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謹弔]

주식회사 만어 창업주

원로낚시인 안승근 고문 타계

서성모 편집장

원로낚시인 안승근(安承根) 주식회사 만어 고문이 지난 3월19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안 고문은 부산을 대표하는 낚시유통업체인 주식회사 만어를 창업한 거상(巨商)이다. 빠른 판단과 냉철한 사업가적 수완을 발휘해오면서 신용과 의리를 평생 버리지 않았다. 1999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엔 부경조구협회(현 한국조구산업경영자협회) 회장을 맡아 치어방류사업, 낚시터환경보호활동을 펼치는 등 올바른 낚시문화 정착에 힘썼다. 2021년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산업포장을 수훈했다.

▲부산시민장례식장 영안실 빈소에 안치된 안승근 고문의 영정.

1971년 남포동 태화상사로 낚시유통업 첫발
안승근 고문은 1940년 경남 함안군 산인면에서 4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64년 부산 동아대 화학과를 졸업해 페인트회사에 들어갔지만 직장생활은 맞지 않아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몇 차례 시도한 사업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실의에 빠져지내던 1969년 어느 날, 지인을 따라 대나무낚싯대 공장을 찾은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낚시인이었던 안승근 고문은 자신의 전문분야인 도장기술을 활용해 대나무낚싯대를 만든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낚싯대 공장을 인수하고 한 달이던 대나무낚싯대 제작공정을 일주일로 단축시키면서 가격을 낮췄다. 값싸고 질 놓은 낚싯대는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당시 부산을 휩쓸었던 ‘동양작(東洋作)’이다.

하지만 70년대는 대나무낚싯대가 아닌 글라스로드의 시대였다.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공장을 팔고 그 길로 낚시유통업에 뛰어들었다. 1971년 충무동에 오리엔탈 낚싯대 대리점을 겸한 태화상사를 차렸다.

안승근 고문의 사업가적 기질은 제조보다 영업에서 더 빛을 발했다. 국내 최초로 만든 소형 실패형 낚싯줄이 대표적이다. 당시엔 낚시점에서 낚싯줄을 몇 백미터씩 길이별로 잘라 판매했는데 안 고문이 묘안을 내어 제품화했고 그게 불티나게 팔렸다.

▲1980년대 말 안승근 고문이 일본에서 열린 한일낚시진 흥회 우호친선낚시대회에 참가한 뒤 촬영한 단체사진.

▲2004년 부산 동래구에 문을 연 주식회사 만어 매장.

만어에 가면 다 있다
태화상사는 80년 남포동으로 이전하면서 상호도 ‘만어낚시’로 바꿨다. 낚시도매업을 시작하면서 수입용품을 확대했다. 부산지역에서 일고 있는 바다낚시 붐에 맞춰 일본을 중심으로 수입한 바다낚시용품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때부터 만어낚시는 수입전문점으로 이름을 알렸다. 수출용 플러그를 시판하는가 하면 일본에서 트롤링릴, 갯바위신발, 구명조끼 등을 수입해 판매했다. 만어낚시는 부산낚시인들에게 낚시 유행을 선도하는 낚시점으로 인식되기 시작됐고 이때부터 낚시인들은 ‘만어에 가면 다 있다’고 말하곤 했다.

1990년에 맺은 일본 마루큐 한국총대리점 계약은 만어낚시가 종합낚시유통업체로 성장할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일본 마루큐의 중층낚시용 떡밥과 바다낚시 집어제를 수입했다. 바다낚시 집어제인 마루큐 지누파워는 만어낚시가 가장 먼저 수입해 판매한 제품이다. 이를 통해 유통점이 늘어났고 외형이 더 커진 만어낚시는 99년 9월 남포동4가에 신사옥 준공과 함께 회사 이름도 피싱랜드만어(2019년에 주식회사 만어로 변경)로 바뀌었다.

99년 장남 안국모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난 안승근 고문은 낚시터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작고한 부산의 원로낚시인 주천한 선생이 낚시 단짝이었다. 주천환 선생은 74년 충무동에 있던 만어낚시 건너편에 부산낚시를 운영했고 이때 인연을 맺었다. 부산 근교의 저수지와 수로를 함께 찾았고 낚시를 마치고 나서는 술잔을 나눴다.

▲2009년 낚시 단짝인 주천환 선생과 출조를 마치고 술잔을 나누고 있는 안승근 고문.

▲2021년 가족의 축하를 받으며 산업포장을 수훈한 안승근 고문. 장남 안국모, 부인 배영자 여사와 함께.

▲1980년 부산 남포동의 만어낚시

부산의 거상이자 큰 어른
낚시업계에선 안승근 고문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안 고문은 낚시용품에 대한 안목은 늘 남들보다 한 발자국 앞서 있었다. 지금 붕어낚시용 바늘의 대명사로 쓰이는 망상어 바늘을 우리나라에 처음 보급한 이가 안 고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은 이익은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 했다.

빈소에서 만난 HDF해동조구사 정연화 대표는 “80년대 초 남포동 만어낚시 시절부터 안고문님을 뵈었습니다. 당시는 낚시도매상이 낚시업체와 소매점을 쥐락펴락하던 시대였죠.

안 고문님은 혼자보다는 모두가 잘 되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면서 거래처라면 동네의 작은 소매점까지 챙기셨어요. 그래서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안 고문님을 어른으로 모시고 따랐습니다”하고 말했다.

빈소가 마련된 부산 범천동의 부산시민장례장엔 고인을 애도하는 낚시계의 조문이 이어졌다. 유족으로 부인 배영자(裵榮子) 여사와 장남 국모, 장녀 민순, 차남 경모 씨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