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감성돔 시즌 클라이맥스

통영 사량도

감생이 반가워요!

먹방촬영자리의 혈투! “대박은 역시 생자리에서”

이영규 기자

통영 하사량도 북동쪽 해안에 진정한 감성돔 소굴이 있었다. 낚시인들이 평소 찾지 않던 생자리에서 대박을 맞았는데 초가을에 보기 드문 40cm급이 마릿수로 올라왔다.

▲  “가을에 이 정도면 대박 아닙니까?” 이상호씨(왼쪽)와 이정우씨(천류 필드스탭)가 먹방촬영자리에서 낚은 감성돔을 자랑하고 있다.

가을바다의 심벌 감성돔을 취재하기 위해 처음 목적지로 삼았던 곳은 고성 내만 삼산면 앞바다의 개구리섬이었다. 마산의 원더랜드 필드테스터 이상호 프로가 지난 8월 말부터 재미를 보고 있다고 알려준 곳이다. “나 혼자 소문내지 않고 25에서 35센티급을 삼십 마리씩 낚고 있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대단한 조과 아닌가. 
그러나 추석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 상황이 달라졌다. 마릿수는 그대로인데 씨알이 급격히 잘아져 20~25cm급만 올라온다는 것이다. 또 소문이 퍼져 낚시방송팀이 쳐들어와 촬영까지 해갔다는 얘기에 흥미가 싹 가셨다.
‘이 시기에 어딜 가야 감생이 씨알도 좋고 마릿수도 좋은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 이상호씨가 “또 다른 대박 포인트를 찾았다”며 전화를 해왔다. 장소가 어디냐고 묻자 너무 유명하다 못해 식상하기까지 한 사량도란다.
“이 프로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사량도에 무슨 끝내주는 곳이 있다는 겁니까?”
나는 사량도 포인트라야 뻔한 것 아니냐며, 외지등대, 기지밑, 돈지, 벼락바위 중 한 곳 아니겠냐며 아는 체를 했다. 그런 곳은 너무 유명해서 고기가 많이 나와도 기사성이 없다는 되잖은 까탈까지 부렸다. 그러자 이상호씨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아는 선배가 통영 풍화리에서 낚싯배를 하는데 아랫사량도 북동쪽의 무명 포인트에 이틀간 두 번 손님을 집어넣어 두 번 다 대박을 맞았대요. 그 선배는 선장이지만 직접 낚시를 합니다. 믿고 내려와 보세요. 틀림없을 겁니다.”
이상호씨와 내가 안 지는 벌써 15년째다. 15년 전 마산에서 처음 만나 자주 동행취재를 다니다가 연락이 끊겼는데 최근 한국프로낚시연맹에 가입하면서 다시 연락이 닿았다. 낚시실력이 출중한 그는 현재 낚싯대 제조업체 원더랜드의 필드테스터로 활동 중이다.

▲ 이정우씨가 철수 직전 연속으로 입질을 받아내고 있다. 멀리 보이는 하얀 부표가 굴양식장이다.

“전면적 불황”이라는 현지 점주 말에 화들짝!

수원에서 기차를 타고 새벽 1시경 마산에 내려 이상호씨와 함께 통영으로 넘어갔다. 중간에 밑밥을 사기 위해 고성의 한 낚시점에 들렀는데 크릴 값이 그야말로 헐값이었다. 1.5kg짜리 밑밥 1장이 고작 2500원. 경남지방의 낚시점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소위 출혈경쟁 체제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를 갖고 있는 현지 낚시점 중에는 아예 밑밥을 취급하지 않는 곳들도 늘었다. 길목 낚시점과 가격 경쟁도 안 되고 냉동고를 돌리는 전기세도 안 빠지기 때문이란다. 밑밥을 개어주던 주인에게 “요즘 감성돔 좀 나오느냐고 묻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올해는 바다가 미쳤어요. 이놈의 감성돔들이 모두 어디에 숨었는지 모르겠어요. 윗물과 속물의 수온차가 4도 이상 나니 무슨 낚시가 되겠습니까? 하도 고기가 안 나와 어제 거제도 다대까지 내려갔다 왔는데 달랑 두 마리 낚아왔으니 말 다한 거 아닙니까? 또 고등어와 전갱이는 어찌나 많은지…”
내가 이상호씨의 얼굴을 쳐다보자 그런 말엔 신경도 쓰지 말라는 듯 눈을 껌벅거리며 손을 젓는다.
통영시 산양면 풍화리 포구에 도착하니 함께 취재하기로 한 부산의 이정우씨(천류 필드스탭·한국프로낚시연맹 홍보부회장)가 도착해있었다. 낚시점 주인의 고등어, 전갱이 성화 얘기에 두 사람도 좀 불안했는지 컴컴한 갯벌로 내려가 미끼로 쓸 게를 잡기 시작했다. 전반적 조황이 바닥을 기는 지금 고등어, 전갱이까지 설친다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오직 믿을 구석이라고는 선장이 발견해냈다는 그 생자리뿐이었다.

