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오리노코강으로 향하는 전세기에 탑승하기 전 기념사진을 찍는 일행.
위부터 필자, 크리스(Chris), 키란(Kieran), 댄(Dan).
훔볼트의 발자취를 따라서
프로이센의 과학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1800년의 오리노코강 탐사를 통해 중남미 대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뒤바꿈으로써 일약 전 세계에서 나폴레옹 다음으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훔볼트 이전에 아메리카의 대자연은 과학자들에게는 정신이 결여된 기계, 정복자들과 자본가들에게는 착취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훔볼트는 감수성을 통한 인간과 자연의 화합을 지향하는 새로운 과학 사조를 선구했다.
그는 1814년의 저작 ‘신대륙의 열대지방 기행’에서 과학자답지 않은 낭만적인 문체로 오리노코강 유역의 동식물과 지리적 환경을 ‘불활성의 물질’에서 ‘생동하는 자연’으로 재발견했다.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 직접 항해에 나선 사람 중에는 훗날 훔볼트를 잇는 세계적인 과학자가 된 찰스 다윈이 있다. 나 또한 지난 1월 10일부터 열흘간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의 경계를 이루는 오리노코강과 여러 지류들을 여행하며 훔볼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출발
1월 10~11일. 겨우내 볼티모어의 자취방에 들어앉아 훔볼트의 자연관에 관한 논문을 끼적이던 나는 탈고하기가 무섭게 플로리다를 경유하여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엘도라도 국제공항에 내렸다. ‘엘도라도(El Dorado)’는 스페인어로 금을 뜻하지만 1617년 오리노코강 탐험에 실패한 영국의 식민주의자 월터 롤리가 찾아 헤매던 전설 속 황금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런데 콜롬비아는 훔볼트를 ‘아메리카의 진정한 발견자’라 칭한 혁명가 시몬 볼리바르가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으로 이끈 나라다. 그런 국가의 중요시설에 식민주의적 함의를 지닌 이름이 붙었다는 사실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꼈는데, 이 감정은 뒤에 벌어진 일들의 전조와 같은 것이었음에도 그 당시에는 유의미한 통찰로 이어지지 못하고 쌀쌀한 날씨, 번잡한 교통, 원조 콜롬비아 커피 등에 관한 단상에 묻히게 되었다.
공항에서 머지않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새벽 로비에서 여정을 함께할 3명의 낚시인들과 만났다. 플로리다 출신의 보디빌더 키란과 텍사스의 사업가 댄은 남미에서의 낚시 경험이 많은 베테랑들이었고, 호주에서 광부로 일하는 프랑스인 크리스는 민물낚시가 처음이었다.
우리는 보고타 외곽의 작은 공항으로 4시간가량 이동하여 6인용 전세기를 타고 콜롬비아 국토 최동단의 비차다(Vichada)로 향했다. 비행하는 2시간 내내 발 아래에서 남아메리카 북부의 열대 사바나 ‘야노스(Llanos)’가 한없이 펼쳐지다가 난데없이 나타난 밀림에 가로막혔다.
그곳이 목적지인 오리노코강의 지류 토모강, 바로 아마존 열대우림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활주로도 없는 허허벌판에 내려진 우리를, 곧이어 가이드 닉이 인근 목장주의 차를 얻어 타고 나타나 강가의 베이스캠프로 안내했다. 닉은 영국인이지만 오랜 시간을 동남아시아에서 가이드로 활동했다고 했는데, 알고 봤더니 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여러 낚시 친구들과 잘 아는 사이였다. 닉은 일정 내내 알게 모르게 나에게 마음을 많이 써주었다.
베이스캠프에는 우리 일행 외에도 독일에서 온 세 명의 팀이 있었다.
데이빗과 마티아스는 플라이낚시와 루어낚시를 두루 섭렵한 스포츠맨들이었고, 폴은 유명 사냥용품 브랜드의 후원을 받는 전문 사냥꾼이었는데,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톱워터로 카이만을 낚아 식탁에 악어고기를 제공했다. 그들 덕분에 베이스캠프에선 맥주캔 따는 소리와 호방한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토모강의 피콕배스
1월 12-14일. 우리가 토모강을 방문한 1월은 연중 강우량이 가장 적은 건기의 절정에 해당한다. 이때 급격하게 줄어든 수위로 인해 열대우림 곳곳에는 석호가 만들어지고 강기슭에는 모래사장이 드러난다. 둘 다 피콕배스가 먹잇감을 몰아넣고 사냥하기에 적합한 지형이다.
