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돌문어 조행기] 

해양대 교수들과 함께한 낚시여행 1박2일

잡어조사, 명문가 물고기 

감성돔까지 낚다

정홍열 한국해양대학교 해양경영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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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여름방학이 되면 친한 동료 교수 몇몇이 모여 가까운 곳에 1박2일로 여행을 갔다 오곤 했다. 거제의 해양펜션을 얻어 일부는 낚시를 하고, 일부는 담소를 나누다 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학교 보직을 맡은 교수도 있고, 코로나19 여파도 있고 해서 한 3, 4년 정도는 모임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점심을 먹고 학내 카페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동료 교수 한 명이 몇 년 전 학생들과 돌문어낚시를 갔는데 처음인데도 엄청 많이 잡았고, 선장이 친구라서 원하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했다. 평소 허풍이 심한 교수가 아니라 귀가 솔깃했고, 친구인 선장이 우리 학교 출신이라는 말에 더욱 신뢰감이 들어 방학 때 한번 가보자고 의기투합하였다. 그리고 며칠 만에 역대 최대 인원인 8명이 모였고, 투표로 출조 날짜도 정하고, 회비와 차 2대도 징발했다. 

그러나 평소에 뱃멀미가 심해 배낚시를 갔다하면 한 시간도 안 돼 품었던 모든 것을 바다에 돌려주고 하염없이 누워있었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배에서 하는 돌문어낚시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각종 낚시 앱으로 날씨와 바람, 파고 등을 계속 확인하며 긴장했었는데, 다행히 출조 날은 바람도 2~3m로 세지 않았고 파도도 높지 않는 것으로 나와 다소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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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계획한 날 오후 1시에 학교에 모여 출발했고, 나는 뱃멀미로 돌문어낚시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펜션 가까운 곳에서 간단하게 밤낚시를 준비하는 치밀함을 잊지 않았다. 

거제대교 휴게소에 도착해 커피를 마시니 드디어 목적지가 가까워졌다는 실감이 나면서 늘 참패로 끝난 과거 낚시 기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엄청난 양의 돌문어가 내 눈앞으로 끊임없이 몰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또 이래서는 내 낚시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에 차가 바다 속을 지날 때 차분히 흥분을 누르고 운기조식(運氣調息)에 들어갔다. 

실제로 몇 년 전 여행가는 중간 슈퍼에 들렀을 때 저녁 담당 교수가 삼겹살을 구매하려고 하는데 옆에 있던 교수가 저녁에 낚시로 고기를 많이 잡으면 회 먹기도 바쁠 건데 삼겹살은 왜 사냐고 못 사게 했다가, 결국 실지렁이 같은 장어 몇 마리 잡고 저녁 내내 먹을 것이 없어 핀잔을 들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는 “낚시는 매일 매일 다르니 어제 잡았더라도 오늘은 못 잡을 수 있다”며 진중한 자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뒷좌석에서 준비해온 뱃멀미 약을 먹어 두었다.

펜션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펜션이 자리한 곳은 좁은 버스길이 지나가는 한적하고 전형적인 바닷가 어촌마을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시골서 자랐던 나는 이런 곳에 오면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르며, 마치 고향에 온 듯 포근한 기분이 든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낚시할 배가 있는 곳으로 가보니 생각보다 큰 배가 기다리고 있었고, 모교 교수들이 왔다고 선장이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리고 돌문어낚시에 필요한 낚시 도구를 주고 잡는 방법을 알려 주었는데, 돌문어낚시 철이라 그런지 설명 중에도 쉬지 않고 선장의 전화기가 울리며 출조 문의가 계속됐다. 선장이 준 낚싯대는 돌문어 전용대였고, 합사가 감긴 릴은 내가 주로 쓰던 스피닝릴이 아니라 베이트릴이라 처음에는 좀 당황했지만 몇 번 써보니 쉽게 적응이 되었다. 

