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푸른 생선을 제외하면 넙치농어는 대한민국 연안에서 낚을 수 있는 어종 중 가장 크고 힘이 센 물고기다. 특히 겨울이 되면 그 진가를 발휘해 포말이 넓게 형성되는 얕은 곳으로 들어와 베이트피시를 사냥하며 낚시인을 혼비백산하게 만든다. 지금껏 제주도 현지인들 조차 신출귀몰한 존재로 여기고 있는 넙치농어를 올해 겨울에는 꼭 낚아보자.

파도는 농어를 부른다. 그리고 넙치농어는 파도가 부서져 만들어낸 포말 아래로 더욱 깊숙이 숨어든다. 그래서 넙치농어는 멀리 노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넙치

서귀포 보목동에 있는 해농수산 앞 갯바위에서 넙치농어를 노리고 있는 이택근 대표. 넙치농어는 포말이 넓게 이는 얕은 곳으로 숨어들어 베이트피시를 사냥한다.

강정포구 옆 갯바위에 도착한 취재팀이 높은 파도에도 불구하고 포인트로 진입하고 있다.

넙치농어는 농어루어 마니아라면 한 번은 낚아보고 싶어 하는 어종이다. 등푸른 생선을 제외하면 넙치농어야 말로 연안 어종 중 가장 크고 파이팅 넘치는 손맛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넙치농어 루어낚시는 2000년대 후반, 일본 낚시인들에 의해 하나의 장르로 대중화했으며 낚이는 곳이 제주도 남부 그리고 일본 서남부에 국한된다. 그래서 일부 매니아들은 일본 원정낚시도 마다하지 않는 최고의 갯바위 루어 대상어로 자리 잡고 있다.

넙치농어낚시가 매력 있는 점은 제주도 현지 농어루어 마니아조차 1년에 몇 마리 낚기 힘들 정도로 난이도가 높다는 것이 다.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낚시이기에 한 마리의 가치가 더욱

국내에서는 넙치농어낚시가 빠르게 확산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제주 현지 낚시인들이 넙치농어 포인트 공개를 꺼려했기 때문이다. 육지 낚시인은 물론 제주 현지 낚시인들끼리도 극히 가까운 사이가 아닌 이상 포인트를 공유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넙치농어를 낚기 위해 제주도로 출조한 낚시인들은 대부분 제주도 부속섬으로 출조했다.

초기에는 접근성이 좋은 가파도가 인기 높았고 그 뒤로 마라도, 우도, 차귀도, 지귀도로 출조가 이어졌다. 부속섬이 가진 장점이라면 제주 현지인들이 잘 찾지 않아 낚시할 자리가 많고 넙치농어를 노릴 생자리도 많다는 것. 그리고 본섬에서 먼 부속섬으로 가면 넙치농어가 더 많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기대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부속섬의 인기는 금방 수그러들었다. 넙치농어가 낚일 만한 거친 날에는 부속섬으로 가는 낚싯배가 뜨지 않는 게 문제였고, 반대로 부속섬으로 출조가 가능한 날은 날씨가 너무 좋아 넙치농어낚시에 알맞은 여건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날씨가 좋은 날 부속섬으로 들어가 날씨가 나빠지길 기다리는 것도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일부 제주 현지 전문가들은 낚시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바람이 부는 날 본섬에서 넙치농어를 꾸준히 낚아내면서 부속섬 일변도의 출조 패턴에도 변화가 왔다. 그 결과 현재는 육지에서 날아오는 원정 낚시인들도 부속섬보다는 본섬을 공략하는 게 훨씬 낫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넙치농어 포인트로 가장 핫한 본섬 포인트는 제주도 서쪽의 영락리, 제주도 남쪽의 대정읍, 남원읍 일대로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넙치농어가 꾸준한 조황을 보인다.

지난 12월 15일, 일산 루어테크 이택근 대표, 팀루어테크 양범석 회원과 제주행 첫 비행기를 타고 넙치농어 취재에 나섰다. 원래 계획은 제주도 동쪽에 있는 성산읍 일대에서 넙치농어를 노리는 것이었으나 북서풍이 너무 강하게 불어 포인트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언뜻 북서풍이 불면 동쪽은 바람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제주도 동쪽은 서쪽에 비해 지대가 낮다. 그래서 북서풍일 때는 갯바위 쪽에서 바다 쪽으로 바람이 불기 때문에 파도가 형성되지 않는다. 더구나 뒷바람이 너무 강하면 합사가 날려 캐스팅하기도 힘들고 기온과 수온까지 급히 떨어져 조과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서귀포 대정읍 사계리에 숙소를 잡은 후 오전 10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제주 낚시인 정의권 씨와 합류, 가장 먼저 서귀포시 강정동에 있는 선녀코지를 찾았다. 선녀코지는 제주도 남서쪽에 있는 터라 북서풍 영향으로 아주 높은 파도가 일고 있었다. 보통 낚시인이 볼 때는 도저히 낚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점찍은 자리로 가보니 이미 낚시인 1명이 들어가 넙치농어를 노리고 있었다. 우리는 차선으로 선녀코지와 이어진 갯바위로 진입했다. 사실 사위가 밝은 낮에는 넙치농어 입질을 받기가 쉽지 않지만 오늘처럼 파도가 높게 이는 날은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아울러 수면을 때리는 강렬한 입질과 넙치농어의 바늘털이를 직접 목격할 수 있어 밤보다는 확률이 다소 낮아도 낮낚시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이택근, 양범석 씨도 그런 유형의 낚시인들이다.

