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코리아 브랜드가 뛴다

 

글로벌·스마트 용성 선언

 

베트남 공장 세우고 업무·관리소통 시스템 도입

 

서성모 편집장

 

올해로 창립 44주년을 맞은 (주)용성은 낚싯대만을 전문으로 만들어온 중견 조구업체다. 창업주인 고 이성열 회장은 신용과 품질을 우선으로 기업을 경영해 업계에서 신망이 두터웠다. 이 회장의 경영 철학은 제품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85년에 만든 민물낚싯대 슈퍼 포인트는 지금까지도 낚시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베트남에 생산 공장을 세우고 회사의 운영 시스템을 선진화한 용성은 글로벌·스마트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하고 있다.

 

낚싯대를 살펴보고 있는 40대의 이성열 회장.
용성을 창립하고 신용과 품질을 우선으로 기업을 경영해 업계에서 신망이 두터웠다.

인터뷰 중 76년 용성공업사 창립과 성장 과정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용성 김무임 회장.

부산시 사하구 장림동의 용성 본사.

 

(주)용성(이하 용성)의 낚싯대는 한국의 부산, 중국의 위해, 베트남의 빈폭성의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각 나라의 회사는 독립 법인이다. 한국 법인의 이름은 (주)용성이고 중국 법인은 위해용성조구유한공사이며 베트남 법인은 용성비나다.
2004년 설립한 중국 공장은 용성이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자 창구가 됐다. 이성열 회장은 세계의 소비 시장으로 자리 잡은 중국 내수를 개척하기 위해 온힘을 쏟았다. 중국에서 열리는 낚시박람회인 랑팡피싱쇼, 위해피싱쇼에 매년 용성의 낚싯대를 출품했으며 중국의 대표 방송인 CCTV와 낚시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광고를 냈다. 그 결과 중국 각 성과 주요 도시마다 대리상을 정할 수 있게 됐고 100여 개의 거래처를 확보했다. 용성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아지자 미국, 일본, 유럽 등 해외 판로도 열렸다.
중국 시장 개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이성열 회장은 2008년 부산 자택에 머물던 중 가슴이 아파 병원을 찾았는데 그게 생의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향년 69세. 갑작스럽게 부음을 접한 가족들은 슬퍼할 새도 없이 이 회장의 분신과도 같은 용성을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현 회장이자 이성열 회장의 부인인 김무임 씨가 경영 전면에 나섰고 장남 이동훈 현 이사가 영업과 관리를 맡았다. 당시 차남 이동재 현 중국 법인장은 현지에서 생산 업무를 맡고 있는 상태였다.

 

고 이성열 회장, “다른 사람과 적을 만들지 마라” 
지난 5월 21일 인터뷰를 위해 부산 사하구 장림동의 용성 공장을 찾았다. 76년 창립된 용성은 84년 카본낚싯대를 만들기 위해 이 공장을 세웠다. 오래된 건물은 낡아 보였지만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회사 정문에 들어서자 반갑게 기자를 맞이한 이동훈 이사가 회장실로 안내했다. 처음 대면한 김 회장의 인상은 따뜻하고 격의가 없었다. 응접 테이블 앞에 앉은 기자에게 김 회장이 직접 차를 내왔다.
사실 이번 취재는 조금 막막했던 게 사실이다. 낚시춘추 49년 기사를 검색해봤는데 용성과 이성열 회장의 자료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성열 회장이 어떤 분이었는지 많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낚시춘추에 용성처럼 오래된 회사의 기사가 거의 없던데요?”하고 묻자 김무임 회장은 “(이)회장님이 원래 그러셨어요.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 하셨거든요. 자기 사람을 잘 챙기고 가진 것이 있으면 늘 베풀려고 노력하셨어요. 형제들을 끔찍하게 아끼셨습니다”하고 말했다.
이성열 회장은 10남매 중 차남으로 창업 후 회사가 자리를 잡자 형제들을 불러 함께 일을 했다고 한다. 7명의 형제들이 용성에서 근무했다. 항상 가족을 먼저 챙겼다는 김무임 회장의 말을 들으니 좋은 것이 있으면 꼭 나누려 하는 마음 넓은 맏형이 떠올랐다. 용성의 가족 경영 시스템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성열 회장은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 성품은 업계를 통해 들은 적이 많다. 점잖고 화내는 일이 없으며 약속을 어기는 일은 없었다.
이성열 회장의 이러한 성품은 회사 경영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김무임 회장에게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되면서 어려움이 많았겠다고 묻자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답한다. “회사라는 게 빚을 안고 산다고 하지만 우리 회사는 채무가 거의 없었어요. (이)회장님이 저나 애들에게 누누이 했던 말이 있어요. 사람들과 적을 만들지 마라였습니다. 신용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사업을 하신 거죠.”        

