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호황터 발굴

겨울 내내 돌붕어 쏟아내고 있는

사천 축동수로의 붕어 화수분

I 허만갑 기자 I

고향 진주에서 맞은 설날 아침, 나는 외삼촌에게 세배를 드리러 갔다가 뜻밖에 사천비행장 옆에 있는 축동수로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외삼촌은 “어제 완사(사천 곤명면소재지)의 둠벙에 낚시 갔다가 꽝 치고 오는 길에 축동수로에 들러봤더니 최하류 보 밑에서 낚시꾼 셋이 붕어 잉어를 두 관이나 낚았더라”고 하신다. 낚시를 즐기는 외삼촌은 진주 인근의 저수지는 물론 남들은 알지 못하는 샛강과 작은 둠벙까지 소상히 알고 있어 종종 내게 큰 정보를 주신다. 작년 추석 땐 남강변의 ‘신무림제지 둠벙촌’을 알려줘서 취재하였고 이번엔 축동수로를 제보하신 것이다.

▲ 축동수로 하류의 보 밑. 바닷물의 영향으로 얼음이 얼지 않는 이곳에 미스터리한 어자원이 내재돼 있다.

나는 외삼촌댁에서 나오자마자 당장 막내동생 만규를 차에 태우고 사천으로 달렸다. 만규도 나 못지않은 낚시광으로 현재 해동조구사의 필드스탭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머니는 “친척들이 곧 올 텐데 어딜 가느냐”고 질색했지만 내일 새벽에 전남 완도호로 떠날 나로서는 오늘밖에 축동수로를 취재할 시간이 없다. 온통 얼음에 덮여 물낚시 현장을 찾기 힘든 지금, 관고기가 낚인다는 장소를 그냥 지나칠 순 없는 일이다.
그런데 수로에 가도 낚시꾼이 없으면 취재는 허사가 아닌가. 설날 아침부터 낚시를 나올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없으면 우리 둘이라도 붕어를 낚아 촬영해야지. 만규는 오늘 혼자 모델 노릇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 사천 만물낚시 박용상 회원이 축동수로 돌붕어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접시물에서 2관을 낚았다고?

진주시 이현동의 시골집에서 축동수로까지는 10분 걸렸다. 남해고속도로 사천IC에서 나오면 곧 오른쪽에 ‘곤양·축동’ 이정표가 있는데 그 길로 빠져서 곤양 방면으로 달리면 다리를 건너 아스팔트 2차선 도로 왼쪽으로 수로가 이어진다. 지도엔 ‘길호강’으로 표시되어 있고 위성사진엔 ‘중선포천’이라 표기돼 있다.
수로 너머는 비행장 활주로다. 진주공항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공군 제3훈련비행단 소유의 군사시설이라 수로 건너편은 초소와 철조망이 해안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축동면소재지의 생활하수가 유입되던 곳이라서 나는 진주에 살 때도 여기서 낚시해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외삼촌의 말로는 하천정화사업으로 수질이 좋아졌다고 하며 월척이 잘 낚여 일 년 내내 이곳만 찾는 단골꾼이 많다고 한다.
축동수로 역시 본류는 전부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빙질을 확인해볼 시간은 없었으나 얼음낚시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두껍게 언 듯 보였다. 문제의 보(洑)는 수로 하류 쪽, 비행장 군부대로 들어가는 다리를 지나 200m 하류에 있었다. 과연 보 아래와 보 위쪽 일부 구간만 얼음이 녹아 있었다. 보 밑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 수면적은 고작 50평에 불과했고 그중 절반은 바닥이 보일 정도로 수심도 얕았다. 저곳에서 돌붕어 2관(약 8kg)이 낚였다고?

▲ 보 밑에서 낚시를 하기 위해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종종 엄청난 잉어 떼가 이 여울을 거슬러 보 밑까지 올라온다고 한다.

▲ 낮 11시부터 1시간 동안 낚은 붕어, 잉어, 누치.

