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갈수찬스 현장 - 해남 개초지
월척의 완벽조건 : 대형지 갈수 때 보트 타고 갓낚시
누군가 ‘월척을 확실히 낚을 수 있는 조건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①겨울철 ②대형 저수지가 ③심한 갈수를 보일 때 ④80cm 미만의 얕은 물가를 ⑤보트 스윙낚시로 노려보시라!”
허만갑 기자
박현철씨의 목소리는 상기돼 있었다.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붕어 20마리를 낚았는데, 열두 치 2마리, 열한 치 3마리, 턱걸이 2마리, 나머지도 최하 8치라오. 무거워서 살림망을 들지도 못하겠소!”
전화기 너머에서 실실 웃는 그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아 흥분되면서도 살짝 짜증이 난다.
“그래서 어떡하란 겁니까?”
“당장 보트 싣고 내려오란 거지, 어떡하긴 어떡해요!”
모처럼 찾아온 일요일의 휴식은 그 전화 한 통에 날아가 버렸고, 시동을 건 내 차의 내비게이션엔 ‘해남 개초지, 398km’가 선명하게 찍혔다. 미쳤지 미쳤어! 내 귀엔 박현철씨가 거둔 조과보다 그가 전해주는 개초지의 현 상황이 더 쟁쟁거렸다.
“갈수찬스요 갈수찬스! 물이 형편없이 빠져서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1.5m가 안되는데, 붕어들은 모두 50~70cm 수심에서 낚이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 모두 깊은 곳만 노려서 낱마리요! 얕은 곳에서 낚인다고 암만 얘기해도 소귀에 경 읽기요. 그러니 허부장이 와서 갓낚시가 뭔가를 보여줘봐요!”
FTV ‘비바보트’의 진행자 박현철씨는 그동안 나와 동행하면서 갈수지에서 보트 갓낚시로 여러 번 재미를 보았다. 홍성 장곡지, 보령 해창지, 보령 제민지에서 상류가 다 드러날 정도로 물이 빠진 상태에서도 얕은 곳에서만 입질하는 붕어의 습성을 체험한 것이다. 처음엔 납득하지 못했던 그도 지금은 갈수찬스의 광팬이 되어 갈수상태의 개초지에서 남달리 얕은 연안을 노려 대박의 행운을 안은 것이다.
▲ 물이 빠진 개초지 상류의 40cm 수심에서 월척을 낚아내는 박현철씨. 70cm 이하의 얕은 수심에서 준척 월척이 쏟아졌고 1m 이상 깊은 수심에선 입질이 없었다.
▲ 갈수상태의 개초지에서 보트낚시로 거둔 조과. 왼쪽부터 김영철(의정부), 박지현(서울) 이종열씨(서울).
“얕은 곳에서 낚인다고 해도 안 믿어요!”
11월 30일, 해남군 화원면 장춘리 개초지(18만평)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5시, 무넘기 옆의 물가엔 모두 5척의 보트가 떠있고 꾼들은 모두 차에서 쿨쿨 자고 있다. 보트를 펴려고 나갔다가 송곳 같은 한기에 화들짝 놀라 차안에서 머뭇거리다 스르르 잠이 들었나보다.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박현철씨다. 일단 밥부터 먹고 보트를 펴란다. 이 시간에 웬 밥?
낚시차량들 사이의 텐트 안으로 들어서자 의정부 김영철씨 사모님이 갓 지은 밥에 쇠고기 볶음, 김치찌개로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수저를 내민다. “먼 길 오시느라 시장하셨죠? 드시고 천천히 들어가세요.” 아, 밀려오는 감동! 부스스한 몰골의 다섯 낚시꾼들은 꿀맛 같은 식사를 마치고 물가로 나선다.
무넘기에서 보니 만수에서 1m 정도 빠진 상태다. 개초지는 평지형 저수지라서 1m 배수로도 확연히 달라졌다. 물가에선 5칸대를 던져도 30cm 수심이 안 돼 연안낚시는 힘든 상황. 보트가 이럴 때 빛을 발한다. 여름에 무성하던 마름은 모조리 삭아내려 수면엔 수초 한 포기 없다. 보트낚시도 손을 타지 않은 생자리가 명당인 법이라 “어제 낚시를 하지 않은 구간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상류 가든 바로 앞에선 하지 않았다”고 하기에 그쪽으로 노를 저어 들어갔다.
물가에서 40m쯤 떨어진 거리에 폴대를 내리니 ‘탕’하는 상쾌한 감촉! 옳거니, 바닥이 좋군. 바닥이 깨끗하고 단단할수록 붕어가 먹이활동을 왕성하게 한다. 폴대가 푹푹 박히는 뻘밭에선 큰 조과가 없다. 수심은 60~70cm. 일부러 이 수심을 찾아서 맞추었다. 다른 보트들은 모두 내 앞쪽, 즉 더 깊은 중앙부에 포진해 있다. 박현철씨만 ‘더 얕은 수심을 찾아보겠다’며 가든 왼쪽 상류를 탐색하고 있다.
