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 코리아 브랜드가 뛴다

 

(주)유양산업사 
43년 이어온 장인정신으로 제2의 도약

 

이영규 기자

 

지난 1977년에 창립한 ㈜유양산업사는 창업주 구경열 대표의 낚시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회사이다. 43년 역사와 전통 위에 장인정신을 담아 제작한 유양의 낚싯대들은 수십 년 동안 낚시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래서 조력 깊은 낚시인 사이에 유양 브랜드는 ‘낚시장인’이 만든 명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구경열 대표가 자사의 최고급 돌돔대인 메가 극검 석조를 보여주고 있다. 구경열 대표는 1972년부터 추자도 원정을 다닌 한국 바다낚시계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주)유양산업사(이하 유양)의 공장은 대구시 북구 노원동 대구지하철 3호선 만평역 인근에 있다. 1977년에 공장을 지었고 43년이 지난 현재까지 한자리에서 낚싯대를 생산하고 있다. ‘裕洋’이라는 유양의 한자어는 ‘넉넉한 바다’라는 뜻으로서 바다처럼 원대한 포부와 더불어 모든 낚시인이 만족할만한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지난 4월 27일, 인터뷰를 위해 유양산업사를 방문하자 마침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하던 구경열 대표가 반갑게 나를 맞았다. 구 대표의 제안으로 악수 대신 주먹을 부닥치는 주먹인사로 첫 인사를 나눴다.
내가 “초면인데 대표님께 실례가 되는 것 같다”고 말하자 “아닙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서로 조심해야 합니다. 형식이 뭐가 중요합니까”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인터뷰 진행 도중 나도 모르게 묘한 기분이 감돌았다. 그것은 바로 구경열 대표의 나이 때문이었다. 내가 구경열 대표의 프로필을 처음 본 1996년 당시만 해도 구 대표의 나이는 50대 중반. 조심스럽게 연세가 어찌 되시냐 물어보니 1941년생이셨고 올해로 여든이셨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50대처럼 쩌렁쩌렁했고 눈에는 총기가 가득했다. 그 꼿꼿함에 놀라 잠시 구 대표의 연세를 착각해 혼란이 왔던 것이다.  
내가 “실제 연세보다 건강하셔서 놀랐고 낚시인 후배로서 기쁘다”고 말하자 구경열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지금도 저는 아침 8시에 정시 출근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합니다. 지인 중에는 나이를 생각해 좀 천천히 다니라고도 하지만 사장이 5분 늦게 출근하면 직원도 5분 늦고, 30분이 늦으면 직원도 30분 늦게 출근합니다. 문제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렇게 정신 상태가 늘어지면 기획력과 개발력이 떨어져 결국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없습니다. 특히 중소기업 오너일수록 내가 직원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회사를 운영해야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지난 40년 넘게 지켜온 경영 철학입니다.”

 

 

▲유양산업사의 정문. 43년간 한자리에서 낚싯대를 생산하고 있다.

 

1978년 붕어대 ‘조수’ 생산으로 출발 
유양이 낚시업계에 뛰어든 1970년대 말은 국내 낚싯대 제조와 수출이 호황을 맞고 있을 때였다. 당시 유양에서 수출한 글라스파이버 낚싯대는 품질 검사가 까다로운 해외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1980년 초반 Sert라는 업체에 수출한 루어낚싯대가 파리 낚시쇼에서 3년 연속 최고의 낚싯대로 선정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무렵 유양의 플라이낚싯대는 국내 시장에도 약간 풀렸는데 당시 강원도 계곡으로 송어나 산천어를 낚으러 다니던 플라이 낚시인 중에도 유양사의 플라이낚싯대를 써본 낚시인들이 꽤 됐다. 
그런데 흔히 알려진 것처럼 유양이 처음부터 수출만 했던 것은 아니다. 창업 이듬해인 1978년에 글라스파이버 소재의 붕어대 ‘조수’를 출시해 국내 시장을 두들겼다. 그러나 당시 대형 도매점들의 높은 문턱, 직거래를 했던 소매점들의 상습적인 대금 미결재 등이 반복되자 1981년도에 내수 판매를 접고 수출로 돌아섰다. 이후 약 10년간 수출만 하다가 다시 내수 시장에 뛰어든 것은 1990년 무렵이다. 저가의 중국산 낚싯대가 세계 시장을 잠식하고 유럽의 바이어들도 한국보다 인건비가 싼 중국 공장으로 눈을 돌린 게 계기가 됐다.
내수 시장으로 돌아온 유양의 첫 작품은 바다 릴찌낚싯대 ‘테크노 파워 프로 기’였다. 그리고 이 제품은 출시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테크노 파워 프로 기는 당시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던 가마카츠 낚싯대에 비견되는 호평을 받기도 했는데 구경열 대표가 당시의 일화 한 가지를 소개했다. 
“제품 출시 무렵 테크노 파워 프로 기 몇 대가 제주도 도매상으로 흘러갔지요. 그런데 직접 낚싯대를 써 본 점주가 품질이 너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제주도로 낚시를 다녀온 지인이 하는 말이 ‘구 사장, 현지 점주가 이걸 시마노로 들어가는(OEM 제품) 제품이라면서 가마카츠 낚싯대보다 1만원 더 비싸게 팔더라‘ 하더군요. 릴찌낚시의 본고장 제주 낚시인들이 보기에도 성능이 뛰어났던 것이지요.”

