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 출조기

통영의 보석, 비진도

내해 섬인데도 묘한 외해 분위기에 끌려

허만갑 기자

추석을 맞아 모처럼 경남 진주시의 고향집에 모인 우리 삼형제에게 외삼촌들이 특명을 하달했다. “가족 회 파티를 열어야겠는데 생선 살 돈이 없으니 평소 낚시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너희들이 좀 낚아오라”는 것이었다. 바다로 나갈 기회를 엿보던 우리로선 감사할 따름이었다. 즉시 통영 척포항의 척포낚싯배 장윤귀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온 가족이 먹을 양을 낚아야 하니 무조건 마릿수 많은 곳으로 안내해달라”고 하자 두 말 않고 비진도를 추천했다.
 

비진도는 통영 갯바위낚시터 중 ‘준내만권’으로 분류된다. 내만도 아니고 외해도 아닌 중간 위치란 것이다. 통영 내만권이라면 갯바위낚시 출항지인 미륵도에서 가까운 새섬·연대·오곡·만지도를 일컫는데 비진도는 그 섬들보다 약간 더 멀다. 뱃삯도 내만보다 5천원 더 비싼 2만5천원이다.
준내만의 비진도가 내만보다 나은 메리트는 어종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주력 어종은 감성돔이지만 벵에돔, 참돔, 돌돔(뺀찌급)도 함께 낚인다. 그러니 마릿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한편 비진도는 욕지도 등 외해와 비교해도 조황 기복이 작다는 메리트가 있다. 외해는 악천후에 취약하고, 물색, 바람, 너울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온전한 낚시여건에서 낚시할 수 있는 기회가 사실 많지 않다. 즉 ‘모 아니면 도’가 외해 갯바위의 특징인데, 횟감을 무조건 낚아야 하는 우리가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순 없었다.
장윤귀 사장이 직접 모는 척포낚싯배 5호는 최근 한 달간 비진도를 뛰고 있다. 이 배의 손님들이 5천원을 기꺼이 더 지불하고 비진도로 가려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아침에 벵에돔, 상사리, 뺀찌가 소나기 입질을 보인 바깥비진도 남쪽 노랑바위 일대.

5천원 더 비싸도 비진도로 갈 거야

비진도는 의외로 한산했다. 우리가 통영을 찾은 추석 전날은 척포항에 주차공간이 부족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새벽 2시부터 많은 낚시인들이 앞 다퉈 출항했다. 하지만 아침 6시에 2항차로 출발한 우리도 A급 포인트인 노랑바위 우측에 내릴 수 있을 만큼 비진도는 많이 비어 있었다. 그만큼 비진도의 가치가 아직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리라.
나로선 벵에돔이 섞여 낚인다는 게 가장 맘에 들었다. 감성돔만 노려선 서너 마리 이상 낚기 어렵지 않은가. 대개 이 철이면 통영 내해의 벵에돔 시즌이 끝나는 법인데 비진도는 남쪽으로 나앉은 덕인지 벵에돔이 늦게까지 낚이고 있다고 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감성돔과 벵에돔이 함께 낚이는 포인트란 단점도 있다. 채비 선택에 갈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감성돔을 낚으려면 반유동채비로 바닥층을 노려야 하겠고, 벵에돔을 낚으려면 제로찌채비로 중상층을 노려야겠기에, 어떤 채비를 택할지 고민스럽다. 그러나 지금 비진도에선 그런 갈등이 필요 없다고 한다. 장윤귀 사장은 “벵에돔이 가을이 되자 감생이처럼 바닥층에 내려앉아서 반유동채비 하나로 둘 다 낚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벵에돔이 감성돔보다는 약간 더 뜬다고 한다. 가령 바닥수심이 9m인 곳이라면 감성돔은 8~9m 수심에서 낚이고 벵에돔은 7~8m 수심에서 낚이는 식이다. “너무 바닥을 긁으려 하지 말고 찌밑수심 7m로 넉넉히 띄운 다음 꾸준한 밑밥 품질로 마릿수 조과를 노리는 게 상수”라고 장 사장이 조언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최근에 척포를 찾는 사람들이야 선장 장윤귀만 알겠지만, 나는 선장이 되기 전 찌낚싯대 하나로 통영바다를 주름잡던 고수 장윤귀를 익히 알기 때문이다.      

▶"비진도 감성돔입니다." 왼쪽부터 허만진, 허만규, 이동근씨(거제).

▶노랑바위에서 낚은 조과.

