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설 속 안좌도 방랑기

아직도 숨은 둠벙에 5짜붕어 괴담이…

Ｉ허만갑 기자Ｉ

맹렬한 한파로 신안군의 섬붕어터들도 얼어붙었다. 한 단골꾼은 “하의도 허박동수로가 꽁꽁 얼었다. 9년 동안 섬낚시를 다녔지만 이런 추위는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섬붕어낚시 중심지인 안좌-팔금-암태-자은도도 크리스마스 이후 출조객의 발길이 거의 끊긴 상태다. 낚시인들은 “1월 중순까지는 물낚시가 힘들 것으로 예상되며, 그만큼 붕어자원이 보존되는 효과로 인해 2월 이후 대박을 누릴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하고 있다.

▲ 암태도에서 바라본 자은도. 안좌도-팔금도-암태도-자은도가 모두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  릴낚시로 월척급 붕어를 낚아 올리는 안좌도 현지꾼. 남강수로의 1번수로에서.

여명이 밝아오는 압해도 송공리선착장. 7시30분에 출항하는 첫 배를 타기 위해 40분 일찍 차량 탑승 라인에 줄을 섰다. ‘철부선에 실을 수 있는 차량이 20대 안팎에 불과하니 미리 가서 기다리지 않으면 배를 못 탈 수도 있다’는 말에 서둘렀더니 5번째로 탑승.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다도해는 평온했다. 곧 닥쳐올 폭풍은 까맣게 모르고….
목적지는 안좌도 남강수로. 서울 박현철씨 일행이 며칠째 월척을 낚아내고 있다 한다. 암태도 오도선착장에 내려 내비게이션을 켜고 남강리를 찍었더니 전파 수신이 자유롭지 않은 듯 기계가 버벅댄다. 그러나 이정표가 잘 돼 있어 길 찾기는 쉽다. 암태도에서 팔금도로, 팔금도에서 다시 안좌도로 두 개의 연도교를 건너 안좌읍에 들어섰다. 안좌도는 안·팔·암·자 4개 섬 중 면적은 두 번째지만(자은도가 가장 크다) 인구는 가장 많다. 압해도가 연륙되기 전 목포항에서 가장 가까운 안좌도에 인구가 집중된 것인데, 이제는 압해도 송공리선착장에서 가까운 암태도가 더 번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안좌읍을 지나 그대로 직진하니 오른쪽에 좁은 갯벌이 드러나고 바로 왼쪽에 남강수로가 펼쳐진다. 남강수로는 1917년 간척사업으로 기좌도와 안창도가 합쳐져 안좌도가 생길 때 만들어진 수로다. 4km의 길이에 40~60m 폭을 가진, 안좌도에서 가장 큰 수로다. 이 수로의 서쪽 연안은 옛 기좌도요 동쪽 연안은 옛 안창도다.
하류 제방에서 1km쯤 올라가니 수로 중간 다리에 박현철씨와 의정부 김영철 사장님 내외분이 계셨다. 김 사장님 부부는 개초지 후 한 달 만에 뵌다. 남강수로는 세 개의 다리를 기준으로 남쪽부터 1번·2번·3번·4번 수로로 나뉜다. 박현철씨는 여기서 보트낚시를 했다. “3번 수로는 8치급 마릿수가 좋았고 2번 수로는 월척 배출이 잦았다. 그런데 현지꾼 말로 4짜 확률은 최하류 1번 수로가 가장 높다니 오늘은 1번 수로에서 해볼 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도….

살림망에 담으려다 놓쳐버린 53cm!

보트를 내려 바람을 넣는 동안 1번 수로 중간쯤으로 노를 저어 들어간 박현철씨가 큰 붕어를 낚아 올린다. “오예, 삼십팔 센티!” 이런, 마음이 바쁘다. 뒤이어 박씨의 낚싯대가 다시 크게 휘더니 멀리서 봐도 엄청난 대어를 뜰채에 담는다. 그런데, 몇 센티라는 말이 없다. 잉어인가?
허겁지겁 초고속으로 보트를 펴고 들어가면서 “방금 낚은 게 뭐냐”고 물었다. 그런데 말 없는 박현철씨의 얼굴이 흙빛이다.
“놓쳤어!”
“뭔데요?”
“오십삼 센티 붕어.”
“에엣? 농담하지 말아요! 무슨….”
“…”
농담이 아니었다. 그의 표정이 말해주었다. 내가 먼발치서 본 씨알로도 4짜는 훨씬 넘지 않았던가.
“계측자 위에 올린 순간 정신이 아득했어요. 살림망 입구에 들어가지 않는 씨알이라 살림망 끈을 풀어서 넣으려는 순간, 펄쩍 뛰더니 그만 물에 빠져버렸어! 고기를 보트 바닥에 내려놓고 살림망을 풀어야 했는데…, 반쯤 혼이 나갔었나 봐. 놈이 죽은 듯 누워 있기에 그렇게 튀어서 달아날 줄은 몰랐지 뭐요.”
한참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다가, 우스개로 그를 위로했다.
“차라리 잘 됐어요. 새해에 낚시춘추와 삼공보트가 보트 한 척을 내걸고 붕어 빅더비상을 마련했는데, 삼공보트 최현오 사장의 친구인 박 사장님이 오십삼을 잡았다면, 주최 측의 농간이란 말이 나올 법 하지 않겠어요? 대물 방생했으니 새해엔 운수대통할 거요.”
박현철씨는 말없이 웃을 뿐이다. 평생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5짜붕어를 놓친 낚시꾼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
오전 내내 입질은 간간이 이어졌지만 7~8치만 낚인다. 안좌도 현지꾼 넷이 트럭을 타고 와서는 릴대를 펼치더니 보란 듯 준척 붕어를 속속 낚아 올린다. 처음 이곳을 소개한 광주 남부낚시 범희상 사장이 “남강수로는 보트보다 릴낚시가 더 잘 되는 곳”이라더니 과연 그랬다. 요즘은 섬사람들도 붕어 맛을 알아서 겨울이면 붕어를 낚으러 다닌단다. 그들이 낚은 4짜 붕어가 부지기수라는 풍문이 나돈다.

