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이 이세돌을 이기면서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일반인의 실생활에는 아직 체감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사용되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주로 만들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챗지피티(ChatGPT)라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공개했는데 이것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용이 간편하고 마치 사람에게 질문하듯이 대화형으로 질문을 하면 그 문장을 알아듣고 답변을 잘 정리하여 제공해 준다.

지금까지 어떤 주제에 대해 리포트를 작성하려면 인터넷을 뒤져서 자료를 수집하여 읽어 보고 여러 자료 가운데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것을 사실로 간주하여 정리하고 이를 문장으로 작성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인공지능이 대신해주는 것이다. 주제를 제시해 주면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인터넷의 자료들을 순식간에 정리하여 한 페이지 리포트를 작성해 준다. 리포트 숙제에 시달리는 학생들에게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컴퓨터가 해답을 얻는 방법은 과거에는 과학적 추론에 의해 하나씩 계산을 하는 것이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수식으로 나타내고 이 수식을 이용한 계산에 의해 답을 낸다. 1과 2를 더하면 3이 되고, 이 값이 2배가 되면 6이 된다는 방식이다. 이를 기계식 모델이라고 한다.

필자가 많이 사용하던 호수의 수질을 예측하는 모델도 이 방식이다. 그런데 21세기에 들면서 다른 방식의 모델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과거의 자료들을 모아 보니 1과 2를 조건으로 입력하는 경우에 호수의 수질은 대략6이 되더라는 경험을 토대로 6이라는 답을 얻는다. 그 답을 얻는 과정의 수식을 몰라도 상관없다. 많은 자료만 있으면 된다.

이를 경험적 모델이라고 한다. 이 방법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모두 정확한 수식으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꿩 잡는 게 매’라는 인식이다. 왜 그런지 과정은 모르더라도 결과만 얻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호수의 경험적 수질모델에서는 많은 호수의 유역 조건과 수질을 입력해 두면 새로운 조건의 호수를 입력하였을 때 유사한 호수의 조건을 찾아서 수질을 예측해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경험적 모델의 단점은 과거에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의 범위를 벗어나는 조건에서는 예측할 수가 없다. 이때는 기계식 모델과 경험적 모델을 융합하는 모델을 만들면 더욱 좋은 모델로 발전한다.

근래에 경험적 방식이 더욱 발전하면서 컴퓨터가 수식만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를 인식하는 단계까지 발전하자 이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자료 입력이 축적되면 스스로 모델을 수정하여 더 좋은 결과를 내므로 이를 ‘학습한다(machine learning)’라고 표현한다. 인공지능이 일반인에게 알려진 계기는 이세돌과의 바둑대결이었다. 과거의 바둑 기보를 학습시키자 바둑에서도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 세종시의 호수공원. 호수의 경관가치의 중요성을 시사한다(자료_위키백과).

최근 수년 사이에 인공지능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컴퓨터의 연산능력이 커지면서 많은 자료를 읽어 들이고 저장하며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급기야는 일반인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이다.

호기심에 챗지피티 사용을 시도해 보았다. 호수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시를 써 달라고 하자 순식간에 ‘평화로운 파란 하늘, 수면에 비친 경치’ 운운하는 그럴듯한 시 한 편을 작성해 주었다. 호수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많은 시들을 모아서 흔히 나타나는 표현들을 모았으리라. 한국어로 시를 써달라고 하자 영문 시를 억지로 번역한 듯한 어색한 시가 나타났다. 아직 한국어 공부는 많이 하지 않은 것 같다.

질문을 또 던져 보았다. 호수의 가치 가운데 가장 경제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물었다. 답은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가 가장 크다는 것이다. 물론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수자원 공급이 큰 가치를 가질 것이지만 호수가 많은 미국의 기준으로 본다면 관광자원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낚시,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여가 휴식 장소를 제공하여 삶의 질을 높이며, 사람들이 물을 바라보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인근의 부동산 가격이 높아진다는 장점도 제시하였다. 호수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소비로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호수의 가치를 논할 때 수자원 공급과 홍수방지를 거론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는 저평가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저수지를 만들기 위해 작성한 평가서들을 보면 수자원공급량, 홍수피해 저감액 등은 정확히 손익계산에 포함하고 있지만 경관가치, 주변의 부동산가치 증가, 낚시 물놀이터로서의 가치, 관광증진에 의한 지역경제 활성화는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호수가 경관자원으로서 중요하다는 것은 은연중에 우리 생활 속에 녹아 있다. 경복궁을 비롯하여 궁전에는 여러 개의 호수가 있고, 신도시에는 호수공원이 있다. 호수의 경관이 큰 경제적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낀 계기는 1993년 일산의 호수공원을 만들 때 해준 수질조사와 수질관리 자문이다.

당시 허허벌판 모래땅에 거대한 인공호를 만드는 것이 내 눈에는 사치스럽게 보였다. 지반이 모래이므로 물이 빠지지 않게 차수시트를 깔고 그 위에 시트 보호를 위한 모래를 덮고 그 위에 큰 돌들을 덮었다. 당시 공사비가 100억원 정도라고 하기에 토지공사 직원에게 왜 만드는지 물었더니 그래야 경관이 좋아서 주변 토지가 잘 팔릴 것으로 예상한다는 것이었다. 그 후 호수공원 주변의 아파트 값이 호수가 보이지 않는 곳보다 더 비싸다는 말을 듣고 호수의 경관가치를 예견한 토지공사의 안목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후 도시 개발 지역을 보면 으레 한 가운데에 호수가 만들어진다. 가장 큰 도시 인공호는 세종시의 호수공원인 것 같다. 세종시 방문 시에 종종 들러 호수의 잉어를 바라보다가 돌아오곤 한다.

챗지피티에게 미국의 낚시인들이 낚시에 돈을 얼마나 쓰는지 물어보았다. 연간 200만원 정도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그러니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가 이해된다. 수질보호를 위해 낚시를 금지할 필요가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당연히 미끼가 부영양화의 원인이 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유역의 하수 등 수질오염의 큰 요인들을 줄이는 데에 주력하는 것이 옳다는 답변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