좌) “빵 좋습니다.” 41cm를 낚아낸 이상호씨의 환호. 우) 바다에서 바라본 먹방촬영자리.

‘먹방촬영자리’의 탄생 

이상호씨의 선배인 김동영 선장이 모는 수성레저호를 타고 문제의 하사량도 북동쪽 먹방마을 인근 갯바위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5시. 아직 해가 뜨려면 1시간이나 남았다. 우리가 선 낚시 자리만 앞쪽으로 툭 튀어나왔고 좌우로 직벽이 길게 이어져 있는 형상이다.
내가 “밑밥이나 미리 좀 뿌려두죠”하고 말하니까 김상호씨가 “절대 안 된다”며 만류한다. 고등어, 전갱이가 밑밥 냄새를 맡고 몰려들면 빠져나가지 않으므로 굳이 지금부터 밑밥을 뿌려 포인트를 엉망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동이 트길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카메라! 카메라!”를 외치는 소리에 놀라 깨보니 김상호씨가 첫 감성돔을 끌어내고 있었다. 
‘옳거니 됐다! 아침부터 입질이 들어오니 몇 마리는 충분히 뽑겠구나!’ 시계는 오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5분 뒤 이상호씨가 30cm급 감성돔을 한 마리 더 뽑아내더니 그 뒤로 30분간 무소식이다. 그 사이에 ‘나도 손맛 좀 봐야지’하는 생각으로 1호찌를 세팅했는데 수심이 제법 나온다. 이상호씨에게 “몇 미터를 줬냐”고 물으니 “13m를 줬다”고 한다. 지금은 만조에 가까워 조류가 완만히 흐르지만 이제 곧 썰물이 받치면 1호찌로는 벅찰 것 같아 1.5호찌로 바꿨다.
8시가 되자 예상대로 조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썰물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조류는 여전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렀다. 나중에 들은 선장 말로는 이곳은 원래 만조 전후가 되면 들물도 썰물 방향으로 흐른다고 한다. 조류가 빨라지자 처음 섰던 자리보다 우측의 돌아가는 곶부리가 유리할 것 같아 이정우씨가 그쪽으로 옮겨갔다. 나도 그를 따라 이동했다. 그런데 웬걸, 우측 수심은 고작 5m밖에 안 됐다. 알고 보니 처음 섰던 자리에서 우측으로 갈수록 바닥 지형이 융기돼 있었다. 선장이 전화를 걸어와 “융기가 시작되는 지점부터 난바다 쪽으로 인공어초가 길게 뻗어있는데 그 인공어초 앞에서 감성돔이 입질한다”고 알려왔다. 어쩐지 그쪽만 가면 밑걸림이 생기더라니….
“왔어요! 빨리 이쪽으로 건너오세요!” 
오전 9시경 이상호씨가 또 한 마리 걸어내며 외쳤다. 나는 서둘러 낚싯대를 들고 이상호씨 자리로 옮겨 갔고 이정우씨만 계속 그 자리를 고수했다. 사실 나만 아니면 그가 올라설 자리였는데 “모처럼 서울에서 내려왔으니 손맛 실컷 보라”며 나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이상호씨가 연속으로 4마리를 걸어낸 뒤 나도 한 마리 걸었는데 씨알이 35cm다. 이맘때 씨알치고는 준수한 녀석이다. 이상호씨가 낚은 것은 37cm나 됐다. “이 기자님 요즘 어디 가서 이런 씨알 낚겠습니까? 오늘 우리 제대로 온 것 같습니다.” 이상호씨는 신이 나 있었다. 우리의 파이팅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김동영 선장이 “오늘 열 마리 이상 못 낚으면 배 안 태워준다”며 이상호씨를 압박했다. 이런 식으로 다문다문 낚다보니 오전 11시까지 총 9마리를 낚았다. 가장 큰 놈은 41cm였고 나머지는 33~36cm였다. 

삼덕리 궁항포구에 있는 ‘바다와 시인’ 펜션. 맛깔난 식사를 즐기며 (좌측) 숙박도 겸할 수 있다.

천류 이정우 프로, 철수 1시간 전 맹활약

앞으로 철수까지는 1시간 정도 남았기에 나는 마무리 사진을 찍기 위해 낚싯대를 접었다. 그제야 이정우씨가 내가 있던 자리로 올라왔다. 그동안 이정우씨는 32cm 1마리를 낚아놓고 있었는데 내가 하던 자리로 오자마자 실력 발휘를 시작했다. 첫 캐스팅에 이날 최대어인 43cm를 끌어내더니만 30cm 후반급만 연속 3마리를 뽑아냈다. 이날 우리가 낚은 감성돔은 총 14마리. 이렇게 펄펄 나는 그를 일찌감치 내 자리에 세웠다면 20마리도 넘게 낚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 환상적인 포인트를 ‘먹방촬영자리’라 이름 붙였다.

