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철 고수온으로 육상식물이 무성하게 자란 대형 호수. 이렇게 자란 육상식물이 물에 잠기면 이듬해 봄까지 썩지 않고 남게 된다.

겨울로 접어들면 여름, 가을 동안 빼곡하게 수면을 덮어버린 수생식물이 하나둘씩 죽어서 없어진다. 그렇게 저수지, 하천은 대부분 수면적이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수생식물이 없어지거나 애초부터 없는 장소에서는 과연 어떤 것들이 수생식물을 대체할까? 그것은 바로 육상식물이다. 이번 호에서는 육상식물이 수생식물을 대체하는 과정에 관해서 설명해보려 한다.

수생식물의 사멸

수생식물이 죽어 없어지는 대표적인 이유는 자연스레 식물의 수명이 다한 것 그리고 환경변화 때문에 갑자기 죽어 없어지는 것 이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수생식물은 대부분 일년생이기 때문에 가을을 넘어 겨울로 가게 되면 자연스레 수명을 다하고 죽어 없어진다. 하지만 일년생인 수생식물의 경우도 급격한 환경변화 때문에 제 수명을 다 누리지 못하고 먼저 죽어버리는 예도 있다. 홍수나 태풍으로 수위가 급격히 불어나거나 가뭄으로 물이 완전히 빠져버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수생식물의 급격한 죽음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시기는 겨울(자연스러운 사멸), 그리고 여름(홍수, 가뭄, 태풍으로 인한 급격한 수위 변화)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시기는 수생식물이 다른 계절에 비해 적다고 할 수 있다. 

대형 호수 내 육상식물의 가입

하지만 애초부터 수생식물이 없는 곳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형 호수다. 다목적 용도로 인해 만들어진 댐 또는 대형 인공호수는 수생식물이 거의 자라지 못한다. 특히 춘천호, 의암호, 청평호 등 강을 막아 만든 호수뿐만 아니라 기존에 수계가 없던 지역이나 매우 거대하게 만들어져 발전 방류 및 수위 조절이 수시로 이루어지는 소양호, 충주호, 대청호, 안동호 등 대형 호수의 경우가 더욱 그렇다.

오랜 시기에 걸쳐 만들어진 자연호수는 침식과 퇴적 때문에 자연스레 수심이 얕아지고 이탄층(부패와 분해가 완전히 되지 않은 식물의 유해가 진흙과 함께 늪이나 저수지의 물 밑에 퇴적한 지층)을 비롯한 수생식물이 자랄 수 있는 여건이 잘 형성이 되지만 인공호수의 경우 생성된 지 몇 십 년, 몇 백 년에 불과하여 수생식물이 자랄 수 있는 여건이 거의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수위 조절로 인해 물 빠짐이 흔한 것도 수생식물이 자랄 수 없는 요건 중 하나다. 

▲ 여름철 장마로 인해 고수위를 보이는 대형 호수.

대형 호수에서 수생식물이 살 수 없는 이유

앞에서 말한 대로 대형 호수는 수생식물이 적절히 살 수 있는 저질이 형성되지 않았기에 수생식물이 생육하기 매우 불리하다. 또한 깊은 평균 수심도 수생식물이 살 수 없는 주된 이유가 된다. 대부분 예전 산이나 계곡이었던 부분이 물에 잠기게 되고 급경사지가 많으며 다른 곳보다 평균 수심도 깊으니 물속으로 투과되는 빛의 양도 줄어든다. 수생식물도 빛이 있어야 광합성을 해서 살아가는데 빛이 어느 정도 들어오는 지역은 경사가 매우 심하고 저질이 안정되지 못해 살아가지 못하고 또 경사가 안정된 지역은 빛이 적절히 투과하지 못해 수생식물이 생육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급격한 수위의 오르내림, 빛의 투과, 깊은 수심, 안정된 저질의 미형성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혀 대형 호수에서는 수생식물이 자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대형 호수가 몇 개월간 안정된 수위를 유지하고 얕은 곳에 토사가 적절히 쌓여 빛이 잘 투과된다면 수생식물이 자랄 수 있을까? 물론이다. 공사나 기타 다른 이유로 인해 방류를 오랫동안 거의 하지 않거나 방류량이 적어 수위가 유지된 대형 호수에서는 얕은 곳을 위주로 수생식물이 생육한다. 하지만 대부분 방류를 하기 때문에 자라지 못하는 것이다. 

물속에 잠긴 육상식물의 축복

이러한 대형 호수는 가을을 거쳐 이듬해 봄까지 물을 가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자연 증발로 인해 아주 천천히 수위가 내려가다가 봄철 농번기 때 물이 가장 많이 빠지고 장마가 오기 전에 최저수위를 찍는 경우가 많다. 이때 물이 빠진 지역에 육상식물이 가입하게 된다. 물이 빠져 아무것도 없는 나지, 또는 마사토면 등 척박한 곳에 주로 가입하는 식물들이 처음으로 자라게 된다. 이러한 식물은 주변의 식생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 망초, 달맞이꽃, 뚝새풀, 도꼬마리, 별꽃아재비 등 천이(일정한 지역의 식물 군락이나 군락을 구성하고 있는 종들이 시간의 추이에 따라 변천해 가는 현상)의 초기에 가입하는 식물이나 외래식물들이 많다. 