씨알은 잘아도 돔 족보는 다 모였네

과연, 갯바위에 내려 미끼를 던지자마자 입질이 들어왔다. 감성돔과 벵에돔만 낚이는 게 아니었다. ‘혜택이 또 있습니다’라는 홈쇼핑 광고처럼 돌돔(뺀찌급)과 참돔(상사리급)까지 함께 낚였다. 조류가 앞으로 받히는 상황에선 돌돔이, 조류가 옆이나 바깥으로 뻗는 상황에선 참돔이 입질했다. 동 틀 무렵엔 잠시 전갱이도 떼를 지어 들어왔는데 전갱이 소금구이라면 환장하는 둘째 만진이 낚는 족족 쿨러에 담았다. 전갱이는 아침에 잠깐 낚이고 날이 밝으니 사라졌다. 이것저것 낚이니까 지겹지도 않고 마치 원도 갯바위에 내린 것처럼 즐거웠다. 아침부터 오전 10시까지 감·벵·돌·참의 4대 돔으로 비록 씨알은 잘지만 20여 마리를 낚았다.
장윤귀 사장은 모처럼 나온 김에 끝장을 보라며 오후엔 상투바위로 옮겨주었다. 오랜만에 갯바위에서 조우한 거제도의 이동근씨도 우리와 합류했다.
“썰물에는 도시락 까먹고 놀다가 오후 2시부터 들물이 받히면 남쪽을 보고 주르르 서서 수심 6미터 주고 근거리를 노리면 벵에돔과 돌돔이 잘 낚일 것”이라고 하더니 그 말 역시 맞았다. 조류가 들물로 바뀌자 본류가 강해지면서 포인트 앞으로 받혀드는 지류가 생성되었고 그 물에 입질이 쏟아졌다. 약간 멀리서는 벵에돔이 낚이고 발밑 수중턱 언저리에선 돌돔이 낚였다. 점점 치고 올라오는 너울만 없었으면 더 낚았을 것이다.
이날 저녁 우리집에선 회 파티가 벌어졌고, 접시 네 개에 수북이 쌓아 올린 회를 스윽 훑어본 막내 외삼촌이 “횟집에서 시켰으면 백만원어치는 되겠다”고 판정을 내렸다. 비진도가 우리 형제의 체면을 살렸다.   
▒ 취재협조 통영 척포낚싯배 055-647-0650, 5호 선장 장윤귀 010-9360-6582

▶들물 본류가 시원스레 흐르는 상투바위. 뜰썰물 모두 본류는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들물에 본류가 강해지면서 지류가 살아난다.

▶씨알은 잘아도 돔 종류는 다 모였다.

▶밀물이 흐르는 비진도 상투바위에서 찌밑수심 6m로 벵에돔의 입질을 받아내고 있다.

비진도로 가려면?

통영 남단 척포항에서 낚싯배를 타면 1인당 2만5천원에 비진도로 데려다준다. 소요시간은 15분. 척포까지는 대전통영간고속도로 북통영IC에서 내려 ‘미수동’ 이정표를 따라 가면 통영대교를 건너 미륵도로 들어서는데 해안도로를 따라 남쪽 끝까지 가면 척포항이다. 내비게이션엔 ‘척포낚싯배’ ‘산양읍 미남리 202-3번지’를 입력하면 된다.

비진도의 물때와 주요 포인트

비진도는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섬인데 가운데 잘록한 허리를 기준으로 북쪽을 안비진도, 남쪽을 바깥비진도라 부른다. 물때는 조금물때(1물~3물)만 피하면 언제든 좋다. 초가을 포인트는 용초도를 마주보는 안비진도 북쪽(내항~상어지느러미)부터 형성되어 겨울로 다가갈수록 바깥비진도 남동쪽(상투바위~파래강정~노랑바위~물개치)에서 호황을 보인다.
북쪽 포인트는 평균 4~8m 수심을 보이고 남동쪽 포인트는 발밑이 7~8m, 멀리는 12~15m 수심이다. 10월 중순 이후 늦가을에는 남동쪽 갯바위의 8~12m 수심을 노리면 가장 무난하다. 비진도 감성돔낚시의 가장 큰 난적은 고등어다. 11월 말까지 고등어가 설치는데 게나 옥수수를 미끼로 쓰면 감성돔만 골라 낚을 수 있으나 그 경우 다른 어종은 낚기 어렵다. 만약 고등어는 벵에돔이든 참돔, 감성돔이든 가리지 않고 낚겠다면 역시 크릴미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