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론으로 촬영한 넙개 포인트. 가파도를 대표하는 명 포인트다. 멀리 보이는 곳은 서귀포 해안이다.

벵에돔 활성도가 높아지는 적서수온 22도에 근접하면서 제주도 전역에 벵에돔 꽃이 활짝 피었다. 제주도 벵에돔 시즌은 월별로는 4월과 5월 사이 어한기를 보낸 후 5월에서 6월 사이 고사리장마를 시작으로 꽃을 피운다. 9월 중순경까지는 잔 씨알의 벵에돔이 주로 나오다가 10월에 접어들면 우도, 차귀도에 이어 남쪽인 지귀도, 범섬, 섶섬에서 활황을 보인다. 특히 수온이 점차 내려가는 12월 즈음부터 3월까지 가파도와 마라도에서 마지막 긴꼬리벵에돔이 핫시즌을 맞는다. 같은 시기 햇볕이 잘 드는 수심 낮은 여밭 지형을 갖춘 지귀도, 차귀도, 가파도, 마라도에서는 대형 일반 벵에돔을 기대해볼 수 있다.

소개하는 가파도는 제주도의 이름난 대물 낚시터다. 독개, 넙개, 자장코지, 악근여, 상동방파제, 두성 일대 등 씨알과 마릿수 모든 면에서 제주도 최고의 명당들이다. 일반적으로 가파도는 12월에 들어서야 마라도와 더불어 활황을 보이는데 촬영에 나선 10월 중순은 마릿수는 많지만 잔 씨알이 주로 낚여 아직은 이른 감이 있는 시기다. 그러나 이미 준수한 씨알들이 붙어 목줄을 터트리고 있다는 소식에 지난 10월 13일, 지인들과 함께 가파도로 들어가 보았다.

오후 2시경 모슬포여객선터미널 인근 운진항에서 일승피싱호를 타고 가파도 넙개 포인트로 들어갔다. 넙개는 가파도 동쪽에 있는 등대섬으로 조류 소통이 좋고 주변 수심은 얕으며 수많은 여밭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까이는 200m 이내, 멀게는 1km 이내 지점에 수심 60~110m의 깊은 해구가 있어 굵은 벵에돔의 서식환경으로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날 물때는 9물이었고 하선한 시각은 오후 2시, 초썰물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넙개는 북서쪽 여밭이 드러나는 중썰물 이후가 최고의 물때인데 이날은 모든 조건이 잘 맞아 떨어졌다.

하선 후 채비를 꾸린 후 일단 북서쪽 여밭이 드러나기를 기다리면서 넙개 중간의 계단자리에서 낚시를 시작했다. 채비를 꾸리고 서너 주걱의 밑밥을 발밑에 뿌리며 잡어의 움직임을 파악해보았다. 용치놀래기와 자리돔이 주된 잡어였고 밑밥 몇 주걱을 더 던져 넣자 표층에서 1~2m까지 잔 벵에돔이 활발하게 먹이활동 하는 게 보였다. 활성도가 좋다고 판단돼 제로찌채비를 세팅했다.

이날 나의 장비와 채비는 다음과 같다. 낚싯대는 시마노사의 이소리미티드 1-500/530 줌대, 어신찌는 0호찌, 원줄은 갯바위 전용 합사 0.6호를 사용했다. 목줄채비는 서스펜딩형 나일론사 쇼크리더 2호 3m, 1.7호의 목줄을 6m 길이로 직결했다. 바늘로부터 3m 위치에 제로스토퍼를 장착했고 바늘은 벵에돔 전용 5호를 묶었다.

올려보니 30cm 정도의 긴꼬리벵에돔이었다. 첫 캐스팅에 즉시 입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채비를 하던 도중에 던진 밑밥 효과였다.

점점 조류는 빨라졌지만 대각선으로 뻗지 않고 좌측에서 낚시하는 일행들 있는 곳으로 달라붙었다. 바람 또한 좌측에서 우측으로 강하게 불어 원줄 관리가 불편한 상황. 원줄이 우측으로 크게 반원을 그리게 되면서 채비와 밑밥 동조에 어려움이 생겼다. 가능하면 라운드형이 되지 않도록 원줄을 관리하며 뒷줄 견제를 해주자 간간이 벵에돔 입질이 들어왔다.

고맙게도 상황이 나빠지자 같이 간 일행이 나에게 좋은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마침 중썰물이 되며 북서쪽 우측 곶부리 지역의 간출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넙개는 썰물 본류가 북서쪽 콧부리를 지나 마라도 방향으로 움직일 때가 좋은데, 본섬에서의 썰물 조류는 왼쪽으로 말려 남쪽 갯바위로 달라붙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공략 범위가 짧고 까다롭다. 반면 북서쪽 콧부리는 바로 옆을 지나므로 본섬에 비해 공략 범위가 길고 본류가 대각으로 뻗어준다면 최상의 조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날 내가 마주한 본류는 대각으로 뻗지는 않았지만 강한 힘을 가지고 우측 갯바위를 지나고 있었고 좌측에는 지류가 가까이 발생돼 밑밥 효과를 오래 가질 수 있어 매우 좋은 조류였던 셈이다.

