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어]

평창 창리천에서 만난 멋진 친구

69CM 무지개송어

김호엽 플라이낚시인, 대구대학교 기획처 재직

7월 17~18일, 주말을 맞아 세 식구가 함께하는 낚시캠핑을 위해 느지막이 12시에 집을 출발했다. 새벽 2시에 출발하던 것과 비교하면 10시간 늦은 것이다. 온몸으로 표현하는 아들이 신난 건지 마음을 숨기고 있는 내가 더 신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마음은 언제나처럼 평창군 미탄면의 창리천으로 향하고 있었다.

장마로 인해 한결 깨끗해진 계곡 풍경을 감상할 새도 없이 채비를 하고 물가로 달려갔다. 식구들과 함께하는 날은 매끼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식사하는 시간까지 아까운 난 느긋하게 낚시하는 사람은 아니다. 오늘이 지나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나는 그 순간에도 이미 아쉬운 마음이다. 왜 매번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낚시를 하느냐고 집사람이 묻지만 난 대답하지 않는다. 즐거워서 정신을 못차리는 건 당연한 건데 그 이유를 물으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계곡의 상황은 해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2007년부터 열정적으로 계곡을 누비고 있다. 한나절 7~8마리의 무지개송어를 잡았을 때 내가 낚시를 아주 잘 하는 사람인줄 착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하루에 한 마리 잡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며칠간 묶은 드라이플라이훅을 무지개송어가 있을만한 곳에 던져 보기도 하고 흘려보기도 해보지만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다.

대물이다!

다음날 새벽 4시50분, 벌써 산 너머에서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계곡낚시와 해는 아주 상극이다. 해가 지면 낚시를 마쳐야 하고 해가 뜨면 오전 피딩타임이 끝나간다는 뜻이다. 채비 준비는 1분이면 족하다. 전날과 다르게 님핑 패턴으로 포인트를 탐색했다. 덜컥 훅을 물고 늘어지는 녀석은 30cm 중반으로 보인다. 뜰채에 담아놓고 다시 주변을 공략했다.

바닥에 무언가 걸렸는지 로드가 움직이지 않다가 줄이 주르륵 주르륵 쭉 빠져나갔다.

대물이다!

5분간을 힘겨루기를 했는데도 다가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후킹 실패 시 한참 후에 그 자리에 가면 그 녀석을 다시 만날 기회를 가지지만 한참 씨름하다 놓친 경우엔 다시 그 녀석을 볼 수가 없다.

물속 바위에 쓸려 줄이 끊어지거나 풀에 걸려 바늘이 빠지기라도 하면 이 기회를 다시 잡을 수 없다는 마음에 긴장감은 휘어진 로드만큼 온몸에 팽팽하다. 물고기의 매 움직임에 전율이 흐르는걸 보면 난 이 순간이 진정 행복한 순간이다.

7분이 넘으니 녀석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아버지한테 배운 대로 수면의 물과 공기를 먹여 힘을 서서히 뺀다. 아까 잡은 녀석을 뜰채에 담아놔서 2m 거리의 뜰채를 가지러 갈 여유가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손으로 녀석을 잡아보려 했으나 한 손으론 어림없다. 로드를 다리 사이에 끼고 두 손으로 잡으려는 찰나 녀석은 풀 속과 바위 속을 헤집으며 내게서 다시 멀어진다.

꿈이 현실로 되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 녀석을 놓치면 뜰채 속 물고기를 포기하지 않은 나를 원망할 것 같고 뜰채를 가지고 오다가 이 녀석을 놓치면 두 녀석 모두 사진을 찍지 못한 채 빈손이 되는건데…. 그래 결심했어. 진정한 앵글러는 손으로 잡는 거야. 내 인생 기록어를 손으로 잡는 것 또한 행복한 것이리라.’

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의 상황에서 여유 있는 척 오기를 부렸 다. 결국 10분간의 씨름 후 녀석은 불쌍한 눈빛으로 내 앞까지 왔고 나는 두 손으로 녀석을 안고 물가로 나왔다. 나의 기쁨과 녀석의 슬픔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얕은 계곡에 무지 큰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어 물속에서 안고 나오는 꿈을 몇 년간 드문드문 꾼 적이 있었다. 꿈이 현실로 된 것일까…! 다행히 7살 아들과 나는 무지개송어 를 한 마리씩 들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집 주변에서 일주일에 한 번은 함께 낚시를 하는 아들에게 웬만한 크기의 물고기는 대수롭지 않으나 이번에는 과한 액션으로 기뻐해준다. 잡는 물고기마다 이름을 지어주는 아들은 이 녀석에게 ‘슈퍼송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고 자연으로 보내준다. 우리에게 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물고기로선 해석할 수 없는 말을 내뱉는다. 다음에 더 커서 다시 만나자.

▲줄자로 계측한 개인 최대어. 눈금이 69cm를 가리키고 있다.

▲69cm 무지개송어를 아들 재하와 함께 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