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돌돔 스타트!

추자도 전쟁터에서 탈출한 수원꾼들

한적한 가거도에서 마릿수 신선놀음

| 허만갑 기자 |

작년 이맘때 대박을 터뜨린 추자군도가 올해 부진하자 돌돔마니아들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가거도 돌돔이 추파를 던지고 있다.
가거도, 태도, 만재도 등 흑산해역 돌돔은 작년에 8월부터 호황을 보였기에 아직 꾼들의 관심밖에 있다.
그러나 6월 말부터 가거도와 홍도의 돌돔들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가거도의 돌돔 썰물 명당인 노랑섭날에 내린 수원 서울낚시 회원 고건화씨. 그러나 이곳에선 입질이 없었고 다음날 건너편의 성건여 도하에서 돌돔 13마리를 낚았다.

가거도 돌돔 출조는 애당초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7월 2일 금요일, 나는 사무실에서 퇴근하여 충주호로 붕어낚시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TV 요리프로에 젓갈이 소개되었다. 갑자기 멸치젓갈이 먹고 싶어진 나는 추자도에 돌돔낚시를 들어가 있는 제주 신신낚시 신철오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철오 형, 추자멸젓 한 통만 사서 택배로 부쳐줘요. 돈은 내일 송금할께.”
“안 돼. 나 지금 해남 땅끝에 나왔어.”
“무슨 소리야? 제주사람이 땅끝에는 왜 갔어요?”
“그러게 말이다. 나도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알고 본 즉 자초지종은 이랬다. 이 날 추자도엔 각 민박집에서 경쟁적으로 인터넷에 올린 산발적 호황정보에 홀려 돌돔꾼 100여명이 몰렸고, 늑장 출항한 신철오씨 일행은 빈자리를 찾아 헤매다 겨우 노른여에 내렸지만 오전 내내 입질 한 번 받지 못했다. 그때 일행인 수원의 고건화씨가 가거도 1구에 사는 김웅철씨의 전화를 받은 것이다. “성님, 소꼬(처넣기낚시의 일본말) 조황이 나와서 전화 드렸어요. 성게에 씨알 좋은 돌돔이 제법 나와요.”
고건화씨는 전화를 끊자마자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철오야, 현기야, 가자, 나가자!”
“네? 어디로요?”
“가거도로! 여긴 조황은 둘째 치고 낚시꾼들에게 치여 못 살겠다. 가거도에 돌돔 잘 나온단다. 차가 땅끝에 있으니까 오후에 황제호 타고 나가서 진도 서망으로 가면 되잖니!”
동행한 서울낚시 회원 이현기씨는 멍하니 고씨를 바라보다 이렇게 말했다.
“형, 미친 거 아냐?”

▲ "성게는 건드리지도 않아서 모두 참갯지렁이로 낚았습니다." 수원 서울낚시 이현기 회원이 대리취 조과를 자랑하고 있다.

제주·수원·서울꾼, 서망에서 합류하다

그런데 미친 낚시꾼은 또 있었다. 추자도를 탈출하여 땅끝-서망을 경유해 가거도로 들어가는 극히 드문 ‘발광출조’에 나도 합류키로 한 것이다. 
목포 신안낚시에 들러 성게와 참갯지렁이를 싣고 다시 진도로 출발하여 서망에 도착한 시각은 3일 새벽 3시, 가거도 직항선인 파이넥스호는 내가 타자마자 출항했다. 손님은 우리 일행 4명뿐이었다. 이 배는 어제 가거도로 들어간 낚시객을 철수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셈이었다.
텅 빈 선실에 대자로 드러누워 푹 자고 일어나니 아침 6시, 가거도 1구에 배가 입항했다. 제일식당 임세균 선장 댁에 여장을 풀고 돌돔대를 챙겨 낚싯배에 올랐다. 바다는 남서풍에 의한 너울이 일고 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다. 1구와 2구의 갯바위는 텅텅 비어 있다. 오늘 파이넥스호로 철수할 20여 명은 산 너머 3구 쪽에 있는 듯했다. 신철오, 이현기씨가 대리취에 내리고, 나와 고건화씨는 성건여 맞은편 노랑섭날에 내렸다.
물색은 추자도보다 흐렸지만 그런대로 맑고 괜찮다. 아침의 썰물도 적당한 유속으로 멋지게 흐른다. 그러나 수온이 아직 낮은 탓인지 참갯지렁이를 던졌는데도 쥐노래미, 우럭이 간혹 건드릴 뿐 잡어 성화도 거의 없다. 오전에 깨끗이 꽝을 치고 두렁여로 옮기면서 임세균 선장에게 대리취의 조황을 물어봤더니 그쪽도 꽝이란다. 이거 낭패다. 아직 시즌도 아닌데 공연히 들어와서 힘만 빼고 가는 것 아닌가?
오후 1시, 초들물에 고건화씨의 5m 원투대가 시원하게 꽂혔다. “어라차차! 에구, 빠져버렸네!” 너무 오랜만에 입질을 받으면 놀란 마음에 챔질이 급해지기 마련. 백전노장 고건화씨도 한 템포를 더 기다리지 못하고 첫 고기를 허망하게 놓치고 말았다. 임 선장이 “깊은 난바다 쪽으로 치지 말고 얕은 홈통 쪽으로 던지라”고 했는데 과연 고건화씨가 입질을 받은 지점은 깊은 물골과 홈통 수중여밭의 경계인 6~7m의 얕은 수심이었다. 30분 후 고씨가 두 번째 입질을 받았다. 이번엔 침착하게 기다려 한 번, 두 번째 내리박는 타이밍에 정확히 채 올렸다. 힘은 좋았지만 씨알은 고작 42cm. 그래도 가거도 돌돔을 확인했으니 절반의 성공인 셈인가. 고건화씨는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내가 고집을 부려 가거도로 끌고 왔는데 이렇게 안 나오니 두 친구들의 원망이 쏟아지겠구만.”

