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찬수와 함께 떠난 경남 섬붕어 탐사
미답의 월척섬 창선도를 가다
ㅣ허만갑 기자ㅣ
남해도의 붕어 전문꾼 이근두씨가 갓낚시 명인 서찬수씨에게 “창선도에서 사짜급 붕어가 우글대는 소류지를 찾았다”고 알려왔다. 이근두씨는 8월 28일 통화에서 “창선면소재지 인근의 장곡지란 못에서 며칠 전부터 삼십칠팔 센티 붕어들을 매일 대여섯 마리씩 낚고 있다”고 말했다. 창선도는 남해도의 부속섬으로 20여 개의 알짜 소류지들이 흩어져 있지만 지금껏 붕어낚시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 창선도 장곡지에서 아침을 맞고 있는 서찬수씨. 서씨가 앉은 자리와 정면의 무넘기, 그 오른쪽의 제방에서 모두 4짜에 육박하는 대물붕어가 낚였다.
경남 남해군 창선면 창선도가 붕어낚시인들의 시선을 받게 된 것은 2003년 4월 창선-삼천포대교가 개통된 후부터다. 그 전에는 사천시(삼천포)에서 도선을 타고 건너가야 했기에(아니면 남해대교로 건너간 뒤 거꾸로 지족해협의 창선교를 건너 진입하거나) 붕어낚시인들의 발길이 미치지 못했다.
재작년 겨울부터 서찬수씨를 비롯한 창원 세월낚시 회원들은 남해도를 집중적으로 드나들면서 창선도의 몇몇 소류지까지 발굴했다. 그 와중에 찾아낸 ‘붕어 화수분’이 상신지(창선면 상신리)다. 1천평 규모에 수초도 없는 밋밋한 평지지지만 ‘새우낚시 신병훈련소’란 별칭을 얻을 만큼 확실한 조과로 회원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상신지 붕어는 여름에 접어들자 씨알이 잘아졌고, 그를 대신할 대물터로 인근의 장곡지(창선면 당저리)가 출현한 것이다.
8월 29일, 서찬수씨와 함께 장곡지를 찾았다. 2천평 규모의 준계곡지다. 상류엔 갈대숲이 빽빽히 우거져 대규모 작업을 하지 않는 한 진입이 불가능했다.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근두씨는 “현재 낚시할 곳은 제방과 하류밖에 없다. 그런데 붕어들이 제방권의 2.5~3m 수심에서 계속 낚이고 있다. 마릿수는 없지만 걸면 35cm를 웃돈다. 며칠 사이 낚싯줄을 터뜨려 놓친 붕어만 네 마리다. 옥수수, 떡밥, 참붕어는 안 먹히고 오직 지렁이만 먹힌다. 새우는 써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2천평 장곡지, 걸면 35~39cm 푸당탕!
이근두씨를 비롯한 남해꾼 셋은 제방에 앉고, 창원에서 동행한 김주수씨는 무넘기에, 서찬수씨는 무넘기 옆 나무 밑에 앉았다. 나는 현지꾼 방재윤씨의 추천으로 도로변 상류 갈대숲 초입의 논두렁에 앉았다. ‘좁은 논두렁에 의자를 놓을 수 없어 앉지 않았던 생자리’라고 했다. 내 자리의 수심은 1.2~1.7m. 대를 펴자 곧 어둠이 깔렸다.
그런데 찌불이 꼬물꼬물하다가 조용해서 꺼내보면 바늘에 꿴 지렁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 이게 뭐지? 잠시 후 서찬수씨가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지렁이를 빨아먹다가 잡힌 녀석은 미꾸라지였다. 밤 10시, 현지꾼 유안진씨가 첫 붕어를 걸었다. 한참 씨름하는 걸 보니 보통 씨알이 아닌 듯, 아니나 다를까 “삼십칠”이란 환호성이 울린다.
그러나 그것으로 밤낚시 조과는 끝이었다. 이근두씨는 “해 지기 전에 두 번 입질을 받았는데 한 마리는 떨구고 한 번은 헛챔질을 했다. 모두 월척이었을 것이다. 내일 아침에 또 몇 차례 입질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튿날 아침, 차에서 자고 일어나니 저수지엔 김주수씨 혼자 남아 있다. 다 어디 갔냐고 하니까 “남해도분들은 아침 다섯 시에 폭우가 쏟아져 모두 철수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36cm 붕어를 보여준다. 새벽 2시에 역시 지렁이로 낚았다고 했다. 4짜보다 우람한 멋진 녀석이다.