남아메리카에 분포하는 16종의 피콕배스 중 토모강에서는 3종이 발견되는데, 셋 다 훔볼트가 직접 표본을 채집하여 최초로 학계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로얄피콕배스(Cichla intermedia)와 오리노코피콕배스(Cichla orinocensis)는 최대 60cm 내외로 성장하는 이 지역의 고유어종들이다. 반면에 스페클드피콕배스(Cichlatemensis)는 전 세계의 모든 피콕배스들 중 가장 크게 자라는 종으로, 오리노코강뿐만 아니라 아마존강의 여러 지류에서도 확인된다. 노랗고 푸른 몸통에 세 개의 검은 세로줄을 새긴 이 물고기야말로 전 세계 낚시인들의 동경의 대상이자 이번 여행의 진정한 목적이었다.
▲피콕배스를 낚기 위해 찾은 콜롬비아 토모강의 석호.
나는 큰 씨알의 스페클드피콕배스(이하 현지 명칭 ‘파본’)가 걸려도 안심하고 끌어낼 수 있도록 100g 이상을 너끈히 투척할 수 있는 몽둥이를 두 대 준비했고, 최대 10킬로그램의 저항력을 내는 베이트캐스팅릴에 4호 PE라인과 60파운드의 나일론 쇼크리더를 단단히 감아갔다.
루어로는 다양한 종류를 챙겨갔으나 패턴 파악에 성공한 이후부터는 시종일관 두 가지만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지그헤드에 형형색색의 깃털을 부착한 벅테일지그(bucktail jig)였다. 낚시 첫날인 12일 오전에 고전을 면치 못한 나는 수몰된 나뭇가지의 밑동에 묻은 물기를 통해 수위가 급격히 하강하고 있음을 알아차렸고, 이로 인해 피콕배스의 먹이활동이 위축되었을 것으로 예상하여 바닥권을 노릴 수 있는 작은 크기의 벅테일지그를 사용해보았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강돌고래들의 잦은 훼방에도 부지불식간에 50마리가 넘는 크고 작은 피콕배스가 잡혔고, 오후 3시쯤에는 수몰된 관목에서 7kg짜리 커다란 파본이 튀어나왔다. 녀석은 슬며시 내 채비를 집어삼키더니 이상한 낌새를 채고는 은신처를 향해 역주를 거듭했으나 결국 수면으로 올라와 배를 뒤집었다.
처음 경험한 대형 피콕배스의 힘은 같은 크기의 농어나 라지마우스배스의 두 배 정도로, 냉정하게 말해 그 세계적인 명성에 비하면 다소 아쉬웠다. 그러나 피콕배스에게는 어느 물고기와도 비견될 수 없는 특별함이 있었는데, 이것을 일깨워준 루어가 플로팅 프롭베이트의 일종인 리퍼(ripper)였다.
첫날 이미 벅테일지그로 기대 이상의 손맛을 본 나는 13일부터는 리퍼를 이용한 톱워터 낚시에 도전했다. 무게가 2온스나 나가는 리퍼는 꼬리에 달린 금속 프로펠러로 그 이름처럼 마치 수면을 찢는 듯한 파동을 일으킨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사람 키만한 카이만 악어도 몸을 피할 정도였다. 이런 괴상한 루어에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물고기가 있다면 속된 말로 미친 물고기가 아닐 수 없는데, 바로 파본이 그랬다.
하루 중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시간인 오후 2시가 지나면 다 자란 파본은 암수 쌍을 이뤄 붕어를 닮은 보카치코(bocachico, 에스퍄냐어로 어린아이의 입을 뜻함)를 노리고 얕은 석호나 본류의 모래사장을 배회한다. 바로 이때가 리퍼를 투척할 절호의 기회다. 리퍼를 연거푸 덮치는 한 쌍의 파본이 일으키는 파동은 키란과 같은 거구도 화들짝 놀라게 만들 정도였는데, 2층 높이에서 볼링공이 강에 연속으로 떨어진다고 상상해보면 가늠이 갈 것이다. 리퍼를 이용하여 대물만을 솎아내는 패턴까지 간파한 나는 5kg급 준수한 씨알의 파본을 꾸준히 낚았고, 13일 오후에는 8kg에 달하는 초대형 개체를 만나 일행 중 장원을 차지하였다.
