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 가거도]

신나고 짜릿한 낚시지옥이었다!

가거도 매직

농어, 볼락, 부시리, 돌돔 낚으며 4박 5일

조홍식 이학박사, 「루어낚시 100문 1000답」저자

▲가거도 1구의 가거도항만 방파제. 오늘도 복구 중이다.

작년 8월 26일 밤에 몰아닥친 태풍 ‘바비’가 만든 20m 높이의 거대한 파도에 공사 중이던

방파제 480m 중 300m가 유실되고 말았고 아직도 피해복구에 여념이 없다.

작년 말이었던가? 금년 초였던가? 젊은 자유영혼의 이병철 시인이 가거도로 가자는 제안을 했다. 그 한마디가 솔깃해서 며칠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구체적인 일정을 짜자고 확 질러버리고 말았다. 이병철 시인은 기회가 있으면 자주 드나드는 모양으로, 혹시 마음이 바뀌기 전에 못을 박아두려는 나의 이기적인 의도도 다분히 있었다.

가거도 하면 감성돔의 보고다. 솔직히 갯바위낚시 전문도 아니면서 루어낚시인이 가거도로 장박 원정낚시를 간다는 건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 초여름 가거도의 루어 대상어는 주로 농어, 부시리, 볼락으로 가거도까지 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육지 연안에서 낚을 수 있지만, ‘꾼이라면 꿈’을 꾸고 있는 게 당연해서인지 비경에서의 대물과 마릿수 조과에 대한 욕심이 머릿속 다른 기능을 정지시켜버렸다. 원도, 특히 가거도는 들어가기도 힘들고 나오기는 더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36km나 떨어져 있는 우리나라 최서남단, 쾌속 선으로도 4시간이나 걸리고 바람이 세게 불거나 파도가 좀 높으면 결항이어서 샐러리맨이 웬만해서는 찾아가기 힘든 게 가거도이지 않은가.

▲농어낚시 중 나타난 방어. 파도를 뒤집어쓰는 공방전 끝에 가프를 사용해 무사히 랜딩에 성공했다.

꾼이라면 꿈을 꾼다

이번 동행도 역시 우리의 호프 이병철 시인과 세계를 낚는 엄일석 군이 같이했다. 더구나 엄일석 군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박사과정에 입학을 몇 주 남기지 않은 터라 전별 기념낚시라는 의미도 부여했다.

가거도라는 이름은 ‘사람이 살 수 있다(可居)’고 해서 신라시대 때부터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육지에서 아주 멀어서 붙은 이름일 거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흑산도의 부속 도서로 편입되어 흑산도를 대흑산도, 가거도를 소흑산도로 정했다가 2008년에 이름을 다시 가거도로 개칭한 역사가 있다.

그래서 내 또래에게는 가거도라는 정식 지명보다 학생 때 지리부도에 적혀있던 소흑산도라는 지명이 더 쉽사리 전해지고 마는 폐해가 있고, 나 빼고 두 명에게는 소흑산도보다는 가거도가 더 빨리 와 닿는 거 같았다.

그런 곳으로 7월 10일 토요일 아침 8시 목포발 쾌속선은 좋은 날씨에 순항을 시작했다. 아뿔싸, 좋은 날씨를 너무 믿은 내가 미련했다. 그렇게 가거도로 가는 길은 만만치가 않은 것을. 미리 멀미약을 먹을 걸, 이미 늦고 말았다.

흑산도를 지나 뱃머리가 남쪽을 향하자마자 남쪽 외해에서 밀려드는 큰 너울에 놀이동산 바이킹이 시작됐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 너울을 뛰어 넘어가는 쾌속선에서 2시간여 멀미를 참아야만 했다. 멀쩡한 이병철 시인의 체력이 부러웠고 이제 젊지 않은 나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의 숙소 겸 가이드는 항구 인근인 가거도 1구 대리마을의 엔젤펜션(박현우 선장 010-8519-8867)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병철 씨와 친분이 깊어 덕분에 편안하게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가거도 등대 아래 절벽 포인트 중 하나인 오간여에 올라 볼락 밤낚시를 준비하고 있다.

▲항구 바로 앞 길가에서 마주할 수 있는 ‘국토최서남단’을 표시한 비석과 419의거 당시 산화한 ‘김부련 열사’의 흉상.

▲일정 내내 우리 일행을 무사히 태워준 ‘뉴엔젤피싱호(연락처 박현우 선장 010-8519-8867)’. 데크가 넓어 부시리 캐스팅에도 편리했다.

▲큰간여에서 농어낚시에 몰두하고 있는 한 덩치 하는 이병철 시인의 뒤태.

▲한나절 선상 부시리 캐스팅을 즐기고 난 후, 귀항하자마자 셋이서 기념촬영을 했다.