 

어종별로 전용대 타이틀 부착해 출시
유양의 센세이션은 테크노 파워 프로 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1997년에 ‘블랙스타 기’를 출시했는데 이 제품에는 국내 최초로 ‘벵에돔 전용대’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벵에돔낚시는 제주도 낚시인들의 전유물. 낚시춘추 97년 1월호에 내가 취재를 다녀온 남녀군도 원정 기사가 소개돼 ‘대물 벵에돔을 치려면 전용대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국내 낚시인들 사이에 점차 움터오던 시기였다.
그리고 몇 달 뒤, 벵에돔 전용대 블랙스타 기가 유양에서 출시되자 나는 너무도 발 빠른 신제품 출시 속도에 깜짝 놀란 적 있다. 이 또한 구경열 대표가 낚시꾼 출신이다 보니 낚시인들이 원하는 니즈와 유행을 재빨리 캐치해낸 것이 유행을 선도한 비결이었다.  
“사실 그때는 지금처럼 벵에돔낚시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 시기는 아니었지요. 하지만 나는 당장 반응이 적더라도 내가 먼저 제품을 만들어 시장의 파이를 키우자고 결심했습니다. 습성상 감성돔은 여유를 주며 낚으면 되기 때문에 기존의 어떤 릴찌낚싯대를 써도 됩니다. 하지만 벵에돔은 순간적으로 발밑으로 파고드는 어종이라 전용대가 필수라고 생각한 것이죠.”    
블랙스타 기는 당시로서는 국내 최고가인 40만원대의 가격임에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오히려 매출에서 프로 기를 능가하는 판매량을 보였다. ‘비싸도 좋은 낚싯대는 팔린다’는 구 대표의 신조가 적중한 셈이다.
2년 후 또 한 번의 히트 상품이 세상에 나왔다. 참돔 전용대로 출시된 릴찌낚싯대 진조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스타 낚시인 이택상 프로를 광고 모델로 발탁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2000년대 들어 밤에만 낚이는 줄 알았던 대물 참돔을 낮에 낚는 뉴 트렌드가 자리 잡아가자 유행을 선도하던 이택상 프로를 전격 영입한 것이다. 
이후 유양의 최고봉인 릴찌낚싯대로 호평을 받은 감성 기를 출시했는데 당시 찌낚시 고수들 중에는 ‘세컨용’으로 구입했다가 오히려 감성 기를 메인용로 사용하는 케이스가 많았다는 게 구경열 대표의 말이다. 
유양의 선구자적인 신제품 개발은 릴찌낚싯대에 머무르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무렵 서해 군산에서 참돔 타이라바가 시작되자 참돔 타이라바 전용대 ‘이카리’를 출시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일본에서는 타이라바낚시가 생활낚시처럼 이루어지고 있던 상황이라 우리도 빨리 전용대를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당시에는 서해안에서만 참돔 타이라바낚시가 시작된 터라 우리는 현지 어선을 전세 내 해도를 보며 참돔 포인트를 찾아다녔어요. 대구 사람들이 군산까지 올라가 참돔 포인트를 개발하고 다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낚시인은 많지 않습니다.”

 

