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_김범철 교수의 호수의 과학 73]

수질오염의 정의

시대에 따라 변한다

김범철

수질오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이 호수는 오염되었나요? 이 수돗물은 오염된 물인가요? 이런 질문을 가끔 받는다. 수질오염이라는 용어는 많이 들어 보았지만 막상 수질오염이 어떤 상태를 뜻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과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궁금증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 필자는 난감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답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질을 평가하는 기준은 한두 개가 아니다. 하천과 호수의 수질 등급을 매기는데 사용하는 일반수질 지표항목도 10개가 넘고 유해물질 기준항목은 100종이 넘는데, 요즘은 온배수에 의한 수온상승이나 물리적 하천변형까지 광범위한 의미의 수질오염에 포함시키고 있다. 미국 환경부에 의하면 인간이 만들어 낸 유해화학물질은 8만5천 종이라고 하니 어마 어마하게 많은 평가 기준이 존재하는 셈이다. 게다가 기준이 없거나 기준 이하의 오염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수질오염이란?

수질오염이란 인간활동의 영향으로 자연이 변화하여 물을 이용하는 데 불편을 주거나 야생 생물이 서식하는 데 장애를 주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오염 여부를 판정하는 데에는 가장 악화된 요인을 기준으로 적용한다. 다른 것은 다 좋더라도 하나의 요인이 초과되어 물을 마실 수 없다면 수질이 오염되었다고 판정하는 것이다.

수질 등급을 판정할 때에도 다른 항목은 1등급인데 하나의 항목이 5등급이라면 5등급으로 판정해야 한다. 산소가 결핍되어 있다면 음용수로는 문제가 없지만 어류는 살 수가 없으니 오염된 것으로 판정하며, 부식질이 많은 갈색의 물은 야생동물에게는 해가 없지만 수돗물에서 발암물질을 만드는 것 때문에 오염도가 높은 물로 평가한다.

그런데 여러 가지 항목이 조금씩 악화된 상태라면 평가가 모호해지고, 주관적 판단이 개입 하기도 하고 지식이 부족하여 그릇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를테면 토양침식이 심하여 흙탕물이 심한데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은 1등급이라고 해서 이 하천을 1등급으로 판정하는 오류를 흔히 보게 된다.

수질오염에서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은 국가에 따라 경제발전에 따라 수질악화의 주요 원인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산업화의 진행에 따라 많은 유해물질이 공장에서 배출되는데 이를 처리하는 수준은 결국 경제력에 따라 결정된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가장 심각한 오염부터 하나씩 처리해 나가는 것이 당연한 진행이다. 그러므로 후진국에서는 중요한 수질 오염요인이 되는 항목이 선진국에서는 이미 모두 잘 처리되어 더 이상 수질오염 요인이 아닌 것이 많다. 결국 환경보전의 가장 큰 장애는 바로 가난이다.

▲개발도상국의 수질오염

-공장에서 중금속과 유해화학물질 유출, 생활하수 배출

-유해물질 중독, 산소고갈 발생

-2차산업이 주요 오염원이다.

개발도상국의 수질오염원은 공장폐수

수질오염의 원인은 산업구조와 경제 수준에 맞추어 변화하므로 시대에 따라, 발전단계에 따라 달라진다. 산업화 초기의 개발도상국에서는 공장폐수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유해 중금속과 유해화학물질들이 배출되므로 2차 산업이 오염의 주요 원인이 된다. 과거에 오염을 많이 일으키던 산업은 염색, 피혁, 도 금, 제련, 화학합성 등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까지는 이런 오염이 흔한 현상이 었다. 온산공단의 중금속 오염, 낙동강 상류의 중금속 오염, 태백지역의 산성피해, 의정부 지역의 염색공장에 의한 하천오염 등이 대표적으로 알려진 오염지역이었다. 지금도 낙동강 상류의 하천 바닥에는 중금속이 퇴적되어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는 공장폐수의 오염 감시가 철저하기 때문에 폐수가 잘 처리되고 있으며 2차산업은 더 이상 수질오염의 원인이 아니다. 물론 아직도 폐수를 몰래 버리는 곳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잘 처리하고 있으며, 오염 배출의 감시가 엄격하지 않은 외국으로 공장이 이전한 사례도 많다. 개발도상국에서는 폐수처리가 부실한 공장들이 많이 있는데 결국 그 제품은 선진국으로 수출되는 것이니 자국에서 오염이 없다고 해도 외국에서 발생하는 오염의 공범인 셈이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생활하수도 잘 처리되지 않는다. 사람의 분뇨가 포함된 하수가 처리되지 않으면 병원균이 많이 배출되어 수인성전염병이 발생하므로 병원균이 중요한 오염지표이다. 하수의 유기물이 처리되지 않고 배출되면 BOD가 높아져 산소고갈이 발생한다. 동남아의 하천들을 보면 검은색을 띠는 곳이 많은데 이것은 BOD가 높아 산소가 고갈되었다 는 뜻이다.

