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문헌과 예술작품 속 쏘가리]

고려시대 이색(李穡) <암관음(巖串吟)> 기록

“파절이와 함께 쏘가리회를 먹다”

정일 목포대 중국언어문학 교수

이응희(李應禧:1579~1651) <옥담시집(玉 集)·옥담사집·만물편(萬物篇)·어물류(魚物類)>에 쏘가리를 표현한 시가 있다. 이 시에는 쏘가리의 모습과 쏘가리회, 쏘가리탕의 맛을 잘 묘사하고 있다.

낚싯대를 쥐고서 쏘가리를 끌어내어,
광주리 가득 담고 다시 버들가지로 꿰었다네.
붉은 비늘은 비단처럼 번득이고,
차가운 광채는 은빛으로 움직인다.

칼로 잘게 저며서 회를 만들고,
솥에 끓여서 그릇 가득 진하게 탕을 담았다네.
동강의 그윽한 취미가 좋으나,
좋은 맛이야 이보다 더 좋으랴?

把釣牽金鯽, 盈筐復貫楊. 紫鱗飜錦色, 寒彩動銀光.
細設鸞刀膾, 濃盛玉椀湯. 桐江幽趣勝, 佳味豈增長.

“동강의 낚싯줄 하나가 한나라의 구정을 붙들어 매었다(桐江一絲繫漢九鼎)”라는 말이 전해 온다. 중국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의 절친한 친구인 엄광(嚴光)이 높은 벼슬을 주려는 광무제의 호의를 거절하고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숨어 살며 동강에서 낚시로 소일한 고사가 유명한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선비들의 기개를 높여 주어 후한의 국운을 유지하게 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여기서 동강의 그윽한 취미(동강유취:桐江幽趣)란 낚시를 지칭하는 것이다. 즉 낚시가 좋은 줄은 알겠으나 쏘가리회와 쏘가리탕만큼 좋을 것인가 하고 물어본 것이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쏘가리회와 탕을 고급음식으로 매우 쳐준 때문이다. 쏘가리는 왜 이렇게 높은 부가가치를 갖게 된 것일까?

▲신사임당의 궐어도

대궐에 들어서게 해주는 행운의 물고기

쏘가리의 한자 이름에 답이 있다. 쏘가리는 한자어로 궐어(鱖魚) 또는 금린어(錦鱗魚)라고 부르는데, 궐어(鱖魚)에서 궐은 ‘厥+魚’로 구성되어 대궐의 궐(闕)과 동음의 한자어다. 쏘가리, 궐어는 대궐에 들어서게 해주는 행운의 물고기로 전해진 까닭이다.

낚시인에게 귀한 물고기, 큰 물고기를 잡는 것은 행운이자 꿈이다. 모 방송의 낚시예능 프로그램인 <도시어부>가 히트를 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다른 취미가 땀만 흘리면 운동이 되거나 취미생활로서 나름 즐거움을 전해주지만, 낚시는 운동이 되는 스포츠이자 물고기가 날 잡아서 잡수셔 하고 덤벼드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취미생활이기 때문이 아닌가. 그 비싼 생선회를 잡아서 싱싱하게 먹을 수 있다는 상상, 판타지의 실현이 아닐 수 없다.

<다산시문집·시(詩)·천진소요집(天眞消搖集)·연대정에서 절구 십이 수를 읊다(練帶亭十二絶句)> 제7권은 선조들이 미나리를 넣은 쏘가리탕을 조선후기에 즐겨 먹었음을 보여준다.

남자주가에 다리 부러진 솥을 걸고서,

미나리를 가져다 쏘가리에 넣고 끓인다네.

이에 알건대 서쪽 변방 산전의 늙은이가,

배 안에서만 살면서 일생을 지내는구려.

고기 잡는 법이며 고기 잡는 도구는 어부 집에 모여 있다네,

집은 바람 물결 백 이랑 못에 가까이 있다네.

물총새 너는 참으로 심력이 끈질기어서,

오래 엿보다 끝내 고기 한 마리를 잡아내는구나.

