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군 3대 원도 중 가장 멀리 떨어진 가거도는 국내 최고의 감성돔낚시터다. 만약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충분할 때 가장 가고 싶은 원도를 꼽으라면 가거도가 단연 압도적 1위일 것이다. 풍부한 감성돔 자원과 더불어 너무 멀어 쉽게 갈 수 없는 섬이라는 희소성이 한 몫을 하기 때문이다.

▲ 매서운 북서풍이 몰아치고 있는 성건여 일대. 맞은편 왼쪽에 툭 튀어나온 포인트가 본섬 높은자리, 우측 콧부리가 노랑섭날, 우측 하단 검은 갯바위가 성건여 도하 포인트다.

▲ 취재 마지막 날 앞면 진취안통 포인트에 내린 부산 김성식 씨가 감성돔을 뜰채에 담아내고 있다.

3년 전인 2019년에 가거도를 다녀온 후 첫 가거도 원정이다, 이번 취재에는 부산의 ‘가거도통’으로 통하는 김성식 씨 일행이 합류했고 함께 묵을 민박집은 엔젤민박으로 정했다.

엔젤민박은 여객선이 닿는 가거도1구에 있다. 선착장 서쪽 끝에 있으며 가거도의 여느 낚시민박과 마찬가지로 작은 규모였다. 규모와 상관없이 선장님과 주인 아주머니가 친절하고 특히 식사가 잘 나오는 곳으로 가거도에서는 손에 꼽히는 민박집이다.

나는 김성식 씨 일행보다 하루 늦은 12월 28일에 가거도로 들어갔는데 하필 그때가 짝수 날이어서 오후에만 여객선이 출항, 저녁 6시가 다 돼서야 가거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중 나온 엔젤민박 박현호 선장님과 인사를 나눈 후 화물트럭에 짐을 싣고 민박집으로 향했다. 마침 저녁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오전낚시를 마치고 돌아온 김성식 씨가 반갑게 나를 맞았다. 얼굴에 행복한 표정이 가득하기에 오랜만에 나를 봐서 그런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푸짐한 조황 때문이었다. 아침에 앞면의 동대문 포인트로 들어가 총 18마리의 감성돔을 낚아왔다고 한다. 요즘 가거도 조황이 엄청 좋다더니 사실이었다.

김성식 씨는 전날 오후에 낚은 감성돔은 모두 손질해 말렸고 이날 낚은 놈 중 40cm 이하급도 모두 손질할 예정이었다. 엔젤민박 마당 앞 빨랫줄에는 손님들이 손질해 말린 감성돔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지금껏 가거도를 다니며 이렇게 많은 감성돔이 건조되는 것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낚시도 하기 전에 벌써 10마리 이상은 올린 기분이었다.몇 컷을 카메라에 담고 식당으로 들어서자 이번에는 진수성찬이 시선을 끌었다. 해물찜과 도미찜, 말린 농어로 끓인 맑은탕(지리) 등이 나왔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특히 각종 해산물이 가득 들어간 해물찜에 민박집 손님 모두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처럼 최근의 가거도 민박집의 손님 유치 경쟁은 포인트도 포인트지만 먹거리 경쟁으로도 치닫는 모양새다. 워낙 식사가 잘 나오니 ‘감성돔을 못 낚아도 밥 먹는 재미에 가거도까지 온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엔젤민박이다.

이튿날 아침, 김성식 씨와 함께 앞면의 동대문 포인트에 내렸다. 예보상으로는 날씨가 양호했으나 막상 포인트에 내리니 너울과 바람이 거셌다. 확실히 국토 최서남단인 만큼 일기예보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게 가거도다.

수심 8m를 주고 발밑부터 천천히 더듬어 나갔다. 역시 가거도 전문가답게 낚시 시작 5분 만에 김성식 씨가 첫 입질을 받았다. 그리고 10분 뒤 또 한 마리 추가. 그런데 씨알이 영 가거도답지 않았다. 두 마리 모두 갓 40cm 넘겼기 때문이다.

내가 채비를 끝내자 김성식 씨는 자신이 섰던 자리를 내게 양보하고 안통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나도 입질을 받아 연속 4마리를 올렸다. 김성식 씨가 말한 세 군데에서 정확하게 찌가 빨려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김성식 씨가 5마리, 내가 4마리를 낚으며 첫날 낚시를 마칠 수 있었다. 전날 김성식 씨가 혼자 낚은 18마리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바람이 터져 오후낚시가 불가능했던 점을 감안하면 양호한 조황이었다.

철수 뒤 선착장에서 출조한 낚시인들의 조황을 살피는데 마릿수는 푸짐했지만 5짜가 넘는 녀석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올해 가거는 시즌 초반인 11월 말까지는 5짜가 종종 섞여 낚였으나 본 시즌인 12월 초중순을 거치면서 40cm 전후 씨알이 주종으로 낚이기 시작했다.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단골 낚시인들은 ‘가거도에 많은 낚시인이 몰리는 바람에 큰 씨알이 너무 많이 뽑혀 나간 것 아니냐’는 추측도 하고 있으나 그보다는 갈수록 심해지는 바다의 이상현상 때문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단순히 수온의 높고 낮음보다는 ‘성질이 다른 조류대’가 가거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런 현상은 이번 겨울 추자도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발생하고 있다.

