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夢幻)의 월척 향연
부남호 최상류에 산란붕어 몰렸다!
허만갑 기자
422만평이나 되는 부남호 본류는 재작년부터 붕어낚시터로 주목받기 시작해 작년 봄과 가을엔 도처에서 월척사태를 일으킨 곳이다. 그 광대한 수면에 흩어져 살던 붕어들이 봄이면 과연 어디로 집결해서 산란을 할까?
현장에서 만난 꾼들의 말·말·말
“어떻게 알고 왔나? 여긴 부남호 최후의 비밀 포인트.”
“월척? 여기선 삼십오 밑으로는 쳐주지도 않는다.”
“작년 4월 중순께 혼자 4관(약 15kg)을 낚아 올렸다.”
“지금 부지런히 낚아라. 곧 배수 시작되면 강바닥이 드러난다.”
▲ 부남호 최상류 다리에서 하류 쪽으로 바라본 모습. 가운데 섬과 왼쪽 연안 사이 물골이 포인트였다.
지난 낚시춘추 4월호 기사 중 유독 내 시선을 끈 대목이 있었다. 서산 부남호(일명 천수만 B지구)의 현황을 짧게 소개한 단신이었다.
“부남호 최상류 현대농장 앞 제방(실제로는 70m 길이의 작은 다리) 양쪽은 올해 처음 낚시를 시도한 곳인데, 지렁이에 낱마리지만 걸면 32~35cm급으로 굵다.”
본지 이기선 기자가 3월 10일 서산 낚시25시 김병진 사장과의 통화를 토대로 기술한 것이었다.
‘부남호 최상류… 미답의 포인트…’
나는 개인적으로 부남호, 그 중에서도 특히 본류의 팬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부남호 본류의 2번 제방과 3번 제방 주변에서만 50여 마리의 월척을 낚았으니 당연지사 아닌가. 9월 20일엔 41cm를 비롯해 월척만 30여 마리를 낚았는데, 그날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함께 출조한 박현철, 김형곤씨와 셋이 100여 마리의 준척월척을 주워 담다시피 했다.
나는 부남호 본류의 그 엄청난 붕어들이 긴 겨울을 나고 새봄을 맞으면 어디에서 산란활동을 전개할 것인가 궁금했다. 그런데 마침 ‘부남호 최상류’란 키워드가 등장한 것이다.
무릇 산란기 붕어들은 수심이 얕고 수초가 많은 상류로 몰리는 법이다. 그렇다면 부남호의 붕어들 역시 최상류에 몰려들지 않을까? 얼른 컴퓨터를 열고 위성사진(Daum ‘스카이뷰’에서 무료서비스하고 있다)으로 부남호 최상류를 살펴보았다. 모니터 화면에 뜬 것은 약 1.5km 길이의 길고 좁은 수로에 멋지게 깔린 수초대! 수초 속에서 뒤척이는 산란붕어들의 몸짓이 위성사진의 흐린 망점 사이로 보이는 듯했다.
곧바로 서산 낚시25시에 전화를 걸어 부남호의 상황을 물었다. 그러나 김병진 사장은 “갑자기 물을 빼기 시작해 전역의 조황이 내리막을 타고 있다”고 했다. 초봄에 배수라니…!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만수 때 고작 60cm~1m 수심을 유지하는 부남호 최상류. 수위가 내려가면 썰물의 갯벌처럼 황량한 맨땅으로 변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 "아침에 소나기 입질을 받았습니다." 4월 3일 부남호 최상류 수로를 찾은 서산낚시인 신현성씨. 30마리 붕어 중 절반 이상이 월척이었다.
▲ 산란기를 맞은 붕어들이 집결한 부남호 최상류 수로에서 4월 4일 시흥 아트미술학원 이준호 원장이 35cm 붕어의 파이팅을 즐기고 있다.
“조황은 미지수지만 물은 만수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4월 3일, 서천 부사호로 출조하려다가 부사호의 조황이 내리막이라는 말을 듣고 부남호 최상류를 다시 떠올렸다. 낚시25시에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를 않아서 서산 강바다낚시 백영호 사장에게 현재 상황을 물었다.
“부남호의 물은 만수다. 그러나 본류든 지류든 별 조황은 현재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의 귀는 늘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열린다. 별 조황이 없다는 말은 흘려듣고 만수(滿水)라는 말에만 솔깃했다. 나는 동행하기로 약속한 수원의 박경환씨에게 제안했다.
