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섬붕어 탐사기

장사붕어 찾아서 남해도에 가다

허만갑 기자

“아줌마, 지렁이 있어요?”
“그러믄예! 몇 그람이나 드릴까?”
“몇 그램?…갯지렁이 말고 민물지렁이요!”
“민물지렁이? 그런 건 없는데, 그건 뭐할라꼬예?”
“뭐하긴요. 붕어 낚으려고 그러지.”
“에에…? 잘난 붕어 낚아서 오데 쓸라꼬? 대교 밑에 가면 농어가 바글바글한데 갯지렁이 들고 농어나 잡으러 가소마!”

남해대교 초입의 낚시점에서 우리는 남해도 민물낚시의 현주소를 실감했다. ‘낚시점 20년에 민물지렁이 찾는 손님은 처음 봤다’는 안주인의 투덜거림을 뒤로 하고 노량해협의 남해대교를 건넜다. 봄이면 벚꽃터널을 이루는 19번 국도변 벚나무들은 짙은 녹음에 싸여 있었다.
지난 6월 27일, 서울에서 장장 400km를 달려 남해도를 찾은 목적이 감성돔, 참돔이 아니라 붕어라면, 웬만한 낚시인들은 미쳤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남해도 근처의 진주가 고향인 나로서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이 섬에 무려 175개의 저수지가 있고, 그 저수지들 중 상당수가 상상을 초월하는 붕어자원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무엇보다 남해도는 붕어낚시의 철저한 사각지대로서 민물낚시꾼 보기가 힘든 곳이라 토종붕어의 원시적 야성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즉 붕어도 많지만 낚기도 쉽다는 것이다.

▲  제방에서 바라본 큰골지 좌안. 낚시인이 선 자리 위의 버드나무 밑(오른쪽 사진)이 만수 때 명당이란다.

▲  탄탄한 체형의 남해도 붕어. 머리가 작고 체고가 높으며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한다.

175개 소류지가 묻혀 있는 남해도

고현면소재지를 지나 남해읍에 도착하니 내비게이션의 친절한 아가씨가 ‘평현리 신촌마을 비석 앞에서 우회전해 올라가라’고 가르쳐준다. 그런데 입력데이터에 문제가 있었을까? 내비게이션은 우리가 가려는 큰골지(=대곡지, 남해군 남해읍 평현리) 바로 밑의 신촌지에 이르러 “목적지에 다 왔으니 안내를 종료합니다.”하고 선언해버린다. 이런 망할! 다행히 모니터에 큰골지 수면이 표시되어 그 방향대로 좁은 시멘트포장길을 이리 꾸불 저리 꾸불 올라가는데, 저수지가 있다는 걸 알고 왔는데도 ‘대체 이 위에 못이 있기는 있나’ 싶을 만큼 희한찬란한 꼬부랑길이다(신촌지를 지나 시멘트길로 계속 올라가면 외딴 집의 벽이 가로막는다. 거기서 조심조심 좌회전했다가 핸들을 우측으로 ‘이빠이’ 꺾어서 급한 비탈길을 차고 올라가면 ‘회현이네농장’이 나오고, 왼쪽 아래로 큰골지 수면이 보인다. 상류 쪽에 차 두 대가 겨우 주차할 수 있다.)
수면적은 6천평, 수위는 60%, 물색은 10점 만점에 9점이다. 저 아래 제방 쪽에 현지꾼 이근두씨 일행이 앉아 있다. 이·근·두. 남해도 붕어낚시에 빠삭하다는 저 분은 차도 없어 택시를 타고 남해도 저수지를 누비는데, 365일 중 200일 이상 낚시를 다니며 봄여름가을겨울 철 따라 명당을 꿰차고 있다는, 무척 친해지고 싶은 분이다.

