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낚시 출조기

서산 고남지의 난제

수몰육초 속 더듬어 4짜 구멍 찾았다!

허만갑 기자

미끼의 바닥 안착은 붕어낚시의 기본. 미끼가 바닥에서 떠 있으면 저서성인 토종붕어의 입질을 받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빽빽하게 우거진 채 그대로 수몰된 육초대 만큼 낚시가 힘든 여건은 없다. 수초는 아무리 빽빽해도 그 사이에 빈 공간이 있게 마련이지만 육초는 다르다. 원래 물속에 있어야 할 풀이 아니기 때문에 물에 잠기면 차분하게 삭지 않고 비스듬히 기울며 지그재그로 뒤엉키기 때문에 빈 공간을 찾아내기가 더욱 어렵다. 물에 사는 수초와 물속에 있는 게 비정상인 육초는 같은 풀이라도 그만큼 다른 것이다.
더구나 육초는 물속에서 부패한다. 수초는 광합성을 하여 수중에 산소를 공급하지만 육초는 썩어서 산소량을 고갈시킨다. 그래서 육초가 갓 잠긴 오름수위 초기엔 육초대에서 붕어가 잘 낚이지만 며칠만 지나면 육초가 썩기 시작하면서 산소부족 현상이 생겨 붕어들이 육초대를 떠나고 녹조현상이 발생한다. 충주호나 대청호, 소양호에서 첫 오름수위에만 대박이 터지는 건 그 때문이다. 수몰육초대의 낚시는 그만큼 어려운데 그 난제를 서산 고남지에서 만났다.

▶만수를 이룬 뒤 육초 속에서 대물붕어를 배출하고 있는 서산 고남지 큰골. 육초가 너무 자라서 연안낚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갑작스런 배수 소식에 대호만에서 고남지로

지난 8월 24일 오후, 대호에서 준월척이 낚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출포리까지 갔다가 당진 본전낚시할인마트 남방현 사장에게서 “대호 방조제에서 태풍 상륙에 대비해 새벽 두 시부터 물을 뺄 것이라고 한다”는 전화를 받고 황급히 돌아 나왔다. 낮부터 내리던 비는 해거름이 되자 폭우로 바뀌었다. 이제 어디로 가나?
화성 문호리 소류지에서 연안낚시인이 4짜 붕어 두 마리를 낚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나 이미 다음카페 보트낚시방 회원 3명이 들어갔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4명인데 수면적이 좁은 문호리지에 7척의 보트를 띄울 수는 없다. 그때 팀비바의 막내 임국재 회원이 가까운 서산 고남지(성연지)를 추천했다.
임씨는 지난 7월 말 고남지에서 폭우 뒤 오름수위 호황을 만나 42cm를 비롯해 준척 월척으로 마릿수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올 여름 고남지는 유례없는 가뭄으로 저수지 중앙부까지 육초가 자랐는데 그 상태에서 비가 내리자 육초대가 수몰되면서 댐처럼 오름수위 호황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이틀 전에도 제가 아는 낚시인 두 사람이 고남지에서 보트낚시를 하여 4마리를 낚았답니다. 한 사람이 3마리, 한 사람이 1마리를 낚았는데 모두 밤 10시부터 12시 사이에 낚았대요.” 뜻밖이었다. 배스가 유입된 후 고남지에서 밤에 붕어를 낚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 없다. 배스가 유입된 낚시터들이 으레 그러하듯 고남지의 대물붕어도 동이 튼 후부터 아침에 낚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다른 대안이 없어 모두 고남지로 이동했다.

