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로 말미암아 시린 겨울처럼 받은 스트레스에 지친 나에게 휴가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친구들과 노형피싱샾에 모여 추천 채비와 포인트 공략법 등을 듣고 밑밥을 준비하고 찬바람이 불면주면 반응하는 마라도로 향했다. 고기는 잡아도 그만 못 잡아도 그만이었다. 그저 친구들과 바다에 채비를 흘리며 품질하고 있기만 해도 행복할 것이다.

지난 11월 24일에 마라도에 도착. 포인트에 서니 잡어인지 잔챙이인지 자꾸 크릴을 도둑맞아도 즐거웠다. 어느새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충만하게 차오르는 에너지에 ‘그래 이 맛에 낚시 하는 거지’하고 생각하는 순간 ‘대대대대댕!’하고 스풀을 잡고 있던 손가락이 튕기며 원줄이 풀려 나갔다. 대를 세워봤지만 험악한 바닥지형에 채비가 쓸려 터지고 말았다. 해가 지고 더는 입질이 없어 철수.

다음날 새벽에 동이 트기 전에 자리덕으로 향했다. 전날보다 조금 강한 채비를 선택했다. 구형이지만 마스터 모델 미장M50에 조무사 2호 원줄(피싱기어), 2호 목줄로 채비했다. 껌껌한 바다에 전자찌를 밝혀 흘려주며 전날 놓친 그놈을 생각하는 찰나에 전자찌가 보이지 않는다.

두어 번 풀리던 드랙이 더는 풀리지 않는 게 확인된 순간 대물임을 직감하고 두 번째 파이팅을 시작했다. 끌려오는 듯하다 엄청난 무게로 버티는 녀석을 낚싯대의 허리로 띄우고 감고를 반복했다. 드디어 뜰채 사정거리까지 끌고 오는데 성공. 어슴푸레 밝아오는 시야에 빨래판 만한 벵에돔의 어체가 보이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친구는 자신의 낚싯대는 팽개치고 뜰채를 들고 흥분해서 외쳤다. 마지막 몸부림을 끝으로 뜰채에 담긴 녀석. 10년 묵은 체증이 일순간에 사라지는 마법 같은 카타르시스. 이 맛에 낚시를 하는 것일까?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해 하며 자연의 위대함을 한껏 만끽한 제대로 힐링한 느낌. 다음 달에도 친구들과 함께 방문하기를 약속하며 마라도 낚시를 마무리했다.

▲ 제주 마라도 자리덕에서 52cm 벵에돔을 낚은 필자.

▲ 계측자에 올리니 52cm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