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이 되자 규조류가 증식하여 연한 녹색을 띠는 한강.(2024년 2월 24일 사진 김범철)
추위가 물러가고 봄볕이 느껴지니 한강 물빛이 변했다. 연한 갈색이 곁들여진 녹색이다. ‘아 정수장에 봄의 불청객 규조류가 나타났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
얼음이 녹고 봄을 맞이하면 호수에서는 물이 혼탁해지고 황록색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플랑크톤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빛이 부족해 플랑크톤이 살기 어렵지만 봄이 되면 일사량이 증가하여 표층수가 따뜻해지고 수면에 머무는 성층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면 플랑크톤도 심층에 들어가지 않고 표수층에 머물면서 빛을 많이 받아 성장에 좋은 조건이 된다. 이때 주로 출현하는 플랑크톤이 규조류다. 식물플랑크톤에는 규조류, 녹조류, 남조류 등 여러 종류가 있는데 봄에 출현하는 종은 대부분 규조류다. 규조류는 호수에도 많이 살지만 하천 바닥 돌표면과 해양에서도 가장 많은 우점종이다.
봄에 출현하는 식물플랑크톤은 대부분 규조류
규조류가 이렇게 우점하는 이유는 생리적으로 유리한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특이한 것이 껍질의 성분이다. 모든 생물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포벽이라고 부르는 껍질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셀룰로스라는 탄수화물로 껍질을 만든다. 그런데 규조류는 특이하게 이산화규소(SiO2)라는 실리카 성분으로 껍질을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규조류가 지구상 가장 번성한 플랑크톤이 된 요인 중 하나다.
탄수화물로 껍질을 만들려면 이산화탄소를 포도당으로 만들고 이를 재료로 셀룰로스를 만들어 사용한다. 지구상의 모든 유기물은 환원된 탄소를 기본 골격으로 만들어졌다. 탄소를 결합하면 직선, 나선형, 구형 등 다양한 구조의 분자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생명현상이 가능해지며, 지구의 생물은 탄소 기반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무기물인 이산화탄소를 유기물로 환원하려면 광합성으로 얻은 에너지가 많이 소요된다. 그러나 이산화규소는 환원 과정 없이 무기물인 상태로 껍질을 만들 수 있어 탄소를 이용한 구조에 비해 에너지가 적게 들어 생태학적으로 유리하다.
규소는 석영의 주성분으로서 암석 중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 지각을 구성하는 원소 가운데 산소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은 원소다. 이산화규소는 흔히 실리카라고 알려진 물질이며 유리의 주성분으로 암석에서 소량씩 물에 녹아 나온다. 암석의 풍화작용 중 하나인 것이다. 규조류는 물속에 녹아 있는 이 실리카 성분을 모아서 껍질을 만들 수 있다. 실리카로 만든 껍질은 에너지 소요량이 적으면서도 단단하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이다. 건축자재로 비유하자면 값싸면서 튼튼한 철골재료인 셈이다. 그 결과 규조류는 세계의 모든 바다와 호수에서 우점하는 플랑크톤이 되었다.
규조류가 악취 유발 원인
그런데 극복해야 할 문제점도 있었다. 유리로 만든 껍질이다 보니 외부와 물질교환이 어려운데 이 문제를 껍질에 작은 구멍을 많이 뚫어 해결했다. 규조류의 표면에는 아름다운 줄무늬가 보이며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해 보면 구멍들이 줄지어 있다. 이 구멍으로 세포 내외의 물질교환이 이루어진다.
