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다 망둥어낚시
3. 남해 현장
‘꼬시래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영규 기자
남 안에서 낚이는 망둥어는 대부분 문절망둑이다. 문절망둑은 서해안의 풀망둑보다 덩치는 작지만 맛은 더 좋다. 특히 부산, 진해, 창원, 고성, 하동 등지의 경남 해안가 낚시인들에게 문절망둑은 매우 친숙한 고기다. 이 지역의 바닷가 사람들은 어릴 적 멱을 감을 때부터 짧은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허리 깊이까지 들어가 문절망둑을 낚은 추억이 있다. 수도권 낚시인들이 가까운 서해 갯벌에서 망둥어낚시로 바다낚시에 입문하듯 경남지역의 낚시인들도 문절망둑낚시로 바다낚시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문절방둑의 회 맛은 서해안의 풀망둑과는 비교불가다. 풀망둑은 특유의 흙냄새가 강하고 살점이 물러 회 맛이 떨어지는 반면 풀망둑은 잡내가 없고 살이 단단해서 뼈회를 만들어 된장과 참기름을 섞은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아주 고소하다. 경남에선 문절망둑을 꼬시래기라 부르는데, 맛이 고소하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대체로 문절망둑은 강이나 하천이 유입되는 기수역 중 뻘이 있는 곳에 많이 서식한다. 그래서 다른 고기에 비해 약간 더러운 물에도 잘 산다. 하지만 대다수 문절망둑 낚시터는 뻘밭에서 일어난 탁수대일 뿐 오염된 물은 아니다.
부산에서는 낙동강 하구둑에서 가까운 강서구 명지동 일대, 창원에서는 마산만과 진동면, 구산면 일대의 선착장과 방파제, 사천만 일대 등이 문절망둑이 잘 낚이는 곳들이다. 그 외에도 민물이 유입되고 뻘층이 형성된 곳이라면 어느 곳에나 문절망둑이 서식하며 전남의 여수와 순천, 고흥, 강진, 해남 등의 내만에서도 문절망둑이 낚인다.
▲경남의 망둥어인 꼬시래기. 풀망둑보다 덩치는 작지만 회 맛이 고소해 인기가 높다.
▲창원시 봉암동에 있는 봉암대교 밑. 마산만의 최상류에 해당하는 곳으로 문절망둑 자원이 풍부하다.
▲정기원씨 부부가 낚은 문절망둑들.
▲정기원, 손미숙 부부가 봉암대교 밑에서 낚은 문절망둑을 자랑하고 있다.
기수역의 뻘밭에 많이 서식
지난 9월 29일, 나는 경남 지방의 ‘꼬시래기’를 낚아보기 위해 창원으로 내려갔다. 남해안 망둥어낚시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나는 창원의 이정운씨에게 가이드를 요청했다. 이정운씨는 1년 전까지 통영에서 낚싯배 두모호를 몰다가 지금은 건설회사 대표로 새 사업을 시작했다.
낮 12시경 창원에 도착하자 이정운 사장은 제일 먼저 두산중공업이 들어서 있는 성산구 귀산동의 해안도로변으로 안내했다. 마창대교가 바라보이는 이곳은 창원 낚시인들의 대표 동네낚시터다. 동네낚시터라고는 하지만 원투낚시에 도다리, 문절망둑, 노래미 같은 고기가 잘 낚여 인기가 매우 높은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문절망둑보다 도다리가 더 잘 낚였다. 씨알도 큼지막해 횟집에서나 볼 수 있는 25cm급들이 많이 올라왔다. 그때 이정운 사장이 아차 싶었는지 손바닥으로 이마를 때린다. 문절망둑은 뻘이 많은 내만 깊숙한 곳에서 주로 낚인다는 사실을 깜빡한 것이다.
“하도 오래 전에 꼬시래기낚시를 해봐서 잠깐 착각했습니다. 여기처럼 물빛이 맑고 조류 소통이 좋은 곳에는 꼬시래기가 드뭅니다. 썰물 때 보면 해안에 뻘이 많이 섞여 있고 민물이 유입되는 곳에 꼬시래기가 많지요.”
곧바로 차를 돌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에 있는 수정포구로 넘어갔다. 마침 선착장에 낚시인 다섯 명이 낚시하고 있어 카메라를 들고 가보니 한 낚시인이 문절망둑 두 마리를 낚아 놓고 있었다. 생김새는 망둥어와 비슷하지만 전반적 외형에서도 확실히 풀망둑과는 차이가 나 보였다. 마치 보리멸과 풀망둑을 합쳐 놓은 모습이랄까?
