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김범철 교수의 호수의 과학]

부식질

수질기준이 BOD에서 TOC로 바뀐 이유

김범철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명예교수 

홍차를 우려내면 연한 갈색의 물이 얻어진다. 식물이 많은 습지나 낙엽이 많이 쌓여 있는 삼림하천, 퇴비가 용출되는 물에서도 비슷한 갈색의 물을 볼 수 있다. 물이 갈색을 띠는 이유는 부식질(腐植質)이라는 유기물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식질이란 식물이 썩고 분해되어 생성된 물질이라는 뜻으로 만든 용어인데 생성근원을 아주 잘 표현한 조어이다.

토양학에서 부식토라고 부르는 유기질 토양의 주요 성분인데, 농업에서는 경작에 도움을 주는 물질로 친숙하다. 그런데 부식질이 물에 우러나와 호수로 유입하면 용존 부식질이 되어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부식질의 일종인 탄닌의 분자 구조.

미생물이 분해하기 어려운 벤젠고리 화합물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갈색을 띤다.

식물이 썩고 분해되어 생성된 물질

유기물이란 생물이 만들어내는 물질을 말하며 육상에서는 많을수록 좋아하는데, 수중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하고 심지어 수질오염이라고 부른다. 유기물에는 수많은 다양한 종류의 물질이 있는데 미생물이 잘분해할 수 있는 유기물과 분해가 어려운 유기물로 나눌 수 있다. 분해가 쉬운 물질은 단백질, 지방 등 세포의 주요 성분들이며 ‘생분해성 유기물’ 또는 ‘이분해성 유기물’이라고 부른다. 생물이 죽으면 그 세포를 미생물이 먹이로 이용하고 분해하므로 일주일이면 절반으로 줄어들고 한 달이면 거의 다 없어진다.

반면에 식물의 목질부 섬유질은 분해가 느리므로 숲에는 낙엽 분해 잔유물이 축적되며 이를 ‘난분해성 유기물’이라고 부른다. 미생물이 먹기 좋은 유기물을 먹고 남은 물질인데 이성분들을 통칭하여 부식질이라고 부른다. 부식질에는 벤젠고리 구조를 가진 화합물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바로 이 고리 구조의 분자를 미생물이 쉽게 분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생분해성 유기물은 미생물이 쉽게 분해하는데 오히려 이것 때문에 수생태계에서는 오염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유기물을 분해할때 산소가 필요한데 물속에서는 대기와는 달리 산소가 적은 환경이어서 산소고갈이 쉽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육상에서 낙엽이 이미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었기 때문에 수중에 생분해성 유기물이 많지 않다. 그러나 하천에 생활하수가 배출되면 아직 분해되지 않은 배설물, 음식찌꺼기 등이 배출되기 때문에 생분해성 유기물이 급격히 증가한다. 그러면 수중의 산소가 고갈되어 산소 부족으로 어류가 폐사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부식질을 염소 소독할 때 발생하는 발암물 질 가운데 하나인 클로로포름. 소독제인 염소가 유기물과 결합한다.

과거에 하수처리가 미흡하던 시기에는 이를 막기 위해 하수가 수중산소를 얼마나 소비하는지 측정하여 이를 오염도로 평가하며 감시하였다.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할 때 소비하는 산소의 양을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이라 부르는데 하수에 의한 오염을 측정하는 척도이며, 산소고갈을 방지하는 목적으로 오랫동안 하천 수질의 주요 지표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근래 우리나라에서는 하수처리가 보편화되어 하천의 BOD가 점차 감소하며 더 이상 산소고갈이 흔히 발생하지 않게 되었다.

반면에 난분해성 유기물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게 되었다. 퇴비 사용이 늘고 삼림녹화에 의해 낙엽 생성이 많아지면서 하천과 호수의 부식질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식질은 수중유기물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미생물이 잘 분해하지 못하므로 BOD로는 측정되지 않는다.

▲부식질이 많아 갈색을 띠는 하천(출처 Wikipedia).

