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k Season_원도 러시
가거도 폭풍 원정기
한적할 줄 알고 갔더니 민박집에 방이 모자라!
예년에 비해 잔 씨알 불만, 포인트에 따라 희비 엇갈려
주의보가 해제된 12월 26일 가거도로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직전에 한 차례 호황을 보였다는 소식을 듣고 갔지만 의외로 잔챙이 감성돔만 마릿수로 낚여 실망스러웠다. 다행히 1월에 접어들자 굵은 씨알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 1월 중순 이후면 가거도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전망이다.
ㅣ이영규 기자ㅣ
▲가거도 단골꾼인 군산 김귀식씨(왼쪽)와 목포 정용선씨가 조과를 들고.
지난 12월 26일 새벽 1시, 목포IC 입구에 있는 신안낚시에서 2박3일간 쓸 밑밥과 준비물을 챙기고 다시 1시간 남짓 달려서 진도 서망항으로 이동했다. 서망항에는 우리를 가거도까지 데려다줄 파이넥스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취재에는 서울의 박승규씨와 방문일씨가 동행했다.
원래 두 사람은 한창 대물 소식이 나돌던 태도 출조를 예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소문나서 북적대는 태도보다 한적한 가거도에서 한 방을 노리자”고 펌프질해 가거도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나는 이번 취재가 틀림없는 대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전에 이미 한 차례 감성돔이 쏟아진데다가 주의보가 낀 사리물때 직후 가거도에 입성했기 때문이다. 당분간 날씨까지 좋다는 예보를 접한 터라 자신만만했다.
낚싯배 선실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가거도까지의 뱃길은 험하기로 유명하다. 장장 3시간 동안의 배멀미가 두려워 아예 여객선을 타고 들어가는 꾼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여객선 코스는 단점이 많다. 항해시간이 4시간이나 걸려서 낮 12시에 가거도에 도착하기 때문에 첫날 낚시 시간이 너무 짧다. 반면 낚싯배를 타면 새벽에 가거도에 도착하므로 하루 낚시를 온전히 할 수 있다. 그래서 바쁜 일정을 쪼개서 가거도를 찾는 대다수 꾼들은 낚싯배 출조를 선호한다.
▲방문일씨가 대리취 인근 여에서 감성돔을 노리고 있다.
▲인천피싱클럽 회원들이 지난 1월 초에 3구에서 낚아낸 감성돔들.
의외의 잔챙이 속출 “여기 가거도 맞아?”
가거도 1구에 있는 제일펜션에 짐을 푼 뒤 여유 있게 아침을 챙겨먹고 선착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한적하리라던 예상과 달리 선착장은 낚시꾼들로 북적댔다. 우리 민박집만 만원인 줄 알았더니 한보민박, 미광낚시 등 1구의 민박집마다 꾼들로 가득 찼다. 크리스마스 직전에 터진 떼고기 조황 소식이 전파를 타자 모두 나와 같은 생각으로 가거도로 몰려든 것이다.
각 민박집에 머물던 손님들 수를 헤아리니 대략 150명. 남해안의 다른 포구 같으면 포인트를 선점하고픈 마음에 빨리 출항하려 서두를 것이다. 하지만 가거도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선장들이 합의해 낚싯배들을 A조와 B조로 나눈 뒤 오전 6시 50분과 7시로 나눠 출항하기 때문이다. 출항 순서는 매일 바뀌므로 한 배가 좋은 포인트를 독식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성건여를 돌아 2구 선착장이 우측에 보이는 본섬 포인트인 좁쌀여에 내렸다. 함께 배를 타고 나간 목포의 정용선씨가 “크리스마스 주의보 이후 이 구간(성건여 돌아서)으로의 출조는 오늘이 처음이니 분명 재미를 볼 것”이라고 했다. 지도에서 보듯이 가거도에 북서풍이 강하게 불면 맞바람을 받는 2구 성건여~3구 천장판 구간은 출조가 어렵다. 그런데 이 구간이 최고의 감성돔 포인트다.
물빛이 너무 좋아 조류가 없어도 감성돔이 입질할만한 분위기. 초들물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박승규씨가 첫 캐스팅에 35cm짜리를 끌어낸다. 30분 후에는 방문일씨가 입질을 받아냈는데 47cm가 올라왔다. 가거도 감성돔답게 빵은 5짜에 가까운 녀석이었다.