이러한 식물들은 주로 봄부터 낮아진 수위로 인해 드러난 땅에 가입하여 장마가 오기 전까지 빠르고 무성하게 번성한다. 그러다 장마, 홍수, 태풍으로 수위가 급격하게 불어나면 물속에 다시 잠기게 된다. 이때가 흔히 말하는 새물오름 찬스. 이렇게 잠긴 육상식물은 물속에 잠겨있는 시간 동안 대형호수의 생태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 장마가 오기 전 최저 수위를 보이는 대형 호수. 연안 능선 나지에 파란 육상식물이 보인다. 장마 때 식물이 잠기면 오름수위가 시작되며 육상식물이 수생식물의 역할을 대신한다.

물에 잠긴 육상식물은 훌륭한 산란터 

주로 알을 부착해서 낳는 수많은 어류가 이 육상식물이 잠기자마자 바로 산란하기 시작하고 수많은 물고기가 물에 잠긴 육상식물 사이로 들어와 은신과 먹이활동을 하게 된다. 

대형 호수에 서식하는 물고기들은 같은 종이라 할지라도 산란 기간이 일반 강계나 저수지와 다른 경우가 많은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알을 부착할만한 수생식물이 없기에 육상식물이 오름수위에 의해 잠기기를 기다리다가 장마로 수위가 오르면 때맞춰 대규모로 산란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형 댐이나 대형 호수에는 일부러 물고기의 일정한 산란을 유도하기 위해 인공산란장을 만들어 배치해두기도 한다. 

갑작스런 오름수위로 인해 물에 잠겨 호흡을 못 한 육상식물은 대부분 죽어버리고 미생물에 의해 분해가 되지만 평소 수생식물이 없던 대형 호수의 어류들은 육상식물이 잠겨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평소 느끼지 못했던 가짜(?) 수생식물을 제대로 만끽하는 시간을 가진다.

▲ 겨울 내내 물에 잠겨 있는 육상식물.

겨울, 물속에 남은 육상식물을 공략하라

대부분 장마, 홍수, 태풍으로 물에 잠긴 육상식물은 두 달쯤 지나면 대부분 삭아버린다. 이때 표층 수온은 30°C 내외기 때문에 미생물의 활성도 매우 높아 물에 잠겨 죽어버린 육상식물은 빠르게 삭아버린다. 하지만 최근 들어 빈도가 높아진 가을장마나 추석 전후로 도래한 가을 태풍으로 인해 물에 잠긴 육상식물은 빠르게 삭지 못한다. 수온이 여름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떨어지고 그에 따라 사체를 분해하는 미생물의 활성도가 더뎌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겨울의 초입에도 아직 이파리가 남아있는 경우가 많으며 억센 줄기 역시 그대로다. 이렇게 대충(?) 삭은 육상식물은 그 줄기와 이파리를 그대로 남긴 채 겨울을 나게 되고 이듬해 봄까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늦가을부터 겨울, 이른 봄까지 가장 좋은 포인트가 되는 것이 바로 육상식물의 사체다. 특히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 수수깡 대처럼 ‘1자’로 남아있는 육상식물의 줄기는 겨우내 얕은 곳에서 물고기들이 머무를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며 봄철 산란에도 영향을 미친다. 

▲ 지난해 가을 고수위로 인해 이듬해 봄까지 남아있는 안동호 육상식물 사체. 수많은 물고기의 겨울철 보금자리가 된다.

▲ 겨울에 썩지 않고 잠겨 있는 육상식물이 미노우의 바늘에 걸려 끌려온다.

육상식물이 수생식물과 다른 점

육상식물이 수생식물과 다른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낚시에 가장 이용되는 측면을 보자면 뭐니 뭐니 해도 강력하고 단단한 줄기 그리고 잎이라 하겠다. 통기 조직이 발달된 유연한 줄기와는 반대로 세포벽에 많이 있는 셀룰로오스가 줄기의 지지역할을 한다. 즉 식물체를 곧게 서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죽어서 삭더라도 잘 분해가 되지 않아 오랫동안 물속에서 수수깡처럼 남아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잎 역시 육상식물은 수생식물에 비해 큐티클층(생물의 체표 세포에서 분비하여 생긴 딱딱한 층)이 있기에 빨리 삭아 없어지지 않으며 물속에서 오랫동안 남아 은신처의 역할을 하게 된다. 

▲ 봄에 물에 잠긴 육상식물을 공략해 빅배스를 낚은 필자. 배경을 보면 물에 잠긴 육상식물이 보인다.

▲ 수로 연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에 감긴 육상식물. 줄풀, 갈대와 같은 수초도 있지만 망초, 달맞이꽃, 뚝새풀, 도꼬마리와 같은 육상식물도 함께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