초 연구 자료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한 이 행사는 2001년까지 진행됐다. 600여 명의 낚시인이 참여했고 170여 마리의 감성돔이 방류됐다. 방류된 170여 마리 중 재포획된 것은 모두 5마리. 짧게는 19일 만에, 길게는 168일 만에 재포획된 감성돔도 있었다.
40 주5일 근무제_‘금요낚시’ 출조 본격화, 원정낚시 붐
2002년 7월 금융권을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시행되던 주5일 근무제는 2004년 7월부터 1000명 이상의 업체를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시행되어 2011년 이후엔 전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여가·취미 시간의 증가로 인한 삶의 질적 향상을 취지로 실시된 주5일 근무제는 낚시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토요일도 쉴 수 있게 되어 금요출조가 일반화됐고 이틀로 늘어난 휴일을 이용해 장거리 원정을 나서는 낚시인들이 들어났다. 또 가족과 함께 낚시와 여행을 함께 즐기는 패밀리피싱도 활성화되는 계기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