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월의 以心傳心
의성 의곡지(누리실지)의 숨 막히는 밤
단 한 번 입질에 망·연·자·실
| 이종일 객원기자 |
▲ 이기영씨의 낚시 자리. 옥수수내림 채비로 다대편성을 했다.
지난해 5월 경북 의성 만천지 붕어에게 철저히 외면당한 후 절치부심해온 나는 ‘낚시하는 붕어’ 회원 임낙균씨에게 이번 징검다리 연휴에 휴가까지 끼워서 의성권으로 출조를 가자고 바람을 넣었다. 의성 쪽으로 한 번도 간 적 없는 임낙균씨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쉽게 따라왔다.
5월 6일, 꼭 1년 만에 다시 찾은 의성군. 2박3일의 시간을 만들어 왔지만 마음이 급하다. 낚시점에 들러 정보를 듣고 현지꾼들에게 전화를 해대며 작년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또 처음 찾은 임낙균씨를 위해서라도 저수지 선택, 주효 미끼, 입질 시간대 등을 꼼꼼히 체크했다. 몇 곳의 저수지를 물망에 올려놓고 저울질하던 중 3일 동안 한곳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는 의성꾼 박태하씨와 연락이 되었다. “낚시할 자리가 많지 않지만 일단 와보라”고 한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경북 의성군 의성읍 용연리의 의곡지(누리실지)다.
▲ 월척을 한 마리씩 들고. 좌로부터 필자, 박태하, 이기영씨.
보는 순간 넋을 잃게 되는 의성붕어의 자태
의곡지는 대물꾼들 사이에 ‘헌못’으로도 불리며 용연지(상신지) 근처에 있다. 약 3천평 규모의 준계곡지다. 4~5개의 파라솔이 저수지를 빙 둘러 세워져있고, 저수지 전역에는 말풀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이번에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내심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이런 걱정을 순식간에 희망으로 바꾸어준 것은 우리를 반겨준 박태하씨의 살림망이었다. 언제 보아도 탄성이 나오는, 강하고 당찬 모습의 의성권 월척붕어 6마리가 살림망에 들어 있었다. 임낙균씨의 입에서도 작은 탄성이 나오고, 하루 일정으로 서울서 급히 내려온 한상훈씨도 간만에 보는 튼실한 월척붕어에 피로를 잊은 듯하다.
마침 철수하는 자리가 두 곳 생겨 각자 자리를 정했다. 박태하씨도 철수한다고 하기에 내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수심 1m 내외에 2.4칸부터 4.0칸까지 골고루 듬성듬성 수초작업이 된 자리에 찌를 세웠다. 약간만 잘못 투척해도 말풀 탓에 찌가 서지 않아 애를 먹는 상황이다. 좌측 물골 자리의 한상훈씨와 임낙균씨도 예외는 아닌 듯 바늘에 걸린 말풀을 끌어내느라 끙끙대고 있다.
수초 작업에 힘들어 하는 우리를 보던 박태하씨가 “하룻밤에 세 번이나 대를 세우지 못하고 5호 원줄을 터트린 곳이니 단디(단단히) 수초작업해보이소. 바닥 수초작업이 잘 돼야 붕어가 들어옵니더.” 5호 원줄도 터지고 바늘도 부러지는 괴력의 붕어라는 말에 담배 한 대씩 피우고 힘들을 낸다.
▲ 참붕어, 지렁이, 옥수수에 월척 붕어가 잘 낚이는 의성 의곡지. 조황 소식을 듣고 달려온 꾼들이 저수지를 둘러쌌다.
“참붕어를 꼬들꼬들 말려서 써보이소”
의곡지를 소개해준 박태하씨와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일행들과 약 10분 거리의 만천지에 있는 만천휴게소 식당을 찾았다. 풍성하고 맛깔스러운 시골 음식을 펼쳐 넣고 ‘누리실지’의 정보에 귀를 기울인다.
