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0년 영국에서 등장한 세계 최초의 릴, ‘멀티플라이어(Multiplier)’. 헤이우드(Haywood)사 제품으로 릴풋(reel foot), 역전방지 레버, 상아(象牙)로 만든 손잡이가 부착되어 있다.

역사를 훑어보면, 릴은 비슷한 도구가 13세기 중국의 남송(南宋)시대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당시 남겨진 그림에 낚싯대에 릴처럼 생긴 도구가 붙어있다. 이것을 릴로 보아도 될까? 그밖에, 세계 어디를 가도 어부들이 사용하던 전통적인 어로 도구로 ‘줄감개’가 부착되어 있던 예는얼마든지 있는데, 이것을 릴의 부류에 넣어야 할 것인지? 이에 관해서는 낚시인 개인 판단에 맡기고자 한다.

영국은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산업혁명을 일으킨 나라이다. 더욱이 아시아,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세계 여러 곳의 식민지 정책을 통해 얻은 막대한 천연자원과 노동력을 바탕으로 지구상의 최강국인 대영제국으로 군림했었다. 방적기 발명, 증기기관의 발명, 제철산업의 선진화 등 크게 3가지로 압축되는 산업혁명 덕분에 영국 사회의 귀족계급은 물론, 신흥 자본가들은 식민지의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경제적, 시간적 여유와 이에 기인한 기호품에 대한 몰두는 지구상 오지를 탐험하여 신소재를 발견하고, 첨단기술을 적용해 신문물을 발명하기에 충분했다. 여가생활, 취미생활에 사용하는 각종 도구에도 새롭게 찾아낸 신소재에 창의적인 기술력을 더했다. 물론 낚시도구도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여 기능성을 높인 제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아시아의 정글에서 낚싯대로 만들기에 딱 맞춤한 특별한 대나무인 ‘통킹케인(Tonkin cane bamboo)의 발견’이라든지 멀고 깊은 곳에 있는 물고기를 힘들이지 않고 낚을 수 있게 해주는 ‘릴의 발명’이 여기에 해당한다.

현대적인 형태를 한 판매를 목적으로 한 상품으로서의 낚시용 릴은 17세기 중반인 1650년경부터 존재하는데 물고기와 겨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분의 낚싯줄을 감아두는 수납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공산품이지만 대부분 생산자 표시가 없는 무명의 노브랜드 제품으로 ‘릴’이 아니라 ‘윈치(winch)’라고 불렸다. 낚싯대에 결합해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뱃전에 나사로 고정하는 형태였으며 내부에 기어가 없이 스풀 축에 붙어있는 핸들을 직접 돌려 감는 방식이었다. 이는 릴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는데, 진정한 릴의 형태를 한 제품은 약 100년 후인 1770년 전후 산업혁명 시기에 등장했다.

이때부터 노브랜드가 아닌 소위, 메이커 제품이 등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의 영국 내 낚시용품 제조업체였던 ‘어스톤슨(Ustonson)’, ‘헤이우드(Haywood)’ 등에서 만든 제품이 대표적으로 남아있다. 이들 제품은 단순한 낚싯줄 감개가 아니라 진짜 낚시용 릴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릴 몸체인 프레임을 만들고 스풀을 따로 결합한 형태로 외부에 붙인 핸들이 변속기어를 돌려 스풀에 낚싯줄을 감는 방식을 채택했다. 현재의 릴과 다름없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스풀을 직접 돌리는 것이 아니라 변속기어를 이용해 훨신 빠르게 스풀을 돌려 낚싯줄을 감는 형태를 ‘멀티플라이어(Multiplier)’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바로 현대적인 ‘릴의 원조’라고 말할 수 있다.

초기형태의 멀티플라이어는 낚싯대와의 결합에 클램프를 이용하는 형식이었지만, 곧 ‘릴풋(reel foot)’을 도입하였다. 이 릴풋의 등장은 낚싯대에 표준화된 ‘릴시트(reel seat)’라는 개념도 도입하게 만들어 현대적인 릴낚싯대가 등장하는 계기도 제공했다. 더욱이 스풀이 전후 양쪽 방향으로 돌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풀의 회전을 정지시키는 역전방지 기능도 설치되었다.