돌문어 낚시 요령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선장이 배를 바다 한가운데로 힘차게 몰고 가니 드넓은 통영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바람 한 점 없어 잔잔한 바다에 엄청난 부표와 밧줄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것이 다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모두 굴 양식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태풍이 오면 쉽게 떠내려갈 것 같다고 하니 바다 밑에 깊이 말뚝을 박아 괜찮다며, 우리나라 굴의 90%가 여기서 생산된다고 자부심 가득 담긴 자랑을 늘어놓는다. 

한 20분 정도 나아가서 굴 양식장 가까이 바싹 배를 붙이더니 선장이 낚시를 시작하라고 신호를 준다. 수심이 깊어 한참 내려가더니 드디어 바닥에 추가 닿는 느낌이 왔고, 배운 대로 고패질을 하고 있는데 전번에 와서 돌문어를 잡았다고 했던 교수가 제일 먼저 잡아 올린다. 아! 이것도 경험이 필요한 거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잡았다는 소리가 들리더니 나에게도 신호가 왔다. 낚싯대가 무거워지는 느낌이 있어 힘차게 챔질을 하고 일정한 속도로 감아올렸더니 드디어 얼굴을 보여주었다. 생각보다 크지는 않았는데 무게감이 상당했다. 

▲ 서서히 저녁노을이 곱게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통영 앞바다.

▲ 처음부터 배 제일 뒤에 자리 잡고 앉아 선장과 배 앞쪽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는 필자(우측). 바로 앞에는 필자와 함께 학교 주변을 맴돌며 잡어를 전문으로 잡아 올리는 이재민 퇴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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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를 잡았더니 자신감이 샘솟아 금방이라도 또 잡을 수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열심히 고패질을 하는데 더 이상 소식은 없었고, 배 전체도 조용해졌다. 낚싯줄 걷으라는 소리에 낚싯줄을 감아올리니 선장이 배를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 잠시 동안 휴식을 취하며 고개를 들어 바다를 보니 멀리 낙조가 붉게 드리운 아름다운 통영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며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렸다.

동물을 좋아해 평소 동물과 관련된 자연 다큐물을 즐겨보는데 문어는 정말 머리가 좋아 실험자가 몰래 숨겨놓은 먹이도 잘 찾고, 불가능할 것 같은 작은 구멍도 쉽게 탈출하는 것을 자주 봤다. 문어의 지능은 개나 고양이 정도 된다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서 읽은 것 같은데, TV ‘동물농장’에 나오는 천재견 정도는 아니어도 얼추 그와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경험이 없어 그런지 돌문어 잡기가 만만치 않다. 

계속해서 액션을 주어야 하는데 두 시간 가까이 서서 흔들고 있으니 팔목과 허리도 아파오고, 조류가 흐르는지 바닥 찍는 것도 갈수록 어려워진다. 문어가 에기를 붙잡고 끌어당기는 그 미세한 감촉을 인지하는 것도 더 어려워지고, 그렇다 보니 집중도는 계속 떨어지는 것 같다. 거기다가 팀원들 대부분이 낚시 초짜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낚싯줄이 낚싯대 끝에 감겨있는데 계속 감는 사람, 문어가 잡힌 줄 알고 빈 낚시의 릴을 사정없이 감는 사람, 돌문어를 들어 올리다 놓치는 사람, 문어 잡았다고 소리치는 사람 모두를 한꺼번에 상대하느라 선장이 정신이 없다. 