“부남호가 지금 만수라니, 내 생각엔 최상류에 산란붕어들이 모여들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어 낚시여건이 어떤지는 모릅니다. 미답터라서 사전정보도 없습니다. 그러니 가서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되겠다 싶으면 붙어봅시다. 만약 아니다 싶으면 그때 부사호로 가도 늦지 않습니다.”
햇살이 화창한 서해안고속도로를 내달려 부남호의 관문인 서산시 부석면 갈마리수로(검은여수로)에 도착한 시각은 3일 오후 2시. 갈마수로를 따라 본류까지 가서 3번 제방을 곧장 가로지른 다음 우회전해서 2.5km 올라가니 무성한 갈대밭이 오른쪽으로 펼쳐지면서 최상류 다리에 이르렀다. 과연 만수였고 물색도 적당히 흐려서 좋았다. 다만 갈대만 있고 부들이 없어 좀 아쉬웠다. 부들 속의 붕어는 늘 거기에 박혀 있으므로 보트만 타면 쉽게 낚을 수 있지만, 갈대밭의 붕어는 갈대 가장자리를 끼고 회유하므로 대박과 몰황의 양극을 달릴 수 있다. 선뜻 결정짓지 못하고 있는데 다리 하류 100m 지점의 연안에 한 사람이 낚시하는 모습이 언뜻 보였다.
질척거리는 습지를 걸어서 가보았지만 그 낚시꾼이 있는 자리까지는 물이 있어서 장화를 신지 않고선 접근할 수 없었다. “좀 됩니까?”하고 소리쳐 묻자 그 낚시꾼,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데, 그만 웅덩이에 넣어둔 살림망 속에서 눈치 없는 붕어 한 마리가 ‘펄쩍’하고 뛰어오른다. 그러자 다른 붕어들도 덩달아 놀랐는지 “푸다다닥 와다다닥” 튀는데 월척이 훌쩍 넘는 붕어들만 대략 10여 마리다(나중에 확인해보니 준척월척으로 30마리가 넘었다). 멋쩍은 표정이 된 그에게 ‘밤낚시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밤낚시는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되긴 될 것”이라고 한다. 고동치기 시작하는 심장을 억누르고 핸드폰을 열고는 박경환씨에게 소리쳤다. “당장 보트 내려요!”
▲ 보트낚시 두 번째 출조에 천수만 최상류를 찾아 39cm 붕어를 낚은 서울 논현동의 양영달씨.
▲ "원없이 손맛 봤습니다." 수원 낚시인 박경환씨. 손에 든 붕어 두 마리는 모두 36cm짜리다.
‘오호라, 상류 쪽이 더 깊잖아?’
일단 다리 밑에서부터 하류까지 약 1km 구간을 보트를 타고 내려가면서 탐색해본다. 수초는 연안 갈대밖에 없으니 탐색기준은 수초가 아니라 수심이다. 봄철임을 감안한다면 너무 깊은 곳보다 1~1.5m 수심이 좋을 것이다. 20~30m 거리마다 폴대를 내려서 수심을 체크해보는데 의외로 수심이 얕다. 더러 노가 바닥을 긁을 만큼 얕은 곳도 있었다. 결국 우리는 다리 주변 최상류의 수심이 하류보다 더 깊다는 것을 알아냈다. “포인트는 상류요. 다시 올라갑시다.”
다리 밑의 수로는 중앙의 긴 섬으로 인해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그 중 (다리에서 하류를 볼 때) 왼쪽 수로가 깊고 오른쪽 수로는 극히 얕았다(이튿날 우리가 철수할 때 이 얕은 수로를 바지장화를 입고 도강한 낚시인 두 사람이 있었다. 우리가 철수한 뒤 섬에서 밤낚시를 한 그들이 얼마나 낚았는지는 알 수 없다). 왼쪽 수로는 특이하게 중앙부가 얕고 양쪽 갈대밭 가장자리가 더 깊었다. 얕은 곳은 50~60cm, 깊은 곳은 80cm~1m 수심. 토질은 뻘 대신 단단한 모래여서 바닥여건은 상급이었다. ‘얕은 중앙부가 나을까? 깊은 가장자리가 나을까?’ 고민하는데 낚싯대를 걷기 시작한 현지꾼 신현성씨가 내 고민을 눈치 채기라도 한 듯이 충고했다.
“붕어가 가장자리를 탑니다. 깊은 골을 찾아서 갈대 쪽으로 찌를 붙이세요.”
