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낚시 열전 현장-안면도 승언2호지
올해 첫 데뷔전에서 최고의 마릿수터로 떴다!
ㅣ허만갑 기자ㅣ
신정연휴는 해마다 가장 많은 얼음낚시꾼이 빙판에 오르는 날이다. 그러나 올해는 평년보다 결빙이 늦어 출조객이 적었다. 강화도, 경기북부, 강원도는 12월 19일경에 첫 얼음을 탔지만 음성·괴산, 서산·태안은 24일경에나 첫 얼음을 탔고 홍성·보령은 12월 말에 첫 얼음을 그것도 아슬아슬하게 탔으니 확인된 조황정보랄 게 없었고, 그래서 낚시인들이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더구나 1월 1~2일은 ‘첫탕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연말에 내린 폭설이 빙판을 덮으면서 햇빛 투과를 막은 것이 불황의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1월 3~4일엔 주말출조객들을 약 올리기라도 하듯 전면적 호황무드로 급전환하여 하루 전까지 몰황을 보였던 섭벌지, 닷개지, 도이지 등에서 굵은 붕어들이 솟구쳤다. 이후 지속적이고도 강력한 한파로 결빙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충청도는 물론 경북과 경남까지 얼어붙었다. 경북 영천에서 얼음낚시 호황 소식이 들리고 있고 경남 사천에서도 소류지 얼음낚시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고 한다. 비록 개막은 늦었지만 올해 얼음낚시는 어느 해보다 길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승언2호지 중간 골 중류 연밭에서 부여에서 온 김성수씨가 굵은 붕어를 낚아내고 있다. 수심은 1.2m.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줄기차게 붕어가 낚였다.
“아이고~ 정 떨어질 만큼 안 낚이네요! 우리는 그냥 올라가야겠습니다.”
신정 첫날, 1박2일 일정으로 내려왔던 낚시인들이 하루 만에 서울로 철수할 뜻을 비쳤다. 그럴 만도 한 것이, 2개 조로 나누어서 법산지-파도리수로-모항지, 도내리수로-이원수로-섭벌지-닷개지-창촌지를 샅샅이 훑었지만 법산지에서 아침에 다섯 치 두 마리를 낚은 것을 제외하고는 붕어 얼굴도 보지 못한 완전무결한 꽝을 쳤다. 서산·태안 전역에서 얼음붕어가 실종된 듯했다.
“그래도 어딘가 붕어가 낚인 곳이 있을 겁니다. 우리는 이왕 내려왔으니 하루 더 꽝 치고 올라가렵니다.”
그렇게 해서 김형곤, 김기덕, 이준호씨는 조기철수하고 나와 박현철, 박경환씨만 남았다. 우리는 서산시내로 들어가 모텔을 잡고 장어구이 식당으로 가서 추위와 실망으로 소진된 체력을 보강했다. 그와 동시에 충남의 모든 낚시점에 전화를 걸어서 오늘 호황을 보인 곳이 있는지 탐문수사를 펼쳤다. 각 점주들의 이야기를 대충 종합해보니 우리가 아침 첫 코스로 들렀던 법산지(태안군 소원면)가 마릿수에서 가장 나았고 비석거리지(태안군 근흥면)에서 월척급 붕어가 몇 마리 낚인 것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호황터가 없었다. 법산지는 오전 10시부터 입질이 활발해지면서 오후에 월척을 비롯해 8~9치의 굵은 붕어가 제법 나왔다고 한다.
“그러게 법산지에서 좀더 기다려 보자니까, 옮기자고 촐싹대는 바람에…” “얼음구멍 네 개 뚫을 때까지 입질 없으면 미련 없이 옮기라고 한 게 누군데…!”
법산지 조기철수로 인한 몰황의 책임을 서로 전가하기 위해 옥신각신하는데 이영규 기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안면대물낚시 안종인 사장에게서 나온 정보인데 안면도 승언2호지 제방권 연밭에서 오늘 혼자 40마리를 낚은 사람이 있답니다. 씨알은 전반적으로 잘아도 9치까지 나왔다는데요.”
이런 흉년에 씨알이 잘든 크든 40마리라면 대단한 조황이다. 씨알 운운하며 배부른 소리 하지 말고 승언2호지로 가서 찌맛이나 실컷 보고 가자는 데 합의를 보았다.
예상치 못한 안면도발 희소식
2일 아침 7시40분, 승언2호지(안면2호지) 제방에 도착하니 제방 왼쪽 모퉁이의 500평 연밭에 20여 명의 낚시인이 포진해 있었다. 아마도 안면대물낚시를 통해 온 낚시인들일 것이다. 벌써 여기저기서 붕어를 올리는 모습이 보이는데 씨알은 5~6치로 잘다. 우리도 빙판에 올라서 구멍을 뚫었다. 수심은 1.5~1.7m. 연밭치고는 수심이 깊다. 보통 초빙기의 아침엔 수초대에서 입질이 뜸한 법인데 깊은 수심 덕에 붕어들이 연밭에 모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잔챙이가 너무 많은 듯, 챔질이 안 되는 입질이 많고 7치 이상을 보기 힘드니 긴장감이 사라진다. 혹시나 깊은 맨바닥에 큰놈이 있을까 하여 제방권 2m 수심을 뚫어봤지만 맨바닥에는 입질도 없다.
