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에기 형태.

가짜 미끼인 루어를 ‘언제부터 사용하였으며 어떤 것이 최초의 루어인가?’ 이러한 물음에 관해 앞선 연재기사를 통해 ‘생계를 위한 어업용 도구’가 아니라 ‘도락을 위한 취미용 도구’라는 점을 루어의 기준으로 정해보았다. 결과적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만들어진 공산품으로서의 루어를 최초의 루어로 생각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시선을 서양이 아닌 동양으로 돌려 특히, 낚시도구에 대해서는 현재 대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의 낚시도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현재 많은 낚시인이 사용하는 루어 중에는 일본의 어로 도구에서 파생된 루어가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에기’, ‘타이라바’, ‘인치쿠’인데 이번 호에서는 그중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흰오징어(통칭 무늬오징어)용 루어, 에기(餌木, エギ)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에기의 시초를 찾아 일본으로

필자는 15년 전인 2008년, 에기의 기원을 찾아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박물관 견학 및 참고문헌을 탐독한 일이 있었다. 계기는 일본 낚시잡지의 기사를 읽고 나서였다. 에기가 처음으로 만들어져 사용되었다는 장소가 일본 규슈지방 남부의 가고시마현(鹿児島県)이란 사실 그리고 현지 몇몇 박물관에 실물이 보존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였다. 또한, 에기를 학술적으로 정리한 ‘오카다 키이치(岡田 喜一)’ 박사의 ‘薩摩烏賊餌木考(사츠마 이카에기 고찰)’라는 서적도 알아내었다.

직접 실물을 보러 간 장소는 가고시마 시내에 있는 ‘가고시마현립박물관 역사자료센터’와 시내에서 좀 떨어져 있는 ‘뮤지엄 치란(Museum知覽)’이다. 먼저 찾아간 장소는 ‘뮤지엄 치란’이었다. 치란은 지방 소도시 이름이며 이 박물관은 2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박물관과 더불어 ‘치란특공평화회관(知覽特功平和會館)’이란 이름의 건물이 서로 붙어 있었다.

▲ 가고시마현립 박물관 역사자료센터. 전통 에기가 정리되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장소이다.

▲ 가고시마현(鹿児島県) 치란(知覽)에 위치한 ‘뮤지엄 치란’. 바로 옆 건물이 ‘치란특공평화회관’이다.

이 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오키나와를 함락한 연합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자살특공대, 소위 말하는 ‘가미카제’의 기지가 있던 장소다.

한산한 박물관과 달리 바로 옆 특공평화회관 건물은 관람객이 상당히 많았다. 젊은이들보다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년층 관광객이 안내인을 따라 줄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내부에는 가미카제 특공대로 어이없게 죽은 젊은 조종사들의 사진이 빽빽하고, 익히 알려진 일이지만 조종사가 없어 14살 소년병을 출격시켰다고 적어놓고 있었다.

한 사회의 청년 엘리트와 소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들을 신격화하는 오류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평화’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군국주의 시대를 청산치 못한 그들의 한 단면도 실제로 마주할 수 있는 장소였다.

‘촬영절대금지’ 푯말이 무수해 사진을 남길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실제로 그곳에는 오래된 에기가 전시되고 있었다. ‘總黑燒き黑型餌木’라고 불리는 물고기 형태의 에기였다. 마치 벵에돔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는데 표면을 그을려 검게 만든 목제 에기였다. 요즘 볼 수 있는, 새우 모양에 알록달록한 헝겊을 씌운 에기와는 많이 다른 형태였다.

▲ ‘總黑燒き黑型餌木’라고 불리는 그을린 물고기 형태의 에기.

촬영 절대금지 ‘뮤지엄 치란(Museum知覽)’

가고시마 시내로 돌아와 방문한 ‘가고시마현립박물관 역사자료센터’에서는 3가지 다른 형태의 물고기형 에기 유물을 만나볼 수 있었다. 큐레이터의 설명을 통해 자세한 정보도 얻었다. 요약하면, 에기는 남서제도(南西諸島,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일본 규슈 남부에서 대만 동부에 이르는 섬 지방)에서 발생해 400년 전에 가고시마로 전파되었다고 했다.