▲ 선라인FG 경남지부 임규천, 제영호 회원이 올린 굵은 감성돔을 자랑하고 있다.

▲ 가거도 1구에서 출항하는 엔젤민박의 뉴엔젤호.

▲ 엔젤민박의 간소한(?) 첫날 저녁 상차림. 매일 저녁마다 다양한 산해진미가 등장했다.

▲ “반갑습니다 선배님~” 김성식(왼쪽) 씨와 이덕화 씨의 단란한 한때. 김성식 씨는 이덕화 씨의 초등학교 후배다.

▲ 영덕에서 온 이상록 씨가 올린 조과. 비교적 굵은 씨알로 재미를 봤다.

▲ “오전 두 시간 동안 올린 조과입니다.” 김성식 씨가 취재 둘째 날 밭면 동대문 포인트에서 올린 조과를 자랑하고 있다.

▲ 앞면 진취안통 포인트에서 감성돔을 노리는 낚시인들.

둘째 날은 양평에서 온 양동진 씨와 함께 성건여 뒤편의 일명 음지다랭이라는 포인트에 내렸다, 아침을 빼곤 오후 내내 음지가 되고, 바로 옆에 물이 고인 커다란 물칸이 있다고 해서 음지다라이 또는 음지다랭이로 불리는 자리다. 발밑 골자리와 전방 수중여 너머를 원투로 공략하면 굵은 감성돔이 잘 낚이는 포인트다. 그러나 이날 역시 강풍이 정면에서 불어 캐스팅이 어려웠고 망상어로 예상되는 잡어도 많아 낚시가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1.5호 구멍찌에서 2.5호 구멍찌로 바꿔 바닥층을 신속하게 공략하는 낚시를 시도했다. 그 덕분일까? 두 번째 캐스팅 만에 42cm 감성돔이 한 마리 올라왔고 한 시간 뒤에는 전방 20m 지점의 수중여 뒤편을 노려 비슷한 씨알을 뽑아낼 수 있었다. 오후 들물 때는 성건여 방향으로 20m가량 이동해 40cm급 두 마리를 추가할 수 있었다. 이날 역시 거의 모든 포인트에서 감성돔이 모습을 비췄으나 씨알은 전날과 다를 게 없었다.

가급적 빠른 철수를 위해 1구에서 가까운 진취안통 포인트에 내렸는데 이곳에서 총 4마리의 감성돔을 낚을 수 있었다. 오전 3시간 동안 4마리라면 썩 나쁜 조과는 아니었으나 역시 이날도 씨알이 아쉬웠다. 3일 동안 하루에 4마리씩 따박따박 올라와 총 12마리를 낚았는데도 5짜가 없다니… 분명 가거도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함께 출조한 낚시인들은 ‘아직 수온이 높아서 그런 것 같다. 1월 하순 쯤에는 가거도다운 씨알이 낚일 것이다’라고 예상 했지만 과연 그렇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편 마지막 날에는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해프닝도 발생했다. 철수를 위해 나를 태우러 온 뉴엔젤호를 타고 1구 인근 거북바위에 내린 김성식 씨가 예상 못한 초대형 바다거북을 올린것이다.

무게 5kg에 달하는 이 바다거북은 정확하게 크릴 미끼를 물었고, 김성식 씨는 원줄 2.5호 2호 목줄로 녀석을 무사히 끌어냈다. 김성식 씨는 손잡이대까지 휘어지는 엄청난 무게감에 “지금껏 감성돔 기록이 58cm였는데 드디어 6짜 아니 7짜를 걸었다고 생각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철수배에 오른 이 바다거북은 엔젤민박 손님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바다로 돌려 보냈다. 원래 앞면 거북바위 포인트는 단순히 갯바위 지형이 거북이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이번에 김성식 씨가 바다거북을 실제로 낚아냄에 따라 거북바위 포인트에 새로운 ‘전설’이 생겨나게 됐다.

▲ “거북바위에서 진짜 거북을 낚았습니다.” 김성식 씨가 찌낚시로 올린 5kg급 바다거북을 보여주고 있다.

▲ 양평에서 온 양동진 씨가 음지다랭이에서 올린 조과를 자랑하고 있다.

▲ “올해 가거도는 마릿수 대박입니다.” 부산에서 온 백승만(왼쪽), 김성식 씨가 진취안통에서 올린 조과를 자랑하고 있다.

▲ 가거도 감성돔을 낚을 때 사용한 장비와 채비. 엔에스 알바트로스 브이아이피 프로 릴대와 테크니션 초원투 구멍찌 채비를 사용했다.

▲ 가거도 현지 낚시인 김길영 씨가 장갓살 포인트에서 올린 푸짐한 조과를 자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