퇴비 사용과 낙엽 생성으로 늘어가는 부식질

부식질은 원래 수중생물에 해가 없으므로 수질오염물로 간주할 이유가 없는 물질이다. 그런데 하천수를 상수원으로 이용할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정수장에서 수돗물을 만들고 마지막 단계에서 염소소독을 하는데 염소와 부식질이 결합하면 불쾌한 냄새를 만들고 발암물질도 생성하기 때문이다.

이 냄새는 잔류염소가 많은 수돗물로 차를 끓이면 느낄 수 있다. 차의 성분인 탄닌은 부식질의 일종이며 염소와 결합하여 불쾌한 소독약 냄새를 만들어 낸다. 물론 발암물질도 섞여 있다. 그래서 차를 만들 때는 수돗물이 아니라 염소가 들어 있지 않은 생수를 사용해야한다. 수돗물로 조리를 할 때도 염소 소독제가 잔류하는 수돗물로 바로 음식을 끓이면 염소와 결합하여 발암물질이 생성될 수 있으므로, 먼저 끓이거나 방치하여 염소가 휘발한 후에 사용하는 것이 좋다.

부식질이 많은 하천수로 수돗물을 만들면 발암물질이 많아지므로 숯가루를 사용하여 부식질을 제거해야 하는데, 이는 정수비용의 증가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하천은 대부분 상수원으로 이용되므로 상수원수로서의 가치를 위주로 수질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러므로 하수처리가 미흡하던 시절에 사용하던 생태계 위주의 산소소비량(BOD)을 수질지표로 사용하지 않고 수년 전부터 부식질위주의 유기물 총량측정 지표인 TOC(totalorganic carbon)로 바꾸게 되었다. BOD는 미생물을 이용하므로 호수 수중 유기물의20% 정도밖에 측정할 수 없는데, TOC는 고온에서 태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측정하므로 부식질을 비롯한 모든 유기물을 측정할 수 있다.

▲갈색을 띠는 독일의 부식질 하천 사례(사 진 김범철).

새롭게 등장한 수질오염의 근원지

수질지표가 바뀌자 수질오염원도 바뀌게 되었다. BOD는 대부분 하수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TOC는 퇴비와 낙엽에 기인하는 부식질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삼림과 농경지도 수질오염의 근원지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BOD는 일주일이면 절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먼 하류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부식질은 분해되지 않아 먼 거리를 이동하여 하류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관리가 더 어렵다.

부식질이 많은 하천수는 갈색을 띠기는 하지만 플랑크톤이 많아 혼탁한 호수와는 달리 맑으므로 육안으로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부식질 하천은 죽은 식물이 많이 쌓여 있는 습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여름에 폭우가 내리고, 경사진 곳이 많아 낙엽이 많이 축적되지 않고 유출되기 때문에 심한 부식질 하천은 흔치 않다. 간혹 삼림이 우거진 하천에서 연한 갈색의 물을 볼 수 있기는 하나 외국에 비하면 농도가 낮은 편이다.

평지가 많고 습지가 많은 유럽이나 아메리카에서는 갈색의 강물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부식질이 많으면 검정에 가까운 짙은 색을 띠는 경우도 있어 검은 강물(black water)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천을 볼 때 물색을 관찰하며 부식질의 농도를 가늠해 보고 육안으로 수질을 평가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갈색을 띠는 독일의 부식질 하천 사례(사진 김범철).

▲검은 색을 띠는 아마존의 부식질 하천. 검은 강물(black water river)이라고 부른다(출처 amazonwaters.org).

<유기물의 생분해성에 따른 구분>

1. 생분해성 유기물

미생물에 의해 쉽게 분해되는 유기물. 무색.

수중 산소고갈을 일으킨다.

하수에 기인한다.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으로 측정한다(과거 수질지표).

호수 수중 유기물의 약 20%

2. 난분해성 유기물

미생물이 잘 분해하지 못하는 유기물.

갈색식물의 목질부 분해 잔유물

벤젠고리 화합물을 함유한 부식질호수 유기물의 80%

퇴비와 낙엽이 주요 근원

생태계에는 무해하나 수돗물 염소소독 시 발암물질 생성.

총유기탄소법(TOC)로 측정한다(현재 수질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