“4월 초부터 7~8치 붕어가 낱마리로 낚이기 시작해서 4월 말경에 9치, 월척이 종종 낚이고 5월이 되면서 떼월척 출몰이 시작됐다”며 “지금이 이곳 누리실지의 마지막 대물 출현이 높은 때”라고 박태하씨는 힘주어 강조한다. 며칠 지나 모내기를 위해 물을 빼면 소강상태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이 시기의 1순위 미끼는 참붕어.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사용하는 주 미끼다. 누리실지에도 참붕어가 있지만 채집이 되지 않아 근처 용연지에서 채집해 쓴다. 참붕어를 쓰되 살아있는 참붕어보다 죽은 참붕어를 약간 꼬들꼬들 말린 상태로 쓰는 게 좋다고 한다. 2순위 미끼는 지렁이로 새벽부터 오전 11시경까지 쓴다. “지렁이는 딱 한 마리만 꿰어 쓰는 게 좋다”고 박태하씨는 일러준다. 3일 전 아침에 지렁이 미끼로 월척붕어를 마릿수로 낚았으며 햇살이 저수지 전역에 퍼지면 지렁이 한 마리 꿰기가 그 어떤 미끼보다 대형붕어와 맞닥뜨릴 수 있는 탁월한 미끼라고 재차 강조한다. 3순위는 옥수수. 요즘 유행하고 있는 옥내림(옥수수내림낚시)이 이곳에서도 잘 통해 7~9치부터 대형 붕어까지 잘 낚인다고 했다.
“새우미끼는 안 씁니까?”
새우 사용을 좋아하는 한상훈씨가 물어본다. 한상훈씨 자리가 유일하게 마사토가 바닥에 있는 상황이라 궁금했던 모양이다. “전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입질이 안 들어온다”고 딱 잘라 말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르라는 말처럼 그곳에 맞는 채비법이 우선한다는 것을 경험상 잘 알기에 오는 길에 삼삼오오 떡밥낚시를 즐기는 현지꾼들이 있던 용연지에 들러 참붕어를 채집했다.
▲ 이기영씨가 아침에 옥수수내림낚시로 낚은 39cm 붕어를 보여주고 있다.
심야에 습격한 대물은 과연?
입질시간대는 초저녁과 밤 1시 이후라고 했다. 대물을 기대하며 낚시에 돌입한다. 좌측 제방 모서리 부근에서 옥내림을 하는 꾼의 챔질소리와 월척 이하급의 물소리가 가끔 들리지만 밤 12시가 되도록 우리의 찌에는 미동도 없다.
우측 3.4대의 찌가 느닷없이 솟아오르는 것을 본 것은 밤 12시 30분경! 예신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못 본 것인지 찌가 조금 느리게 솟아오른다. ‘절대 찌가 올라올 때 채지 말고, 찌가 다 서서 넘어지거나 옆으로 끌고 가려 할 때 채야 걸림이 확실하다’는 낮에 들은 말을 생각하고 더 올라오길 기다린다. 더, 더…! 그런데 거의 올라오는 듯하더니 갑자기 찌가 내려간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상황에 할 수 없이 강하게 챔질. 가늠이 안 되는 무게의 느낌이 손목으로 전해오는 순간 대가 들리지 않는다. 이후 울컥 하는 저항을 물속에서 느끼는 순간 힘을 주고 있는 3.4대가 힘없이 처져버린다.
이-럴-수-가!
터질 듯한 5호 원줄의 느낌, 바늘에 걸려 울렁대던 그 무엇의 몸부림… 망연자실(茫然自失), 이보다 딱 맞는 말은 없을 것이다.
이후 이른 아침 요란한 물소리와 함께 옥내림낚시를 하던 현지꾼 양 사장님이 39cm 붕어를 낚는 조과를 올렸고 이것을 바라보는 우리는 아쉬움과 부러움으로 이번 출조를 대신했다. 하루 더 시간이 있었지만 기회는 나에게 다시 찾아와주지 않았다. 함께한 일행들도 대물붕어와의 상면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또 한 번의 기회를 약속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아직까지도 그날 느낀 의곡지의 물속에 사는 그 무언가로 인해 한동안 즐거운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라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 박태하씨의 월척 조과. 월척을 6마리나 낚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