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앞바다 대표 배낚시 장르인 외수질이 본격 가을 시즌에 접어들었다. 보통 9월 말로 접어들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우럭, 농어 조황이 살아나는데 올해는 이상고온 탓에 10월 초 현재까지도 광어만 호황을 보이는 상황이다. 물때만 좋으면 한 배당 100마리가 넘는 마릿수 대박을 맞고 있다.

취재 나흘 전, 태안 신진도 항공모함호 전영수 선장에게 전화를 걸어 최근 조황을 묻자 다소 맥 빠진 목소리로 근황을 설명했다. 이맘때(9월 중순)가 되면 농어와 우럭 조황이 살아날 만도 한데 아직까지도 광어만 너무 잘 낚인다는 얘기였다. 우럭과 농어는 수온이 높아지면 깊은 수심으로 빠졌다가 적서수온이 형성되면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데 올해는 ‘복귀’가 유난히 늦다는 게 전영수 선장의 말이었다. 사실 약간의 시간차만 있을 뿐 매년 반복되는 ‘연례행사’라 그런가보다 싶었지만 도대체 광어가 얼마나 잘 낚이기에 그것도 고민일까 싶었다.

전영수 선장은 “하루 100마리 이상도 낚이고 씨알도 너무 잘지 않은 45~60cm급이 주로 물지만 내 배는 광어보다는 우럭, 농어를 노리는 손님들이 주로 찾기 때문에 선장으로서 의욕이 약간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전영수 선장의 설명을 듣자마자 ‘뭐라도 많이 잡히면 좋지 그것도 고민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됐다. 산새우를 미끼로 쓰는 외수질은 주로 굵은 우럭과 농어를 노리고 출조하는데, 이 와중에 낚이는 광어는 손님고기 정도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또 광어는 웜채비를 사용하는 다운샷 낚싯배들의 주 타깃이다 보니 외수질 전용선 항공모함호의 ‘정체성’ 에도 잘 맞지 않는다는 게 전영수 선장의 알쏭달쏭한설명이었다.

전영수 선장의 복잡한 심정과는 달리 나는 ‘광어가 너무 많이 낚인다는 고민’에 초점을 맞추고 취재 일정을 짰다. 올해 들어 유난히 날궂이가 잦아 취재 가는 곳마다 부진한 조황에 맥이 빠졌던 나로서는 광어라도 실컷 낚아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새벽 5시에 신진도항을 출항한 항공모함호가 처음 도착한 곳은 옹도 북쪽 어초지대. 정통 우럭낚시 때도 마찬가지지만 외수질낚시에서도 어초는 공략이 쉽지 않은 포인트다. 선장이 대강의 어초 높이를 알려주지만 입질이 없으면 본능적으로 수심을 깊게 주기 때문에 밑걸림이 다반사로 생기기 때문이다.

첫 어초에서 입질이 없어 20분 정도 이동. 그러나 두 번째 어초에서도 35cm급 우럭만 한 마리 낚였을 뿐 그 흔해 빠졌다던 광어는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결국 오전 낚시 2시간 동안 올라온 광어는 10마리가 채 못 됐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전영수 선장이 30분 정도의 장거리(?) 항해를 시도했다. 먼 바다 광어의 활성이 약하자 역으로 근해권을 찔러볼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 시도는 들어맞았다. 목적했던 포인트로 이동하던 중 잠시 들른 암반 포인트에서 광어 어군을 제대로 만난 것이다. 이 포인트에만 세 번 배를 대 순식간에 20마리 가까운 광어를 뽑아냈고 35~45cm에 달하는 우럭도 덤으로 올라왔다.

오전 내내 사진만 찍느라 꽝을 맞던 나도 이 포인트에서 광어 4마리와 40cm급 우럭 1마리를 올려 횟감 마련에 성공했다.

전영수 선장은 “이곳은 여름에 가끔씩 들르는 곳인데 원래 이 시기에는 큰 재미가 없는 포인트다. 목적한 곳으로 가다가 혹시나 싶어 찔러본 것인데 대박을 만났다. 가을에도 입질이 활발하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몰랐던 포인트를 발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좋아했다.

