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9일 내가 찾은 곳은 안면도에서도 터가 세기로 유명한 장곡지다. 장곡지 출조에 앞서 우리는 요즘 한창 시즌인 주꾸미를 낚기 위해 원산도를 찾았다. 충남 보령에서 안면도까지 해저터널이 연결됨에 따라 일단 원산도에서 주꾸미 배낚시를 즐긴 후 곧바로 안면도로 이동해 붕어낚시를 즐길 계획이었다.

▲ 물속에서 자라고 있는 말풀. 말풀 탓에 찌를 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새벽 5시경 집을 나와 아침 7시쯤 원산도에 도착, 이름 모를 포구에 도착해 후배 박원길(엔디)과 고무보트를 조립했다. 배낚시로 낚은 주꾸미를 장곡지로 가져가 맛난 주꾸미볶음을 해먹을 참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이게 웬일이람? 서둘러 집에서 나오다보니 낚싯대를 신발장에 기대 놓고는 그냥 온 것이다. 허탈했다. 다행히 인근 낚시점을 찾아가 1대당 2만원씩 주고 낚싯대를 빌려와 주꾸미낚시를 마칠 수 있었다. 오후 2시까지 먹고 남을 만큼의 주꾸미를 잡은 뒤 장곡지로 이동했다.

오후 3시쯤 장곡지 상류에 도착해보니 상류권 뗏장수초가 있는 자리에 2명이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바로 아래 차가 내려갈 수 있는 구 도로변에도 좋은 포인트가 있었다. 다시 하류권으로 내려가 보니 도로 옆으로 주차 공간도 있고 수초가 멋지게 형성된 포인트가 나왔다. 그러나 펜스를 넘어 접근해야 하는 곳이라 불편했다. 다시 상류로 올라와 집 뒤쪽, 구 도로를 통해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3,8칸 대를 던져보니 수심이 깊어도 너무 깊었고 물색도 너무 맑았다. 조금씩 수심을 맞추다 보니 4m에 육박했다. 게다가 수중에는 삭아 내리고 있는 수세미풀이 묻어 나오고 있고 일부에서는 어느새 자란 말풀이 찌가 서는 것을 방해했다.

결국 가운데에 4.2칸 대를 펴고 연안으로는 짧은 2.6칸 대를 펴 갓낚시 형태로 찌를 세웠지만 양쪽 연안도 수심이 2m나 나왔다. 12대의 낚싯대를 편성하는데 2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충남 태안군 고남면 장곡리에 있는 이곳은 원래 작은 소류지였으나 지난 2007년 증축해 3만2천평의 중형급 계곡지로 변모한 곳이다. 태안군에 속해있긴 하지만 안면도 장곡지라고 하는 편이 위치에 대해 감을 잡는 데 훨씬 편할 것이다.

하류권 수심은 최대 10m에 이르고 상류권도 3m에 이를 정도로 수심이 깊다. 주로 물이 많이 빠지는 모내기철 이후 좋은 포인트가 드러나며 이때 4짜급 대물 붕어가 마릿수로 나온다. 지난여름 물이 빠진 이후 4짜 붕어가 여러 마리 낚였지만 가을 태풍 때 다시 만수가 되면서 지금은 붕어 얼굴을 보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어렵게 찌를 세우다 보니 한 번 던져 놓은 채비를 다시 들어 올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몇 번씩 던져야 찌가 서니 팔도 아프고 그때마다 미끼를 달아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끼는 옥수수만 쓰기로 했다.

늦은 밤까지 찌를 바라보았지만 단 한 번도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새벽에 집을 나섰고 낮에 주꾸미 낚시를 하느라 지쳤는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잠시 잔다는 것이 새벽 4시에야 깼다. 옆에 자리한 후배도 이제 막 일어났는지 채비를 재정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약 30분이 지났을 때쯤 옆자리에서 날카로운 챔질 소리가 들렸다. 이어 물 파장이 일었고 붕어가 수면 위에 떠 있던 뗏장수초에 걸렸는지 한참을 씨름하더니 드디어 뜰채에 담겼다. 41cm의 대물 붕어였다.

