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엔저(円低), 득인가 실인가?

대일 수출 감소, 수입은 증가할 것 같지만 실제론 미미
엔저 후 엔화가치 안정되어야 소비자들에게 혜택 돌아가

김진현 기자 kjh@darakwon.co.kr

일본 아베 정권이 20년 넘게 이어져온 디플레이션과 엔고에서 탈출하기 위해 내놓은 경제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여파로 엔화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졌다. 지난해 8월 1400원에 육박했던 엔화의 가치는 올해 5월 1100원 이하로 떨어졌고, 6월 현재는 소폭 상승해 1150원선을 기록하고 있다.
엔화 가치 하락이 우리나라 낚시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일까? 수출시장에서는 당연히 일본제품의 가격이 낮아지므로 국산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내수시장에서도 일본제품과 경쟁관계에 있는 국산제품은 판매량이 하락할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좋을 수도 있다. 낚시인들은 “엔화가 떨어졌으니 일본제 낚시용품을 예전보다 싸게 살 수 있게 되었다”고 엔저를 반기는 분위기도 있다. 과연 그럴까?

수출업체는 불리하지만 수입업체는 유리하다?

엔저(円低)란 달러에 대한 엔화의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전 세계에서 일본 상품을 싼값에 구입할 수 있다. 일본이 엔저로 인해 얻을 수 있는 1차적인 이익은 일본 상품의 수출 증가다. 일본 기업들로서는 대단한 호재다. 반면 손해도 있다. 일본으로 수입되는 외국 상품의 물가가 상승해 일본인들의 소비심리가 떨어지고 서민경제는 불안해질 수 있다.

▲일본 대마도로 출국하고 있는 관광객들. 엔저의 영향으로 최근 일본행 여행객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주변국들에게는 반대로 작용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격이 떨어진 일본상품의 수입 증가로 소비심리가 일시적으로 증폭될 수 있다. 하지만 수출여건은 불리해져 경기침체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 절반 정도가 미국, 유럽, 중국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기 때문에 엔저에 따른 해외시장에서의 판매 감소가 가장 큰 문제가 된다. 관광산업 역시 일본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줄어들고, 반대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관광객은 늘게 된다.
종합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엔저를 반길 이유가 거의 없다. 그러나 낚시인들은 내심 엔화의 하락을 바랄 수도 있다. 바로 ‘고가의 일본 수입 장비를 이 기회에 좀 더 저렴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 때문이다.

정식 총판수입자들에겐 엔저가 오히려 ‘폭탄’

그러나 그 기대는 착각이다. 낚시인들은 엔화가치가 떨어졌으니 수입품의 가격도 떨어지겠거니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일본 야마시타의 한국총판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성광물산상사 김선관 대표는 “중동의 원유는 달러를 기초통화로 삼고 있다. 그러나 달러 가치가 하락한다고 해서 곧바로 우리나라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이 내려가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수입되는 낚시용품들도 금방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 회사의 경우 작년에 엔화가 1400~1500원 했을 때 수입한 재고들이 아직도 많다. 작년은 국내 조구업계 역사상 가장 불황이라고 할 정도로 매출이 저조했는데, 그때 수입한 상품들을 이제는 떨어진 엔화가치에 맞춰 팔아야 할 실정이다. 엔화가 떨어지면 소규모 보따리 상인들이 시세차익을 보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시장에 헐값의 물건들이 나돌게 되면 정식 딜러들도 일부 상품의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식 루트로 수입하는 총판사업자들은 자칫 엔저로 인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더불어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미미하다. 일시적으로 저렴한 물건을 구입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저렴한 물건이 꾸준히 공급될 리가 없다. 일본에서 공급되는 물건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루어 수입업체인 런커의 김태한 대표도 비슷한 말을 했다.
“엔화의 약세가 꾸준하거나 어느 선에서 안정이 된다면 소비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며 수입상들에게도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당장엔 손해를 보더라도 나중엔 떨어진 엔화 덕분에 수입품의 소비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변동이라면 수입업체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엔화가 비쌀 때 수입한 재고들이 가장 큰 골칫거리다. 그 상품들을 엔화가 내렸기 때문에 이익 없이 정가를 낮춰서 팔아야 하므로 손해를 보게 된다. 소비자들은 ‘엔화가 비쌀 때 이득을 보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속사정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엔화가 비쌀 때는 수입품 시장이 거의 얼어붙다시피 한다. 1100원 하던 엔화가 1500원으로 오르면 400원어치의 차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소비가 줄어들어 버린다. 그래서 가격을 함부로 올릴 수도 없다. 본전으로 팔아도 남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엔화가 올랐다고 해서 정식 딜러들은 신제품 구입을 미룰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그렇게 구입한 신제품의 반응이 좋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잘 팔리지 않는 신제품은 고스란히 재고로 남는다.”