우리는 보트를 수로 중앙에 멀찌감치 세우고 연안을 향해 3.5~4칸 6대씩을 스윙으로 던져 갈대 가까이 붙였다. 해질 무렵 시흥 아트미술학원의 이준호 원장이 도착했다. 이미 우리에게 신현성씨 일행의 조황을 전해들은 그는 신씨가 낚시한 자리에 앉았다.
저녁 7시, 첫 입질은 이준호 원장이 받았다. 하류 쪽 갈대에 갓낚시 스타일로 붙인 새우미끼에 35cm가 걸려들었다. 향어처럼 살찐 대물붕어의 사나운 저항! 이 원장은 부남호 붕어의 덩치에 넋이 빠진 모습이다. 그러나 어두워진 후에는 입질이 없었다. 박경환씨가 떡밥으로 미끼를 바꿔 8~9치 붕어 두 마리를 낚았으나 그마저도 밤 10시가 되자 스톱. 아침낚시를 기대하며 일찌감치 눈을 붙였다.
이튿날 아침, 입질은 7시가 넘어서야 나타났다. 스멀대며 솟은 찌가 비스듬히 기울 때 챔질! 손목을 때린 듯한 통증과 함께 4호 줄이 울었다. 우람한 36cm 붕어가 뜰채 속에서 버둥대는데 체고가 높아 상반신만 보면 영락없는 4짜다. 그때부터 입질이 연이어졌다. 이준호 원장이 35cm급 두 마리를 연타로 끌어내며 거의 몽환지경에 빠진다. 저러다 덜컥 4짜라도 걸면 ‘실성지경’에 이를까 걱정스럽다. 9치를 끌어내며 “씨알이 잘다”고 투덜대던 박경환씨도 35cm짜리를 걸어 멋진 아치를 그린다. 미끼는 지렁이. 걸면 대부분 월척이다.
그 시각, 삼공보트낚시 최현오 사장은 우리와 실시간 통화를 나누며 호황소식을 백방으로 타전하였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양영달씨가 뒤늦게 합류해서는 보트를 띄우자마자 39cm 붕어를 올렸다. 그냥 4짜라 해도 하등 의심할 것 없는 대구리다. 그는 우리보다 상류, 그러니까 거의 다리 밑에서 낚시했는데 알고 보니 그 자리의 수심이 1~1.2m로 가장 깊었다. 역시 깊은 곳에 큰 붕어가 있었다.
한낮에 뜸했던 입질은 오후 2시부터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연발성은 사라지고 1시간 간격으로 드문드문 찾아왔다. 좁은 수로에 여러 척의 보트가 몰려 붕어들이 놀란 듯했다. 어두워지면서 입질은 끊겼고, 밤낚시가 안 된다는 사실을 이미 체득한 우리는 보트를 돌려서 연안으로 나왔다. 아마 밤낚시가 됐어도 나왔을 것이다. FTV의 ‘비바보트’를 진행했던 박현철씨가 돼지고기와 참숯을 들고 찾아왔기 때문이다.
봄날의 물가에서 한잔 걸치는 이 기분! 탈속의 흥취에 빠져 시라도 읊고 싶은 멋진 밤이다. 하현달도 일찌감치 떠 교교한 빛을 뿌린다. 봄은 언제나 더디게 와서 화살처럼 빨리도 참 무정히도 달아난다. 이제 곧 저 광활한 하류로 돌아갈 부남호 붕어들처럼….
취재협조(02) 삼공보트낚시 2681-5230
조황문의(041) 서산 낚시25시 664-2782, 서산 강바다낚시 664-5559
▲ 바지장화를 입고 오른쪽 얕은 수로를 건너 섬으로 들어간 낚시인들이 밤낚시할 자리를 고르고 있다.
▲ 부남호 최상류 다리에서 1km쯤 더 올라간 지점의 풍경. 3월 하순에 이곳에서도 굵은 붕어가 많이 낚였다고 한다.
부남호 최상류 조황, 언제까지 지속될까?
현장에서 만난 서산꾼 신현성씨는 “4월 중순이면 배수가 시작되고 그러면 최상류 낚시는 끝장”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현장을 촬영하면서도 ‘정작 5월호가 발간된 후엔 이곳의 낚시가 불가능하겠구나’싶어 착잡했다. 최근 부평낚시인 박종수씨와 통화하다가 뜻밖에 “나도 재작년과 작년에 그곳(우리가 낚시한 최상류)에서 보트낚시를 했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4월 초순부터 중순 사이에 혼자 4관까지 낚은 적도 있다고 했다. 만약 배수가 시작되면 최상류의 낚시는 큰비가 내려 다시 만수위를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4월 11일 현재까지는 부남호의 배수가 시작되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