이렇게 릴은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멀티플라이어의 등장으로 인해 낚시계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 낚시인이라면 모두가 릴을 사용했느냐 하면,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실은 영국 국내에서 멀티플라이어는 인기가 별로 없었다. 그 이유로 가장 흔히 거론되고 있는 의견은, 영국의 호소와 하천이 소규모라는 점과 거기에 서식하는 주요 대상 어종이 송어라는 사실이었다. 멀티플라이어와 같은 릴을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낚시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실제로 영국에서는 이후, 송어낚시에 더 적합한 플라이릴과 스피닝릴의 개발이 있었다.더욱이 릴의 대중화는 시기상조였음도 한몫을 했다. 산업혁명 이후, 수많은 공산품이 생활 전반에 공급되기 시작했지만, 취미용 낚시도구인 릴은 일반 평민,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고가의 사치품에 속했다.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귀족과 평민이라는 계급이 무너지는 시기이긴 하지만, 계층 간 갈등이 시작되고 부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진 시기이기도 하였다. 당시에 호구지책으로서가 아닌 여가, 취미활동으로서의 낚시와 사냥은 귀족과 같은 권력층만이 누리던 문화생활이었다.

어로 도구가 아닌 취미활동용 기호품인 릴은 낚시에 몰두하던 열성적인 귀족 중 누군가가 아이디어를 내고 공장의 기술자에게 의뢰하여 만들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낚시를 좋아하는 귀족이나 신흥부호가 직접 공장을 세워 낚시도구의 개발을 즐겼을지도 모르고 실제로도 그러했더랬다. 유복한 귀족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성취감이지 릴을 판매해서 얻는 경제적인 수익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멀티플라이어는 당연하게도 귀족용의 기호품이자 사치품이었기에 평민이 구매해 사용하기에는 너무 높은 벽이 존재했다.

멀티플라이어가 영국에서 대중화되지 못했던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영국의 낚시환경 때문인데, 영국의 호소와 하천은 대부분 왕족과 귀족의영지에 속해 있고 그들이 독점 관리해 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즉, 아무나 낚시를 할 수 없고 낚시를 즐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그들 특권층뿐이었다. 일반 평민은 시중을 들 수는 있어도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것은 불을 보듯 뻔해 대중화의 걸림돌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이런 귀족의 영지로 관리되어 오던 호소와 하천은 현대의 낚시에 긍정적인 효과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여담이지만, 영국의 귀족 지주들은 당시부터 자원보호 목적으로 포획 시기의 제한을 설정하고 낚시와 사냥에 면허제를 도입하였다. 그 결과, 서구세계에 있어서 낚시가 게임이자 스포츠란 개념이 정착되는 기초가 마련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멀티플라이어는 영국에서 처음 만든 세계 최초의 릴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발전 없이 영국 내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러나 미국으로 수출된 멀티플라이어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 원인은 역시 낚시환경과 대상 어종이었는데, 영국과 달리 미국의 호소와 하천은 대규모이고 서식 어종도 힘이 강한 배스가 주류인 덕분이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미국에서 재해석된 멀티플라이어는 베이트캐스팅릴로 또 트롤링릴로 진화했다.

▲ 릴의 형태이지만 진정한 릴은 아니었던 ‘윈치(winch)’. 단순한 낚싯줄 보관 기능만 있었다.(國吉昌秀, ベールアームは世界を回る, 東京: 釣り人社, 2008, p9)

▲ 세계 각국의 전통적인 어로 도구에는 낚싯줄을 수납할 수 있는 줄감개가 부착되어 있던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 영국 산업혁명의 상징인 석탄 연료의 굴뚝공장. 제철산업에도 혁명이 일어나 제련이 쉬워졌다(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