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의 부활
수만이가 돌아왔다!
갯바위 홀로 지키던 참돔에 벵에돔, 농어, 돌돔 가세
ㅣ이기선 기자 blog.naver.com/saebyek7272ㅣ
봄철 내내 부진한 조과에 허덕이던 거문도 갯바위가 5월부터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선봉에 선 어종은 벵에돔. 서도에서 30cm 전후의 벵에돔이 활기를 되찾기 시작하더니 5월 3일에는 45, 51cm 대형 벵에돔이 출현했다.
▲ 여수 전국낚시 박진국 사장(DAN 필드스탭)이 5월 3일 오전 9시경 서도 욧등에서 낚은 51cm 벵에돔을 보여주고 있다. 2B 전유동낚시로 바닥에서 입질을 받았다고.
▲ 서도의 5짜 벵에돔 산지인 욧등. 참돔, 볼락도 잘 낚인다.
여수 전국낚시 박진국 사장은 거문도 벵에돔의 출현을 반기며 단골손님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직접 벵에돔낚시를 시도해 5월 3일 서도 욧등에서 51cm 벵에돔을 낚아냈다. 같은 날 여수 서울낚시 강민구 사장은 서도 구멍섬에서 45cm 대물을 포함 15마리의 벵에돔을 낚아 올렸다.
벵에돔은 거문도에서 ‘수만이’라 불린다. 옛날엔 지천으로 낚여 잡어 취급을 받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귀하디귀한 존재가 됐다. 거문도의 대형 벵에돔낚시는 제로찌낚시 붐이 일기 시작한 99년과 2000년에 45~50cm급이 마릿수로 출현하는 대대적 호황을 보였으나 이후 자원이 급감한 듯 어쩌다 45cm급이 낱마리로 낚일 뿐이었다. 따라서 최근의 대형 벵에돔 소식은 반가운 낭보가 아닐 수 없다.
때를 같이해 거문도 곳곳에서 농어가 출현하기 시작했으며 소삼부도에서 원투낚시로 50cm급 돌돔을 낚았다는 소식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참돔 외엔 뚜렷한 어종이 없던 거문도 해역이 술렁이고 있는 것이다. 박진국 사장은 “3월까지만 해도 참돔이 서도 제립여와 동도 낭끝, 소삼부도 등지에서 활발하게 낚여 주었는데 정작 4월에는 기상이 나빠 출조 날짜가 급속도로 줄었고, 조황마저 뚝 떨어져 애를 태웠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신발짝만한 볼락도 대인기
나는 거문도에 벵에돔이 붙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한국어탁회 신동훈 고문과 함께 여수로 달려갔다. 전국낚시 박진국 사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여수 국동 잠수기수협 선착장에서 밤 11시에 출항하니 서둘러 오란다. “작년까지만 해도 새벽 2시에 출발했는데 올 봄에는 밤에 볼락도 잘 낚여 시간을 앞당겨 출항하고 있다”면서 볼락낚시용 민장대와 청갯지렁이도 준비하라고 말했다. 다행히 신동훈 고문이 3.6m, 7.2m짜리 장대 두 대를 가지고 있어 낚시점에 도착하자마자 밤볼락 채비부터 만들었다.
국동항에는 평일임에도 많은 꾼들로 붐볐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낚시꾼이 적어 배 한 척도 채우기 힘들었는데 오늘은 두 척 모두 일찍감치 정원을 채웠다. 벵에돔 마니아들이 그만큼 많다”고 박진국씨는 말했다. 거문도까지는 여수에서 백상어호화 씨울프호 두 척이 매일 새벽 운항하고 있다.
밤 11시, 우리가 탄 씨울프호는 국동항을 출발했다. 가는 도중 박진국 사장은 하루 전 낚은 5짜 벵에돔을 카메라폰으로 보여주며 “이 녀석 정말 크지요”하고 자랑했다. “수온이 10~11도에서 12~13도로 오른 사나흘 전부터 배치바위나 욧등, 대소원도 등 서도 남서쪽에서 벵에돔이 비치기 시작했는데 어제 아침 초썰물에 한 번 놓치고 두 번째 입질을 받은 게 이 녀석입니다.”
▲ 구멍섬에서 45cm 벵에돔을 낚은 강민구 사장.
▲ 45cm 벵에돔의 위용. 강민구 사장이 구멍섬에서 낚았다.
예년의 경우 지금 이 시기면 14~15도로 올라 여름어종이 활발하게 낚일 무렵인데 벵에돔 입질이 아직도 예민해 거의 바닥까지 채비를 내려야 입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씨울프호는 삼부도에 일부 꾼들을 내려주고 거문도항에 도착했다. 우리는 미리 나와 있던 거문도 종선인 삼도호로 옮겨 탔다. 박진국 사장은 “요즘 낚이는 볼락 씨알이 크니 볼락부터 잡고 있어요. 날이 밝으면 도시락을 가지고 합류할게요”라고 말했다. 삼도호는 서도 배치바위를 시작으로 삼백냥, 욧등, 구로바 순으로 꾼들을 하선시켜나갔다. 구로바를 지나 우리가 내릴 계획이었던 구멍섬에 도착하니 먼저 내린 꾼들이 플래시를 번뜩이며 접안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누군가 강민구 사장이 전날 벵에돔을 타작한 사실을 알고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서둘러 온 게 분명했다. 아쉽지만 할 수 없는 노릇. 선장은 “벵에돔은 몰라도 일단 볼락은 잘 낚이는 곳”이라며 소원도 가기 전 홈통에 있는 삼각여에 내려준 뒤 사라졌다.