▲겨울마다 가거도를 찾고 있는 용인 피싱프로 회원들. 궂은 날씨 속에서도 많은 감성돔을 낚아내 부러움을 샀다.
중들물 무렵 내게도 입질이 찾아왔다. 조류가 왼쪽으로 살짝 흐르는가 싶더니 구멍찌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여밭에 목줄이 쓸릴까 싶어 좀 무리해서 당겨내는데 힘이 대단했다. 감성돔이 얼마나 살이 쪘는지 45cm인데 민물의 5짜 떡붕어를 연상케 했다. 이후 조류가 약간씩 움직일 때만 입질을 받아내 3명이 45~47cm 4마리, 35cm급 2마리를 낚았다. 양호한 조과였지만 가거도의 명성에 큰 기대를 걸었던 우리로서는 약간 아쉬움이 남는 결과였다.
그러나 선착장에 도착한 우리는 깜짝 놀랐다. 조류발 좋은 명당에 내린 꾼들은 더 많이 낚았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살림망에는 온통 30cm 중반의 잔챙이 뿐이었다. 요즘 완도에서도 낚기 힘든 씨알이 가거도에서 낚이다니….
덕분에 오늘 횟감은 우리가 내놔야 했다. 잔챙이는 칼을 대봤자 시간만 잡아먹고 양이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큰 놈이라곤 우리가 낚은 게 전부다. 잠시 갈등이 생겼다. 감성돔은 싱싱할 때, 큰 놈 먼저 썰어먹는 게 현명한 길이지만 함께 온 두 사람은 지인들로부터 고기를 부탁받고 온 터라 입장이 난처해진 것. 하지만 지금 모른 척하고 고기를 챙겼다가 일정 내내 ‘쫌생이’들로 낙인찍힐 게 두려워 4마리를 횟감으로 쾌척했다. 원도권 민박집에서는 각자 낚은 고기를 각출해 횟감을 마련하는 법인데 간혹 자기 고기는 안 내놓고 남의 고기로만 회를 즐기는 꾼도 있어 종종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방문일씨와 박승규씨가 접살여 조과를 자랑하고 있다.
겨울 조황은 날씨가 관건
둘째 날에는 북서풍이 너무 강해 성건여 너머로는 아예 가지도 못했고 꾼들은 바람을 피해 안통에 콕콕 박혀있었다.
셋째 날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틀림없이 대박을 맞을 것이라며 박승규씨와 방문일씨를 꼬드겼던 나는 바늘방석이었다. 하지만 가거도의 모든 민박집 손님들이 불황을 겪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가거도로 들어간 기간에 1구에서 같이 움직인 용인 프로피싱 회원들은 의외로 짭짤한 재미를 봤다. 27일에 성건여 부속여인 오리똥여에 올랐던 최중근씨가 50cm급 1마리와 45cm급 2마리 포함 12마리를 낚았고, 신간여와 오간여 사이의 일명 ‘또랑자리’에 내린 문일광 사장과 김장영씨는 52cm 1마리와 45cm급 3마리 등 총 13마리를 낚았다. 날씨가 나빴던 둘째 날에도 오구멍여에서는 9마리의 감성돔이 낚였다. 5짜급이 드물어 아쉬웠을 뿐 마릿수 조과만큼은 탁월했다.
1월 6~8일에는 3구로 들어간 인천피싱크럽 회원들이 대박 조과를 올렸다. 7명이 2박3일 동안 총 67마리를 낚았다. 인천피싱클럽 정창범 사장은 “잦은 주의보 탓에 제대로 된 조황 파악이 어렵다”고 말하면서 1월 들어 45cm 이상급이 많이 섞여 낚이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방문일씨가 접살여에서 감성돔을 낚아내고 있다. 취재일엔 접살여의 씨알이 가장 굵게 낚였다.
1월 중순 접어들면 포인트 편차 사라져
현재 가거도 민박집은 1구와 3구로 양분 돼 있다. 가거도가 초행길인 꾼이라면 1구와 3구 중 어디로 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다. 두 지역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지도에서 보듯이 3구 낚싯배들은 주로 북쪽의 칼바위~동쪽의 일분개 지역으로 출조하며, 1구 낚싯배들은 1구 앞면과 2구 밭면, 성건여 일대 구간을 차지한다고 보면 된다. 물론 1구 낚싯배가 3구로 못 가는 건 아니다. 갈 수는 있지만 특정 포인트 한 곳을 선점하기 위해 무리하다 보면 나머지 좋은 포인트들을 빼앗기므로 각자의 구역(?)을 지키는 것이다.
