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나무 서랍 안에 아크릴, 2023. 100여 년 전 프랑스 신부가 가져온 36개의 나무서랍 안에 한국의 민화와 상징물을 재구성하여 표현했다.

본지에 만화와 삽화를 그리고 있는 탁영호 씨의 개인전 ‘오래된 지금’이 지난 2월 4일부터 3월 4일까지 서울 성동구 갤러리R에서 열렸다. 평소 고가구, 화병, 전축 등 오래된 물건 수집이 취미인 그는 이 사물들에 그림을 접목해 독특한 분위기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골수 낚시인답게 그림엔 물고기도 빠지지 않았다. ‘오래된 지금’에 전시된 작품들을 지면에 싣는다.<편집자 주>

‘오래된 지금’은 계속 현재형으로 진보할 것이다

몇 년 전에 나에게 값진 물건이 들어왔다. 대충 보아도 오래된 물건이었다.

그건 100여 년 전에 프랑스의 어느 신부가 한국으로 가져온 서랍장이었고, 36개의 서랍 안에는 세월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우선 깨끗이 닦고 수리한 후에 어디에 쓸 것인지를 고민하였다. 결론은 여러 크기의 서랍 안에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나는 36개의 다양한 표정의 인물 얼굴을 표현하려 했고, 이 표정들을 통해 시대의 흔적을 남기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의 시간 동안 방치되었다.

작년 여름에 다시 서랍을 꺼내었다. 이제는 뭔가를 그려야 할 시간이 왔다. 곰곰이 며칠을 바라보다 우리의 민화와 상징물을 표현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민화의 매력은 이야기가 있는 우리의 그림이다.

상징적 표현이 뛰어나면서 해학적인 비율과 구성, 구도는 회화 장르 중에서 매우 독특하다. 옛 그림의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민화를 재창조하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나는 많은 자료수집과 관련 저술을 통한 학습을 하며 민화를 이해하려 했다. ‘오래된 지금’ 즉 오래된 서랍장과 그림들을 지금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의외로 작업이 까다로웠다.

10cm 정도의 서랍 깊이 안에 세필로 서너 번의 덧칠을 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았고, 몸을 비틀면서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다보니 피로도는 상승되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겨울이 오고 해를 넘기고서야 여러 개의 상징적인 만물 문양을 하나의 내용으로 모아 재창조된 36개의작 업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림의 내용과 부합되는 각종 모양의 연적을 오브제로 부착하였다. 마침 모아두었던 함지박과 됫박, 거울, 경대, 연적 등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독립적인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이 물건들도 각각의 사연이 있는 오래된 것들이다. 시인 이상의 시 ‘거울’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과 상서로운 문양과 민화를 응용해 좀 더 입체적인 작업도 하였다. 이젠 지금의 것이 되었다.

▲갤러리 중앙 벽면에 세워 놓은 100여 년 전 프랑스 고가구 나무서랍. 36개의 나무서랍 안에 한국의 민화와 상징물을 재구성해 표현했다.

▲근심｜복합재료, 2023. 복합재료를 이용하여 천방지축 미물에 대한 상념을 표현했다.

▲바라봄｜나무위에 아크릴, 2023. 불안하게 응시하는 시선을 통해 자신의 시선을 유추해본다.

▲거울1｜함지박과 거울 위에 아크릴, 2023. 시인 이상의 ‘거울’에 대한 오마주. 현실에 부합될 수 없었던 시인의 형이상적 관념을 표현했다.

▲거울2｜함지박과 됫박 위에 아크릴 후 오브제 부착, 2023. 제한된 상상의 틀 속에 갇힌 시인 이상의 출구를 표현했다.

▲거울3｜거울 위에 아크릴, 2023. 이중 삼중의 내면속 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인 이상.

▲만복｜경대 거울 위에 아크릴, 2023. 민화 속의 만복과 길조를 표현했다.

▲귀면도｜경대 거울 위에 아크릴, 2023. 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귀면도와 다복을 기원하는 포도, 연잎으로 길조를 형상화했다.

▲호랭이 뿔｜경대 거울 위에 아크릴, 2023. 좋은 기운을 가진 호랑이의 위상을 표현.

▲knockin on heavens door 작품이 중앙을 차지한 전시장. 우측 벽면에 아크릴화를 입힌 토기와 철기를 전시했다.

▲knockin on heavens door｜캔버스 위에 아크릴, 2023. 1997년 개봉한 영화 knockin on heavens door(토마스 얀 감독)의 마지막 장면을 재해석하여 삶의 단편적 조각들을 표현했다.

▲수면 위의 두 얼굴｜함지박과 됫박 위에 아크릴 후 오브제 부착, 2023. 마주보는 삶의 상생을 형상화.

▲쌍학문｜나무 위에 아크릴, 2023. 구름과 학의 고고함을 표현했다.

▲화접문과 두 얼굴｜함지박과 됫박 위에 아크릴 후 오브제 부착, 2023. 길조를 기원하며, 조합과 부조합의 경계를 표현했다.

탁영호 만화가. 본지에 낚시만화 「아치와 머리」를 연재했으며 현재 삽화를 그리고 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1982년 단편만화 「학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시작으로 「마르스와 조센삐」, 「도바리」 등 많은 단편만화와 장편만화를 남겼다. 2014년에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린 「꽃반지」로 부천만화대상 어린이상을 받았다. 현재 충북 옥천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