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

터질 듯 말듯 제주 추자도

본게임은 시작도 안 했다

이영규 기자

▲상추자도 나바론 2번자리에 내린 윤용택 씨가 감성돔 을 걸어내고 있다. 이날 2번자리에서는 총 14마리의 감성돔이 올라왔다.

겨울 시즌 중반에 접어든 추자도가 분화를 멈춘 휴화산처럼 숨을 고르고 있다. 올해 초등철은 평년보다 높은 수온 탓에 굵은 씨알이 드물었지만 1월 초순 들어 수온이 14도까지 내려가며 대물 확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매년 추자도를 찾는 단골 낚시인들은 최근 몇 년 새 겨울 수온이 상승하면서 이런 현상은 연례행사가 됐다고 말한다. 이에 앞으로는 1월 중순부터를 본격 겨울 시즌으로 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는 분석이다.

지난해는 유난히 바다 날씨가 나빠 장기로 출장 날짜 잡기가 어려웠다.

연말인 12월까지도 이런 악순환이 지속됐다. 결국 12월 셋째 주로 예정된 가거도 일정이 물거품이 된 상황에서 희망의 빛이 보였다. 날씨어플을 보니 신안군 먼 바다는 풍랑이 거센 반면 완도-추자-제주를 잇는 수직 라인으로는 양호한 날씨가 지속됐다. 보기 드문 일기였다. 이 날씨가 나흘은 지속되기에 황급히 추자도로 목적지를 선회했다.

▲하추자 예초리 앞 끝여의 썰물 자리를 공략 중인 낚시인.

▲나바론 2번자리에서 46cm를 올린 윤용택 씨.

12월 21일 첫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내려간 뒤 다시 여객선을 타고 추자도로 향했다. 추자도로 들어가는 여객선 뱃길은 험했지만 회항이 걱정될 정도는 아니었다. 상추자도에 도착해 25시민박 차량으로 이동하는데 새벽 출조할 때만 해도 주의보급 날씨였다고 한다. 여객선 탑승 직후 승무원이 손님들에게 멀미 대비를 신신당부했던 이유가 있었다.

민박집에 짐을 풀어놓은 후 곧바로 오후 출조에 나섰다. 아침 일찍 나간 손님들은 상추자권의 횡간도, 덜섬, 직구도 등지로 들어간 터라 오후 손님들이 내릴 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나와 본섬에서 가까운 하추자 예초리 앞 끝여에 내렸다. 이곳에 동승한 윤용택 씨가 함께 내렸다. 본섬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끝여는 초등철 명당. 수심이 깊어야 6~7m이며 수중여가 발달해 종종 떼고기 사태가 나는 곳이다. 윤용택 씨는 추자25시민박의 오랜 단골손님으로 올 겨울 역시 12월 초순부터 들어와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첫날 오후낚시는 늘 한 마리가 목표다. 낚시 시간도 짧고 ‘오전빨’도 없기 때문에 쓸 만한 횟감 1마리를 낚는다는 목표로 욕심 없이(?) 낚시에 임한다. 그런 나의 바람을 바다가 안 것인지 첫 입질에 45cm짜리가 덜컥 걸려들었다. 올 겨울 첫 추자 감성돔인데 손맛이 대단했다. 매번 느끼는 점이지만 같은 45cm급이라도 가거도나 태도 감성돔보다 추자 감성돔의 질주 파워가 한 수 위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추자군도의 얕은 수심과 빠른 조류에 단련된 것이 원인이 아닐까도 싶다.

▲추자바다25시민박의 뉴에이스호가 1번자리에 내린 손님들을 철수시키고 있다.

▲정태기 씨가 나바론 2번자리에서 윤용택 씨와 거둔 조과를 보여주고 있다.

▲추자도 낚시 첫날 횡간도에서 올라온 고기들. 감성돔, 참돔, 부시리가 고루 낚였다.

5짜급 출현 빈도 높은 나바론
이튿날은 묵리포구에서 가까운 나바론으로 향했다. 나는 오전 6시에 나가는 2항차 낚싯배를 탄 터라 인기 포인트인 1번과 2번 사이 2.5번 포인트에 내렸다. 원래는 이름없는 무명 포인트지만 부르기 좋게 임의로 붙인 번호다.

나바론 일대는 6짜급 감성돔이 잘 낚이는 대물 포인트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는 초등철부터 영등철까지 꾸준히 마릿수 조과를 배출하는 구간이다. 올해 초등철에도 나바론 ‘2.5번자리’에서 오전 시간에만 혼자 40마리가 넘는 감성돔을 낚은 사람도 있었다.

여기에 굵은 씨알이 낚일 확률도 높다. 추자바다25시민박 김찬중 사장은 “추자에서 6짜 감성돔이 낚이는 포인트는 여럿 있지만 5짜 이상급 배출 빈도가 가장 높은 구간은 단연 나바론 일대다”라고 말한다.

2.5번은 처음 내린 자리라 일단 본류를 직공해보려고 했다. 그때 2번 자리에 있던 정태기 씨가 갯바위를 타고 이동해와 공략 요령을 알려줬다. 본류보다는 우측의 작은 홈통에서 마릿수가 좋다는 얘기. 이번 초등철에 오전에만 40마리가 낚인 자리가 바로 여기였다.