▲콜롬비아 오리노코강에서 리퍼로 8kg급의 대형 스페클드피콕배스를 낚고 기뻐하고 있는 필자.
▲콜롬비아 오리노코강 고유종인 로열피콕배스(Cichla intermedia)를 낚은 댄(Dan).
그러나 그날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건 때문에 우리는 토모강을 황급히 떠나야만 했다. 그간 낚시가 잘되던 한 석호를 향해 이동하던 중 강기슭에서 손을 흔드는 웬 사내를 발견하여 보트에 태워 건너편에 내려주었다. 그는 자신이 인근의 목장주이자 그 석호의 주인이라며, 앞으로 그곳에 접근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남기고 떠났다.
그의 목적이 돈에 있다고 보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찾은 그 석호에선 활로 무장한 시쿠아니(Sikuani) 원주민들이 수풀에 은신하여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귀국 후 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외진 토모강 유역에서는 인디언들과 그들의 영토를 차지하려는 소목장주들 사이에 유혈 분쟁이 종종 발생해 왔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국가의 기능이 일부 상실된 지난 몇 년간 목장주들은 탄압의 강도를 점차 높여 왔던 모양이다. 제아무리 낚시가 좋다 한들 목숨을 걸 마음까지는 없었던 우리는 예정보다 하루 일찍 토모강을 떠나 테레카이(Terrecay)강을 공략해보기로 합의를 보았다.
테레카이강의 야생동물들
1월 15일. 나는 댄과 한 배에 올라 테레카이로 이동하며 낚시를 했다.
하류로 향할수록 탁해지는 물색 탓인지 낚시가 잘 되지 않았지만 그날따라 많은 야생동물들이 나타나 우리를 흥분시켰다. 잠깐 들른 한 석호에서는 3m쯤 됨직한 그린아나콘다가 수면 위로 머리를 드러내더니 다시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정박한 나무그늘 근처에서는 자이언트수달 무리가 나타나 한동안 소란을 피우다 물러갔다. 하지만모기와샌드플라이(sandfly, 등에모기과에 속하는 흡혈성 파리)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 무더위에도 긴팔, 긴 바지에 모자, 목토시, 장갑으로 온몸을 에워쌌지만 실낱같은 빈틈에도 떼를 지어 달려드는 놈들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나흘 만에 물린 상처가 칠십 군데가 넘자 황열병에 걸리든 말라리아에 걸리든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어졌다. 또 한 가지 유감스러운 점이 있다면 훔볼트의 기행문에 그토록 빈번하게 등장하던 재규어와 오리노코 악어가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춘 현실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어느 정도 훔볼트가 예견했던 것이었다. 당대 대부분의 지식인들보다 야생과 인디언에게 호의적이었던 그였지만 말년의 역작으로 평가 받는 ‘코스모스’의 서론에서 유럽 중심의 진보사관을 옹호했다. 그는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인류의 숙명이라고 천명했다. 이는 열대우림의 동식물들과, 그들과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원주민들이 종국에는 유럽발 근대 문명에 의해 도태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로부터 두 세기가 지나 인류세가 도래한 지금 그의 예상이 어느 정도 적중했음을 부정하기란 어려워졌다. 그가 거대 동물들이 사라지고 인디언들과 목장주들이 분쟁하는 토모강의 달라진 모습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느지막한 오후에 다다른 토모와 테레카이의 합류 지점은 선단을 이룰 정도로 많은 현지 낚시보트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 광경 또한 200년전 훔볼트가 인간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야생의 낙원에 비유했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댄이 호기롭게 손을 흔들어보았지만 그들은 가만히 서서 우리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날 저녁 테레카이 캠프에서 결집한 일행은 마지막 피콕배스 낚시 일정을 포기하고 오리노코강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콜롬비아 토모강 캠프의 야경. 낮만 되면 모기와 흡혈파리의 일종인 샌드플라이가 득실거린다.