정오 무렵부터 세 시간 가까이 낚시하고 있다는 김찬오씨는 “요즘은 꼬시래기가 예전보다 덜 낚인다. 우리 어릴 적엔 릴낚시가 없어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물속에 들어가 꼬시래기를 많이 잡았는데 오염이 심해진 탓인지 예전처럼 많은 양은 낚이지 않는다. 그저 심심풀이로 낚시를 나와 네댓 마리 정도 썰어먹고 집에 가는 재미로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 시내 봉암대교 밑은 문절망둑 소굴
경남의 문절망둑은 수질 오염, 낚시장르 다양화 등으로 예전보다 인기가 줄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문절망둑이 많이 서식하는 강 하구가 산업화로 개발되거나 오염이 심화되면서 낚시터 자체가 없어지거나 낚시를 기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더 고급 어종을 대상으로 한 낚시장르들이 속속 개발되면서 이제 망둥어는 생활낚시 어종으로서도 하위권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부산이나 창원 같은 대도시를 벗어나 거제도, 통영, 사천, 하동 등지로 나가면 여전히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에서 토실토실 살찐 망둥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어쩌면 남해안의 바닷고기 자원이 서해안보다 월등히 풍부하다 보니 남해안 망둥어가 제 값어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바람에 구산면과 진동면 일대의 여러 선착장을 돌아봤지만 더 이상 낚시인들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그러자 이정운 사장이 제일 확실한 데가 있다며 다시 창원 시내로 돌아가보자고 말한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창원시 봉암동의 봉암대교 밑이었다.
이곳은 마산만의 상류에 속하는 곳으로 위쪽에 창원국가산업단지와 주택가가 밀집해 있다. 공장지대와 주택가에서 흘러온 하천이 마산만과 합류되는 지점이었다. 이정운 사장은 “이곳은 수질이 약간 떨어지는 하천물이 유입되는 곳이라 전문 낚시인들보다 생활낚시를 즐기는 초보낚시인들이 자주 찾고 있는 곳이죠. 지금은 비가 오고 평일이라 낚시인이 적지만 주말에는 꼬시래기를 낚으러 온 사람들로 붐빕니다”라고 말했다.
오후 5시경 도착한 현장에는 창원의 정기원씨 부부가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4시간가량 낚시해 50마리 정도의 문절망둑을 낚아 놓고 있었다. 정기원씨는 “창원 근교에서 여기만큼 꼬시래기를 쉽게 잡을 수 있는 곳도 드물다. 마산만 최상류라 수질은 약간 떨어지지만 꼬시래기는 원래 이런 데 많다. 우리 같은 바다낚시 초보자들은 쉽게 많이 낚이고 회 맛도 좋은 꼬시래기만큼 좋은 고기도 없다”고 말했다.
정기원씨는 문절망둑은 뼈회로 먹는데 둘이 먹기에는 10마리면 충분해 나머지는 이웃들에게 나눠준다고 했다. 경남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문절망둑 회를 즐겨온 터라 횟감으로 누구나 좋아한다고.
부산 명지동의 꼬시래기 배낚시
한때 문절망둑 낚시가 큰 인기를 끌었던 부산시 강서구 명지동 일대에선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꼬시래기 배낚시’가 유행하고 있다. 오염이 심해진 근해에서는 마릿수 조과를 거두기 어렵고 기름 냄새가 난다고 해서 배를 타고 깨끗한 바다로 나가서 낚는 것이다. 5명 정도가 명지포구의 작은 배를 빌려 하구둑에서 15분 정도 나가 낚시를 즐긴다.
▲이정운씨가 창원시 구산면의 수정포구에서 낚은 문절망둑.
▲수정포구에서 문절망둑을 낚고 있는 낚시인들.
▲마창대교가 바라다 보이는 창원시 귀곡동 해안로. 도다리를 낚다보면 문절망둑이 종종 낚인다.
문절망둑 낚시요령
깊은 물골보다 얕은 수중턱을 노려라
▲민장대로 수중턱을 공략하고 있다.