▲  박현철씨가 남강수로에서 낚은 38cm 붕어.

▲ 안좌읍. 식당과 모텔이 있다.

갑작스런 돌풍에 낚싯대가 와자작!

이튿날, 어제 5짜를 놓친 자리에서 아침 일찍 낚시를 시작했지만 입질이 없다. 문득 하늘이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후두두둑 빗방울이 날림과 동시에 “휘이이잉” 고막을 찢는 돌풍이 몰아쳤다. 내 보트는 단숨에 건너편 기슭으로 주르르 밀려갔다. 폴대를 고정한 링이 틀어져버리고 보트가 연안 석축에 부딪치면서 “와자작” 낚싯대가 부러졌다. 황급히 링을 바로잡고 폴대를 뽑아 올린 다음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저었다. 바람을 등지는 연안까지는 불과 50m. 그러나 저어도 저어도 보트는 제자리다. 그 꼴을 지켜보던 박현철씨가 낄낄대고 웃는다.
“그러게 바람이 심상찮다 싶으면 보트를 돌려놓아야지 겁도 없이 옆으로 바람을 받고 있으면 어떡해.”
기온은 급강하고 비는 싸락눈으로 바뀌었다. 우라질, 폭풍의 크리스마스다. 김영철씨 부부는 먼저 철수하고 나와 박현철씨는 차로 둠벙들을 훑어보기로 한다. 들은 풍월에 ‘안좌도에 가면 깔치기수로부터 가보라’기에 깔치기수로 주변의 전진마을과 마명리의 둠벙과 수로들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입이 벌어졌다. 광활한 갈지기들(이 들판의 이름을 따서 깔치기수로라 한다)에 틀어박힌 둠벙과 샛수로만 해도 수십 개에 달했다. ‘안좌도 섬 하나만 들고파도 1년 365일이 모자란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
몇 군데 둠벙에 낚시를 담가봤지만 물색이 맑았고 입질도 없었다. 박현철씨가 “산두수로로 가보자”고 했다. 올 3월에 서울의 신중재씨가 칸반대 발낚시로 3관을 낚은 곳이란다. 산두수로는 안좌도 동쪽 끝에 있었다. 산두저수지를 끼고 돌자 무려 2km에 달하는 긴 일자형 수로가 나타났다. 물색은 뿌연 막걸리색, 남강수로와 더불어 현재 안좌도에서 물색이 가장 좋은 듯했다. 신중재씨가 재미 봤다는 수로 중류쯤에서 연안 갈대 사이로 직공채비를 내렸는데 박현철씨가 첫 입질에 뽑아든 것이 32cm 월척이다. 참 붕어 흔한 동네다. 이젠 월척을 봐도 별 감흥이 없다.
7~8치 붕어가 드문드문 낚였지만 춥고 손이 시려서 견딜 수가 없다. 철수! 대를 접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광천 대물야인 김용남 사장인데 지금 암태도 중앙수로에 와 있단다. “안좌읍의 유성가든으로 오시오. 같이 저녁이나 먹읍시다!”

▲ 산두수로에서 홍성 대물야인 김용남 사장이 붕어를 낚아 올리고 있다.
 

▲ 대물야인 김용남 사장이 산두수로 조과를 보여주고 있다. 겨울마다 신안섬에서 장박낚시를 즐긴다고.

