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깥제립여 서편에 내린 대구꾼들이 참돔을 노리고 있다.
거문도 지금부터 활황
감생이 참돔 각축 속에 꾼들만 어부지리
이기선 기자 blog.naver.com/saebyek7272
“이젠 ‘먹튀’ 아니야! 거문도 완전 살았어!”
겨우내 이름값을 못해 급기야 ‘먹튀’ 취급을 받던 거문도가 살아났다. 서도에선 3월 초순부터 참돔을, 동도에선 3월 중순부터 감성돔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속 썩이더니 이제야 이름값을 하는군요.” 거문도에서 만난 꾼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지난 3월 초 안간여 똥여에서 참돔 호황의 징후를 포착했던 나는 4월 5일 거문도를 다시 찾아서 동도에서 마릿수 감성돔을 촬영하며 거문도가 완전히 재기했음을 확인했다.
돌이켜보면 쉽지 않은 거문도 취재였다. 거문도로 가자니까 모두 “시즌이 이르다.” “수온이 맞지 않다”며 손사레를 쳤다.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대구 김박사낚시 김영수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영수 사장은 오래 전부터 거문도를 집중적으로 출조하고 있는데 소문난 곳보다 남들이 잘 앉지 않는 곳을 찾아 재미를 보는데 일가견이 있다. 2년 전 겨울 남들이 되지도 않는 감생이를 낚기 위해 동도 쪽으로 몰릴 때 김박사낚시 회원들은 조용한 서도에서 참돔을 뽑아 올리며 희희낙락했는데, 그 현장에서 함께 즐거워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전화를 해봤는데 내 생각은 적중했다.
“걱정 말고 내려오이소. 뭘 잡아드리면 되겠습니까? 원하는 대로 만들어 드리리다.” 그의 목소리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4월 4일 오후 대구로 내려갔다. 어딜 가나 출조점마다 손님이 없어 울상인데 김박사낚시는 출조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손님들이 몰리는 걸 보니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밤 9시, 두 대의 승합차에 손님을 다 싣지 못해 자가용이 따라 붙어서야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새벽 3시 고흥군 도화면 단장리에서 출항해 거문도로 입성했다.
▲ “손맛 죽입디다.” 서른개 홈통에서 수확한 감성돔을 자랑하는 대구 한복남(좌), 김덕진씨.
▲ “거문도가 꽝이라구요? 우리는 매주 호황을 맛보고 있는 걸요.” 동도에서 수확한 감성돔을 자랑하고 있는 대구 김박사낚시 회원들. 왼쪽부터 곽상의, 김승완, 송평근, 이정선, 정상훈, 앞쪽은 김덕진씨.
“한산한 곳이 곧 명당”
거문도에서 마중 나온 돌핀호(선장 이태정)가 우리를 싣고 동도로 달렸다. 서른개부터 북쪽으로 향하며 칼등여, 딱밭, 산굴단, 낭끝, 안간여 순으로 상륙해 나갔다. 참돔을 낚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김 사장은 회원 한 명을 태우고 서도로 달렸다. 가는 도중 선장이 “지난달부터 참돔이 낚이기 시작했다”며 “특히 서도 코바위, 줄바, 줄바 밑, 제립여는 비는 날이 없다”고 말했다. 과연 선장 말처럼 포인트마다 야영객들로 들어 차 있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바깥제립여가 비어 있는 게 아닌가.
▲ 취재당일 조과. 감성돔은 동도의 여밭에서, 부시리는 서도에서 낚인 것이다.
◀ 오전 10시 30분 중날물쯤 김영수 사장이 칼등여 본섬에 내리자마자 낚아 올린 52cm 감성돔을 들어보이고 있다. 투제로(00) 전유동 잠길낚시의 성과.
우리는 바깥제립여 서쪽에 내렸다. “웬일이여? 일급 명당이 비어 있다니?” 하고 말하자 김 사장이 말했다. “이 자리는 코바위쪽으로 흐르는 들물에 참돔이 잘 낚이는데 오늘 아침은 날물이 시작되니 당연히 비어 있을 수밖에요. 한번 해봅시다. 간혹 썰물에도 참돔은 낚이니….”
모두 전유동 채비를 흘리기 시작했지만 80cm급 부시리 한 마리가 걸려들었을 뿐 참돔 입질은 없었다. 오늘 따라 참돔들이 움직이지 않는지 주변의 다른 포인트 역시 조용했다. 김사장은 “오늘 참돔낚시는 틀렸는갑소, 동도로 가서 감생이나 낚읍시다.”하며 도시락을 가지고 온 낚싯배를 다시 탔다.
◀거문도 서도 바깥제립여에 내린 낚시인이 참돔 입질을 받았다. 그러나 이 고기는 아쉽게 터트렸다. 뒤늦게 호황세를 맞고 있는 거문도에서는 참돔과 감성돔이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
“우리 손님들이 고기를 잡는 이유가 있지요. 소문난 포인트들은 절대 가지 않습니다. 낚시꾼들이 서도로 몰리면 우린 동도로, 또 동도로 몰리면 우리는 서도로 가지요. 잘 낚이던 포인트도 사람들이 몰리고 배가 왔다 갔다 하면 십중팔구 몰황입니다. 반대로 고기가 나오지 않던 곳도 며칠만 포인트를 비워두면 나오게 되어 있지요.” 이것이 김 사장의 지론이었다.
김 사장의 말처럼 이날 동도는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드문드문 내린 김박사낚시 회원들의 살림망에는 씨알 좋은 감성돔들이 어김없이 들어 있었다. 김 사장도 동도 칼등여에 내리자마자 보란 듯 52cm 감성돔을 낚아 올렸다. 신기한 듯 바라보니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거문도 포인트는 한적할 경우 물때 맞춰 내리면 거의 80% 확률이 넘습니다. 이 자리도 마찬가지지요.”
김 사장의 말에 따르면 동도에서 감성돔이 낚이기 시작한 것은 이미 3월 중순부터라고 했다. 영등철 이후 수온이 빨리 오르는 것을 알아차리고 혹시나 싶어 내려 보았는데 감생이가 낚여주더라는 것. 그 후 회원들과 쉬쉬하며 파먹고 있었다고. 지금 거문도는 뒤늦게 활황세를 보이고 있다. 서도에서는 참돔과 부시리가, 동도에서는 감성돔이 치열한 대결구도를 보이고 있다. 덕분에 낚시인들만 신났다. 4월 9일 김영수 사장은 전화로 “거문도에서 나오는 길인데 40cm 전후의 씨알로 10마리 이상 낚아 모두 고루 손맛을 보았다”고 말했다.
■출조문의 대구 김박사낚시(053-558-82025)
■취재협조 고흥 영진투어랜드(061-834-6027), 거문도 돌핀호(061-665-7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