한편 3구는 낚싯배를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선착장 시설이 없어 철수 후엔 1구에 배를 묶는다. 선장도 1구의 숙소에서 잠을 잔 뒤 이튿날 3구의 민박집으로 이동해 손님을 싣고 포인트로 나간다. 그래서 3구 낚싯배는 1구 낚싯배보다 10분 먼저 출항한다.
포인트가 한적하거나 민박집 손님 모두가 특정 구간으로 출조하자고 결정한다면 1구 낚싯배가 3구로, 3구 낚싯배가 1구나 2구로 출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1년에 몇 번 되지 않는다.
주의보 때는 도보 포인트 많은 3구가 유리
주의보가 내리면 1구와 3구의 낚싯배가 모두 꼼짝 못한다. 이때는 걸어갈 수 있는 포인트가 많은 3구가 유리하다. 얕은 여밭이지만 오히려 파도가 높은 주의보 상황에서 대물이 잘 낚이므로 민박집에서 허송세월할 필요가 없다. 특히 초반에는 얕은 3구권에서 시즌이 먼저 열리고 대물이 여밭으로 몰린다는 점도 장점이다. 단 평소에는 사리를 전후한 물때를 맞춰 찾아야 맑은 물색과 얕은 수심을 극복할 수 있다.
대체로 편안한 낚시를 즐기려면 1구를 선호하고, 힘든 도보낚시도 서슴지 않는 터프한 꾼들이 3구를 선호하는 편이다. 1구 마을에는 매점, 식당 같은 기본적인 편의시설이 갖춰진 반면 3구는 민가만 있는 오지라고 보면 된다. 또 1구에는 최근 만든 올래길도 잘 나 있어 낚시 후 가볍게 산책할 만한 코스도 많다. 가거도는 물가가 매우 비싸므로 소주, 과자, 커피 같은 식품들은 목포에서 미리 사가는 것도 좋다.
▒ 조황 문의 목포 신안낚시 061-282-7041, 전남낚시 010-7279-6254, 1구 제일펜션 061-246-3437, 인천피싱클럽 010-5352-1317, 용인프로피싱 010-5023-4533
▲취재 마지막 날은 북서풍이 강하게 불어 북쪽 포인트로는 올라갈 수 없었다. 바람을 피해 대리취 안통에 내린 낚시인이 감성돔을 끌어내고 있다.
가거도 출조비용은 2박3일에 약 35만원
가거도로 가는 낚싯배는 진도 서망항에서 파이넥스호와 덕원호 등 총 3대가 운항 중이며 새벽 3시에 출항한다. 낚시에 필요한 밑밥과 미끼 등은 주로 목포의 낚시점에서 준비해간다. 현지 민박집에서도 밑밥을 팔고는 있지만 목포에서 준비해갈 때보다 1인당(2박3일 기준) 약 3만원이 더 든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 목포의 낚시점에 미리 주문하면 그날 쓸 밑밥은 미리 개어놓고, 나중에 쓸 밑밥은 팀별로 포장해주므로 편하다.
새벽 6시에 가거도에 도착하면 민박집에 짐을 푼 뒤 아침 식사 후 낚싯배를 탄다. 도시락을 돌리는 오전 10시와 여객선 손님이 들어오는 오후 1시경 포인트를 옮길 수 있다. 철수는 오후 4시 30분이다. 둘째 날도 같은 패턴이지만 마지막 날이 애매하다. 오전 7시에 출조해 10시 30분에 철수하므로 실제 낚시시간은 길어야 3시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일부 낚시인들은 선비도 아낄 겸 마지막 날엔 아예 민박집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데, 먼 가거도까지 와 민박집에만 머무는 것도 아쉽기는 하다. 그래서 대부분 집에 가져갈 횟감을 낚으러 간다는 취지로 출조에 나선다. 마지막 날 출조는 잭팟을 위한 베팅인 셈이다.
진도-가거도 간 낚싯배 왕복 선비는 13만원, 숙식비 1일 3만5천원, 종선비 4만5천원을 합하면 2박3일 낚시에 드는 총 비용은 34만5천원이다. 물론 여기엔 진도까지 가는 교통비는 포함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