 

76년 용성공업사 창립, 슈퍼 포인트, 씨파크 큰 인기  
경남 통영이 고향인 이성열 회장이 군 제대 후 자리를 잡은 직장이 부산의 은성사였다. 이곳에서 10년 동안 회계, 무역, 제품개발, 생산관리 등의 업무 능력을 쌓았다. 71년 7살 아래의 아내 김무임 현 회장과 결혼했고 이후 퇴사해 몇 년간 은성사 하청 일을 맡았다. “(이)회장님이 당시 공장장이셨던 지금의 조용준 한국화이바 회장님과 함께 근무를 했어요. 퇴사할 때 조 회장님은 소재 쪽으로 이 회장님은 제조 쪽으로 창업하셨죠.” 김무임 회장의 말이다. 
76년 부산시 사하구 장림동에 용성공업사를 설립했다. 회사 명 용성은 ‘龍’과 자신의 이름 중 ‘成’을 합쳐서 만들었다. 용성에서 만든 글라스파이버 낚싯대는 당시 일본을 비롯해 서독, 영국 등 세계 각 나라로 수출됐으며 직원 수는 날로 늘어갔다. 80년대 중반엔 통근버스 두 대에 100여 명의 직원들이 출퇴근했다.
83년까지 OEM 생산과 수출에 주력했던 용성은 85년 자사 브랜드인 카본 민물낚싯대 슈퍼 포인트를 내놓는다. 슈퍼 포인트는 질기면서도 손맛이 좋아 낚시인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용성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슈퍼 포인트가 출시된 이후 맥스 포인트, 다이아 포인트 등의 포인트 시리즈가 계속 출시됐다. 슈퍼 포인트가 용성의 민물낚싯대를 대표한다면 씨파크는 바다낚시대를 대표하는 브랜드다. 씨파크 카고, 씨파크 원투를 시작으로 부시리, 농어, 외줄, 인터라인 시리즈가 계속해서 나왔다. 
슈퍼 포인트와 씨파크는 중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90년대 말 용성은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친숙한 낚시 브랜드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용성이란 회사명이 효자 노릇을 했다. 90년대 말은 우리나라 조구업체의 중국 진출이 활발했던 시기. “중국 사람들은 龍이란 글자를 좋아합니다. 다른 한국 회사보다 龍이 들어간 우리 회사의 제품을 더 많이 찾더군요." 이동훈 이사의 말이다.
인기가 올라가다 보니 짝퉁도 등장했다. 짝퉁 용성 제품이 한국 시장에 들어오기까지 해서 2000년 회사명을 ㈜용성으로 바꾸고 법인화해 중국에 포인트와 씨파크를 상표 등록했다. 

 

김무임 회장, 매년 사회기부로 나눔과 베품 실천 
김무임 회장과의 인터뷰는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이성열 회장에 대한 얘기가 길어져 유품을 직접 보여줄 때엔 잠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김 회장은 2011년 취임 후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부를 매년 해오고 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개인고액기부자클럽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되었다. 또 적십사에 정기적으로 기부금을 헌납하고 있으며 부산교육청,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후원금을 기탁하는 등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과 소외계층을 돕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회장실의 책장엔 사회봉사와 기부와 관련된 상패들이 여러 개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엔 고 이성열 회장의 것도 보였다.
아너소아어티 상패였다. 이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인 김 회장은 2019년 이성열 회장의 10주기를 맞아 기부를 선물하기로 결심하고 부산 아너 가입을 실천했다. 김무임 회장과 고 이성열 회장은 부산 아너소사이어티의 18번째 부부 아너로 기록됐다.            
“40대 후반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해서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때는 직접 사회봉사를 실천하기도 했지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됐죠. 직접 하기 어렵다면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해 도와주자 그렇게 마음먹었습니다. 그게 바로 사회복지모금이었습니다. (이)회장님은 살아 계실 때 사회봉사를 하려는 저를 응원해주셨습니다. 저를 통해 베품과 나눔을 실천한다고 생각하신 거죠.”