낚이는 씨알이 고만고만했지만 대만족. 절반 이상 릴리스하고 부시리만 몇 마리 키프.

가거도 등대 아래 절벽 포인트 중 하나인 오간여에 올라 볼락 밤낚시를 준비하고 있다.

1막_큰간여 농어 루어낚시

가거도낚시 제1막의 무대는 가까운 큰간여. 농어낚시를 목적으로 3명이 같이 내렸고 너울과 파도가 세서 물벼락을 맞아가며 캐스팅을 시작 했다. 처음에는 미노우를 사용했지만, 가거도 농어라 하면 전통적으로 원래 ‘닭털지그’ 아닌가? 포말 속 바닥층에 농어들이 있음을 알고는 5/8온스 지그헤드에 4인치 그럽을 단 지그헤드리그로 바꿨다. 역시 패턴을 정확히 읽은 일석 군이 연속으로 농어를 낚아내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농어 입질이 왔다. 문제는 랜딩. 사이즈가 70~80cm급이 주종이라 그냥 들어 올릴 수도 없었다. 갯바위의 발판, 파도를 먼저 예상해서 농어 전용 낚싯대가 아니라 조금 더 긴 10피트에 지그를 캐스팅 하기에도 넉넉한 파워를 가진 낚싯대를 지참한 것이 딱 맞았다. 거기에 다 혹시나 하고 가져간 핸드가프가 랜딩도구로서 ‘열 일’을 해냈다. 그 러다가 지그헤드리그를 떼어내고 묵직한 바이브레이션을 달아 멀리 캐스팅을 해봤다.

바늘은 20호 농어바늘로 자작한 싱글훅으로 교체해놓은 상태였다. 탁 하는 충격과 함께 낚싯대가 극한으로 휘고 릴의 스풀이 초고속으로 역회전하기 시작했다. 우와 이게 뭐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원줄 PE라인 1호에 쇼크리더는 30파운드라 문제는 없겠지만, 꽤 세게 잠가 놓은 드랙이 이렇게나 고속으로 오래 풀려나가는 건 오랜만이었다. 범인은 부시리. 아드레날린 분출을 억제하며 냉정하게 파이팅을 벌여 무사히 랜딩에 성공했다.

다시 캐스팅하자 곧이어 씨알이 제법 되는 방어도용을 쓰며 올라왔다. 높은 파도를 온몸으로 뒤집어쓰면서 일석 군이 두 마리 다 가프로 올려 주었다. 이렇게 오전 내내 신나게 낚시를 하고 귀항하여 점심식사, 오후부터는 갯바위에서 야영하며 볼락 루어낚시를 하기로 했는데, 솔직히 난 밤낚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라 그리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다.

▲너울과 파도가 높은 큰간여. 낚시 내내 온몸에 바닷물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핸드가프를 가져가지 않았더라면 랜딩하기 어려운 장면이 이어졌다.

2막_오간여 볼락루어 밤낚시

제2막의 포인트는 등대가 보이는 절벽 아래의 오간여. 그믐이 막 지나 달도 없이 별빛만 남은 밤, 밝디 밝은 가거도 등대 불빛이 해무가 서린 밤하늘을 계속 가로지르자 서스펜스 영화의 한 장면이 몇 시간씩 이어 지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 초록색 불빛이 비치는 홈통의 수면은 자정이 다 되도록 집어가 안 되어 나를 일찌감치 갯바위에 눕게 했다.

그러나 웬걸, 새벽 1시가 지났을까? 두런두런 두 사람의 기척이 내 선잠을 깨웠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크기의 볼락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었다. 볼락 전용 장비가 없는 난 투박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보통 루어 낚싯대에 볼락볼을 중간에 달아 볼락용 소형 지그헤드를 던졌는데 거기에도 볼락의 강력한 입질은 이어졌다. 가거도 매직은 밤새 이어져 낚다가 지쳐 잠든 나와 일석 군을 뒤로 하고 병철 씨는 홀로 속칭 왕사미로 통하는 신발짝 사이즈의 볼락을 몇 십 마 리나 낚아 아이스박스를 채워놨다나 어쨌다나…. 이렇게 가거도 2막은 새벽 동이 트면서 막을 내렸다. 한나절 쉬고 나서 제3막은 오후 선상 부시리 캐스팅이란 제목으로 시작되었다.

▲어느 포인트에서도 큰 농어만을 잘도 골라 낚아 올리는 엄일석 군 이 멋진 포즈를 취했다.

3막_선상 부시리 캐스팅게임

포인트는 너울이 잦아드는 가거도 북쪽 소국흘도 인근 해상의 쓰른여라는 작은 암초 주변. 부시리 캐스팅은 병철 시인과 일석 군에게는 미경험의 낚시 장르였다.

