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학섬유가 일반화되기 이전, 영국 및 미국의 최고급 실크 낚싯줄. 일본산 수입 원료를 사용했다고 표시되어 있다. (맨 왼쪽 듀퐁 나일론 합사 제외, 시대가 다른 제품)

현대 낚시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낚싯줄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나일론, 플로로카본, PE(폴리에틸렌) 이렇게 3가지 성분의 낚싯줄이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한 듯 사용하고 있는 낚싯줄이건만, 릴이나 로드와 달리 그 역사가 깊지 않다. 우리 낚시인들이 화학섬유로 만든 낚싯줄을 사용하게 된 것은 불과 70여 년 전으로 낚싯줄이야말로 인류 역사상의 최신발명품에 속한다. 그렇다면 화학섬유 낚싯줄 등장 이전에 사용하던 낚싯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번 호부터는 낚싯줄의 진화과정에 대해 하나씩 짚어보는 기회를 만들어 보았다.

인류의 근현대 발명품의 최고봉이라면 자동차라고 말할 수도 있고 비행기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밖에도 전쟁에 사용하는 살상용 무기도 일찌감치 발달했다. 휘발유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는 독일의 ‘카를 벤츠(Carl Friedrich Benz)’가 1886년에 만든 삼륜차가 시초라고 하니 137년 전의 일이고, 미국의 ‘라이트(Wright)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한 것은 1903년이므로 120년 전이다. 그보다도 앞서서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 중에는 처음으로 기관총도 사용됐다.

그런데, 화학적으로 만든 인공섬유(합성섬유)라는 것은 1937년에야 비로소 발명되었고 이것을 실생활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부터이다. 합성섬유가 얼마든지 생활 전반에 존재하고 있는 지금과 비교해 보면 신기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탱크 타고 기관총 들고 로켓 발사하며 전쟁을 하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이 몸에 걸치고 있던 군복은 목면이나 양모 아니면 가죽으로 만든 것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중에 나일론으로 만든 양말이 인류 최초로 미군에게만 보급되었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야 민간에 퍼지면서 해어지지 않는 양말의 등장에 모두가 놀라워했다. 이런 합성섬유가 낚싯줄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또다시 10여 년이 지난 후이므로 합성섬유로 만든 낚싯줄은 인류의 놀라운 최신 발명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이다.

▲ 최초의 일본제 나일론 낚싯줄. 1942년에 토레이(당시, 동양레이온)에서 최초로 발매한 합성섬유 낚싯줄로 ‘합성 테구스’라고 표시하고 있다.

현대의 낚싯줄은 인류의 최신발명품

우리 낚시인들은 불과 70년 전만 해도 천연섬유, 즉 식물의 줄기에서 훑어 낸 섬유나 짐승의 털 등을 꼬아 낚싯줄로 사용했다. 삼베실이나 말총 등이 그것인데, 기타 고급스럽게는 비단(실크)실도 사용했다. 대표적으로 상품화되어 있던 낚싯줄은 ‘삽사(澁糸)’와 ‘테구스(テグス)’라는 일본 제품이 가장 유명했다.

삽사는 일본말로 ‘시부이토’라고 읽는데, 비단실이나 삼베실에 감물을 먹여 방수 효과를 살리고 질기게 만든 전문 낚싯줄을 말한다. 또한, 테구스라는 것은 원래 ‘천잠사(天蠶糸)’를 이르는 일본말로, 우리말로 하면 ‘야잠견(野蠶絹)’, 즉 양잠(養蠶)이 아닌 야생누에(참나무산누에나방의 애벌레)에서 채취한 최고가의 명주실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테구스를 고급 옷감이나 수예품에 사용하는 것보다도 낚싯줄로 사용되는 일이 많았던지 테구스라는 단어를 최근까지도 낚싯줄의 대명사처럼 사용하고 있을 만큼 낚시와 관계가 깊다.

▲ 삽사(澁糸, 시부이토)의 원료인 대마 줄기

이 테구스는 인간이 실생활에 사용하는 천연섬유 중에서 유일한 모노필라멘트로 목면, 삼베, 양모와 달리 길이가 길어서 낚싯줄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천연섬유였다고 말할 수 있다. 여러 가닥을 꼬아 표면 약품처리를 하면 더욱 질겨진다. 이 테구스가 낚싯줄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기록에 의하면 일본의 에도시대(江戸時代) 중기(1650~1750)로 당시에 이미 상품화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화학섬유가 등장하기 이전, 마땅히 질기고 가는 낚싯줄이 없던 시절 테구스는 서양으로 수출 되어 영국이나 미국의 낚시계에서 최고급 낚싯줄로 인기를 끌었다. 게임피싱의 선도자, 초창기 낚시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영국의 낚시용품에서도 낚싯줄은 일본에서 가공된 수입 실크사가 최고급 제품이었다.

