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김범철 교수의 호수의 과학 92]
동해안 석호의 환경 훼손
강릉 경포호, 일제강점기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
김범철 강원대 환경융합부 명예교수
전 한국하천호수학 회장
▲동해안 석호와 습지의 위치(자료_허우명).
동해안에는 여러 개의 석호가 있다. 자연호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희소가치가 큰 몇 안 되는 자연호이며, 바닷가에 있다 보니 해수와 섞인 기수호의 특성을 가지는 독특한 서식지로서 생태학적 가치가 크다. 그러나 실상은 인간에 의한 훼손이 심하여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석호는 영어로 라군(lagoon)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석호는 미국의 동해안을 따라 잘 발달한 라군과는 형태가 크게 다르다. 미국의 라군은 해안을 따라 발달한 모래사장과 육지의 사이에 있는 길고 얕은 수역으로서, 호수가 아니라 해수소통이 많은 얕은 바다이다. 우리나라의 석호는 해안의 만입부가 모래톱으로 막혀 격리된 호수의 형태이다. 모래톱으로 바다와 격리되어 있으나 모래 사이로 해수가 스며들고, 파도가 높을 때 해수가 유입되어 염분이 민물과 해수의 중간이며, 이런 물을 기수(汽水)라고 부른다.
동해안 석호의 특징
▲강릉 향호의 수변 습지. 수심이 얕고 습지가 발달한 기수역이 석호의 특징이다(사진_김범철).
기수역은 하구에서도 나타나는데 염분의 변화가 크기 때문에 보통 동물은 살기 어렵다. 생물은 염분에 적응하여 체내의 삼투압을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며, 종마다 적응 가능한 범위가 다르다. 바다의 동물은 체내 삼투압이 해수와 비슷하여 많은 조절이 필요하지 않으나 담수에 사는 동물은 체내 삼투압이 더 높아 끊임없이 침투하는 물을 내보내야 한다. 바다에 사는 동물이 담수에 들어오면 물이 침투하여 세포가 터져 죽는다. 동물의 진화과정으로 본다면 해수가 동물이 살기에 더 유리한 환경이며, 담수에 사는 동물은 특별히 삼투압 조절능력을 획득하여 가혹한 환경에 적응한 진화의 결과이다. 식물의 경우에는 반대로 해수에 살 수 있는 종이 극히 적다. 특히 완전히 해수 중에 잠겨서 사는 침수식물은 잘피 종류 외에는 거의 없으며, 해조류에 비하면 극히 적다.
삼투압 조절능력이 높은 일부 동물은 기수역에서도 살 수 있으며, 바다와 하천을 오가면서 사는 어류도 있다.
이때 기수역이 삼투압 조절을 하면서 몸을 준비하는 전이대 역할을 한다. 동해안의 석호에도 망둥어, 황어, 숭어, 전어 등 염분 변화에 내성이 강한 종류들이 살고 있다. 원래 모든 하천의 하구에는 민물과 해수가 섞이는 기수역이 존재하지만, 우리나라 서해안에 있는 대부분의 하구에 댐을 만들어 담수화하였기 때문에 기수역이 희귀해졌다. 동해안의 석호는 이런 점에서 희소성이 있는 서식지이다.
매립과 개간으로 소실되어 가는 석호의 형태
▲강릉 경포호의 면적 변화. 경작으로 인하여 1950년대 이전에 비하여 호수 면적이 절반으로 줄었다(자료_허우명).
동해안 석호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주변에 얕은 습지가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 경사가 완만한 얕은 습지는 생태계에서 가장 생물다양성이 높고 가치가 큰 서식지인데 경작을 위해 논으로 전환하기도 쉬운 곳이어서 서해안 지역의 습지는 오래전에 대부분 경작지와 대지로 개발되었다. 그나마 동해안에는 석호 주변에 조금씩이나마 남아 있는데, 소중한 서식지이니 농업을 조금 양보하고 남겨 두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석호의 수질악화를 우려하여 수질개선을 위해 여러 가지 대책들을 시행하였는데, 석호를 조사하다 보면 수질보다는 형태를 보전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느낀다. 여러 석호가 변형되면서 소실되어 가는 실태를 바라보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수질은 나중에라도 유역의 오염원 저감으로 개선될 가능성이 있지만, 형태가 변형되어 소실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 변형을 가져오기 때문에 더는 손대지 말고 형태를 보전하는 것이 낫다.