藍子洲邊折脚鐺, 靑泥芹共鱖魚烹. 是知西塞山前叟, 只管浮家 度一生.

魚經魚具聚魚菴, 門壓風漪百頃潭. 翠碧汝眞心力韌, 久窺終得 一魚銜.

여기 한시에 등장하는 남자주(藍子洲)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의 고향 마을 앞 한강에 있는 모래톱인데,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수되는 두물머리, 즉 양수리(兩水里) 지역의 모래톱이며, 족자섬이라고 부르던 지역을 말한다. 다리 부러진 솥(절각당:折脚鐺)은 이 당시의 서민생활, 특히 한강변 어부생활의 분위기를 전해준다. 어부로 사는 삶이라 물자가 없어 솥이 다리가 잘린 상태로 계속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고기 잡는 법과 도구에 관하여는 어부인지라 거의 도사급임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기에 물총새가 등장한다. 낚시인이나 어부보다도 더 끈질기게 기다림 속에 원하는 물고기를 낚아채는 ‘물총새(翠碧鳥)’는 낚시인이나 어부가 닮고자 했던 모습이 아니겠는가? 다산 정약용이 물총새 같이 정확하게 원하는 물고기를 총을 쏘듯 물을 쏘아서 낚아내는 솜씨는 그야말로 모든 낚시인이 정확하게 낚싯바늘을 물고기의 입술에 꿰서 끌어내기 원하는 마음, 그것을 ‘어심수심(魚心水心), 조어심(釣魚心)’라고 이야기한다.

▲조정규의 어해화첩 쏘가리

미나리를 넣은 쏘가리탕을 즐겨먹다

중국 최고의 시인인 두보(杜甫)의 최씨동산초당(崔氏東山草堂) 시에는 “밥에는 청니방에서 캔 미나리를 삶아 곁들였네(飯煮靑泥坊底芹)” 라는 말이 나온다. 두보가 동산초당 근처의 청니방(지명)에서 생산되는 미나리를 즐겨 먹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맛있는 미나리를 지칭하는 것이다. 즉 다산 정약용은 미나리를 넣어 같이 끓인 쏘가리탕을 먹었음 을 보여주는 것이니, 이는 조선 후기가 쏘가리탕 또는 쏘가리매운탕이 보편적인 음식이었음을 보여준다.

양천(陽川) 허균(許筠, 1569~1618)의 시문집인 <성소부부고(惺所覆瓿稿)·설부(說部) 5·도문대작(屠門大嚼)> 제26권에는 금린어로 지칭하는 쏘가리에 대한 기록이 있다, 도문대작이란 1611년 허균이 전국 팔도의 식품과 명산지에 관하여 적은 책이기도 하며, “푸줏간 쪽을 보고 입맛을 다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는 물고기, 식물, 물산 등에 대해 자세한 기록이 있어 물고기와 관련된 중요 사실을 전해 준다.

금린어(錦鱗魚):산골에는 어디에나 있는데 양근(楊根)에서 나는 것이 가장 좋다. 처음 이름은 천자어(天子魚)였는데 동규봉(董圭峯)이 먹고는 맛이 좋아 이름을 물으니 통역관이 얼떨결에 금린어라고 하였는데 모두 좋다고 하여 금린어가 되었다

錦鱗魚. 山郡皆有. 而楊根最好. 初名天子魚. 董圭峯食而美之.

問其名. 譯官猝而對曰. 錦鱗魚. 人皆善之.

궐어(鱖魚):서울 동·서쪽에서 많이 나는데 속칭 염만어(廉鰻魚)라고 한다.

鱖魚. 京東西多產. 而俗名廉鰻魚.