에기는 평평하고 등이 높은 물고기 형태로 나타나 점차 새우 형태로 변해갔다고 하는데, 검게 그을린 모습에서 반점 형태를 거쳐 그을음을 묻히지 않은 형태가 되고, 다시 에나멜을 칠한 형태를 거쳐 헝겊을 씌운 지금의 모습으로 변해 온 것이라고 했다. 과거에 그을음을 묻힌 이유는 시각적인 이유 외에도 향나무(香木)를 태운 그을음의 향기로 무늬오징어의 입질을 촉진하는 의미도 있었다고 했다.

요즘에도 오키나와에 가보면 극히 드물지만 전통 수제품 에기를 만나볼 수 있다. 나이 지긋한 장인이 손수 만드는 공방이 있는데 그을음을 묻힌 물고기 형태는 없고 새우 형태이지만 헝겊을 씌운 것이 아닌 단순히 칠을 한 모습을 하고 있다.

▲ 가고시마현립 박물관 역사자료센터에 전시 중인 3종의 물고기 형태 에기.

▲ 오키나와에서는 극소수이지만, 수제품 에기가 아직도 전통적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을린 물고기 형태에서 새우 형태로 변화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유물 중에는 무늬오징어낚시를 위한 각종 소품과 에기를 수납하는 옻칠이 된 상자까지 보존되어 있다. 외양만으로는 어부가 사용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태클박스와 같은 고급스러운 상자에 채비까지 고루 갖춰져 있고 에기가 형태별, 무게별로 가지런히 들어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에기 자체도 고가품이라고 알 수 있었던 것은 에기에 부착된 추가 단순한 납추가 아니라 엽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도 어부의 도구가 아니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에기의 형태가 어떤 이유로 이렇게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었으며 개인이 이렇게나 고급스러운 에기를 소중히 보관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박물관 큐레이터에게서 의미 있는 대답을 들었다.

시대는 임진왜란 이후가 될 것 같다. 일본은 전국시대(戰國時代)가 끝나고 에도시대(江戸時代)에 들어서면서 전쟁이 직업이던 사무라이, 무사 계급들이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이들은 각종 도락에 빠져들게 되었는데, 낚시에 몰두하는 것도 그중에 한 가지였다. 이때부터 어업이 아닌 취미로서 낚시의 발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에도(江戸, 지금의 도쿄) 지방에서는 지역적 특성상 습지의 수로에서 대낚시가 발달하기 시작해 섬세한 낚시기법이 차츰 생겨났다. 반면에, 일본의 서쪽 끝인 사츠마(薩摩, 지금의 가고시마) 지방에서는 귀족인 그들이 직접 낚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부를 시켜 편을 가르고 낚시를 통한 내기를 즐겼다. 특히, 무늬오징어를 대상으로 어느 편이 먼저 더 큰 오징어를 낚는가 내기를 개최해 일종의 축제로 즐겼다는 것인데 누가 무늬오징어가 더 잘 낚이는 에기를 만드는가가 승패를 좌우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에기의 성능 발전이 여기에 기인한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17세기에 이미 스포츠 피싱, 낚시 토너먼트가 개최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르겠다.

에기는 어부의 어로 도구가 아닌 오락용

18세기 말, 혹은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등장한 팬텀미노우가 서방세계 최초의 루어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뷰엘 스푼 루어는 19세기 중반에서야 상품화되었다. 어로 도구가 아닌 도락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 미끼를 루어라고 볼 때, 일본의 에기는 어떤가? 실물이 남아있는 세계최초의 루어가 에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에기가 루어일까 아닐까?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그것에 대한 대답은 독자들의 몫이다.

▲ 옻칠한 고급 상자에 가지런히 수납된 에기. 어부의 도구가 아닌 귀족의 낚시용품임을 알 수 있다.

▲ 무게별로 수납된 에기. 납추가 아닌 엽전이 사용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