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군의 보물섬
長山島를 가다
공수지의 4짜 빅뱅과 북강수로 월척사태
Ｉ허만갑 기자Ｉ
섬붕어 마니아들의 관심이 안좌도와 하의도에 쏠려 있을 때 그 두 섬 사이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장산도(長山島)가
월척을 쏟아냈다. 목포에서 뱃길 1시간30분의 장산도는 자잘한 둠벙이나
수로의 양은 적지만 북강수로와 공수지라는 일당백의 걸출한 낚시터를 가지고 있다.
▲ "장산도 4짜붕어 좀 봐주세요." 삼공보트낚시클럽 박현철씨가 공수지 보트낚시에서 지렁이로 낚은 40cm 붕어를 보여주고 있다.
때 아닌 겨울폭우가 쏟아지고 난 직후인 2월 12일 장산도 북강수로에서 월척사태가 났다. 북강수로 중류에서 보트낚시를 한 삼공보트낚시클럽의 박현철(FTV ‘비바보트’ 진행자)씨는 오전 10시부터 해거름까지 35~38cm 5마리를 비롯해 준척 월척 30마리를 걷어 올렸다. 박현철씨는 장산도가 초행이었다. 광천 대물야인 김용남 사장의 추천을 받고 난생 처음 장산도를 찾았다가 대경실색할 조과를 만난 것이다.
“당시 북강수로는 갑작스런 빗물의 유입으로 평소보다 50cm 이상 수위가 불어 있었는데 꽉 찬 수로의 물이 조금씩 빠지는 상황에서 연안 뗏장수초 주변으로 월척들이 몰렸어요.” 박현철씨는 “나는 30m 폭의 수로 중간쯤 보트를 띄우고 북쪽 연안에 찌를 붙이는 갓낚시를 했는데, 당시 몇몇 연안낚시인들은 붕어들이 입질하는 물가에 앉아서 수로 중앙부를 노렸기에 실패했다. 뒤로 물러나서 짧은 대로 물가를 노려보라고 권했지만 듣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씨의 호황소식은 다음카페 보트낚시방으로 전해졌고, 장기정(베레모), 이동소(붕맨)씨가 설 차례를 지내자마자 장산도로 들어가서 역시 짜릿한 손맛을 보았다. 그러나 수위가 하강, 안정국면에 접어들자 붕어 씨알은 잘아졌다.
박현철, 장기정, 이동소 세 명은 큰 붕어를 찾아 5분 거리에 있는 공수지로 이동하였다. 여기서도 박현철씨가 하류에서 보트낚시로 40cm 붕어를 낚는 기염을 토했다. “도대체 뭐 이런 섬이 다 있나 싶더군요. 나중엔 월척이 월척 같지도 않았어요.” 박현철씨의 말이다. 북서풍이 터지는 바람에 더 이상 낚시를 못하고 철수하였으나, 3일 후인 2월 20일 삼공보트클럽 회원 4명으로 구성된 낚시춘추 취재팀은 공수지를 다시 찾아 4짜 5마리에 월척 10여 마리를 낚는 대호황을 맛보게 된다.
▲ 북강수로의 남쪽 수로 중 월척이 쏟아진 두 번째 다리 아래 맨바닥 지역.
▲ 북강수로 보트낚시 조과(좌) 중 38cm 월척 두 마리를 들어보이는 다음카페 보트낚시방의 장기정(베레모), 이동소(붕맨) 회원.
