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김범철 교수의 호수의 과학 74]

미국가재, 왕우렁이, 초어

수생태계를 위협하는 초식동물

김범철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명예교수

우리나라 수생태계를 위협하는 외래 육식동물 이라면 누구나 배스, 블루길, 황소개구리 등을 쉽게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토종 물고기와 수생곤충을 마구 잡아먹고 천적이 없어 과잉 증식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여 초식동물이라면 별로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초식동물이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수생태계를 많이 훼손하는 사례들이 있다. 미국가재, 왕우렁이, 초어가 외래 초식 동물인데 식물의 싹을 먹어 버려 수생식물을 감소시키고, 이에 의존하는 수서곤충과 어류의 서식처를 훼손하여 간접적으로 동물군집을 파괴할 수 있다.

▲어린 수초의 싹을 잘라 먹어 호수생태계를 황폐화하는 미국 가재(Red swamp crayfish, 자료_Wikipedia).

미국가재

필자가 미국가재를 처음 접한 것은 10여 년 전 미국 북부의 위스컨신대학을 방문하였을 때이다. 대학부설 호수연구소가 위치한 호수를 며칠 방문하였는데 남부지방의 가재가 유입하여 생태계 파괴가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가재가 식물의 어린 싹을 잘라 먹기 때문에 호수를 덮고 있던 수초대가 사라지고 황량한 모래바닥 호수가 되었고 동시에 어류의 양도 급감하였다고 한다. 호기심에 수경을 쓰고 잠수를 해 보았더니 한 시야에 몇 마리의 붉은 가재가 보일 정도로 호수 바닥에 가재가 많이 있었다. 포획망을 넣어 보니 몇 시간 만에 하나 가득 잡힐 정도였다.

우리나라에서 ‘미국 가재’ 또는 ‘붉은 가재’ 라고 부르는 이 가재는 미국 이름이 Red swamp crayfish인데 ‘붉은 늪지 가재’라는 뜻이다. 원래 미국 남부의 미시시피강 하류 지역이 서식지이고 이 지역에서는 별미로 먹는 음식이다. 남부 방문 시 먹어 본 적이 있는 데 맛은 좋지만 껍질을 까는 번거로움에 비해 살이 적어서 별로 매력이 없었다.

그러나 남부지역 애호가들은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북부에서 포획하는 수산자원이 되었다. 미국가재가 남부에서 북부로 유입된 경로는 알 수 없으나 육상을 잘 걸어 다니는 종이니 자연적으로 확산될 수도 있고, 식용을 위해 방류하기도 하고, 보트 트레일러 바퀴에 알이 붙어서 이동하기도 하고, 살아있는 가재를 낚시미끼로 쓰다가 방류하기도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식용으로 키우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애완용으로 키우다가 방생하여 유입된 것으로 보이며 영산강에 서식하기 시작하다가 금강유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왕우렁이의 유독성 알. 붉은 색은 독을 함유하고 있음을 포식자에게 경고하는 경고 색이다(사진_김범철).

▲식물의 싹을 잘라먹어 제초효과를 위해 논농사에 사용하는 왕우렁이(Apple snail).(자료_ Wikipedia)

▲친환경농업을 위해 잡초 제거 목적으로 논에 풀어 놓는 왕우렁이(자료_the star)

왕우렁이

왕우렁이는 영문명이 Apple snail(사과우렁이)이다. 빨간색 알을 낳기 때문에 사과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크기가 5cm에 이르며 토종 우렁이에 비해 월등히 크다 보니 ‘왕우렁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왕우렁이는 세계적으로 생태계 파괴가 심하여 ‘유해침 입생물 100선’에 드는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종이다. 우리나라에는 두 종이 출현하는데 식용으로 도입하였다가 지금은 친환경농업에 사용하고 있다.

왕우렁이는 잡식성으로 수생식물을 잘 뜯어 먹는 특성을 이용한다. 모내기를 하고 벼가 활착하고 자라기 시작할 때 사육한 왕우렁이를 대량 뿌려 주면 성장한 벼는 먹지 않고 새로이 돋아나는 식물 싹을 모두 먹어 제초제를 뿌릴 필요가 없으므로 친환경 무농약 재배에 필수요소가 되었다.