봄철부터 일석 군은 한강 변에서 다이빙펜슬과 폽퍼의 캐스팅 연습을 했고 병철 시인은 장비조차 가지고 있지 않아서 루어까지 내 장비 일체를 일단 빌려주고 낚시는 시작되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배가 흔들리고 포인트에서 떠밀려 나가는 상황, 불안정한 배 갑판이지만 일단 캐스팅이야 어떻게든 하더라도 다이빙펜슬의 액션 방법은 차근차근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될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거도 매직은 역시나 또 벌어졌다.

나의 계획은 이랬다. 두 사람에게 캐스팅 폼에 대해 잔소리를 좀 하고, 다이빙펜슬이 착수지점이 어떻고, 저킹 액션은 어떠하다고 강의를 하려는데, 어라? 이미 두 사람의 낚싯대는 휘어져 기를 쓰고 릴링을 하고 있지 않은가? 가거도의 부시리와 방어는 수면에 뭐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더블히트가 자꾸만 이어져 잔소리할 겨를도 없고 사진 찍어주느라 정신없었다. 가르칠 필요도 없으니 두 사람 다 하산하라고 얘기하면서도 내심 보트 캐스팅이 이렇게나 쉬운 낚시라고 생각할까 봐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나도 다이빙펜슬을 몇 가지 골고루 사용해 가며 루어당 1마리씩 부시리를 쏙쏙 낚아 올렸다. 아쉬운 건 씨알이 조금 더 컸다면 좋았다는 정도? 선장은 수온이 2~3일 사이에 많이 올라버린 것이 원인이라며 같이 아쉬워했다.

▲루어를 하드베이트로 바꾸자마자 부시리가 달려들었다. 부시리의 유쾌한 질주를 온몸으로 만끽 중.

▲이병철 시인이 다이빙펜슬을 캐스팅해서 낚은 부시리. 가거도의 부시리는 수면에 떨어진 루어에 줄지어 달려들었다.

제4막은 의외의 어종! 돌돔으로

초여름의 가거도는 돌돔 새끼인 뺀찌 찌낚시가 유명하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톡방에 혹시 모르니 뺀찌 찌낚시를 해보자고 말해둔 터였다. 가거도에 도착해서도 목격한 뺀찌의 조과는 어마어마했다. 한나절 낚았다는 뺀찌가 ‘다라이’라 부르던 그 빨랫대야에 가득 차 있는 광경이 여기저기 보였다.

프로 갯바위낚시인이 한나절에 50마리를 낚았다고 하니, 우리 루어낚시인은 각자 그 10%만이라도 손맛을 보자는 게 목표였다. 병철 씨는 벵에돔낚시 경험이 있어서 장비는 다 갖추고 있었고 나도 1990년대 초 창기 벵에돔 전유동 구멍찌낚시에 홀린 경험이 있어서 장비가 없지는 않았다. 문제는 20년 동안 찌낚싯대를 잡은 일이 없어서 갯바위에서 버벅거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조류가 받힐 때 고부력 구멍찌를 사용하고 수심을 5m에 맞추면 된다는 정도가 알고 있는 정보 전부였다.

이름 없는 자리지만 기대할 만하다며 뉴엔젤호 박현우 선장이 내려준 갯바위에 섰다. 찌멈춤 매듭이 없어서 손 닦으려고 가져온 타월에서 실밥을 뽑아 적당히 원줄에 묶어 사용할 정도로 준비는 부족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또 가거도 매직은 일어났다. 굳이 찌낚시는 안 하겠다는 일석 군은 옆에서 루어를 던져 굵은 농어를 계속 낚았고, 병철 씨와 난 넣으면 나오는 뺀찌로 3시간 동안에 56리터짜리 아이스박스를 꽉 채울 수 있었다.

제법 씨알이 커서 뺀찌라고 부르기에 아까운 35cm가 넘는 돌돔도 낚여 우리 3명 모두가 가거도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리고 바로 전날의 부시리 캐스팅처럼 돌돔 찌낚시가 이렇게 간단한 거라고 착각할지도 모르는 걱정거리도 생기고 말았다.

정신없이 4박5일이 지나갔다. 강한 남풍과 밀려드는 너울 때문에 목포 가는 배가 전날부터 결항하여 불안했지만, 오후 배가 와줘서 무사히 우리를 육지에 데려다주었다. 가거도를 떠나오면서 ‘낚시천국’에 있었다고 생각하려다가 아니, 가거도는 자극적이고 신나는 ‘낚시지옥’이었다고 생각을 바꿨다. 천국은 편안하고 지루할 것이기 분명하거니와, 뒤돌아 바라보니 독실산 꼭대기에 걸쳐진 구름이 유혹의 손짓을 쉬지 않고 하고 있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