북강수로의 굵고 짧았던 월척 소나기
북강수로(마초수로)는장산도에서 가장 큰 금낭골지 하류에 있는 2km 길이의 큰 수로다. 두 개의 큰 수로가 나란히 형성돼 있는데, 남쪽 수로 즉 금낭골지에 인접한 수로에서 호황이 나왔다. 박현철씨는 “북쪽 수로가 수초대 형성이 좋지만 물색이 맑았다. 그래서 수초가 없어도 물색이 흐린 남쪽 수로를 선택했다”고 말했고 그의 선택은 적중한 셈이다. 이곳을 찾는 낚시인들은 두 개의 북강수로 중 남쪽의 것을 마초수로, 북쪽의 것(북강선착장에서 가까운)을 오음리수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초수로에서도 낚시인들은 하류 첫 번째 다리 밑의 부들수초가 멋지게 자란 곳을 선호하는데, 정작 월척이 쏟아진 곳은 두 번째 다리 밑의 휑한 맨바닥이었다. 수도권 낚시인들이 신안 섬낚시에서 자주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가 수초대만 찾기 때문이다. 수초보다는 물색이 중요하며, 큰 붕어는 수초보다 오히려 맨바닥에서 잘 낚인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한편 북강수로에 인접한 금낭골지(장산지)는 북강수로의 물을 퍼 올려서 담는 5만4천평의 큰 양수형 저수지다. 1998년에 축조된 신생지인데 섬 주민들 말로는 “장산도에서 고기가 가장 많은 저수지”라고 하며 여기서 낚시해본 광주 남부낚시 범희상 사장도 “월척 자원이 대단한 곳”이라고 추켜세우는 곳이다. 취재당시엔 물색이 맑아서 낚시를 시도해보지는 않았으나 만약 장산도를 다시 찾는다면 이 금낭골지부터 노려보고 싶을 만큼 강렬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 공수지에서 낚인 4짜붕어들.
예기치 않은 목포행
내가 공수지를 찾게 된 경위는 이랬다. 2월 20일 오후 3시, 나는 하동 송원지와 광포지를 연계출조지로 삼고 남행길에 올랐는데 문자가 날아들었다. ‘공수지 박창덕 회장 삼십팔’
장산도 공수지에 있는 박현철씨가 날린 유혹의 메시지였다. 그러나 출조지를 바꿔서 재미 본 적 없다는 속설을 철석같이 믿는 나로선 코웃음을 치며 넘겼다. ‘낱마리 조과라면 사짜도 사절’
답신을 보내고 계속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오후 4시쯤 또 문자가 왔다.
‘박회장 이번엔 사십점오, 나도 삼십구’
아~ 강력한 악마의 꼬임에 나는 결국 빠져들었다. 때마침 천안 초입에서 ‘천안-공주간고속도로’ 이정표가 보이기에 나도 모르게 급선회하고 말았다.
목포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21일 아침 6시 10분, 장산도행 철부선에 차를 실었다. 뱃삯은 편도 2만6천원, 1시간 30분의 긴 뱃길이었다. 장산도 북강포구에 내린 나는 일단 북강수로부터 찾았다. 수위는 1m 선에서 정체돼 있었고 6~7명의 연안낚시꾼이 제대로 입질도 못 받고 있었다. 그 와중에 박현철씨는 전화를 해대며 “지금이 피크타임인데 왜 어정거리느냐”고 성화다. 과연, 공수지 상류에 차를 대기 직전(8시 10분경) 박창덕 회장이 42cm를 낚았고, 보트를 펼치는 와중에 박현철씨가 40cm급 두 마리를 연거푸 뽑았다. 그러니 내 맘이 얼마나 급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야속한 붕어들은 내가 들어가자마자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한 시간 넘게 말뚝찌만 바라보다가 박창덕 회장과 이대원 부회장이 먼저 철수한다기에 4짜붕어들을 촬영하기 위해 뭍으로 나갔다. 박 회장과 박현철씨가 4짜 5마리를 쏟아놓는데 그야말로 장관이다. 셔터를 누르며 나는 결심했다. 오늘 여기서 4짜 못 낚으면 집에 안 간다!
▲ 장산도 공수지 하류의 맨바닥을 스윙낚시로 노리는 보트꾼들.