▲ 창원의 김주수씨가 새벽 2시에 지렁이로 낚은 36cm 붕어.
▲ 서찬수씨의 파이팅. 씨알이 크고 워낙 힘이 좋아 한참 씨름했다.
▲ “자고 일어나 의자에 앉으니 바로 반겨주네요.” 5칸대에 지렁이로 37cm 월척을 낚은 서찬수씨.
아침 7시경에 정신없이 몰아친 입질
일이 있어 먼저 간다는 김씨를 배웅하고 서찬수씨를 깨워 아침낚시를 시작했다. 나도 제방으로 옮겨서 긴 대로 3m 수심을 노렸다. 아침 7시, 서찬수씨의 5칸대 찌가 멀리 떨어진 내 시야에도 꽉 찰 정도로 시원스레 솟더니 챔질 순간 그만 원줄이 터져버린다. “으잉? 새로 묶은 줄인데…?” 안타까워할 새도 없이 이번엔 내 4칸대의 찌가 솟더니 기우뚱 넘어간다. 채는 순간 “쇄액!” 엄청난 괴력이다. 35cm 월척! 체고가 4짜보다 높다. 녀석을 살림망에 담는데 또 “홱”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왼쪽 3.6칸대가 물속으로 빨려든다. 엉겁결에 챘는데 이번엔 38cm! 불과 5분 사이에 대물붕어 세 마리가 달려들었다. 30분 후 서찬수씨가 비명을 질러대며 37cm 붕어를 끌어냈고, 내가 29cm 붕어를 추가했다. 이 저수지에서 처음으로 월척 아닌 붕어를 낚은 셈이다.
낚싯대를 접고 있는데 한 노인이 다가오더니 혀를 끌끌 차신다.
“여기 고기 없어…. 옛날엔 참 많았는데….”
“최근에 물이 말랐습니까?”
“아니, 이십 년 넘도록 마른 적은 없어. 붕어가 큰 놈이 있긴 있는데 몇 마리 없어. 황소개구리가 들어와서 다 잡아먹었어.”
노인에게 낚은 38cm 붕어를 보여주었는데 놀라는 기색도 없다.
“여기 고기는 다 그만해. (팔뚝을 쑥 내밀며) 재작년에 누가 그물을 쳐서 이만한 놈들을 잡아갔어. 그런데 낚시엔 잘 안 물어. 삼천포에서 낚시하러 가끔 오더라만 다 못 잡고 가더만.”
▲ 길에서 바라본 장곡지 상류. 논두렁은 의자를 놓을 공간이 없고, 갈대숲은 진입이 불가능해 생자리로 남아 있다.
그 후 9월 6일에 이근두씨 일행은 다시 장곡지를 찾았다. 태풍 말로가 뿌리고 간 비로 인해 물색이 더 탁해진 속에서도 35~39cm 붕어 4마리를 낚았다. 지난번과 달리 1~1.5m 수심의 물가에서 낚이더라고 했다. 붕어들의 변덕은 종잡을 수 없다. 아직 장곡지에선 4짜가 낚이지 않았다. 그것이 신기하다.
가는 길 대전통영간고속도로 서진주분기점에서 사천·순천 방면으로 빠진 다음 남해고속도로 사천IC에서 나와 삼천포 방면 3번 국도로 계속 직진하면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넌다. 다리 건너 7km 가면 창선면소재지. 옥천리 가는 길로 우회전해 들어가면 1km 후 길 왼쪽으로 장곡지 제방이 보인다. 왼쪽 시멘트포장길로 꺾어들어 가되 도중에 움푹 파인 곳이 있어 범퍼가 바닥에 긁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출조문의 창원 세월낚시 011-865-7271
마릿수 재미는 상신지에서
‘새우낚시 훈련소’ 상신지는 장곡지에서 불과 1.5km 거리에 있다.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 창선면소재지 가기 직전에 오른쪽 ‘운대암’ 표지판을 보고 들어가면 곧 길 오른쪽에 상신지가 붙어 있다. 새우낚시를 하면 밤새 찌올림을 즐길 수 있는데 붕어 씨알이 크고 작고는 그날의 운이다. 바닥새우가 많아서 채집망을 담그면 며칠 쓰고 남을 만큼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