▲ 외수질 미끼인 산 새우. 쉽게 죽지 않도록 뇌를 피해 바늘을 꿰는 게 중요하다.

▲ 씨알 굵은 광어가 걸려들자 낚싯대가 활처럼 휘었다.

▲ 용인에서 온 도성환 씨는 70cm에 육박하는 광어를 올렸다.

▲ 취재일 항공모함호에서 올라온 광어 조과.

▲ 신진도 태풍투어선단에서 함께 뛰는 루나호도 출조에 나섰다.

▲ 서울에서 온 정민수(왼쪽) 씨와 수원에서 온 박주호 씨가 동시에 광어를 낚아들고.

오전에는 입질이 뜸했지만 오후로 갈수록 조황은 살아났다. 따뜻한 햇살이 퍼지자 물고기들의 활성도 살아나는 것으로 추측됐다. 특히 이날 눈에 띄는 특징은 광어의 씨알이었다.

보통 광어는 봄 산란철의 대물 시즌이 끝나면 씨알이 급격히 잘아지는 것이 상례다. 여기에 봄 대물 포인트는 주로 경기~인천권에 형성되고 좀 더 남쪽인 태안권에서는 봄을 지난 초여름에 광어 씨알이 굵게 낚이는 게 특징이다. 산란기 때 낚이는 80~90cm에는 못 미치지만 60cm 내외급들을 초여름에 잠시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올해는 한여름에 접어들었음에도 45~60cm로 씨알이 준수하게 유지됐다. 평년 여름보다 무려 5~10cm 정도씩은 굵게 낚이는 양상이었다.

이날 함께 항공모함호를 타고 출조한 수원의 안재형 씨는 “자연산 광어는 산란기 특수 때가 아니면 씨알이 너무 잘아 낚시 대상으로 매력이 떨어진다. 보통 이맘때는 35cm 내외급이 많은데 올해는 10cm 정도씩은 굵게 낚이는 양상이다. 이 정도만 되면 여름철 외수질 대상어로 부족함이 없다”고 말했다.

점심식사 후에도 꾸준한 조황이 이어졌는데 며칠 전 주의보 직전보다는 확실히 마릿수가 떨어졌으나 이맘때 예년 조황 정도는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취재일 가장 큰 씨알은 67~68cm였다.

한편 마감이 한창인 지난 10월 초에 전영수 선장과 통화하자 “10월 들어서도 여전히 광어는 잘 낚이고 있고 기대했던 우럭과 농어는 예상보다 입질이 더딘 편이다”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전영수 선장은 올해는 6~7월에나 끼던 해무가 9월에도 짙게 끼는 등 확실히 예년과는 다른 해상 날씨를 보여주는 것이 바다가 예년 같지 않은 증거라고 말했다.

아울러 전영수 선장은 우럭, 농어는 여전히 부진하지만 광어 조황이 더욱 탄탄해진 것은 행복한 고민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취재 당시보다 더 큰 50~65cm급이 다수 섞여 낚이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평소 다운샷낚시를 즐기던 낚시인들도 산새우를 미끼로 쓰는 외수질낚시를 즐기기 위해 항공모함호를 찾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전영수 선장은 10월 중순경의 사리물때 이후 본격적인 우럭, 농어 시즌이 열릴 것으로 전망했다.

▲ 오후 들어 꾸준히 마릿수를 늘려간 윤대영 씨.

▲ 오전 시간이 이미 기본 마릿수를 채운 아산의 홍의성(왼쪽) 씨와 서산의 이경환 씨.

▲ 선상낚시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바낙스의 아이스박스.

▲ 바낙스 선상낚시 장화. 발이 젖을 일이 많은 선상낚시에서는 장화가 필수다.

▲ 다양한 외수질 장비들. 보통 30~40m를 노리기 때문에 수동릴로도 충분히 낚시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