비록 뱃멀미로 반은 누워서 낚시를 했지만 그래도 배 위에서 선장 지시를 무시하고 쓸데없는 짓을 하면 어떤 사태가 일어나는지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앞으로 닥쳐올 사태가 사뭇 걱정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한동안 존경과 공손 모드를 견지하고 있던 선장이 일정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정없는 개인별 잔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비록 뼈대 있는 가문의 고기는 못 잡았지만 상대적으로 낚시 경험이 많은 나는 낚싯대를 눈치껏 놀리며 선장의 잔소리에 희생양이 되는 것을 재주껏 피했다. 그리고 선장의 눈에 제일 안 띄는 배 뒤쪽에 앉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늘 점잖게 훈계하던 교수들이 사정없이 혼나는 장면을 조용히 감상했다. 배 위로는 통영 밤바다의 희미한 달빛이 소리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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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돌이 시간이 되자 선장님이 배 위에서 돌문어를 넣은 라면을 끓여주었는데, 라면 국물이 시커멓다. 국물 색깔이 왜 이러냐고 물어보니 돌문어 먹물을 터트려서 그렇단다. 역한 냄새나 비린내가 날 것 같아 먹기를 망설이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먹기를 권했다. 그리고 정말 아무 냄새도 나지 않고 맛있었다. 배만 타면 멀미로 다 토하고 선실에 누워 밥 먹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만 했었는데, 오늘은 정말 통영 앞바다가 너무 잔잔해 멀미도 않고, 더구나 돌문어 라면까지 먹고 있으니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저녁을 먹으며 중간 점검을 해보니 아직도 돌문어를 한 마리도 못 잡은 동료 교수가 있었고, 정말 못 잡고 돌아 갈까봐 초초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거짓말같이 식사 후 낚시 시간에 제일 먼저 돌문어를 낚아 올렸다. 선장도 이젠 돌아갈 수 있게 됐다며 더 좋아했는데, 선장이 초짜들 데리고 나오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나도 저녁 먹고 한 마리를 더 낚아 첫 낚시에서 두 마리를 낚는 쾌거를 이루며,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몸을 편안히 보존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날 선장은 배를 4~5번 옮긴 것 같고, 우리는 많게는 5마리, 적게는 한 마리씩, 총 20여 마리 돌문어를 잡았다. 그 중 일부는 배 위에서 라면 먹을 때 소비하고, 나머지는 가지고 돌아왔다. 숫자에 관계없이 모두가 돌문어를 잡았으니 둘러앉아 돌문어낚시 무용담으로 시끌벅적했다. 

나는 밤낚시 생각이 나서 슬그머니 펜션을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외진 곳이라서 그런지 불빛이 드문드문 있고 상당히 어두웠다. 

희미한 달빛 속에 돌아다니니 낯선 이방인의 발자국 소리가 몹시도 귀에 거슬리는지 동네 개들이 하나 둘 짓기 시작했다. 조금 더 선착장 쪽으로 걸어가니 이젠 위쪽 동네 개들까지 합세해서 마구 짖어댄다. 조금만 더 돌아다녔다간 온 동네 사람들을 다 깨울 것 같아 내일 아침에나 다시 와봐야겠다 생각하고 돌아왔다. 잠시나마 고향 같은 친근함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조그마한 포용심도 없이 거세게 배척하는 동네 개들의 협소한(?) 마음을 원망하며….

▲ 필자가 낚시를 시작하자마자 기세 좋게 올린 돌문어. 그리고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 아침에 어영부영 산책 나왔다 어이없이 잡어조사에 잡혀 억울해하고 있는 25cm급 바다의 제왕 감성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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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션에 돌아오니 몇 년 만에 성사된 모임이라 그런지 왁자지껄 시끄럽고 흥겨웠다. 퇴임 후 문화센터에서 성악을 배운다는 교수님은 신청도 안했는데 자진해서 일어나 멋지게 한 곡을 불렀다. 들뜬 마음에 독한 양주를 연속해 몇 잔 마셨더니 취기가 금방 올라, 방으로 들어와 누웠는데 그 뒤는 기억이 없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깨니 새벽 5시20분이었다. 무슨 소리지? 하고 둘러보니 학교에서 올 때부터 밤낚시 같이하기로 한 동료 교수가 자기가 알람을 맞추었다고 했다. 피곤함으로 눈이 잘 안 떠졌지만, 기왕 낚싯대도 가지고 왔는데 그냥 돌아가기도 무엇해 주섬주섬 챙겨서 같이 나갔다. 어제 펜션 주인에게 미리 물어보았을 때는 선착장 있는 곳에 가면 노래미가 좀 잡힌다고 했는데, 아침 일찍 지나가는 현지 분을 만나 물어보니 다른 고기는 잘 안 잡히고 복어만 좀 잡힌다고 했다. 아무런 기대도 없이 바늘 여러 개 달린 카드 채비에 새우를 달아 던졌다. 그랬더니 복어가 처음으로 잡혔다. 정말 복어만 있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조금 후 이상하고 징그럽게 생긴 것이 바늘에 또 딸려왔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쑥(갯가재)이었다. “고기도 아닌 것이 바늘을 물고 오네” 생각하며 다시 채비를 던진 지 잠깐 후 초릿대가 흔들려 사정없이 줄을 감아올렸다. 조금 묵직한 느낌이 들어 좀 큰 복어가 잡혔나 생각했는데 어! 감성돔이다.