남해도의 붕어도사, 이근두씨를 만나다

창원 세월낚시 서찬수씨와 함께 이씨에게 다가갔다. 이 저수지는 이근두씨가 서찬수씨에게 가르쳐준 못이다. 이근두씨는 FTV ‘월척특급 시즌3’에서 보여준 서찬수씨의 갓낚시를 남해도에서 직접 실험해보고는 그 효능에 크게 놀라 서찬수씨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큰골지를 “남해도에서 붕어가 가장 많은 저수지 중 하나”라며 “떡밥에 여덟아홉치가 마릿수로 낚이고 새우를 쓰면 월척, 나아가 4짜가 낚이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근두씨 옆자리의 방재윤씨는 낮에 벌써 떡밥으로 8~9치 10여 마리를 낚아놓고 있었다. 낚싯대는 2칸~2.5칸대. 이렇게 짧은 대로, 그것도 떡밥으로 준척붕어를 타작할 수 있는 곳이 아직도 남한 땅에 남아있었더란 말인가! “어젯밤 내가 상류에서 새우로 삼십오까지 낚았다”는 이근도씨의 말에, 태연을 가장했어도 호흡이 가빠온다.
상류에 서찬수씨와 조희동(FTV ‘조희동 기자의 사람과 낚시’ 진행자)씨가 마주 보고 앉고, 제방 오른쪽 후미진 중류에 이상훈(창원)씨가 앉았다. 김용철(부산)씨는 제방 왼쪽 하류에, 강창호(천류 필드스탭)씨는 그 밑의 무넘기에 앉았다. 나는 서찬수씨 약간 밑에서 떡밥낚시를 해보기로 한다.
이근두씨는 “남해도엔 두 개의 대곡지가 있다. 고현면의 큰 대곡지(1만2천평)와 이곳 남해읍의 작은 대곡지다. 헷갈릴까 싶어서 작은 대곡지는 큰골지라 부른다. 큰 대(大), 골 곡(谷), 결국 같은 말 아닌가. 폭발력은 이곳보다 대곡지가 더 세다. 작년엔 형님(방재윤씨)과 둘이 대곡지에서 하루에 월척만 100마리를 낚았다. 그런데 올해 이상하게도 아직 대곡지 붕어가 입을 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어째 풍이 약간 섞이는 듯하지만 그 눈빛을 보면 의심이 사라진다. 가히 펌프질의 달인이라 할 만하다.
해거름에 벌써 강창호씨 자리에서 요란한 물소리가 울렸다. 월척이냐고 물어보니 ‘잉어’란다. 뒤이어 물가에 붙여둔 서찬수씨의 찌가 물속으로 빨려들었다. 그러나 역시 잉어! 어째 느낌이 이상하다. 어둠이 깔리고… 칠흑으로 변해도 찌가 꼼짝을 않는다. 그때 날아든 문자. ‘물을 빼고 있었어요. 방금 수문 잠그고 갔음.’ 강창호씨가 보낸 것이다. 배수 때문에 붕어들이 입을 닫은 것일까?
밤 9시경 서찬수씨가 8치 한 마리를 새우로 낚고 그 후로는 침묵이다. 골 상류에서 냉풍이 불어왔다. 산중 계곡지라 그럴까? 낮에는 폭염이 뜨겁더니 밤에는 한기가 엄습해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 경기도 가평이 고향이지만 남해도에 30년째 살고 있다는 방재윤씨. 떡밥으로 낚은 조과를 보여주고 있다.

큰골지 붕어의 괴력, 아직도 아른아른

밤 11시, 약속이나 한 듯이 강창호씨의 ‘식당차’ 앞으로 모였다. 테이블과 의자, 버너, 냄비, 쿨러가 내려지고 “끼릭” 소주병 따는 소리가 울렸다. “오늘은 부디 밤새 붕어와 싸우느라 술잔 돌릴 일이 없기를 바랐는데….” 김용철씨가 한숨을 쉬며 종이잔에 소주를 채운다. 김용철씨는 직장이 한 달간 휴업에 들어가 얼씨구나 하고 낚시보따리를 싸서는 이틀에 한 번꼴로 출조에 매진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15일 출조에 월척 한 마리 못 낚았다’고 하니 정말 올 여름의 불황이 무섭긴 무섭구나 싶다.
이근두씨는 초저녁에 전화를 받고 낚싯대는 펴놓은 채 택시를 불러 남해읍내로 외출(?)했고, 방재윤씨는 ‘이상하게 입질이 없다’고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밤 10시쯤 철수했다.
남해도까지 와서 꽝 치는 심정이야 오죽하랴만, 토종붕어의 변덕에 이골이 난 꾼들인지라 소주 한 잔과 더불어 입낚시로 돌아선다. 대화는 지난 겨울부터 여섯 달 동안 남해도의 소류지, 평지지, 해안수로를 후벼 판 서찬수, 강창호씨가 주도했는데, 주제는 ‘방대한 남해도 붕어자원의 실체를 도무지 가늠할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해도에서만 붕어낚시점을 해도 삼년은 자신 있다”는 서찬수씨의 말이 남해도에 대한 그의 감정가격을 말해주었다.
여름밤은 짧다. 잠깐 눈을 붙였는데 어느새 아침이다. 낚시자리로 가보니 그야말로 엉망진창. 붕어들이 새벽에 움직였는지 찌들이 전부 딴 자리로 가 있다. 뒤엉킨 줄을 풀면서 자동걸림된 8치 붕어 두 마리를 수확했다.

입질은 오히려 아침부터 나타났다. 이상훈씨가 새우미끼로 8~9치 4마리를 연거푸 올린다. 그 와중에 월척으로 추정되는 녀석을 올리다 놓쳤다며 비명을 지른다. 나도 아침에 떡밥으로 8치와 9치를 한 마리씩 낚았다. 힘이 천하장사다. 입질이 계속 들어올 것 같았으나 햇볕은 또 금세 견딜 수 없는 열기를 뿜어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대를 접었다.

▲ "네칸반대로도 제압이 안돼!" 남해읍 큰골지(대곡지) 상류에서 붕어를 건 서찬수씨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밤에는 뜸하다가 아침에 입질이 빗발쳤다.

※7월 초의 남부지방 집중호우로 큰골지는 만수를 이루었다. 만수 후엔 아직 낚시해본 사람이 없다. 이근도씨는 “만수 때는 최상류 물골에서 건너편 벽을 노려 갓낚시를 하거나 제방 무넘기 옆의 편평한 자리에서 버드나무 밑을 노리면 월척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말했다. 제방 무넘기 옆으로 가려면 신촌지 하류에서 좌회전해 가다가 오른쪽에 큰골지 제방이 보이면 곧 나타나는 시멘트길을 따라 우회전해 올라가야 한다<지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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