▲독일에서 온 전문 사냥꾼 폴(Paul)이 톱워터 루어로 낚은 카이만 악어를 조리하고 있다.
오리노코강의 파야라
1월 16일. 파리마(Parima)산 해발 1,000m에서 발원하여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를 거쳐 대서양과 만나는 오리노코강은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강이다. 1498년 8월 1일에 오리노코강의 하구에 당도한 콜럼버스는 한동안 자신이 바다가 아닌 강에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이곳에 서식하는 1,000여 종의 담수어 중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뱀파이어 피쉬’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한 파야라(payara,Hydrolycus armatus)다.
파야라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대규모 군집을 이뤄 급류를 타고 토모강과 오리노코강의 합류 지점으로 소상하여 산란을 위해 적극적인 먹이사냥에 나선다. 검치호랑이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아래턱의 송곳니는 끝이 뾰족할 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날까지 지니고 있어 먹잇감에 상처를 입힌 후 흡입하는 방식의 사냥에 적합하다. 이러한 해부학적 구조와 취이방식 때문에 낚시의 난이도는 상당히 높다.
우선 루어를 깊이 삼키는 경우가 드물고, 설령 한다 하더라도 입안이 온통 뼈인 탓에 낚싯바늘이 쉽사리 박히지 않는다. 더욱이 파야라는 피콕배스와 비교하면 섭섭할 정도로 힘이 세고 바늘털이에 능하다. 16일 오전, 댄과 함께 녀석들의 소굴로 짐작되는 여울을 공략해봤지만 약은 입질만 수도 없이 받고 조과는 작은 씨알 두 마리에 그쳤다. 댄은 제법 큰 녀석을 하나 걸었지만 낚싯줄이 바위에 쓸려 놓치고 말았다.
끼니를 위해 근처 해변에서 일행이 다시 뭉쳤을 때, 그간 피콕배스 조과가 부진하여 실망을 금치 못했던 보디빌더 키란이 웬일로 큰 씨알의 파야라를 여러 마리 낚았다는 낭보를 전했다. 그 말을 들으니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바늘털이를 잘하는 대상어를 상대할 때는 통상 부드러운 낚싯대를 이용해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원칙이지만, 어쩌면 뻣뻣한 장비로 사정없이 끌어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오후 낚시에서 이 방법을 시도해봤더니 과연 파야라를 연안에 안착시키는 빈도가 훨씬 높아졌다. 어리둥절해하는 댄에게 조언을 해줬더니 얼마 안 가 7kg짜리 씨알을 낚아냈다. 이젠 내 차례였다. 라팔라 CD14 미노우를 너울에 태워 여윳줄을 정리하자 두둑하며 묵직함이 전달되었다. 기다려왔던 호적수가 틀림 없었다. 온힘을 다해 두 번의 챔질을 하고선 숨 쉴 새도 없이 릴을 감았다. 격렬한 저항 후 어찌어찌 끌려오는 듯하던 녀석이 방향을 틀어 폭포를 향해 내달렸지만 이내 힘이 부쳤는지 포말이 부글거리는 수면 위로 떠올라 턱을 딱딱거렸다. 등이 에메랄드빛으로 어른거리는 7kg급의 건강한 개체였다.
▲콜롬비아 오리노코강 본류의 급물살에서 낚은 파야라. 입안이 온통 뼈와 이빨로 되어 있어 챔질이 잘 되지 않는다.
▲콜롬비아 오리노코강 탐사에서 가장 효과가 좋았던 루어들. 좌로부터 리퍼, 미노우, 벅테일지그.
시쿠아니 원주민과의 낚시
1월 17일. 여정의 마지막 날은 구름이 걷혀 이론상으로는 파야라낚시에 더욱 유리했다. 그러나 모든 목표를 달성하니 더는 낚시가 당기지 않아 혼자 캠프에 남아있기로 했다. 해먹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무료해 보였던지 캠프의 일을 봐주는 시쿠아니족 사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리(Ori)라는 이름의 그는 자신도 나와 같은 외국인이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 말은 그의 부락이 강 건너 베네수엘라 영토에 있다는 뜻의 농담이었다. 오리는 오두막 뒤편 물가에도 파야라가 있다며 함께 낚시를 가자고 했다. 스푼을 두어 개 챙겨 나와 보니 그가 양동이에 냉장해둔 보카치코를 가득 담아왔다. 자신은 늘 하던 대로 손낚시를 할 것이라고 했다. 얼떨결에 전통낚시 대 현대낚시의 대결이 성사되었다.