제초제 대신 사용하는 것을 보면 식물을 얼마나 잘 제거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왕우렁이가 논 밖으로 유출되면 야생에서 수생식물을 감소시켜 동물군집 감소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요즘 논이 아닌 야생에서도 왕우렁이의 빨간 알을 흔히 볼 수 있으니 이미 논 밖으로 많이 유출되어 사는 것으로 추측된다. 왕우렁이의 알은 강렬한 분홍색으로 쉽게 눈에 띄는데 독을 가지고 있으니 동물이 먹지 말라는 경고색인 것으로 보인다.

왕우렁이는 세계 여러 곳에서 수생식물 파괴의 원인이 되고 있는데 특히 열대 지방에서 피해가 매우 심하다. 왕우렁이는 남아메리카의 열대지방이 원산지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추운 겨울에 월동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도입하였으나 생물은 돌연변이도 가능하므로 낙관할 수 없다.

과거에 겨울을 나지 못하던 열대 식물인 부레 옥잠도 현재 여러 곳에서 월동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열대어류인 틸라피아도 월동하며 번식하고 있다. 특히 하수처리장의 따뜻한 방류수는 열대 생물의 생존에 유리한 장소이다. 왕우렁이 농사에서는 가을에 농사가 끝나면 겨울에 모두 죽는다고 하지만 논이 아닌 곳에서도 왕우렁이의 알이 관찰되는 것을 보면 일부가 월동에 성공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된다.

왕우렁이가 논에서 생존하는 동남아에서는 이듬해 벼의 새싹을 먹으므로 벼를 직파하는 농업에서 큰 피해를 주고 있다. 만일 야생에서 월동하는 개체가 확산된다면 봄에 수생식물의 새싹이 돋아날 때 이를 먹어치워 수생식물이 생장을 시작하지 못하게 되고, 동물군집의 파괴가 뒤를 이를 것이다.

▲수생식물을 뜯어 먹어 수생태계를 훼손할 수 있는 초어(Grass carp). (자료_ Asian Carp Canada)

초어(草魚)

초어는 중국이 원산지인 잉어과 어류인데 풀을 먹을 수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영어로는 이를 번역하여 Grass carp로 부른다. 침수 식물뿐 아니라 수변의 갈대 줄기도 뜯어 먹을 수 있는 억센 입을 가지고 있다. 식물을 잘 먹기 때문에 헥타아르당 10마리만 있어도 수생 식물이 50% 감소한다는 연구보고가 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는 70년대 식용을 목적으로 백연과 함께 도입되어 전국 여러 호수에 방류되었으며 아직도 일부가 생존하고 있다.

이후 내수면연구소에서는 인공번식하여 필요로 하는 곳에 공급하였는데 주요 수요처가 낚시터였다. 수생식물이 밀생한 낚시터에서는 초어를 투입하여 낚시에 장애가 되는 수초를 손쉽게 제거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1m에 이르는 거대한 초어가 낚시에 잡히는 재미도 있었다. 외국에서는 운하의 선박 운행에 장애가 되는 수초제거를 위해 방류하기도 하였다. 필자도 몇 마리 얻어 실험을 해 보았는데 갈대와 같은 억센 정수식물을 잘라 먹을 정도로 턱힘이 강한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히려 연잎은 먹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아마도 연잎은 초식어류에 대한 방어 기작이 있는 것 같다. 과거 초어낚시에서는 시금치를 미끼로 쓰기도 하였다.

속초의 영랑호에서는 초어의 양식장이 있었는데 폐쇄하면서 초어를 그대로 방류하여 영랑호에서는 수생식물이 완전히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심지어는 물 밖의 갈대까지 머리를 내밀고 뜯어 먹은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초어의 생태학적 피해가 가장 심했던 곳이 영랑호이었을 것이다. 초어는 긴 강에서만 번식이 가능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다행히 번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외래 생물로 인한 생태학적 피해는 예측이 어려우니 함부로 살아있는 생물을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