▲ 들물에 돌돔이 파상적 입질을 보인 대리취.

대리취, 들물에 돌돔의 파상공세
그러나 그 무렵 대리취에선 돌돔 떼와 한바탕 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오전 썰물엔 감감무소식이었으나 오후 2시부터 중들물이 세차게 받치자 간여를 바라보는 서쪽 곶부리의 수중턱 밑 20m 근거리에서 돌돔들이 파상적 입질을 쏘아부친 것이다. 수원 서울낚시 회원 이현기씨가 두 바늘에 쌍걸이로 돌돔을 올리자 파라솔 그늘에서 자고 있던 신철오씨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 번갈아가며 9마리의 돌돔을 뽑아냈다. 씨알은 30~40cm로 잘았다.
철수시각, 신철오씨가 묵직한 꿰미를 들고 오르자 배에서 농어 외줄낚시를 했던 부부낚시꾼들이 탄성을 질렀다. 신철오씨는 “씨알이 잘아도 입질은 시원했는데 성게는 건들지 않더라. 역시 가거도도 초반에는 참갯지렁이가 필수 미끼다. 먼 거리보다 근거리 턱 밑에서 입질이 잦았다. 산란을 앞둔 돌돔들이 약간 떠서 먹이활동을 하는 듯하다. 오히려 찌낚시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라고 말했다.
첫날 저녁, 우리는 새로 지은 제일식당의 깨끗한 2층 여관방에서 샤워를 하고 1층 식당에서 돌돔 회와 뺀찌구이로 풍성한 만찬을 즐겼다. 그런데 선장에게서 우울한 소식을 들었다. 가거도 북쪽의 대·소국흘도가 슴새보호구역으로 묶여 상륙이 금지되었다는 것이다. 가거도 하절기 낚시터의 한쪽 날개가 사라진 셈이다. 

국흘도 슴새보호구역 지정, 상륙금지
이튿날 다시 대리취에 내렸으나 역시 오전 썰물엔 입질이 없었다. 나는 허탈하게 철수했지만 오후 들물이 되자 대리취에선 어김없이 40cm 안팎의 돌돔 4마리가 낚였다. 고건화씨 일행은 7일까지 머물면서 풍성한 마릿수 재미를 즐겼다. 5일 성건여 도하에서 돌돔 13마리를 낚았고, 6일 오동여에서 실패했으나, 7일 성건여 물걸어간취에서 찌낚시로 전환, 45cm, 40cm를 비롯 25~30cm 돌돔 11마리와 80cm 농어, 75cm 혹돔을 크릴미끼로 낚았다. 고건화씨는 “찌낚시 씨알이 원투보다 낫더라”고 놀라워하며 “떠서 회유하는 돌돔들이 자리를 잡아야 원투낚시가 제대로 될 듯하다. 이 동네 돌돔들은 급류를 좋아하는 듯 유속이 좀 세다 싶을 때 입질이 활발하더라. 조금보다 사리물때에 오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가거도 배편 목포 여객터미널에서 매일 아침 8시경 여객선이 출항하며(소요시간 4시간, 요금 편도 5만4천원), 진도 서망항에서 매일 새벽 3시 파이넥스호가 출항한다(소요시간 3시간, 요금 왕복 12만원).
출조문의 목포 신안낚시 061-282-7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