정태기 씨의 코치가 끝난 지 10분도 안 돼 엄청난 입질이 들어왔다. 예상대로 우측 홈통에서 히트된 고기가 정면 콧부리를 돌아 좌측 2번자리까지 줄행랑치는 게 아닌가.

작년에 3번자리에서 정체불명의 대물을 두 번이나 놓쳤던 터라 당시의 악몽이 떠올랐다. 결국 이번에도 팅! 그러나 얼굴도 못 본 이 녀석은 당시 나바론 일대를 폭주하던 부시리로 예상됐다.

▲유튜브 허기자TV 운영자 허만갑 씨가 나바론 1번자리에서 감성돔을 걸어 손맛을 즐기고 있다.

▲12월 말경 낚인 감성돔들. 수온이 높아서인지 씨알보다는 마릿수 조과가 돋보였다.

▲정태기 씨가 나바론 2번자리에서 사용한 1.5호찌 채비.

▲부산에서 온 한수철 씨는 나바론 상투바위에서 50cm짜리를 낚았다.

나바론 2번자리의 대박과 쪽박

보통 부시리가 물면 난바다로 미친 듯 질주만 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도 않다. 특히 감성돔낚시처럼 바닥을 노리다 히트될 경우 초반 4~5초까지는 어종 가늠이 불가능하다. 초반에 꾸욱꾸욱 처박는 습성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시리는 여밭으로 파고드는 습성이 강해 초반에 목줄이 수중여에 쓸리면 대부분 대형 감성돔으로 오인할 때가 많다. 멀리 2번자리에서 나의 파이팅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구경하던 정태기 씨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어보였다.

이 자리에서 나는 47cm와 36cm를 추가하는 것으로 낚시를 마쳤다. 정체를 모르고 터트린 놈이 아쉬웠지만 나바론에 올 때마다 겪는 일이라 이제는 덤덤했다.

반면 정태기 씨와 윤용택 씨가 함께 낚시한 2번자리에서는 대박 조황이 펼쳐졌다. 둘이서 총 14마리를 낚았는데 가장 큰 놈은 46cm였다. 2번자리는 물속이 밋밋하고 걸림도 없을 정도로 바닥이 심심한(?) 곳인데도 가끔 이렇게 폭발 조황을 보일 때가 많다.

그런데 이 조황이 늘 일정하게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게 함정이다. 낚시인 중에는 ‘한 번 왕창 뽑아먹은 자리에는 고기 없다’는 속설을 얘기하지만 사실은 다 뽑아먹어서 없는 게 아니라, 그 물때에 또 다시 많은 양의 고기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나바론처럼 구간이 길고 깊고 얕은 홈통을 곳곳에 보유한 곳은 언제, 어느 곳으로 감성돔 무리가 몰려들지 알기 어렵다. 대박을 만날 수도 있지만 그만큼 꽝을 맞을 확률도 높은 것이다.

그런 현실이 다음날 일어났다. 전날 정태기 씨 일행의 대박 조황을 목격한 낚시인들이 2번자리로 들어갔으나 둘째 날은 단 한 마리의 감성돔도 낚이지 않았다. 전날 다 뽑아먹은 게 아니라 운 나쁘게 그날은 감성돔 무리가 2번자리를 외면한 것이다.

▲섬생이에서 낚인 벵에돔과 볼락.

▲12월 17일에 출조한 박훈 씨가 섬생이에서 올린 57cm 감성돔을 보여주고 있다.

▲직구도로 출조한 송전섭 씨는 감성돔, 부시리, 참돔을 고루 낚았다.

▲대구에서 출조한 한 부장피싱회원 한태일(왼쪽), 김명주 씨가 나바론과 섬생이에서 올린 조과를 자랑하고 있다.

▲나바론 2번자리에서 올린 감성돔을 보여주는 윤용택 씨.

▲저녁 식사 시간에 맛본 참돔 찜과 감성돔 회.

▲추자바다25시민박의 뉴 에이스호가 낚시인들을 싣고 묵리포구로 철수 하고 있다.

1월 셋째 주 사리물때를 주목하라
1월 둘째 주 현재 추자도 수온은 14도 내외를 오르내리고 있다. 여전히 35cm 내외급 씨알이 마릿수로 섞여 낚이는 양상으로 47~48cm급은 자주 낚이지만 5짜는 귀한 편이다. 아직 수온이 안정되지 못했다는 방증인데 사실 이런 현상은 비단 추자도만의 일은 아니다. 신안권 원도인 가거도로 들어간 낚시인들도 같은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해가 갈수록 상승하는 해수온의 미세한 변화가 겨울 감성돔낚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서 추자도 단골 낚시인들은 1월 셋째 주 사리물때를 전후해 겨울 추자다운 씨알들이 속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초등 피크는 끝이 난 것인지, 아직 본게임에 돌입하지 못한 것인지는 그즈음 판가름날 것으로 전망된다.

문의 추자바다25시민박 010-9440-7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