“제조기술력 성장으로 수출엔 큰 타격 없어” 

이처럼 큰 수입상들은 엔저에 따른 이익은커녕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겐, 보따리상이라도 들여와서 헐값에 수입품을 판매하면 좋은 일이 아닐까? 그런데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주)바낙스 영업지원팀의 윤석환 팀장은 “엔화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해서 수입이 급증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앞으로 엔화가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소비자의 기대와 매입자의 불안감이 동시에 교차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엔화가 더 떨어질 것을 기대해 구입을 서두르지 않고, 매입자는 행여 앞으로 엔화가 더 떨어질 것을 우려해 섣불리 주문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소비자와 판매자가 서로 눈치작전을 펼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판매도 구매도 이뤄지지 않고 소비만 위축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런 문제는 특히 소매점으로 갈수록 심하게 나타난다. 실제로 일선의 낚시점에 가보면 엔화가 떨어져서 매출이 증가했다고 말하는 곳은 거의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수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윤석환 팀장은 “낚시산업은 자동차나 관광산업처럼 엔화 가치의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조구업체가 미국, 일본, 유럽에 낚싯대와 릴을 수출하고 있지만, 자체 브랜드로 경쟁하는 것은 드물고 OEM 형태로 수출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바낙스는 다국적 기업인 A업체에 릴을 수출하는데, 시장에 판매될 땐 바낙스와 일본 제품의 대결이 아닌 다국적 기업의 A업체 브랜드와 일본 제품의 대결로 이뤄지기 때문에 엔화 하락의 문제는 A업체가 심각하게 받지 바낙스가 1차적으로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엔저가 장기적으로 진행되어 A업체의 판매량이 떨어진다면 자연히 제품생산을 줄여 바낙스에 대한 주문량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옛날이야기다. 최근에는 엔화의 가치가 조금 떨어졌다고 해서 일본 제품과 경쟁하는 경쟁사들의 피해가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생기진 않는다. 그 이유는 낚시장비 부분에 있어서는 제조기술력이 상당히 발전했고, 다국적 기업인 A업체 브랜드의 제품신뢰도나 마니아층도 두터워졌기 때문이다. 최근 소비자들은 브랜드 이미지로 제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가격이 소폭 변동했다고 해서 쉽게 돌아서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루어 수입뿐 아니라 국내 브랜드의 낚싯대를 외국에 수출하고도 있는 런커 김태한 대표는 “다행히 낚싯대의 경우 국내 제품의 퀄리티가 많이 좋아졌기 때문에 엔화 하락으로 인해 일본 제품들의 경쟁력이 개선된다고 해도 당장 상황이 역전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낚싯대들 중 고급 제품들은 일본제 가이드나 부품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엔저로 인해 수입되는 부품의 가격이 하락하면 그만큼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다는 장점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국내 조구업체들이 엔화가치의 변동에 따른 제작단가 변화나 매출액 변화 등에 대한 통계를 아직 정확하게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통계가 있어야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대응이 허술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엔화 영향에서 벗어나는 길은 품질향상뿐”

엔저가 국내시장에 위협이 되는 이유는 일본 제품들의 품질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품질이 우수한 제품이 싼값에 팔리면 구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김태한 대표는 “엔화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품질로 일본 제품을 이겨야 한다”고 강조하며 “우리나라 낚시시장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수입품의 의존도가 낮은 전통 민물낚시 장르가 있고 수입품의 의존도가 높은 바다, 루어낚시 분야가 있다. 수입품의 의존도가 낮은 민물낚시 분야는 엔화의 변동으로 영향을 받을 일이 거의 없지만 수입품의 의존도가 높은 바다와 루어낚시 시장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 루어낚시 시장은 처음부터 국내 조구업체가 주도하지 못하고 너무 일본 시장을 쫓아가는 사업이 되어버린 것이 문제다. 거기에 중국의 저가 루어들이 시장을 장악하는 바람에 장비는 일본의 고가 제품을, 루어는 중국의 값싼 제품을 사용하는 이상한 풍토가 만들어져 버렸다. 그나마 낚싯대가 자체 기술력으로 시장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으나 루어는 저렴한 중국산과 퀄리티 높은 일산 사이에서 오갈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가격경쟁보다는 품질경쟁으로 전환해 질적으로도 성장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조구산업은 내수시장만으로는 절대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엔저가 앞으로 장기화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다시 상승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부 언론에서는 ‘아베노믹스’의 부작용으로 일본의 수출, 주식의 하락과 내수경제 침체를 지적하고 있지만 결과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엔화의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 한 낚시용품 소비자들에게도 당분간 큰 혜택은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