석호가 훼손되는 가장 큰 원인은 매립과 개간이다. 얕은 습지는 둑만 쌓으면 논을 만들 수 있으니 경작을 하고 농지로 불하받는 일이 흔히 일어나 습지가 조금씩 농경지로 전환되었다. 경포호의 경우 과거 일제강점기 면적과 비교하면 절반으로 줄었다. 지금이라면 습지를 보전하고 농지 개간을 하지 않았겠지만, 생태계 보전의 개념이 없던 시절에는 식량 생산이 최우선이었으니 탓할 수 도 없다.
바다와 호수의 사이의 사구에 도로와 건물이 만들어진 것도 석호를 훼손한 중요한 요인이다. 석호와 바다 사이의 모래톱은 유동성이 있고 바닷물의 침투가 쉽다. 비가 많이 내려 호수의 수위가 높아지면 모래톱이 씻겨나가면서 갯터짐이 일어나 해양 어류가 호수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열린다. 그러나 사구의 개발은 모래를 다지기 때문에 석호와 바다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민감한 사구 식생도 훼손시킨다. 현재와 같은 생태학 지식이 있었다면 아마 도로를 석호의 뒤쪽으로 우회 개설했을 것이다.
그나마 화진포의 사구는 개발이 덜 되었는데, 군사지역으로 제한되었던 덕택이다.
준설과 골재채취로 기수역의 특성을 잃어버려
최근에는 수변에 축대를 쌓고 일주도로를 건설하는 것이 주변 서식지와 호수 사이의 생태통로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축대로 가파르게 변한 수변은 완경사 수변에 비하여 생태학적 가치가 떨어진다. 영랑호의 수변은 일주도로를 만들면서 서식지가 크게 훼손되었다. 선진국에서는 대개 한쪽만 개방하고 일부는 삼림과 연결되어 동물이 이동할 수 있도록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남겨 둔다. 굳이 일주도로를 만들어 한 바퀴 돌아보려는 과욕은 없었으면 좋겠다.
준설과 골재채취도 수심을 깊게 변형하는 부정적 요소이다. 동해안 석호 퇴적층 깊은 곳에는 산업용으로 쓰이는 질 좋은 모래가 있어 이를 채취하려는 의도가 오랫동안 개발 압력으로 작용하였다. 향호에서는 오랫동안 골재채취가 이루어져 수심이 14m에 이를 정도로 깊어졌다. 원래 일반적인 해안 석호의 수심이 1m 이내인 것과 비교하면 비정상적인 큰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외에 경포호, 영랑호 등도 수질개선을 명목으로 준설을 하였는데 골재채취가 목적이 아니었나 의심스럽다.
▲골재채취로 수심이 깊어진 강릉 향호의 산소분포.
염분이 높은 심층수와 염분이 낮은 표층수가 성층현상으로 격리되어 산소 고갈이 나타난다(2017년 5월 25일 자료_김범철).
준설로 수심이 깊은 곳이 생기면 그곳은 해수면보다 낮아 해수 침투가 많고, 염분이 높아 상층의 담수와 섞이지 않는 영구 성층현상이 나타난다. 염분이 높으면 밀도가 커서 아래로 가라앉아 있으며 수심이 깊어 잘 혼합되지 않는다. 혼합이 억제된 심층은 산소가 없고 유독한 황화수소가 발생하는 죽음의 물이 되는데 가끔 강한 폭풍이 불면 황화수소가 표면으로 올라와 물고기가 대량 폐사하는 사고도 일어난다.
염분을 변화시키는 것도 큰 훼손 요인이다. 경포호와 영랑호가 대표적 사례인데, 원래 기수호였으나 모래톱에 도로와 건물을 지으면서 바다와 차단되어 거의 담수화 되었었다. 그러다가 하수의 유입으로 수질이 악화되자 수질개선을 위해 준설도 하고 바다로 통하는 수로를 크게 만들어 해수유통을 증가시켰다. 그 결과 이번에는 완전히 해수호로 변화되어 얕은 기수호의 원래 특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청초호는 크게 준설하여 오래전에 항만으로 개발되었다.
변형되고 소멸되어 가는 석호를 보면서 이제 남은 것이라도 잘 보전되기를 소망해 본다.
▲도로와 관광개발로 수변 식생이 훼손된 속초 영랑호(사진_김범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