낮에 넙치농어를 노릴 때는 바람, 파도, 지형을 잘 파악해야 한다. 제주도는 풍향에 따라 수온 변화가 일어나며 대상어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대체적으로 서풍이 불면 수온이 떨어져 조황이 나쁘고 동풍이나 남풍 계열에 수온이 오르면 좋은 조건으로 여긴다. 그래서 북서풍이 강하게 부는 취재 당일은 파도만 높았지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 갯바위나 수중여에 파도가 부딪혀 포말이 형성되는 자리를 찾는 게 급선무다. 포말 아래로 예민한 넙치농어의 은신처가 생겨 연안 가까이에서 먹이활동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발밑 지형을 파악해 넙치농어를 어디로 끌어낼 것인지를 확인하면 랜딩 확률을 더욱 높일 수 있다.

이택근, 양범석 씨는 썰물에 갯바위가 드러난 곳을 찾아 포인트를 잡았고 캐스팅 후 릴링이 이어졌다. 그런데 일반적인 농어낚시처럼 원투하지 않고 가까운 간출여 주변을 주로 공략했다. 이택근 씨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넙치농어는 콧부리 지형이나 수중여를 따라 이동하므로 미노우 역시 그 주변을 지나가게 해야 합니다. 콧부리와 수중여 위에 미노우를 던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밑걸림으로 인해 손실이 생기지만 감안해야 합니다. 멀리 던지는 것보다 가까운 곳을 정확하게, 스팟을 노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낮에는 전혀 입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파도는 조금 낮겠지만 수온이 많이 떨어지지 않은 남원으로 포인트를 이동했다.

남원 큰엉해안경승지 일대에 도착하니 파도가 너무 낮았다. 도저히 입질을 기대할 수 없어 다시 주변 포인트를 탐색했다. 서귀포 검은여, 구두미포구, 보목포구를 지나 광어 양식장이 있는 갯바위 앞으로 진입했다. 정의권 씨는 “파도가 높지 않지만 조류가 잘 흐르고 곧 들물이 시작해 입질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곧 해가 질 시간이라 큰 넙치농어가 입질할 수 있어 장비를 다시 점검했다. 넙치농어 전용대에 3000~4000 스피닝릴을 세팅하고 합사 2호에 쇼크리더 25lb를 묶었다. 낮에 사용하던 장비와 스펙이 같지만 쇼크리더만 더 굵은 것으로 교체했다.

미노우는 밑걸림을 잘 피할 수 있는 소형 싱킹 펜슬베이트로 교체했으며 이택근 씨는 평소 즐겨 사용하는 버클리 5인치 뮬렛 웜채비도 준비했다. 넙치농어가 미노우에 잘 반응하지 않으면 웜채비로 교체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전과 마찬가지로 해가 진 직후까지도 전혀 입질이 없었다. 모두 흩어져 열심히 낚시하던 중 드디어 이택근 씨가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지만 파도 소리에 이택근 씨의 외침이 묻혀 처음에는 무슨 상황인지 짐작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두운 갯바위를 따라 이동해보니 이택근 씨가 커다란 농어를 겨우겨우 갯바위로 올리고 있었다. 허리가 높게 솟은 대형 넙치농어였다. 이택근 씨는 미노우에 입질이 없어 웜채비로 교체했다가 곧바로 입질을 받았다고 말했다. 발판이 높고 넙치농어가 커서 안전한 곳으로 올리기까지 2~3분이 걸렸다고 했는데 플래시를 비추니 넙치농어 특유의 거대한 몸체가 은빛을 내뿜었다.

이택근 씨가 빠진 자리를 양범석 씨와 정의권 씨가 들어가 공략했으나 더 이상은 입질이 이어지지 않았다. 아쉽게도 단 한 마리로 상황은 끝이었다.

가로등이 있는 연안으로 나가 이택근 씨가 낚은 넙치농어 길이를 재니 86cm가 나왔다. 86cm 농어라면 크지 않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넙치농어 국내 기록이 100cm인 것을 감안하면 보기 쉽지 않은 대물이었다. 또한 넙치농어는 허리가 높게 솟은 곱사등이처럼 생

점심과 저녁식사도 거른 채 하루 종일 고단한 캐스팅게임을 이어간 취재팀은 숙소로 돌아가 저녁을 먹은 후 골아 떨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곧바로 장비를 챙겨 대정읍 신도리로 향했다. 취재 이튿날엔 더 강한 북서풍이 불었는데, 이튿날 역시 낮에는 입질을 받을 수 없었고 밤이 되서야 농어, 넙치농어, 참돔을 낚을 수 있었다.

제주의 넙치농어 시즌은 이제 본격 궤도에 올랐다. 겨울이 시즌인 넙치농어는 1~2월에는 밤에 큰 씨알이 낚이고 3월부터 5월까지는 산란에 임박한 혹은 산란을 마친 큰 씨알이 밤과 낮에 모두 잘 낚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