또 다른 문제점은 껍질이 너무 단단하여 한 번 만들면 모양을 키우거나 변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규조류 껍질은 두 개가 포개진 상자 모양이다. 세포가 분열할 때는 각각 한 쪽의 껍질을 가지고 가서 재사용하고 그 안쪽에 새 껍질을 생성하여 완성한다. 계속 안쪽에 새 껍질을 만들기 때문에 분열을 거듭할수록 크기가 작아진다. 그러다가 한계에 이르면 껍질을 벗어 버리고 온전히 새 껍질을 만든다.
또 다른 문제점은 물속에 녹아 있는 실리카의 양이 매우 적으니 규조류가 번성하고 나면 물속의 실리카가 고갈되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리카는 토양에 많지만 녹는 속도가 매우 느려서 호수 내에서 추가 공급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남조류, 녹조류 등 셀룰로스로 껍질을 만드는 종류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여름에 남조류가 녹조현상을 일으키는 이유이다.
어쨌든 규조류는 광합성 생물로서 동물플랑크톤의 먹이가 되는 생태학적으로는 중요한 구성원인데 왜 정수장에서는 불청객일까? 수돗물 냄새와 정수 장애 때문이다. 남조류보다는 덜하지만 규조류도 비린내와 곰팡이 냄새 등을 생성한다. 유해하지는 않지만 불쾌하다. 그래서 정수장에서는 규조류가 번성하여 냄새가 발생하면 활성탄 숯가루를 많이 쓰기 때문에 정수비용이 증가한다.
게다가 어떤 규조류는 침전이 잘 안되어 여과지가 잘 막히는 피해도 일으킨다. 정수장은 침전지와 여과지로 구성되어 있다. 취수한 물에 우선 응집제를 넣어 부유 물질들을 큰 입자로 만들어 침강시키며 이 공정에서 부유토사와 플랑크톤 세포가 제거된다. 그 다음 모래여과지를 통과시켜 소량 남은 부유물을 제거한다. 그런데 어떤 플랑크톤은 침전지에서 잘 제거되지 않고 여과지로 넘어가 모래 위에 쌓여 여과지가 막히게 한다. 그러면 모래를 자주 세척해 주어야 하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증가한다.
규조류 껍질이 규조토 형성
이러한 정수장애로 악명 높은 규조류가 ‘시네드라’라는 종이며 모양이 바늘처럼 생겼다. 마치 석면 섬유를 보는 듯하여 사람이 마시면 몸에 박힐 것 같아 섬뜩하다. 동물플랑크톤도 잡아먹기 어려울 것 같다. 이런 모양의 규조류는 응집제 플록(물속의 현탁물질이나 유기물, 미생물 등의 미립자를 응집제로 응집시킨 큰 덩어리)에서도 삐져나와 침전지에서 제거되지 않고 여과지로 넘어가 막힘을 유발한다. 정수를 잘못하면 모래여과지마저 통과하여 수돗물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규조류는 매년 봄마다 팔당호와 한강에서 번성하는 불청객인데, 얼마 전 한강 물이 녹색으로 변하기에 현미경으로 조사해 보니 올해도 시네드라가 우점종으로 출현하고 있었다. 정수장에서 신경이 많이 쓰이겠다는 우려가 앞선다.
한편 규조류의 세포가 죽은 후 분해가 덜된 껍질은 해저에 쌓여 규조토를 만든다. 현미경으로 보면 구멍이 많은 다공성 구조를 가지고 있어 실리카겔처럼 흡수제로 쓰이고, 냄새를 흡착하거나 오염물을 여과하는 데에도 쓰이며, 화장품에도 쓰인다. 벌레의 몸에 묻으면 수분을 차단하고 기공을 막아 천연살충제로 쓰이기도 하니 쓸모가 많은 물질이다. 규조류는 죽어서 껍질을 남긴다.

다양한 모양의 규조류.(사진 Wikipedia)

봄에 호수에서 흔히 출현하는 별모양 규조류, 아스테리오넬라. 2024년 2월 24일 한강 잠실.(사진 최혜정)

한강에서 봄에 번성해 정수장애를 일으키는 바늘 모양의 규조류, 시네드라(Synedra). 2024년 2월 24일 한강 잠실.(사진 최혜정)

규조류의 껍질이 해저에 침강하여 만들어진 규조토의 전자현미경 사진.
구멍이 많은 다공성 구조로 유용한 물질이다.(사진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