▲ "몽땅 4짜랍니다!" 공수지에서 대박을 터뜨린 삼공보트낚시클럽 회원들. 왼쪽부터 박현철, 박창덕, 전종수(목포), 이대원씨
공수지 4짜들 나만 푸대접
참 성질대로 안 되는 게 세상에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말 안 듣는 자식이고 둘은 노름판 끗발이고 셋은 낚시라고 한다. 오후에도 하류 중앙부를 굳건히 지킨 박현철씨만 35cm 안팎의 월척 세 마리를 낚고, 나는 상류를 탐색해본다며 깨방정을 떨다가 턱걸이(턱걸이란 말에 담긴 아쉬움의 의미를 이때 실감했다) 월척 한 마리에 그쳤다. 밤에는 전혀 입질이 없었고, 이튿날 날이 밝고서도 아침 8시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아침 8시부터 9시까지가 피크타임이었다’는 말에 뚫어져라 찌를 지켜봤으나 10시가 넘도록 정적만이 감돈다.
그런데, 이놈의 공수지 붕어들이 나하고 원수가 졌는지, 기다리다 지친 내가 또 중상류를 더듬어본다며 하류에서 보트를 뺀 10시부터 11시까지 입질을 재개해 박현철씨는 42cm, 38cm를 낚고 목포에서 온 전종수씨도 35~37cm 월척 다섯 마리를 뽑아 올렸다. 대물붕어들은 철저하게 1.8~2m 수심의 하류에서, 그것도 저수지 중앙에서만 입질했다. 행여나 봄 햇살에 녀석들이 중상류로 붙지 않을까 싶어 1~1.5m 수심을 샅샅이 훑은 나는 8~9치 붕어만 10여 마리 낚았을 뿐이다.
‘무조건 하류구나!’ 그제야 대오각성해 하류에 못 박았지만 오후엔 입질조차 없었고, 23일 아침에도 정적으로 일관했다. 공수지 4짜 행진은 그렇게 끝나버렸다.
언제나 ‘장소’보다 ‘시기’가 중요하다
그 후 공수지 4짜 소식은 보트낚시인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졌고, 삼공보트낚시클럽과 다음카페 보트낚시방 회원들이 둘씩 셋씩 짝을 지어 2월 말까지 꾸준히 들어갔지만 월척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2월 25일의 폭우로 북강수로가 다시 물이 불었을 때 호황이 재개되리라 기대하고 들어간 낚시인들도 뜻밖의 잔챙이 성화에 시달렸다.
이렇듯 붕어낚시란 예측을 불허하는 돌발의 연속이며 Where(장소)보다 When(시기)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그리고 언제나 대박호황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한발 앞서거나 혹은 뒤늦게 터진다. 그래서, 4짜 사태는 또 언제 재발할지 모를 일이다. 장산도! 그곳의 대물붕어들은 여전히 물속을 헤엄치고 있다.
■취재협조 광명 삼공보트낚시 02-2681-5230, 광천 대물야인 010-3767-1797
장산도 공수지는?
▲ 상류 진입로에서 바라본 공수지.
장산도 남쪽 축강포구 근처 공수리에 있는 1만2천평짜리 저수지다. 금낭골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저수지다. 1967년에 준공되었다. 준계곡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최하류 수심도 2m에 불과한 평지형 저수지다. 광주의 대물낚시인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곳이다. 공수마을 주민들이 그물질을 못하게 해서 대물자원이 잘 보존돼 있으며 연안낚시에서도 월척이 쉽게 낚인다. 새우가 자생하고 새우낚시도 잘 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나 취재당시엔 새우에는 입질이 없고 밤에도 지렁이에만 낱마리 준척 붕어가 낚였다.
아스팔트 도로변 중하류와 건너편 산자락 중상류가 연안낚시 포인트다. 상류는 도로변 연안은 준설작업 이후 2m 내외로 깊어져서 1~1.3m 수심을 보이는 건너편 완경사 연안이 유망해 보인다. 그러나 상류는 하류보다 붕어 씨알이 잘았다.
이곳에도 낚시인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군데군데 보였다. 마을 이장이 와서는 우리에게 “낚시쓰레기 때문에 견딜 수 없다. 올 봄부터 낚시를 금지시키고 양어장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엄포인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섬을 찾는 낚시인들의 환경의식이 크게 개선되지 않으면 조만간 신안 섬에서 낚시인들이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