완벽하지 않으면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
유양낚싯대의 성공 신화는 바다낚싯대에만 머물지 않았다. 2000년에 전층낚싯대 극과 단을 출시했고 같은 해에 토종붕어 낚싯대인 강호와 호소를 개발해 호평을 받았다. 강한 허리힘을 바탕으로 한 강호와 호소는 당시 대물 붕어낚시가 유행하던 대구, 경북 지방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이후 출시된 수운봉은 유양 민물대의 최고봉으로 꼽혔다. 당시로는 파격적이면서 기품 있는 고동색 도색, 유연하면서 질긴 허리힘으로 고가임에도 매니아층을 형성했다.
유양의 민물대들이 출시와 동시에 품질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밸런스가 좋고 품질에 기복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최고를 고집하는 유양의 생산 시스템도 한 몫 했다. 보통 1칸 이내로 낚싯대를 제작할 때는 금형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지만 유양은 완벽한 밸런스 구현을 위해 각 칸 수별 금형을 따로 제작했다. 당연히 생산 원가가 올라가 제품 가격이 상승했지만 ‘유양 낚싯대는 타사보다 비싸도 믿을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다는 게 구경열 대표의 의지였다.
유양의 이러한 ‘완벽한 최고주의’는 지난 1977년 말, 유양이 최초로 만든 민물낚싯대 조수의 에피소드에서도  드러난다.  
“1977년 7월에 공장을 지어 12월에 시운전을 했고 첫 민물대가 이듬에 3월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 안 드는 겁니다. 전 제품을 뒷문 옆 공터에서 모두 짓밟아 부러뜨린 후 소각장에서 불태웠습니다. 생산팀에서는 난리가 났지요. 3개월을 걸려 만든 첫 작품이었으니까요. 사실 물건은 그 정도면 잘 만들었어요. 기술자들 실력도 좋았거든요. 그러나 내 기준에서는 백점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상태로 시장에 나가는 걸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한 것이죠.”
결국 2개월 동안 재생산에 들어갔고, 5월이 되어서야 유양이 생산한 첫 붕어낚싯대 조수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다음은 구경열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구경열 대표가 자사의 익스트림 GT 부시리 릴대로 157cm 부시리를 올리는 유튜브 동영상을 가리키고 있다.

▲▼유양이 최근 실시 중인 ‘써보고’ 이벤트. 원하는 낚싯대를 대여한 뒤 직접 써보고 구입을 결정하는 기획이다. 써보고 이벤트를 기획한 박민택 대리가 자세한 이벤트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유양 낚싯대에는 실전형 아이디어가 녹아있다”
Q. 유양은 다른 조구사들이 생각 못한 기획을 일찌감치 많이 해온 것으로 압니다.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벵에돔, 참돔 전용대의 최초 개발은 물론 국내 최초의 붕어낚시용 줌받침대(2004년), 베이트릴대의 가이드를 나선형으로 배치하는 TW 가이드 시스템도 우리 유양이 특허를 갖고 있습니다. 제 자신이 낚시를 좋아하다보니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즉각적으로 상품화한 것들이지요. 즉 유양의 낚싯대들은 실전형 아이디어가 녹아든 제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최근에 가장 반응이 좋았던 제품은 어떤 것인가요?
-모든 제품이 고루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나 수년 전부터 일기 시작한 선상 부시리낚시 열풍 덕분에 GT부시리라는 릴대의 인기가 좋습니다. 완도와 거제도에서 선상 부시리낚시를 즐기는 낚시인들 사이에 150cm 이상을 올리려면 유양 GT부시리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지난 2019년 1월에 나주 영산강낚시 회원이 여서도에서 올린 157cm도 GT부시리로 끌어낸 것입니다. 그 외에 신형 이까리 지그 참돔 루어대도 반응이 좋습니다.      

 
Q.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이벤트도 꾸준히 실시 중이죠?
-그렇습니다. 제가 잠시 대표직을 물려주었던 2012년부터 신제품 민물대 호소레드를 홍보하기 위한 체험행사가 전국적으로 열렸습니다. 2013년에는 경북 고령과 경기 일산에서 열렸죠. 이벤트 체험 참가자들에게 입어료, 중식, 각종 기념품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낚싯대를 직접 써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홍보를 겸한 일종의 필드테스트인 셈인데 반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2014년 9월에는 업계 최초로 대학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유양 제넥스 대학생 서포터즈’ 발대식도 가졌습니다. 미래의 낚시인이 될 대학생들에게 신제품을 제공하고 자신의 블로그나 인터넷 카페 등에 상세한 후기를 올려 제품을 홍보하도록 하는 취지였죠. 최근에는 ‘써보구’라는 이벤트도 진행 중입니다. 영업팀 박민택 대리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것인데 원하는 낚싯대를 신청해 받아본 뒤 직접 써보고 구입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 역시 낚시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유양은 업계 및 연고지인 대구, 경북지역에서는 고품질의 낚싯대를 생산하는 회사로 유명하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브랜드 파워가 다소 약한 게 사실입니다. 이미지 전환을 위한 타개책을 준비하고 계신 게 있습니까.
-많이 느끼고 있는 점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좋은 낚싯대를 만들면 소비자는 알아서 찾아온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군요. 확실히 지금은 홍보의 시대라고 생각됩니다. 제 아무리 보물을 갖고 있어도 그 사실을 모른다면 누가 탐을 내겠습니까. 지난 몇 년간 2세 경영을 통해 전환기를 맞아보려 했으나 아쉽게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양의 고품질 낚싯대 개발은 결코 멈추지 않습니다. 현재는 제2의 도약을 위해 전 직원이 힘을 모아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고품질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