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
우리나라 최초 컬러 어탁 발견
1945년 제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컬러 어탁
서성모 기자 blog.naver.com/mofisher
▲국내 최고(最古) 컬러 어탁으로 밝혀진 김덕문씨의 피라미 어탁. 1945년에 제작된 것으로 우측 상단 물고기 모양의 도장 안에 찍혀 있는 '20.6.17' 중 20은 소화(邵和) 20년을 뜻하는 것으로 판명됐다. 소화는 일본 소화왕의 재위기간으로서 소화 20은 1945년이다.
우리나라에서 1945년에 제작한 컬러 어탁이 발견됐다. 현존하는 컬러 어탁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어탁을 뜬 사람은 김덕문씨로서 경남 진주 남강에서 낚은 피라미에 물감을 칠해 어탁을 제작했다. 컬러 어탁 외에 역시 남강에서 잡은 납자루, 붕어 등의 어탁 15점이 있는데 피라미 외엔 흑백의 묵탁이다. 그중 2점은 김덕문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찍은 어탁이다.
이 어탁은 본지 독자인 경남 창원의 김호천씨가 소장하고 있다가 본지에 제보한 것이다. 김호천씨는 김덕문씨의 외조카다. 김호천씨는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해서 보관해오던 것인데 예전 기억으로는 상당히 많은 양이 있었으나 지금은 16장만 남았다. 외삼촌은 해방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가셔서 그곳에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 어탁의 감정은 한국어탁회 이상근 회장과 KBS 진품명품의 김영준 감정위원이 맡았다. 이상근 회장은 “어탁 상태나 내용을 봐서는 컬러 어탁 중 우리나라에서 최고 오래된 어탁으로 추정된다. 작은 물고기로 어탁을 뜨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어탁 솜씨가 정교하고 세밀하다”고 말했다. 김영준 감정위원은 “어탁에 쓰인 종이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수입한 것이다. 어탁의 제작 연도와 글 내용을 보아 당시에 제작된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어탁 역사 재조명할 사료
지금까지 발견된 국내 최고(最古) 어탁은 1938년 제작된 최두원씨의 붕어 어탁이다(본지 2009년 9월호에 보도). 그동안 컬러 어탁의 시초는 예술어탁의 창시자인 고 김홍동 선생이 컬러 어탁 작품 활동을 시작한 1972년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훨씬 더 전에 제작된 컬러 어탁이 발견된 것이다. 이상근 회장은 “어탁에 대한 사료가 절대 부족한 현실에서 이 컬러 어탁은 어탁 역사를 재조명할 사료라는 점에서 매우 반갑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어탁들에는 제작연도가 적혀 있는데 1943년부터 1945년까지다. 그런데 제작 연도와 날짜를 붓글씨가 아닌 숫자 스탬프 도장으로 찍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리고 어탁의 일련번호도 빨간 숫자의 도장으로 찍어놓았다. 그리고 제작 날짜 도장에 겹쳐서 물고기 모양의 도장도 찍혀 있다. 그래서 어탁을 본 이상근 회장과 김영준 위원은 김덕문씨가 어류학자거나 생태조사 업무를 맡은 공무원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김호천씨는 “외삼촌은 어류학자도 공무원도 아니었다. 1942년에 오사카에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20대 청년이었다. 기계를 공부하셨고 손기술이 좋아 웬만한 것은 직접 만들어 쓰셨다. 어탁에 찍힌 도장도 손수 만드셨을 것이다”하고 말했다.
김덕문씨의 어탁 중 컬러 어탁은 이른바 ‘불거지’라 불리는 수컷 피라미 어탁뿐이지만, 이 어탁에 제작 일련번호로 추정되는 20이란 번호가 찍혀 있는 것을 보아 컬러 어탁이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어탁회 이상근 회장(우)과 KBS 진품명품 김영준 감정위원이 김덕문씨의 어탁들을 살펴보고 있다.
▲945년에 제작된 농어 어탁. 진주 남강 진주교에서 낚았다고 적혀 있다.
▲‘山女’라고 적힌 피라미 어탁. 1945년 제작된 것으로서 낚시법도 밝혀 놓았다. 32마리 중 1마리를 뜬 것이며 털바늘로 낚았다고 쓰여 있다.
남강에서 낚은 농어 어탁 눈길
어탁들 중엔 당시 남강의 어족 생태계를 알 수 있는 사료도 있다. 그것은 1944년에 찍은 농어 어탁인데, 낚은 장소는 진주 남강 진주교 부근으로 기록돼 있다. 진주교는 남강의 최종착지인 낙동강 하구에서 무려 100km나 떨어져 있다. 진주 낚시인들 말로는 1980년대 중반까지 낙동강 하구의 은어가 남강댐 밑까지 소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농어는 민물로 모천회귀하는 은어와 다른 물고기다. 과연 바닷고기인 농어가 그 먼 물길을 거슬러 올라왔을까?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어탁 상단에 ‘N 1’이라고 쓴 1943년 붕어 어탁은 붕어를 낚은 장소가 일본 동경인데, 우리나라 토종붕어와 똑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다. 일본에서 ‘마부나’라 불리는 재래종 붕어로 판단된다. 이 어탁 제작연도를 통해 당시 김덕문씨는 1943년까지 일본에 거주하다가 같은 해에 우리나라로 건너왔음을 알 수 있다. 또 ‘山女’라고 표기한 어탁상의 물고기는 피라미 수컷이었다. ‘山女’는 일본에서 산천어를 뜻하는 이름인데 김덕문씨가 피라미 수컷을 보고 일본에서 본 산천어로 착각한 것인지, 산천어처럼 예뻐서 그 이름을 붙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