▲ 테구스(天蠶糸), 야잠견(野蠶絹)의 원료가 되는 야생누에의 고치.

야잠견(野蠶絹) 테구스의 사용

낚싯줄로 사용하는 ‘테구스’에는 규격이 있었다. 굵기를 여러 단계로 나누고 호수를 매겨 판매하였는데, 당시에는 마땅히 그 가는 실을 측정할 수 있는 정밀한 자가 없던 시대라 실의 무게로 호수를 매겼다. 5자(5尺, 약 150cm)의 테구스 무게를 달아 그것으로 호수를 정했는데, 5자의 테구스 무게가 1리(厘)라면 그것을 1호라고 정했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무거울수록 굵었음을 알 수 있다. 정밀한 측정이 가능해진 현대에 와서 1호 테구스의 굵기를 측정해 보니 약 0.17mm였다고 한다.

1940년대에 일본 최초로 나일론 낚싯줄을 판매했던 ‘토레이(東レ, 당시 동양레이온)’가 처음 제품을 판매하면서 이 굵기를 그대로 적용하였다. 그 후, 다른 회사에서도 이 규격을 따르면서 일본에서는 현대 낚싯줄에도 호수 표기가 정착하고 1호 줄의 굵기가 정해지게 되었다. 다만, 초창기 화학섬유 낚싯줄 회사마다 제조 공차가 있었고 최근까지 동일한 호수임에도 약간씩 굵기의 차이가 있었다. 이로 인한 소비자의 불편을 해소하고 제품의 규격 통일을 위해 일본조용품공업회(日本釣用品工業會)가 나섰고 2009년부터는 완전한 규격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덕분에 공업규격으로 0.1호부터 200호까지의 표준직경이 정해졌다.

1호의 표준직경은 0.165mm, 2호의 표준직경은 0.235mm, 3호의 표준직경은 0.285mm, 10호의 표준직경은 0.520mm이다. 공업규격임에도 불구하고 호수 증가에 대한 굵기의 증가가 규칙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원인은 위에 설명한 것처럼 과거에 테구스의 무게를 달아 호수를 정했던 기준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 야잠견은 양잠으로 얻는 실크보다 광택이 훨씬 좋고 질긴 최고급 실크로 고가의 수예품 원료로 사용한다.

1호, 2호, 호수 단위의 정착

일본에서 시작되고 척관법(尺貫法)에서 유래한, 낚싯줄의 굵기를 나타내는 호수 표시는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전파되어 사용되고 있다. 현대는 미터법이 세계공통의 계량 단위임에도 불구하고 호수를 사용하고 있는 우리 현실이 그렇다. 더욱이 미국은 야드파운드법을 고집하고 있어서 낚싯줄, 특히 루어낚시용 낚싯줄이라면 야드파운드 표기도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 개발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는 PE낚싯줄 역시 일본에서 개발되고 대중화시켰기 때문에 호수 표시는 기본이고, 여기에 루어낚시용으로 주로 쓰이다보니 파운드 표시와 병기되고 있다.

아울러 호수를 정하는 기준이 규격 통일된 다른 낚싯줄의 굵기를 측정하는 기존 방법과는 다르다. 그 이유는 PE 낚싯줄이 합사이기 때문이다. 나일론이나 플로로카본과 같은 모노필라멘트는 표면이 단단하고 매끈하며 단면이 원형이지만 합사는 물렁물렁하고 표면이 울퉁불퉁하며 단면이 누르면 찌부러지기 때문에 정확한 굵기를 측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PE 낚싯줄도 굵기를 직접 측정하지 않고 과거 테구스처럼 무게를 사용한다.

일본조용품공업회는 200d(데니어)의 PE낚싯줄을 1호로 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만들었다. 데니어 단위는 현대 섬유공업에서 재봉사, 옷감용 실 등등 각종 합사의 규격을 정하는 단위 중 한 가지로 원사 길이 9000m에 대한 무게를 단위로 한다. 200d란, 해당 PE 낚싯줄 9000m 길이가 200g이라는 의미다.

이것을 1호로 정한 것은 아마 이때의 PE낚싯줄의 ‘외형상 평균 굵기’가 나일론이나 플로로카본 낚싯줄의 1호 굵기인 0.165mm와 대략 같은 수준인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