▲시쿠아니 인디언 오리(Ori)가 전통 낚시기법을 시연하고 있다.
▲시쿠아니 인디언 세사(Sesa)가 오리노코강 본류에서 초대형 메기인 아마리요(amarillo)를 노리고 손낚시를 하고 있다.
평생을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해오고 심지어는 이름까지도 오리노코강의 이름을 따서 지은 오리는 과연 능숙한 낚시인이었다. 그는 파야라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파야라는 재빨리 움직이는 먹이에 잘 이끌린다고 했다. 또한 눈이 좋아 피라냐가 심하게 망가뜨린 미끼에는 여간해선 꾐을 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노련한 쏘가리꾼들이 그리하듯 그는 물결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강바닥의 지형을 읽어낼 줄도 알았다. 하지만 그날은 유독 피라냐가 극성이었다. 내가 세 마리의 작은 파야라를 건져 올리는 동안 그는 가지고 온 모든 미끼를 피라냐에 헌납하고 말았다. 나도 그를 따라 낚시를 접었다. 낚은 고기를 어떻게 처리할까 물으니 캠프에 먹을 게 많으니 놓아주자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애초부터 고기를 잡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피라냐들에게 먹이를 주는 동안 나는 애꿎은 파야라 셋을 골탕 먹인 셈이었다.
캠프로 돌아와 보니 일찌감치 복귀한 댄이 어제의 것보다 더 큰 파야라를 잡았다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기뻐해주었지만 조금도 부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키란과 크리스는 큰 피콕배스를 낚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지 닉을 졸라 토모강 상류 먼 곳까지 되돌아갔다 오느라 해가 지고도 한참 후에야 나타났다. 크리스는 5kg짜리를 낚았다며 만족해했고, 키란은 아무 말 없이 침실로 들어갔다. 나도 일상으로 복귀하여 처리해야 할 일들과 험난할 귀국길을 걱정하다 일찍 잠에 들었다.
▲프랑스 낚시인 크리스(Chris)가 일정 마지막 날 준수한 씨알의 핀탈라파를 낚고 즐거워하고 있다.
▲보일링을 보고 리퍼를 던져 낚은 5kg급 스페클드피콕배스. 이처럼 몸에 작은 반점이 많은 미성숙한 개체를 현지인들은 ‘핀탈라파(pintalapa)’라고 부른다.
▲독일에서 온 마티아스(Matthias)와 데이비드(David)가 플라이낚시로 피라냐를 낚고 기뻐하고 있다.
귀국 그 후
귀국 이후에도 틈틈이 시쿠아니 사람들의 자연관 및 정치적 상황에 대해 알아보던 나는 놀라운 소식을 하나 접했다. 콜롬비아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인해 올 5월 2일부터 스포츠낚시가 전면 금지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판결로 이어진 소송을 제기한 변호사는 스포츠낚시산업이 원주민들의 생계형 어업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콜롬비아 환경부와 법무부는 강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수익성 있는 신산업의 싹을 잘라낼 뿐만 아니라 낙후지역의 사회경제적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정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러한 정부 부처의 입장에는 여러 이해 집단의 물밑 작업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도 들린다. 두 집단 간의 갈등의 결말이 어찌되든 이번 결정은 깊은 열대우림 속에서 실효성을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스포츠낚시인들과 원주민들이 법의 개입 없이도 합의에 이를 수는 없을까? 스포츠낚시는 보다 윤리적으로 행해질 수 있을까? 콜롬비아 행정부가 말하는 사회경제적 발전이란 훔볼트가 주장한 인류 보편적 진보를 상정한 개념이 아닌가?
나는 오리와 닉에게 2년 후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왔다. 그때 내가 스포츠낚시인, 손낚시인, 혹은 무엇으로서 그들 앞에 나타날 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