 철수길에 살펴보니 먹방촬영자리에서 우측으로 200m 가량 떨어진 곶부리에 내린 마산낚시인 3명도 감성돔을 7마리나 낚았고 그중 가장 큰 놈은 45cm에 육박했다. 김동영 선장은 마산꾼들이 내린 자리에도 어초가 빠져있다고 해서 ‘어초자리’로 불렀다. 이날 사량도의 유명 포인트가 밀집한 남서쪽 갯바위에선 대부분 낱마리 조황에 머물렀다고 한다.
나는 이 자리를 낚시춘추 11월호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비밀로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마산꾼들이 우리 조과를 목격한 터라 비밀 유지는 불가능할 듯 보였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적(?)은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모처럼의 호황에 신이 난 이상호씨와 이정우씨가 핸드폰으로 찍은 조황 사진을 여기저기로 전송하기 시작했다. 사진 밑에는 “낚시춘추 취재 중, 왕대박 4짜 대폭발, 장소는 비밀임, 나중에 알려주겠음”이란 문구를 적어 발송했는데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마산에 돌아와 보니 이미 부산, 경남에는 소문이 다 퍼진 듯 했다.    
▒ 조황 문의 풍화리 수성레저호 김동영 선장 010-4580-1500

먹방촬영자리 대박의 비밀

갯바위 앞 굴양식장 주인의 하소연에서 힌트

먹방촬영자리는 그림에서 보듯 하사량도 북동쪽 연안 중심에 있는 무명 갯바위로 바로 옆에 소두방여라는 간출여가 있다. 하사량도 북동쪽 연안은 원래 9월 초순경 감성돔이 잠깐 머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북동쪽 연안 중심은 먹방촬영자리와 어초자리, 돌무너진자리, 도로 옆 석축자리 정도를 빼면 나머지 구간은 얕고 완만한 경사를 갖고 있어 낚시여건이 좋지 않다. 그래서 사량도를 찾는 낚시인들은 수심이 깊고 발판이 좋은 서남쪽 갯바위를 선호한다. 그러나 이번 취재로 그런 인식은 오류로 밝혀졌다. 
“지난 9월 내내 사량도 곳곳에 손님을 넣어봤지만 초반에 반짝하곤 별 재미가 없었어요. 그때 먹방촬영자리 앞에 있는 굴양식장 주인이 찾아와 말하더군요. 굴이 뭔가에 계속 따먹혀서 다이버를 넣어봤더니 양식장 밑에 감성돔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감성돔이 굴을 너무 많이 따먹는 바람에 올해 굴 농사 망치겠다며 얼른 와서 잡아가라는 겁니다.”
김동영 선장은 처음엔 푸념 섞인 농담으로 들었다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직접 먹방촬영자리로 들어가 낚시를 해봤고 오전에만 35cm가 넘는 감성돔을 4마리 낚았다. 다음날엔 단골 손님 2명을 마산에서 불러내려 포인트에 재투입해 35~40cm급으로 9마리를 낚았다. 우리가 들어간 게 세 번째였다.   
“감성돔이 안 낚일 땐 낚시꾼이 찾아나설 수 밖에 없어요. 가장 유력한 곳이 평소 꾼들이 별 볼일 없는 곳으로 여겼던 생자리입니다. 다른 유명 섬에도 제2, 제3의 먹방촬영자리가 있을 겁니다. 그런 곳을 찾아내 대박을 맞았을 때 나는 가장 기분이 좋더군요.” 원더랜드 필드테스터 이상호씨의 말이다.

취재 이후 상황

조금물때 접어들자 호황 주춤, 잡어 극복용 미끼 준비해야

우리가 취재한 이튿날 한국프로낚시연맹 조장래 회장 일행이 소문을 듣고 사량도로 들어갔다. 조 회장이 도로변 석축자리 자리에서 9마리, 먹방촬영자리에 내린 이상호씨가 10마리, 등대밑에 내린 마산낚시인이 2마리 등 모두 20마리가 넘는 감성돔이 낚였다. 이 중 40cm 이상이 7마리였다. 그 다음날에도 소문을 듣고 온 낚시인들이 비슷한 마리수를 기록하는 등 호황은 나흘 이상 계속됐다.
그러나 점차 조금물때로 접어들자 씨알과 마릿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또 취재 때는 없었던 고등어와 전갱이까지 몰려들기 시작했다. 꾼들이 매일 와서 밑밥을 뿌리자 먼 바다에 있던 잡어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삼치까지 설치고 있는데 맥도 못 추고 목줄이 싹뚝 잘리는 경우는 대부분 삼치의 소행이다. 김동영 선장은 “사리물때가 돌아오면 다시 감성돔의 연안 접근이 활발해질 것”이라면서 잡어 성화에 대비해 게나 경단 같은 미끼를 반드시 준비할 것을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