“한번 포인트를 옮겨볼까요?” “또 촐싹대기는… 딴 데라고 별 차이 있겠어? 진득하니 기다리면 오후엔 큰 씨알이 나올지도 모르잖아.”
낚시란 늘 소리 없는 갈등의 연속이다. 옮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과에 달관한 조선(釣仙)의 경지에 이르면 잡히거나 말거나 겨울의 맑은 정취 속에 명상을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르나,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나로서는 1시간 가까이 꼼짝도 하지 않는 찌를 보고 있자니 슬슬 발도 시려오고 찬바람에 살짝 두통까지 느껴지면서 이 무료한 상황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조바심만 일기 시작한다.
그때 낚시인들이 하나둘 중간 골 상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중간 골 상류엔 더 큰 규모의 연밭이 있는데 핸드폰으로 주고받는 대화를 들어보니 그곳에서 붕어가 제법 낚이는가 보다. 아이고, 나는 조선 되는 것 포기다! 착착 낚싯대를 걷으니 박현철씨와 박경환씨도 말없이, 아니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서 대를 접었다.
차를 타고 안면읍 시가지를 다시 통과해 승언2호지 중간 골로 진입했다. 15만8천평의 넓은 수면에 골이 세 개나 있는 승언2호지는 각 골의 진입로가 다 다르다. 중간 골은 5천평 정도의 상류가 온통 연밭인데 물낚시철엔 4짜급 붕어도 가끔 나오는 곳이다. 먼저 온 낚시인들의 조과를 보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모두 5~10마리씩 낚아놓았는데 7~8치가 많다. 역시 얼음낚시는 빠른 상황판단과 잦은 이동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다시 새기며 다급히 얼음구멍을 뚫는데, 갈대둔덕 너머에서 준척붕어를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저 정도 씨알이면 사진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카메라를 들었는데 갈대둔덕을 돌아서 가야 할 것을 급한 마음에 질러가려다가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 "아침부터 정신없이 낚았습니다." 승언2호지 중간 골 연밭에서 마릿수 재미를 톡톡히 본 시흥의 박종진씨가 일행 셋이 함께 낚은 붕어들을 펼쳐보였다.
얼음물에 빠진 아찔한 순간
“우지지직~”
눈 덮인 갈대수초 밑의 얇은 얼음이 내려앉으며 왼쪽 다리가 물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고 카메라를 든 손으로 빙판을 짚어서 카메라가 절반 가까이 젖어버렸다. 다행히 갈대둔덕은 수심이 깊지 않아 허벅지까지만 물에 잠겼다. “박 사장님, 나 좀 꺼내줘!”
박현철씨가 그 모양을 보고 달려와 내 손을 잡고 건져 올렸다. 이게 무슨 꼴이람. ‘수초대의 얼음은 얇으니 디디지 말라’는 정석을 무시한 벌이었다. 연밭은 얼음 두께가 10cm나 되어 바로 옆 갈대밭의 얼음이 2cm도 안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차에 가서 바지를 갈아입고 젖은 방한화 대신 운동화로 갈아 신고 다시 빙판으로 돌아오니 그 새 두 박 사장님은 서너 마리씩 낚아놓고 있었다.
다행히 햇살은 화사하고 기온도 많이 올라서 얇은 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도 견딜 만했다. 또 천만다행으로 서산 일번지낚시 김기동 사장을 만나서 김 사장님의 카메라로 촬영까지 무사히 마쳤다. 시흥에서 온 박종진씨 일행 세 명의 조과가 가장 돋보였는데 그들은 아침부터 중간 골 연밭에서 6~9치 붕어를 50마리 넘게 낚았다(4~5치까지 세면 100마리가 넘을 듯). 김기동 사장은 “큰 씨알은 드물어도 오늘 서산 태안을 통틀어 이곳 승언2호지의 마릿수 조과가 가장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 "나도 낚았어요." 서산 일번지낚시 김기동 사장의 딸 효정양이 예쁜 붕어를 낚아 올렸다.
“안면도에서 제대로 얼음낚시를 해보기는 처음”
그 다음 주말인 1월 8~9일에도 승언2호지의 마릿수 호황은 계속되었다. 그 날 ‘제5회 서울시낚시연합회장배 국민생활체육 얼음낚시대회’가 열려 450명의 꾼이 깔린 가운데 6~7치 붕어가 대거 쏟아졌다. 그러나 큰 씨알은 역시 드물어서 1등이 30cm 붕어였고 28cm 이상의 붕어가 4~5마리에 불과했다. 오히려 그 날 바로 옆의 승언1호지에서 8~9치 붕어가 더 많이 낚인 것으로 파악된다.
승언2호지 조황을 제보했던 안면대물낚시 안종인 사장은 “92년부터 안면도에 낚시를 다녔는데 승언2호지가 얼음낚시를 할 정도로 얼기는 처음이다. 그만큼 올 겨울의 추위가 대단하다. 아직도 미포지, 장곡지 등은 빙질이 얇지만 곧 안면도 전역의 저수지가 단단히 얼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호황이 터질 가능성이 많다. 안면도는 얼음낚시 미답지로 남아 있었기에 그만큼 기대감도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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