경기도 양평 양근(楊根)은 경기도 양평군 일원의 옛 지명으로 양평지역의 쏘가리가 가장 유명하고 맛있음을 전해주는 문헌기록이다. 양평군 은 과연 이와 같은 지역 브랜드가치를 가진 쏘가리를 귀하고 여기고 있 어 지역경제활성화와 관광활성화에 주목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여기에 등장하는 동규봉이란 동월(董越:1431~1502)을 지칭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 명나라 사신으로 와서 조선부를 지었는데, 동월이 쏘가리를 먹은 사실을 기록한 것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원래 쏘가리의 이름이 ‘천자어’였는데 명나라 사신 앞에 천자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없어 ‘금린어’로 바꾸어 말한 것이 전해져 쏘가리를 또한 금린어로 적게 된 것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임당(林塘) 정유길(鄭惟吉:1515~1588)의 <몽뢰정춘첩(夢賚亭春帖)> 시에 역시 쏘가리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선대의 백발 판서는, 한가하던지 분주하던지 분수대로 편안하게 거 하였다네.

고기잡이 영감 봄날 강이 따사롭다면서, 꽃도 피기 전이건만 쏘가리를 진상하네.

白髮先朝老判書, 閑忙隨分且安居. 漁翁報道春江暖, 未到花時 進鱖魚.

▲이고선의 궐어도

퇴계 이황 연회에 쏘가리를 진상하다

수월정(水月亭)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임당 정유길의 몽뢰정(夢賚亭) 이 있었다. 몽뢰정은 기사년(1569년) 도산(陶山)으로 귀거래하는 퇴계를 보내는 성대한 전별연이 거행되었던 곳이다. 임당 정유길은 몽뢰정과 수월정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몽뢰정은 처음에 수월정과 이웃하여,

두 늙은이 일강의 봄을 분점하네.

그대 집의 주악을 내가 들으며,

사람이 절승을 도문대작이라.

夢賚元爲水月隣, 兩翁分占一江春.

君家奏樂吾家聽, 絶勝屠門大嚼人.

1569년 봄 선조 임금은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년~1570)이 69세 때에 고향에 내려가도 좋다고 허락한다.

3월 4일, 퇴계 이황은 정오에 임금께 하직한 뒤 한양 도성을 나와 해 질 무렵 한강변 동호(東湖) 몽뢰정에 이르렀고, 봉은사~광나루~미음 나루(남양주)~충주~단양~죽령~풍기 등을 거쳐 3월 17일 고향으로 돌아간다.

왜 몽뢰정에서 송별연을 거행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정유길과 이황간의 교우관계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몽뢰정이 정유길의 정자일 뿐만 아니라, 몽뢰정에서 송별연을 거행한 점, 그리고 특히 <몽뢰정춘첩> 시의 내용 중 ‘두 늙은이’를 언급하고 있어 정유길이 몽뢰정 연회에서 특별히 선조 임금과 퇴계 이황을 위해 쏘가리를 진상한 것으로 보인다.

<퇴계집·퇴계선생연보·3년(기사년) 69세 3월조> 제2권에서 “오정 때에 하직하고 성을 나와 동호 몽뢰정에서 자다. 기유, 배를 타고 동으로 향하여 봉은사(奉恩寺)에서 자다”라는 기록이 있으니, 정유길의 동호 몽뢰정에 하루 묵었음을 보여준다.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1538-1593)의 <학봉집·부록 제1권·연 보(年譜)>에서 선조 2년(융경 3년, 1569, 기사년, 선생 32세) 학봉 김성일이 퇴계 선생을 동호 몽뢰정에서 전송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3월에 퇴계 선생을 동호에서 전송하였다. 퇴계 선생이 전년 7월에 소명을 받아 서울로 들어갔다가 이때에 이르러 물러나기를 빌어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동호의 몽뢰정에 나아가 묵었다. 조정의 명사(名士)들이 모두 나와 전별하면서 각자 시를 지어 주면서 작별하였다.” 학봉 김성일 선생이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의 운(韻)을 차운하여 절구 두 수를 지었는데, 그 첫 번째 시에 이르기를,

마지막 길이라 벼슬길서 물러나는 사람 없어,

명리의 굴레에 매인 사람 몇몇인가.

여유로이 떠나심에 남은 미련 없으나,

오로지 생각은 도리어 서울 떠나가는 시름이라네.