구멍섬은 벌써 다른 꾼들의 차지
삼각여에 내려보니 주변으로 수중여가 잘 발달해 있어 볼락 포인트로는 좋아 보였다. 뒤쪽으로 옮겨 민장대를 꺼내 들고 청갯지렁이를 달아 던졌다. 입질이 잦지는 않았지만 간간이 물어주는 볼락 씨알은 과연 내 신발만큼 컸다. 25cm 전후의 볼락을 민장대로 낚으니 손맛이 일품이다. 열댓 마리를 낚고 나니 너울파도가 세어지며 입질이 끊어졌다. 우리는 준비해간 칼과 도마를 꺼내 볼락 회를 썰기 시작했다. 갯바위에서 먹는 볼락 회 맛을 어떻게 글로 표현하리오.
잠시 후 으슴푸레 날이 밝아와 서둘러 벵에돔 채비를 했다. 빵가루를 섞은 밑밥을 뿌려대니 피어오르는 건 볼락. 웬일인지 볼락이 떼로 붙어 채비를 던지기 무섭게 쭉쭉 빨고 들어갔다. 하나같이 20cm가 넘는 큰 씨알이다. 한 시간 동안 두 사람이 정신없이 낚고 나니 40리터짜리 쿨러가 가득 차 더 이상 담을 곳이 없다.
아침 9시에 박진국 사장이 삼도호를 타고 나타나서 채비를 빨리 챙겨 배에 올라타라는 신호를 보냈다. 구멍섬 홈통의 작은 여가 비어 있는데, 여가 워낙 작아 두 사람밖에 내리지 못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신동훈 고문은 먼저 내린 꾼에게 양해를 구하고 구멍섬 한쪽 콧부리에 하선시키고 나와 박진군 사장이 여에 내렸다.
박 사장은 “아직도 수온이 낮아 벵에돔의 활성도가 낮으므로 B~2B 봉돌을 채워 중하층까지 천천히 가라앉혀야 한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B찌, 나는 2B 기울찌를 선택했으며 목줄에는 찌 부력에 맞춰 좁쌀봉돌을 한 개씩 채웠다.
▲ 구멍섬 홈통 여에서 벵에돔을 노리고 있는 박진국 사장.
▲ 5짜 감성돔을 걸어 파이팅을 펼치는 기자. 힘이 워낙 좋아 처음에는 벵에돔인 줄 알았다.
벵에돔 대신 5짜 감성돔으로 손맛
밑밥에 끌려 피어오른 잡어를 발밑에 묶어두고 원투하는 방법으로 벵에돔을 공략했다. 소원도에서 구로바 쪽으로 내려가는 썰물 본류가 구로바에 받혀 돌아오는 지류에 채비를 흘렸다. 박진국씨가 5분도 지나지 않아 첫 입질을 받았고 빠른 손놀림으로 30cm급 벵에돔을 연타로 올렸다. 나도 나란히 채비를 흘렸지만 어찌 된 건지 농어새끼만 연달아 낚였다. 그러자 박진국씨는 “채비가 빨리 가라앉지 않는군요. 채비를 투척한 뒤 원줄을 일자로 쫙 펴주어야 채비가 잘 가라앉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러나 제법 활성을 보이던 벵에돔 입질도 끊어졌다. “냉수대가 들어왔나 보네요. 찬 물이 들어오면 잘 물던 고기도 낚이지 않지요”하고 박 사장이 말했다. 그때 유유히 흐르던 내 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챔질과 동시에 지~익 소리를 내며 낚싯대가 반원을 그렸다. “드디어 왔네요! 휨새를 보아하니 못 되어도 4짜 중반은 넘겠는데요.” 나보다 박 사장이 더 흥분했다. 꾹꾹 바닥으로 처박는 형태가 조금은 이상하다 싶었는데 수면에 뜬 녀석은 벵에돔이 아닌 5짜 감성돔이었다. 그러나 낭패다. 설마하고 미리 뜰채를 펴놓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파도가 쳐 올라오는 곳으로 감성돔을 유도하여 박진국 사장이 발목을 파도에 두어 번 적신 끝에 드디어 두 손으로 감성돔을 안아 올렸다.
점심 무렵 삼도호가 철수를 시키기 위해 다가왔다. 강민구씨가 벵에돔을 많이 낚았던 구멍섬에서도 이날은 볼락만 몇 마리 낚이고 벵에돔은 낚이지 않았다. 그러나 철수하는 도중 욧등과 배치바위 등지에서 여러 마리의 벵에돔이 배출되었음을 확인했고, 60cm급 참돔도 곳곳에서 낚여 이미 거문도는 여름의 문턱에 들어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박진국 사장이 사용한 벵에돔 채비. 2B 찌를 사용했다. ▲ 신동훈 고문이 구멍섬 안통 여에서 낚인 5짜 감성돔을 보여주고 있다.
박진국 사장은 “초반시즌에는 벵에돔이 수심이 제법 깊고 여가 발달된 곳, 햇볕을 잘 받는 곳에서 회유하기 때문에 욧등이나 배치바위, 의자바위, 대·소원도 같은 직벽지대가 유리하다”고 말했다. 여수에 돌아와 만난 강민구 사장은 “요즘 볼락이 잘 낚여 밤 출조가 활발한데, 예년에 보기 힘들었던 신발짝 볼락이 많이 낚이는 것을 보니 아직도 수온이 낮은 것 같다. 수온이 조금 더 오르면 큰 볼락은 서서히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말했다.
여수에서 거문도까지 뱃삯은 1인당 왕복 6만원, 거문도 종선비는 하루 3만5천원, 1일 숙식비는 2만5천원선이다.
▒ 취재협조 여수 전국낚시 011-608-6131, 여수 서울낚시 011-666-4339, 거문도 삼도호 017-633-1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