야!!! 세상에!!! 늘 학교 주변에서 매가리와 고등어를 벗 삼아 낚시하며 ‘잡어조사’로 명성을 날리던 나에게 웬 명문가 고급 어류 감성돔이…! 그것도 25cm나 되는 초대형어(?)가…! 내 낚시 인생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이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그리고 아무런 기대도 안한 상황에서 발생해도 되나? 하는 생각에 감격스러웠다. 

이제는 내 낚시도 ‘잡어조사’ 수준에서 벗어나 왠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았다.

신이 나서 열심히 감성돔을 계속 노렸지만 결국 더 이상 감성돔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고, 보리멸 두 마리만 더 잡고 낚시를 끝냈다. 그러나 이렇게 아침에 잠깐 했던 낚시 중에 최고의 조과를 올렸고, 그렇게 초대물(?) 감성돔도 처음 잡아보았다. 어찌 이번 통영낚시에는 행운이 계속 따라주는 느낌이 팍 들었다. 

낚시를 마치고 돌아오니 미안하게도 아침상이 다 차려져 있었다. 과거에는 아침에 컵라면으로 간단히 때우곤 했었는데, 오늘은 후배 교수들이 정말 근사하게 차려 놓았다. 아내가 보아도 놀랐을 것 같다. 요즈음은 남자들도 모두 집안일을 같이 한다는 말이 사실이구나 생각하며 집에서보다 더 많은 양의 아침밥을 먹고 후식으로 수박까지 먹으니 배가 빵빵해졌다. 

아침을 먹자 후배 교수들은 학교에 회의 등 다른 업무들이 많다고 한 차로 서둘러 돌아가고, 정년퇴임을 앞두었거나 퇴임한 한가한(?) 교수들만 남아 펜션을 정리하고 후발로 나왔다. 학교로 바로 돌아가나 생각했는데 인문학 전공 퇴임 교수가 통영까지 왔는데 ‘박경리 기념관’을 들러보고 가자고 제안했다. 오후에 특별히 다른 일이 없던 일행은 별 반대 없이 기념관으로 향했다. 

감성이 둔하고 문학에는 문외한인 나로서는 <토지>라는 대하소설의 작가라는 것 외에는 별달리 아는 것도 없었는데, 기념관에는 작가의 생애와 젊었을 때, 늙었을 때의 모습, 육필 원고, 평소 원고를 쓰던 서재와 가구, 각종 시와 사상이 담긴 문장 등을 자세히 전시해 놓았다. 특히 <대지>라는 소설은 작가가 1969년 집필을 시작해 1994년에 완성했다고 하였는데, 모든 것에 “빨리 빨리”를 외치는 현재를 사는 필자로서는 한 작품을 위해 25년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는 것이 잘 믿겨지지 않았다. 작자에 대한 새로운 사실도 알아가며 이것저것 살펴보던 중 팸플릿에 적힌 ‘옛날의 그 집’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아 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이제 곧 정년퇴임을 앞두고 연구실에 평생 모인 각종 논문과 책, 먼지들을 언제, 어떻게 치워야 하나 고민만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작가가 ‘미련 없이 빨리 버리고 나처럼 홀가분하게 살아라’하고 꾸중하시는 것만 같다. 