2.8칸부터 3.6칸까지 4대를 펴고(보트낚시는 이동이 잦으므로 다대편성은 오히려 불리하다) 지렁이를 세 마리씩 달아 던졌다. 5분도 안 돼 맨 오른쪽 3.6칸대 찌가 살짝 떠서 오른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돌아온다. 이런 ‘왔다리갔다리 입질’은 붕어의 활성도가 무지 좋을 때 나타나는 것이다. 챔질 순간 “쌔앵” 줄이 울면서 환상적인 손맛과 함께 34cm 월척이 이끌렸다. 뒤이어 정면의 2.8칸대 찌가 스멀스멀 네 마디쯤 솟는다. 챔질하자 또다시 “쐐액!” 32cm 월척이다. 낚시 개시 10분 동안 월척 두 마리를 안았으니 천 리 길을 달려온 보람이 있다.
입질은 계속 이어져 2시간 동안 8마리를 낚았다. 큰 월척은 없지만 9치 밑으로도 없다. 그런데 입질이 깔끔하지는 않다. 뜰채로 바닥을 긁어보니 시커먼 마름의 잔해들이 묻어나온다. 퇴적물이 많아 입질이 지저분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미끼 함몰을 줄이는 게 핵심. 약간 가벼운 찌맞춤이 유리하고 채비를 자주 꺼냈다 던지면서 붕어의 시각을 자극하는 게 효과적이다.
박현철씨는 “여기는 40cm 수심인데 던지자마자 월척을 뽑았지만 그 후로는 잔챙이다. 역시 너무 얕은 수심은 씨알이 잘다”고 했다. 요즘은 박현철씨가 나보다 더 얕은 수심으로 파고드는 경향을 보인다. 11시 30분이 되자 김영철 사장에게서 호출이 왔다. 점심 먹으러 나오라는 것이다. 또다시 진수성찬이 물가에 차려져 있다. 낚시 와서 이렇게 잘 얻어먹기도 처음이다.
▲ 만수에서 1m 이상 물이 빠져 수면적이 크게 줄어든 개초지.
물이 빠질수록 붕어는 더 가장자리에서 입질
오후 4시에 다시 보트에 올라 밤낚시를 시도해본다. 오전에 했던 장소에서 10m쯤 더 연안 쪽으로 접근해 50cm 수심에 찌를 세웠다. 밤에는 낮보다 더 얕은 수심, 더 깨끗한 바닥이 포인트가 된다. 새우와 지렁이를 번갈아 달았다. 짧은 겨울해는 금세 넘어가고 완전히 어두워진 저녁 6시 30분경 새우를 달아놓은 3.6칸대 찌가 좌우로 흔들리면서 옆으로 끌린다. 채는 순간 맹렬하게 내달리는 괴력! 36cm 월척이 뜰채에 묵직하게 담겼다.
“한 수 했어요! 밤낚시도 되려나 봐요.”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밤 8시까지 기다려봤지만 감감무소식. 결국 밤낚시는 포기하고 물가로 나와 다시 의정부 김 사장님 부부의 식당텐트에 모여 술잔을 돌렸다. 김영철 사장은 우리 식의 낚시가 자못 신기한 모양이다. 그는 1m 수심을 노렸는데 3마리밖에 낚지 못했다.
“아니, 물이 이렇게 빠졌는데도 붕어들이 얕은 곳에서 낚이네요?”
“물이 빠질수록 붕어들은 더 얕은 가장자리에서 잘 낚입니다.”
“왜 그렇죠?”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물이 빠질수록 뻘이 없는 단단하고 깨끗한 바닥이 물가에만 남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가 싶어요. 또 물이 빠질수록 물색이 탁해지니까 먹이를 찾는 붕어들이 얕은 수심으로 몰립니다. 지금보다 물이 더 빠지면 더 좋습니다. 붕어들이 더 응집되고 생자리에 적정수심이 형성되기 때문이죠.”
박현철씨가 명쾌하게 설명했다. 개초지는 여전히 배수가 진행 중이었다. 하우스농사를 많이 짓는 해남에선 겨울에도 배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배수와 갈수는 악조건으로만 인식돼 있지만, 이처럼 겨울철 대형지에선 대박의 기회로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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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찬스의 5대 조건
①겨울철 수온이 낮은 11~3월에 물이 빠져야 산소결핍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여름엔 갈수가 고수온과 산소결핍 상태를 야기해 붕어의 활성도가 떨어진다. 그러나 물이 찬 계곡지는 여름에도 갈수찬스가 나타난다.
②대형지 역시 대형지에 어자원이 많기 때문에 줄어든 수면에 고기들이 응집되었을 때 폭발력이 높다.
③50% 이하의 갈수 어중간하게 물이 빠져선 갈수찬스가 나타나지 않는다.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1.5m 이하로 내려앉을 때 붕어들이 왕성하게 움직이며 4짜급 대어가 속출하는 경향을 보인다. 갈수지 붕어들의 움직임이 살기 위한 몸부림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배회하는 붕어는 낚시에 걸릴 확률이 높다. 그런 면에서 갈수기 낚시는 비정하다.
④얕은 수심 갈수찬스의 핵심이다. 갈수지의 붕어는 모두 얕은 물가에 몰려 있다. 특히 초저녁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 이유는 저수지 중앙부엔 뻘이 두텁게 쌓여 있어 붕어들이 그곳에서 먹이활동을 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먹이를 찾는 붕어들(낚시에 걸려드는 붕어들)은 뻘이 조금이라도 적은 물가로 접근하여 회유한다.
⑤보트낚시 연안낚시로도 갈수찬스를 누릴 수 있지만 보트를 타면 훨씬 유리한 상황이 된다. 갈수찬스의 대박은 하류보다 상류에서 터지는데 갈수지 상류는 너무 얕아서 연안에선 노리기 힘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