 

베트남 빈폭성에 준공한 용성 베트남 공장의 조감도.

이동훈 이사가 대형TV 앞에서 작년에 회사에 도입한 업무관리·공유 시스템인 그룹웨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중국 위해피싱쇼의 용성 부스

용성 베트남 공장. 150명의 직원들이 낚싯대를 만들고 있다.

부산 아너 소사이어티 169번째 회원 가입식. 주인공은 부산 아너 74호인 김무임 용성 회장의 남편인 이성열 회장으로, 부산 아너 소사이어티의 18번째 부부 아너이자 5번째 고인 아너로 기록됐다.

중국 산동성 위해시의 용성 공장.

 

베트남에 공장 준공, 그룹웨어로 업무 효율 극대화 
용성은 최근 2년 간 대내외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밖으로는 지난해 베트남에 생산 공장을 준공했고 안으로는 회사 업무를 효율적으로 관리 진행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꿨다.
베트남 공장엔 160명의 직원들이 낚싯대를 만들고 있다. 공급 물량을 늘려달라는 바이어의 요구에 따라 제2공장을 또 짓고 있다. 이동훈 이사는 “중국은 인건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규제를 강화하는 정책 때문에 갈수록 제품 생산 여건이 나빠지고 있습니다”하고 말했다.
앞으로 용성의 낚싯대 생산은 베트남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대신 주력 상품에 치중할 예정이다. 최근 중국은 바다낚시 인구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를 겨냥해 찌낚싯대 시장을 공략해  시장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김무임 회장과의 인터뷰를 마치자 이동훈 이사는 기자를 2층 회사 식당으로 안내했다. 그곳에 대형TV가 있었고 이 이사는 작년에 회사에 도입한 그룹웨어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룹웨어란 직원들이 업무를 공유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업무관리·소통 시스템을 말한다.  TV 화면엔  부서별로 나뉜 그룹웨어 프로그램이 떴다. 이 프로그램은 중국과 베트남 법인의 직원들도 함께 사용한다. 서류 없이 스마트폰 등의 미디어기기를 이용해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베트남의 업무를 공유하고 진행시킬 수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베트남 간 왕래가 어려워졌지만 그룹웨어를 사용한 덕에 업무 진행에 차질이 없다. 

 

-해외 생산 공장과 내부 정비를 마친 용성에 일어날 변화는 무엇입니까?
회사에 그룹웨어 시스템을 도입하고 업무에 적용하는 데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모든 직원이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 용성은 제품의 개발과 디자인에 치중하고 생산은 베트남 공장이 맡게 될 것입니다. 대폭 개선된 작업 환경을 바탕으로 베트남 공장의 생산성을 높여 3년 이내에 1천만달러 수출과 함께 동남아 시장 개척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올해 주력 상품과 마케팅 전략은 무엇입니까?
파도 기 플러스, 갈치대박 골드, 수월천 골드가 올해 마케팅을 주력할 제품들입니다. 현재 용성은 세계 15개국에 수출을 하고 있고 수출 물량과 국가는 베트남 공장 준공으로 더 늘어날 것입니다. 한국 용성의 내수 매출을 올리기 위해 그동안 단점으로 꼽혔던 제품 기획과 개발, 디자인에 더 신경을 쓸 계획입니다. 마케팅의 본질은 지속 가능함에 있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선 회사가 투명하고 착하며 진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인사, 재무, 제조, 유통에 있어 용성의 정직하고 투명한 경영이 큰 무기가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주)용성 연혁
1976.08 용성공업사 설립(부산시 사하구 장림동 315-2)
1984.10 제2공장 설립(카본낚시대 전문)
2000.10 (주)용성 법인 설립(부산시 사하구 장림동 335-4)
2004.05 중국 공장 설립(위해용성조구유한공사)
2006.10 부산은행 유망중소기업 선정
2009.06 벤처기업 인증
2014.06 부산은행 모범중소기업 선정
2018.03 베트남 공장 기공식
2018.11 베트남 용성비나 법인 사업자 등록
2019.05 용성 베트남 현지 공장 준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