온통 육초! 깨끗한 바닥 찾기가 사막에서 바늘 찾기

갑작스런 폭우로 불어난 개울물이 고남지 최상류에도 콸콸 흘러들고 있었으나 물색이 시뻘걸 정도로 혼탁하지는 않았다. 연안낚시인들이 자주 찾는 도로변 작은 골은 탁도가 심했지만 육초대가 잠겨 연안낚시가 불가능한 큰 골은 10cm 바닥이 살짝 보일 정도의 물색이었다. 육초가 썩으면서 가스가 발생했을 수 있으나 오늘의 비로 산소부족 현상이 해갈되었다면 의외의 호황도 기대할 수 있을 법했다. 빗속의 어둠은 더 빨리 내렸다. 다행히 잠깐 비가 소강상태를 보이는 틈을 타서 광속으로 보트를 펼쳤다. 
“이쪽 큰 골 육초대 언저리에서 밤에 입질을 받았다니까 기대를 가지고 해보자구요.”
임국재씨의 말에 용기를 내봤지만 생각 이상의 밑걸림 탓에 이내 의기소침해졌다. 수면에 아무 것도 없어 맨바닥처럼 보이는 곳도 바닥에는 육초 꼭대기가 30cm 이상 서 있는 것 같았다. 임국재씨는 “올 여름에 워낙 가물었기 때문에 3미터 수심까지 육초밭이 잠겨 있다”고 말했다.
용케 바닥까지 떨어지는 지점을 찾아도 10cm만 투척방향이 틀어지면 여지없이 밑걸림이 나타나는 악조건이었다. 어렵사리 여섯 개의 찌를 세웠으나 와르르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람까지 정면에서 불어 텐트를 쳤는데도 보트 안이 금세 물바다가 되었다. 결국 비를 막기 위해 텐트 앞문까지 내리고 낚시를 포기. ‘흙탕물에 폭우까지 내리는데 밤낚시가 되겠어? 어차피 아침에 입질할 거야.’

▶정형준씨의 파이팅. 괴력의 4짜 붕어를 걸어 뜰채에 담기까지 애를 먹었다.

▶“옥내림채비로 4짜를 낚았어요!” 고남지 큰골 동쪽 산자락 연안에서 39대 한 대로만 연달아 다섯 마리를 뽑아낸 정형준(닉네임 뽀인트)씨가 42cm 붕어로 대미를 장식했다.

새벽 4시, 옥수수 미끼에 42cm 출현

눈을 뜨니 아침 5시 10분. 바깥이 훤하다. 옆에 있는 박현철씨에게 낚았느냐고 물으니 한 마리 했단다.
“씨알은?”
“열네치.”
“오호! 4짜를 잡았어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미끼를 갈고 앉아 있는데 해결사채비의 찌가 옥내림찌 만큼 솟아 있는 거야. 내가 분명 저 자리엔 옥내림채비를 안 넣었는데, 하며 멍청히 바라보는데 찌가 계속 솟고 있는 거야. 챘더니 4짜더라고. 밤이라서 그런지 별로 힘은 쓰지 못하더군.”
“미끼는 뭘 썼어요?”
“옥수수 두 알 꿰었어.”
4짜가 낚였다는 말에 용기백배하여 아침낚시에 매진했으나 오전 8시까지 아무도 입질을 받지 못했다. 8시쯤 산자락 쪽 물골 부근을 노렸던 팀비바 은지훈 총무가 박현철씨 옆으로 이동해서 32cm 월척을 한 마리 낚더니 오전 9시까지 9치 한 마리와 35cm 월척을 더 낚았다. 25일의 조황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서산시내로 나가 점심으로 게장을 먹고 커피숍에 들러 내일의 전략을 숙의했다. “육초가 켜켜이 쌓여 있는데 옥내림채비를 썼던 것은 실수였어. 미끼가 전부 육초 위에 얹히는데 입질할 리 있나? 오늘 밤과 내일 아침엔 모두 해결사채비로 바꾸어서 철저히 구멍을 노리자고. 그리고 너무 얕은 곳만 고집할 필요 없어. 수심이 좀 깊더라도 육초가 듬성한 곳을 노리는 게 확률이 높겠어.” 박현철씨가 말했다.

▶“때깔 한번 끝내줍니다.” 새벽4시에 옥수수 미끼로 42cm 붕어를 낚은 비바붕어 박현철씨.

▶이틀간 5마리의 월척을 낚아 최고의 마릿수를 올린 팀비바 은지훈 총무가 35cm, 41cm 붕어를 들어보이고 있다.