“4월에 보 위에서 밤낚시를 하면  월척이 낚여요”

낚시인은 아무도 없다. 그래, 모처럼 형제끼리 오붓하게 붕어낚시나 즐겨보는 거야. 보 밑으로 가기 위해선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다. 사리물때의 만조가 되면 바닷물이 이곳까지 올라와 징검다리가 물에 잠긴다고 한다.다행히 지금은 썰물 시각이라 수량이 많지 않았다.
낚시를 한 흔적은 세 군데 있었다. 한두 대씩만 펼쳐도 4명 앉으면 꽉 차는 범위다. 3.2칸대를 던지자 시멘트보 바로 앞까지 날아갔다. 외삼촌의 말로는 “만조 때는 3칸대, 간조 때는 2.8칸대를 던지면 정확히 포인트에 들어간다.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1m 남짓한데 그 골에만 미끼가 들어가면 붕어가 낚인다. 글루텐에 입질이 잦고, 지렁이를 쓰면 붕어 씨알은 굵은데 배스와 블루길이 가끔 덤빈다. 입질이 예민하니까 찌맞춤을 가볍게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낚싯대를 펼치고 있는데 낚시꾼 한 명이 징검다리를 건너왔다. 반갑기 그지없다. 촬영 모델이 나타난 것이다. 인사를 나눠보니 해동조구사 필드스탭인 정종현 사장이 운영하는 사천 만물낚시의 회원 박용상씨였다. 그는 어제 2관을 낚은 낚시꾼 중 한 명이었다. 박용상씨는 예민한 내림낚시 채비에 미끼는 지렁이를 사용했는데 낚싯대를 펴자마자 뼘치급 누치를 연거푸 낚아내더니 25cm 돌붕어를 끌어냈다. 만규는 5치, 6치 붕어를 쌍권총으로 뽑아낸다. 두 사람이 낚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사이에 내 찌가 둥실둥실 춤을 추고 있었다. 채는 순간 “쌔앵”하고 줄을 울리며 26cm 돌붕어가 지렁이를 물고 나왔다.
“어제 2관이나 잡아냈다는데 어떻게 또 이런 붕어가 나오죠?”
“모르겠어요. 늦가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낚시꾼들이 드나드는데도 매일 이렇게 낚여요. 아마 시멘트보 밑에 굴이 있어서 그 안에 고기들이 엄청 들어 있는 것 같아요.” 박용상씨가 말했다.
낮 11시에 낚시를 시작했는데 1시간도 안 돼 붕어, 누치, 쭈래기(잉어 새끼)를 10마리쯤 낚았다. 12시가 되자 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입질은 소강상태를 보였다.
“오후가 되면 입질이 끝납니까?”
“아뇨. 오후 4시까지는 따문따문 낚입니다. 지금은 추워서 밤낚시를 안 하지만 밤낚시를 하면 더 큰 놈들이 뭅니다.”
“보 위쪽이 더 깊어 보이는데 그곳은 낚시가 안 됩니까?”
“봄에는 깊은 위쪽이 잘 되는데 지금은 잘 안 되더라구요. 보 위는 수심이 2m쯤 됩니다.”
박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만규가 낚싯대를 치켜들고 비명을 질렀다. 좁은 수면을 휘저으며 맹렬히 저항하던 놈은 40cm 잉어였다. 박용상씨는 “이건 작은 놈이에요. 어제는 내림낚시에 오십 센티 넘는 잉어도 낚였어요”하고 말했다.
오후 2시쯤 우리는 일어섰다. 친척분들이 기다리고 있기도 했지만 손맛도 보고 사진도 충분히 찍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어서자 박용상씨도 그만하고 집에 가봐야겠다며 대를 접었다.
“봄에는 보 위의 다리에서부터 상류 쪽으로 낚시하면 월척붕어가 쉽게 낚입니다. 사월이 피크시즌인데 글루텐떡밥으로 밤낚시를 하면 사짜도 낚입니다. 그때쯤이면 지렁이엔 블루길이 많이 설칩니다. 잉어도 큰 놈이 많고 장어도 잘 낚입니다. 하지만 사천 낚시꾼들은 봄이면 월척 산지인 두량지(21만평)로 몰려 이곳은 그다지 붐비지 않습니다.” 박용상씨가 말했다.
▒ 조황문의 사천 만물낚시 박용상 055-852-2536

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사천IC에서 나와 사천 방면으로 300m쯤 직진하면 오른쪽에 ‘곤양·축동’ 이정표가 있다. 그 길로 빠져서 곤양 방면으로 달리면 다리를 건너 수로를 왼쪽에 끼고 아스팔트 2차선 도로가 이어진다. 1㎞ 가면 비행장으로 들어가는 작은 다리가 있고 200m 더 하류로 가면 길 왼쪽에 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