첫 붕어가 낚인 후 활기가 돌아 열심히 찌를 바라보았지만 더 이상의 입질은 없었다. 아침 7시 무렵. 왼쪽에 세워져 있던 3.8칸 대의 찌가 보이지 않았다. 유심히 바라보며 찌를 찾고 있을 때 보이지 않던 찌가 살며시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힘차게 챔질했건만 빈 바늘만 허공을 날아왔다.

단 한 차례의 입질을 그렇게 허무하게 놓치고 다시 원산도로 주꾸미 배낚시를 떠났다. 다시 낚싯대를 빌리고 보트를 띄워 주꾸미낚시를 시작하는데 이 또한 다른 매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먹거리가 생긴다는 것이 좋았고 주꾸미가 에기를 올라타는 순간 챔질했을 때의 묵직한 손맛 또한 붕어낚시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오후 2시쯤 바다를 나와 마트에서 양파와 양념장 등을 구입해 주꾸미 볶음을 해 먹기로 했다. 후배가 나름 요리에 재능이 있어 맛있는 주꾸미 요리가 탄생했다. 내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주꾸미 맛볼 사람오라’고 글을 올렸더니 저녁 무렵 정석현(초릿대) 씨가 찾아왔고 상류에 대를 폈다.

▲ 필자가 낚은 36cm(위) 붕어와 박원길 씨가 낚은 41cm 붕어. 필자가 낚은 붕어는 유난히 체고가 높고 눈이 튀어나와 있었다.

▲ 드론으로 촬영한 장곡지. 주로 좌안 도로변에 포인트가 형성된다.

▲ 촬영에 동행한 박원길 씨가 밤낚시로 올린 41cm 붕어를 보여주고 있다.

케미를 밝히고 상태 좋은 옥수수로 바꾸어 준 뒤 다시 찌를 세웠다. 그러나 이날도 밤이 깊어가도 입질 한 번이 없었다. 잠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일어나 보니 어느새 자정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찌를 바라보니 왼쪽 3,2칸 대의 찌가 약 1m가량 이동해 있었다. 그 사이에 ‘님(붕어)’이 다녀가신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 쯤 오른쪽 2.8칸 대 찌가 살짝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정신을 가다듬고 찌를 지켜보자 잠시 후 서서히 솟아오른다. 한 호흡 가다듬고 챔질하니 수초에 걸린 듯 무거운 감각이 들었다. 곧이어 옆으로 째는 느낌이 들어 붕어가 걸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힘 조절을 하며 붕어를 수면에 띄우는 데 성공했다. 불을 비춰 보니 어마어마한 체구에 한눈에 봐도 5짜 붕어로 보였다. 그러나 어렵사리 뜰채에 담긴 녀석은 체구에 비해 길이가 짧은 36cm짜리 혹부리붕어였다. 눈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솟아있었다. 배는 마치 산란이 임박한 것인지 아니면 비만인지 모르게 터질 듯 빵빵했다. 40여 년을 낚시했지만 이런 비정상적인 붕어는 처음 보는 듯했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있은 후 또 날이 밝았고 다시 주꾸미 낚시를 가려고 준비할 때 오른쪽의 3.6칸 대의 찌가 올라와 있는 게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들어보니 뭔가가 훅하고 치고 나가며 빈 바늘만 올라왔다. 챔질하지 않고 그냥 슬쩍 들어본 것이 후회됐다.

이처럼 만수위의 장곡지는 어려운 낚시를 해야만 하고 곳곳에 수중수초가 자라고 있어 찌 세우기가 여간 어려운 곳이 아니다. 하지만 입질을 받으면 최하 허리급 붕어가 나오는 곳이니 대물 붕어 마니아라면 한번쯤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물안개가 낀 장곡지. 역광에 찌가 잘 안 보이자 박원길 씨가 일어선 상태로 입질을 파악하고 있다.

▲ 필자 일행이 안면도에서 타고 나간 고무보트. 민물낚시용이었지만 파도가 잔잔한 원산도 내만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 주꾸미를 낚고 기뻐하는 박원길 씨.

▲ 촬영팀이 자리를 잡은 좌안 중상류 민가 앞.

▲ 낚은 붕어들은 모두 장곡지로 돌려 보냈다.

▲ “생긴 게 우락부락해 5짜로 착각했습니다.” 방류 직전에 36cm 붕어를 보여주는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