▲ 제주 가파도 넙개 북서쪽 간출여에서 벵에돔을 히트한 필자가 파이팅을 벌이고 있다.

모든 낚시에서 지류와 본류가 만나는 합수머리는 좋은 포인트가 된다. 지류에 뿌린 밑밥은 반 시계방향으로 돌며 밑밥의 효과를 극대화시켜준다. 나는 우측에서 강하게 흐르는 본류에 의해 만들어진 좌측 지류에 밑밥을 중점적으로 뿌리고 합수머리에 채비를 투척한 뒤, 투척한 채비에 한 두 주걱의 밑밥만 소량 주는 방식으로 낚시를 하였다.

이때 밑밥을 단단히 뭉쳐 풍덩 풍덩 던지듯 주는 게 아니라 넓게 퍼진 밑밥이 지류에서 천천히 내려가도록, 물수제비를 하듯 사선으로 흩뿌려주었다. 흩뿌려진 밑밥은 서서히 지류를 돌며 본류에 합수되면서 집어력은 극대화된다. 밑밥에 빠르게 반응하는 작은 벵에돔은 지류에 몰려들게 하고, 본류를 따라 거슬러 올라오는 큰 씨알의 벵에돔을 노리는 전략이었다.

많은 밑밥이 한꺼번에 투입되지 않으므로 입질도 시원스럽게 들어온다. 이런 전략은 적중하여 낚인 벵에돔 모두가 35cm 전후의 중형급이었고 이따금 4짜급의 준수한 씨알도 한두 마리 섞여 낚였다.

10수 가까운 벵에돔을 만나는 사이 간조가 되어 썰물 조류가 힘을 잃어가자 벵에돔 입질은 까다로워지고 씨알 또한 잘아졌다. 어느 대상어이건 제 물에 큰 고기가 오고 조류가 사라지면 입질도 끊기는 것이 진리인 것은 분명하다. 마라도 방향으로 흐르던 썰물 조류가 끝나자 합수머리도 사라지고 들물 조류도 힘을 잃고 넓게 퍼졌다. 그나마 멀리서 들물 조류가 마라도 방향에서 본섬 방향인 모슬포 쪽으로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 조류를 향해 30m가량 원투해 몇 수의 벵에돔을 더 만날 수 있었다. 이날은 어떤 조류에서건 벵에돔이 부상해 있었으나 뒷줄에 긴장감을 주지 않으면 입질은 파악되지 않았다.

오후 2시에 내렸고 거세지는 바람 탓에 3시간 남짓의 짧은 낚시 시간에도 불구, 나와 일행 모두 많은 마릿수와 사이즈 좋은 벵에돔을 만날 수 있었다. 황금 시간인 해창을 못보고 가야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기대 이상의 좋은 조황에 작은 아쉬움마저도 깨끗이 씻겨나갔다.

제주 낚시인들은 12월이 되어야 가파도, 마라도권이 본 시즌에 접어든다고 생각한다. 12월이 되기 전에도 사계절 벵에돔낚시는 잘 되지만 씨알 면에서는 분명 아쉬움이 있다. 이날 넙개 포인트에 우리를 내려준 일승호 고석호 선장은 나와 일행이 제법 큰 씨알의 벵에돔을 많이 낚았다고 하자 아직 이른 시기인데 조금은 의외의 결과라고 놀라워했다.

그러고 보니 현재는 제주도 바다에 남방쥐치가 전역에 설치고 있고 4~5월에 자주 있던 고사리장마도 재작년부터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조금 이른 시기에 씨알 좋은 벵에돔을 선보이고 있는 가파도. 본격 겨울이 오기 전에 한 번 더 도전해 대물 긴꼬리벵에돔을 만나기로 일행과 약속하고 철수를 서둘렀다.

▲ 촬영에 동행한 김상규 씨가 가파도 넙개 등대 밑 포인트에서 올린 35cm급 벵에돔을 보여주고 있다.

▲ 가파도 넙개 계단자리에서 초썰물경 올린 긴꼬리벵에돔을 보여주는 필자.

▲ 등대 밑 포인트에서 벵에돔을 노리고 있는 낚시인들.

▲ 필자가 넙개에서 사용한 시마노사의 구멍찌.

▲ 제주도의 유명 낚시인 강철 씨도 굵은 벵에돔으로 손맛을 봤다.

▲ 넙개에서 낚인 4짜 긴꼬리벵에돔의 멋진 자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