문절망둑 낚시요령은 서해의 망둥어를 노릴 때와 별반 차이는 없다. 다만 이번에 촬영한 창원 봉암대교 밑 같은 경우는 약간의 요령이 필요하다. 봉암대교 밑은 큰 배가 드나드는 곳인만큼 중심부는 깊고 연안은 얕은 일종의 물골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런 곳에서는 깊은 곳으로 원투해서는 문절망둑을 낚기 어렵다. 얕은 수심을 좋아하는 문절망둑이 얕은 경사면에 모조리 몰려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진에서 보듯 민장대를 이용해 수심이 깊어지기 시작하는 경사면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것이 좋은데, 찌낚시보다는 맥낚시로 바닥을 더듬어야 훨씬 빠르게 입질을 받을 수 있다. 취재일 정기원씨 옆에서 멀리 원투낚시를 한 낚시인 두 명은 정기원씨 부부가 50마리를 낚을 동안 고작 한 마리밖에 못 낚아 대조를 이뤘다.
꼬시래기 회 맛집
부산 중리포구 ‘영광미소네집’
▲뼈회로 만들어져 나온 꼬시래기회. 양념장에 찍어 먹으면 입 안에서 고소한 맛이 진동한다.
부산시 강서구 명지동 중리포구에 전설적인 꼬시래기 횟집이 있다. 중리포구 김 위판장 앞에 있는 영광미소네집은 30년째 꼬시래기 회를 팔고 있다. 내가 멀리 수원에서 회 맛을 보러왔다고 하자 안주인 김옥선씨(70)는 경상도 아지매 특유의 괄괄한 말투로 “지금 횟감이 들어와 수조의 물을 갈고 있으니 한 이십분 정도 기다리라”고 했다.
그런데 회 값이 생각보다 비쌌다. 중자 4만원, 대자 5만원! 요즘 한창 인기 있는 전어회만큼 비쌌다. 꼬시래기가 다른 고기처럼 쉽게 공급되지 않는 게 회값이 비싼 이유였다. 나는 “사진 촬영 겸 혼자 먹을 것이라 중자도 필요 없다”고 3만원어치만 썰어 달라고 했는데, 아주머니는 흔쾌히 그렇게 해주었다.
씹을수록 신선함과 고소함이 진동
내가 명함을 건네며 회 뜨는 과정을 촬영하겠다고 하자 “이제는 블로그고 뭐고 귀찮다”며 제발 얼굴 안 나오게 찍으라고 한다. 이미 20년 전부터 유명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이 수없이 다녀간 곳이라 매스컴도 귀찮다는 눈치였다.
창원의 횟집을 모두 돌아다녔는데도 꼬시래기회 파는 곳을 못 봤다고 하자 “요즘은 꼬시래기가 귀하다. 부산에서도 지금은 우리 집에만 꼬시래기가 들어온다. 오늘은 5킬로그램 정도 들어왔는데 내가 이 정도 받을 정도면 다른 집은 공급받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문절망둑은 어부들이 통발을 놓아 잡는데 갈수록 어획량이 줄고 있다고 한다.
김옥선씨가 꼬시래기회를 뜨는 과정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손놀림이 너무 빨라 핀을 맞추기 어려울 정도였다.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지느러미까지 모두 떼어내는데 10초나 걸렸을까? 김옥선씨는 “꼬시래기는 여러 마리를 손질해야 하므로 속도가 중요하다. 다른 사람을 시키려고 해도 손이 너무 느려 안 된다”고 말했다. 꼬시래기 손질 30년의 내공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식탁에 오른 꼬시래기 회는 너무나 깔끔하게 손질돼 원래의 형태를 떠올리기 힘들 정도였다. 드디어 시식의 순간. 젓가락으로 듬뿍 회를 집은 후 양념장에 푹 찍어 입 안에 넣고 씹자 갓 장만한 뼈회 특유의 신선함과 고소함이 입 안에서 진동한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회 맛이 살아났는데 도다리 뼈회보다 약간 더 시원하고 깔끔한 느낌이었다. 김옥선씨는 “이제 막 꼬시래기가 맛이 들기 시작했다. 앞으로 한 달 정도만 더 있다 오면 꼬시래기 회가 왜 꼬시다는 것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20일경이 되면 영광미소네집에선 하구둑 인근에서 나는 김에 꼬시래기회를 무쳐주는데 단골들은 그냥 뼈회로 먹을 때보다 훨씬 감칠맛이 나고 향이 좋다고 한다.
●영광미소네집 011-1757-1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