박경리 작가에 대한 나의 무식함을 눈치 챘는지, 인문학 퇴임 교수는 박경리 작가에 대한 문학적 업적과 여러 다른 작품들을 계속 소개해 주었다. 돌문어 잡을 때 선장에게 낚싯줄 잘못 감는다고 혼이나 주눅이 들어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고기가 물 만난 것처럼 활기찬 목소리로 작가에 대한 강의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어릴 때 달달 외웠던 국민교육헌장에서 왜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라’고 했는지 뒤늦게 실감이 났다. 

전시실을 다 돌아보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여기까지 왔는데 묘소까지 가보자”고 하신다. 사실 내가 자세히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가까운 지인이 모친상을 당해 돌문어낚시 오기 하루 전에 서둘러 서울의 장례식장에 들렀다 새벽 2시30분에 귀가해 잠이 들었고, 오늘 아침에도 술이 덜 깬 상태에서 5시20분에 일어나 낚시를 했는데…. 

더구나 아침을 정량 초과해 먹는 바람에 기념관을 돌면서 내내 식곤증으로 고생했었는데 그렇다고 혼자 의자에 앉아 있을테니 갔다 오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아이구! 이미 충분히 둘러본 것 같은데, 꼭 묘소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누르고 따라나섰다. 안내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조금 올라가니 마침 제초작업을 하는 직원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묘소가 머냐고 물어보니 조금 떨어져 있는 흰 트럭을 가리키며 바로 저 트럭 뒤에 있다고 했다. 정말 천만다행이라 생각하고 트럭 있는 곳까지 빠르게 걸어갔는데, 트럭 뒤로 묘지가 안 보인다. 아니 바로 여기에 있다고 했는데? 절망적인 좌절감으로 피로가 확 몰려왔다. 그리고 정말 한참을 더 올라간 것 같다. 저 직원과 나는 똑같은 언어를 쓰는데 ‘가깝다’는 말의 정의가 이렇게 서로 멀 수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사정없이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을 억지로 붙들고 겨우 겨우 묘소를 들렀다가 차 뒷좌석에 앉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어지간히 오래 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드니 차는 거제를 지나 부산시로 들어서고 있었다. 비몽사몽간에 이번 여행을 복기해보니 ‘오래 추억에 남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선상에서 라면까지 먹으면서 돌문어낚시를 했고, 아침에 짬낚시로 바다의 왕자 한 마리도 잡았고, 비록 졸음으로 헤매기는 했지만 박경리 기념관도 다 둘러봤다. 부수적 소득이 더 있었다면 퇴임에 가까워서야 수업 시간에 사정없이 졸고 있는 제자들의 심정 일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랄까?

차 안에서 다시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이번에는 좀 더 쉽게 진정되어 국민 모두 코로나19 이전의 상황으로 빨리 돌아가기를 기원했다. 물론 내년 여름방학 때도 새로운 여행 계획을 짤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면서. 

P.S.

2019년 7월이니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당시 ‘건망증과 낚시’라는 에세이를 쓴 뒤 편집장이 낚시春秋에서 발간한 어종별 낚시 방법과 관련된 서적을 몇 권 보내주셨다. 책보고 잘 배워서 고기도 많이 잡고 조행기도 써 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런데 필자의 게으름으로, 코로나19 여파로, 족보 있는 고기를 못 잡아서 등 별별 시덥잖은 이유로 3년이 지나도록 조행기를 보내지 못했다. 물론 받은 책도 아직 다 못 읽었다. 늘 약속을 천금(?)같이 중요하게 여기는 필자로서는 이번 조행기로 그 약속의 일부를 지킨 것 같아 약간의 부담은 던 느낌이다, 앞으로 명문가 집안의 고기를 잡는 기회가 있으면 다시 한 번 조행기에 도전해 보겠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 박경리 기념관

▲ 돌문어낚시에 함께한 8명의 해양대 동료 교수들. 좌측부터 윤희상, 이재민, 유일선, 노종진, 필자, 하세봉, 이건수(학장), 오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