옥내림이 틀린 선택? 두 번째 42cm는 옥내림채비에 덜컥!

다음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서 밤낚시를 한 팀원들의 조과를 물어보니 밤새 입질은 없었다. 역시 푹 자기를 잘했어. 나는 어제 은지훈씨가 세 마리 낚은 자리를 빼앗아 보트 방향만 달리해서 노려보았다. 그러나 6시…7시…8시가 되어도 입질이 없다. 어제와 달리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한 수면. 혹시 붕어들이 더 깊은 곳에 있나 싶어 보트를 20m 정도 전진시키는 순간 도로 건너편 동쪽 산자락 쪽에서 뗏장수초 언저리를 노린 정형준씨가 물보라를 튀기며 월척붕어를 끌어냈다. 더구나 그게 다가 아니다. 전씨 자리에 붕어들이 붙었는지 준척과 턱걸이 월척을 연속 4마리나 낚아낸다.
정형준씨는 월척 사이트에서 ‘뽀인트’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베테랑 낚시인인데 그간 연안낚시만 하다가 최근 보트를 구입해 새로운 낚시의 세계를 즐기고 있다.
“39대 한 대에서만 계속 입질이 와요! 어제 바닥낚시를 했다가 입질이 없어 옥내림채비로 바꿨더니 계속 낚이네요.”
어떻게 된 노릇인가? 박현철씨의 판단과 달리 옥내림채비가 더 나은 선택이었다는 것인가? 정형준씨가 또 입질을 받았는데 이번 녀석은 저항이 다르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봐도 엄청난 덩치의 붕어가 연약한 옥내림채비에 끌려나왔다. 전현준씨는 “42센티네요! 보트를 사고 네 번째 출조에 4짜를 낚았습니다”라며 입이 귀에 걸렸다.   
뒤이어 은지훈씨가 35cm 월척을 끌어내더니 8시 40분경 마침내 41cm 붕어를 끌어내며 대미를 장식했다. 은씨는 내게 자리를 뺏기고 대신 어제 내가 낚시했던 자리로 들어가 보란 듯이 대물을 끌어냈다. 할 말이 없다.
오전 10시도 되기 전에 일찌감치 보트를 접었는데 무슨 놈의 날씨가 이리 더운지!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땀을 줄줄 흘리며 보트를 접어서 차에 싣고 난 각자의 몰골은 서로 마주보기 민망할 정도다. 4짜 붕어 세 마리를 촬영해야 하는데 서 있을 힘조차 없으니 어떻게 한담? 그때 임국재씨가 “여기서 5분 거리에 금학지라는 소류지가 있는데 상류 계곡에서 찬물이 내려오니 거기서 몸을 씻고 촬영하자”고 해서 얼른 차에 시동을 걸었다.
과연 금학마을 위 산속에 소류지가 하나 있었고 상류에서 폭포수가 콸콸 흘러내렸다. 모두 어린애처럼 홀딱 벗고 물장구를 치며 땀을 씻은 뒤 4짜 붕어를 서로 돌아가며 안아들고 온갖 포즈를 잡으며 신나는 포토타임을 가졌다.  

▶ 정형준씨와(왼쪽) 임국재씨가 고남지에서 낚은 4짜 붕어를 자랑하고 있다.

고남지 인근에 숨은 소류지, 금학지

청정수질을 자랑하는 금학지는 규모는 2천평에 불과하지만 만수 때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이 10m에 육박할 정도로 깎아지른 계곡지다. 제방을 제외한 전 연안에 나무가 우거져 있어 낚시할 자리도 거의 없고 급심이라 갓낚시가 아니고선 붕어를 낚기 어렵다. 그러나 임국재씨의 말에 따르면 월척을 비롯해 씨알 굵은 토종붕어가 제법 들어 있다고 한다. 지금보다 물이 약간 빠지면 낚시여건이 좋아질 것이다. 고남지에서 낚은 월척붕어 4마리도(4짜는 빼고) 이곳에 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