20m 쪽수로에 보트 띄운 미치광이들

유성가든(061-261-1223). 안좌도에선 가장 나은 식당이다. 특히 장어탕이 일품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대물야인 김용남 사장.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싱글남으로 여자보다 붕어를 더 사랑한 낚생낚사의 표본이다. 해마다 12월 중순이면 광천IC의 낚시가게 문 걸어 잠가놓고 섬으로 들어와 겨울을 난다. 두 달 간의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그가 부럽다고 해야 할까 짠하다고 해야 할까. 동병상련(?)의 감정에 젖어 술잔을 부딪쳤다.
김 사장이 말했다. “열흘째 머무는데 큰 재미를 못 봤어요. 폭풍이 잦아서 낚시하기 힘들어요. 섬낚시는 1월 한 달이 가장 궂어요. 2월쯤 들어오면 좋을 것인데….”
누가 모르나. 칼추위 속에 갈 곳 없어 떠돌다가 그래, 섬이라면 찌라도 세워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함으로 찾은 것을….
마지막 날, 아침에 남강수로로 가서 보트를 둘둘 말아 차에 싣고는 산두수로로 달렸다. 간밤에 얼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가장자리만 약간 얼어 있다. 뻥치기대 두 대 들고 게릴라 작전에 돌입하려는데 박현철씨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엥? 이 좁은 수로에서 보트를 타자구요? 관둡시다. 연안낚시꾼들한테 돌 맞습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데 뭐 어때? 통갈대에 가려서 연안에선 낚시하기 힘들잖아. 보트로 양쪽 갈대를 쭉 훑으면서 지나가면 그냥 밀감나무에서 밀감 따듯 붕어들이 주렁주렁하겠구만.”
그러고 보니… 그럴 듯도 하다. 보트를 타면 수로 안에서 거꾸로 연안 갈대를 노리니까 편하다. 보트의 텐트가 삭풍도 막아주니 얼마나 따뜻할까. 그렇게 해서 폭이 20m도 안 되는 옹색한 샛수로에서 보트를 띄우는 작태를 일삼았겠다. 결론은…?
별 볼 일 없었다. 둘이서 오전 네 시간 동안 월척 한 마리와 8~9치 8마리를 낚았다. 차라리 발낚시를 했더라면…. 쪽수로 붕어들이 난생 처음 본 거대한 그림자에 놀라 숨어버렸나 보다. 그러나 소득도 있었다. 우리는 보트에서 양쪽 갈대를 동시에 노렸는데, 급경사 연안보다 완경사 연안에서만 붕어가 낚이는 경험을 한 것이다. 연안에선 하기 힘든 비교실험이었다. 역시 붕어는 얕은 완경사를 좋아해!
낮 1시쯤 김용남 사장이 손님 한 분과 산두수로로 찾아왔다. “좀 됩니까?”하면서 보트를 탄 우리를 보고 실실 웃는다. 그렇게 아쉬움만 가득한 안좌도 2박3일 여정은 마무리되었다.
암태도 오도선착장에서 오후 4시 10분 배를 타기로 하고, 유성가든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는데, 아줌마가 심심한지 말을 걸어온다.
“아자씨들, 고기 많이 잡았소?”
“잡기는요. 바람만 실컷 맞고 갑니다.”
“요 산 너메 고기가 많은 둠벙이 있다는디, 그 둠벙 주인 영감이 그라고 낚시를 못허게 말려싸서 아무도 못가봤다 안허요.”
“그런 둠벙이 요즘 섬마다 한두 개라야 말이죠.”
“그란디, 그 노인네가 병이 나서 올 봄에 죽어부렀소.”
반짝! 우리 눈이 동시에 빛났다.
“그러면… 이제 낚시를 말릴 사람도 없겠네요?”
“그라제. 그 영감만 그리 패악시럽게 했제 누가 그리 못허게 말려쌌는다요?”
박현철씨가 침을 꿀꺽 삼켰다. 시계는 벌써 오후 3시다.
“그 둠벙이… 어디쯤 있습니까?”

▲ 의정부 김영철씨가 남강수로에서 보트낚시로 올린 조과.

암태도 중앙수로에도 월척 쏠쏠

Ｉ김용남 홍성 대물야인 대표Ｉ

지독한 한파 탓에 올 겨울 섬붕어 조황이 부진한 속에서도 암태도 중앙수로의 조황이 돋보였다. 중앙수로는 암태면소재지 바로 앞에 있다. 길이 2km, 폭 30~40m의 큰 수로다. 12월 하순경 35cm를 비롯해 8~9치가 많이 낚였고 혼자 오전에 20마리씩 낚은 이도 있었다. 오후와 밤에도 간간이 월척급 붕어가 낚여 많은 낚시인이 중앙수로에 몰렸었다. 그러나 지금은 결빙이 잦아서 낚시 자체가 어렵다.
전반적으로 올 겨울 둠벙은 불황이고 수로들이 낫다. 햇살이 4~5일은 지속적으로 비춰져야 붕어들이 움직일 텐데 올 겨울엔 아직 그런 날씨가 없었다. 아마 1월 20일 이후면 날씨가 호전되면서 도처에서 호황 소식이 터져 나올 것으로 예상되며 나도 그때쯤 다시 섬으로 들어갈 계획이다.
☎광천IC 대물야인 010-3767-17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