末路無人退急流, 名韁挽得幾人留.

此行綽綽無餘憾, 一念猶關去國愁.

▲박광천의 쏘가리 문호

고려시대엔 파절이와 함께 회를 먹어

지규식(池圭植:1851년 출생)의 <하재일기(荷齋日記)6·기해년(1899) 4월 11일(무자)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암사리에 이르니 바람 기세가 크게 일어나 배를 바위 아래 묶어 두고 쏘가리를 사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함께 먹었다.

至岩寺里 風勢大作 繫舟岩下 買得鱖魚 炊飯作羹共喫 日落後 又行至廣津 夜已深矣.

암사리는 지금의 암사동으로 하재 지규식이 암사동에서 쏘가리탕(鱖魚 羹)을 먹었음을 보여준다.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목은시고(牧隱詩藁)·시(詩)·병중에 우연히 이전의 놀이가 생각나다(病中偶念奮游)> 제10권의 <암관음(巖串吟)> 시에는 쏘가리회를 먹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어 매우 흥미롭다.

푸른 물결에서 아름다운 고기를 낚아 올려, 얇게 회치고 파 밑동 잘게 썰어 양념했었네.

碧波釣出錦鱗魚, 葱白細和飛縷紅.

시의 배경이 바다인지 강인지 확실하지 않아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금린어가 쏘가리라면 이는 파를 잘게 썰은 파절이를 쏘가리회와 함께 먹은 것이다. 쏘가리회에 파절이를 같이 먹는 전통 음식방법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쏘가리가 등장한 예술작품들

중국 산동성 까오탕씨엔(高唐縣) 출신의 화가 이고선(李苦禪)이 그린 궐어도(쏘가리 그림)엔 “복숭아꽃 물에 흘러가니 쏘가리가 살찔 때라 (桃花流水鱖魚肥)”고 제화시가 쓰여 있다. 이고선은 본명은 이영걸(李 英杰)이며, 북경의 쉬페이홍(徐飛鴻)에게서 그림을 익혔다. 1923년에 치바이스(齊白石)의 수제자가 되면서 유명해지고, 1946년 북경예술전문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부터 중국 사의화(寫意畵:사의화는 묘사 대상의 생긴 모습을 작가의 의도에 느낌을 강조하여 그린 그림을 지칭함)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석도(石濤), 팔대산인(八大山人), 양주화 파(楊州畫派)의 중국적 표현 방식을 서양화 기법과 융화시킴으로써 웅건, 호방하면서도 굳건하고 소박한 느낌을 강조하는 미술세계를 전개 하였다. 그림에 쓰인 글을 해설하면 다음과 같다.

桃花流水鱖魚肥

閑人曾問以畵魚法

畵法本無定

与以人寫物

而不以物限人耳

一九八七年 秋月 苦禪 寫於京華新屋

흐르는 물에 쏘가리가 살찌네

한가한 삶이 고기 그리는 법을 물었더니

화법에는 본래 정해진 바가 없다네

사람을 보고 그림을 평가하지 않고

그림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도 말라

1987년 가을 이고선 경화신옥에서 씀

시원하고 활달한 필치의 여유가 넘치는 문인화다. 그저 입을 한껏 벌리고 있는 고기 한 마리뿐이라며 대충 보고 넘길 그림이 아니다. 이 그림에 입혀진 글은 단순한 문인화가 아니라 철학이 담긴 철리화(哲理畵: 철학적 이치를 담은 그림)인 것이니 보는 것이 아니라 읽고 음미하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화제(畫題)에 해당하는 “桃花流 水鱖魚肥”라는 문장은 당나라의 시인 장지화(張志和:732~774)의 <어가자(漁歌子:어부가 부르는 노래)>라는 시구에서 발췌한 것이다.

경기도 여주시 전원도예연구소 박광천(朴光千) 여주명장은 청화백자와 상감철화화장토(象嵌鐵畵華長土)로 전통과 현대를 어우르는 입체미학의 품격 있는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의 쏘가리 문호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