▲중진국의 수질오염

-공장에서 중금속과 유해화학물질 유출, 생활하수 배출

-유해물질 중독, 산소고갈 발생

-2차산업이 주요 오염원이다.

중진국의 수질오염은 1차산업

중진국이 되면 공장폐수와 생활하수를 처리하기 때문에 공장에서 유해물질의 배출은 거의 없고, 하천의 산소고갈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이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수처리장이 많이 건설되어 산소고갈이 거의 발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BOD는 더 이상 수질기준으로 적용하지 않고 TOC라는 항목으로 대체되고 있다.

그러나 하수의 인제거가 부족하여 호수부영양 화와 녹조현상의 원인이 되며 녹조현상이 주요 수질오염 현상으로 등장한다. 하수처리는 3단계로 구분하는데 2차처리까지만 시행하여 BOD를 제거하는 데 주력하고 인을 제거하는 3차처리는 부족한 상태이다. 그리고 농업과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흙탕물, 인 등의 오염물 유출에 대해서는 규제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농업의 퇴비, 비료, 농약, 토사 유출에 대해서는 법적 규제도 없고 벌과금도 없다. 그러므로 중진국에서는 주요 수질오염 현상이 녹조현 상과 탁수이며, 2차산업이 아니라 농업, 축산업 등 1차산업이 주요 수질오염 원인이다.

선진국이 되면 하수의 인제거가 더 강화되고 농업분야의 인 배출도 규제되어 녹조현상이 감소한다. 선진국이라도 아직 녹조현상을 완전히 없애는 수준은 아니지만 중진국에 비해 훨씬 많은 규제가 가해져 농민이 인비료를 사용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례도 있다. 미국에서는 탁도가 초과하면 유역의 토목공사를 금지시키는 강력한 조치가 적용되고 있어 탁도에 대해 무방비상태인 우리나라와 대조된다.

▲선진국의 수질오염

-하수의 3차처리_인을 제거하여 녹조현상 감소

-농업의 비료, 축산분뇨 유출을 규제

-수질 기준 이하의 미량 유해물질 (PPCP)이 수질관리 대상.

-사람의 약품, 가정용 화학제품, 가축의 항생제

선진국이 되면 미량 유해물질이 관리 대상

선진국이 다음 단계로 관심을 가지는 수질오염현상은 미량 유해물질이다. 최근 10여 년 간 미국의 학회에 참가하면 생소하게 느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관심이 없는 미량 유해 물질에 대해 많은 조사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량 유해물질이란 농도가 수질오염 기준 이하이거나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은 물질들을 말한다. 주요 대상은 사람이 복용하는 약품, 가정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 화장품, 가축의 호르몬제, 항생제 등인데 Pharmaceutical and Personal Care Product(PPCP, 개인약품)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수많은 종류가 이에 해당하는데 하수처리장을 거치더라도 미량이 남아 하천으로 배출되고, 하수의 누수로 인하여 처리되지 않는 경우, 강우 시 처리하지 못하는 하수, 도로지표 유출수 등이 원인이다. 가축분뇨는 퇴비로 만들어져 밭에서 배출되므로 항생제가 제거되지 않고 유출되어 수중미생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어 우려하고 있다. 대기분진의 형태로 전세계에 퍼지는 미량의 수은도 관심대상이다. 미국의 연어가 사는 하천에서는 수온상승도 오염으로 규제하고 있다. PPCP는 대부분 미량이고 종류도 많다 보니 분석에 비용이 많이 들어 선진국이 아니면 감당할 수가 없다. 이들 국가에서는 하수의 BOD는 더 이상 관심대상이 아니다.

수질오염 현상의 요인과 평가 기준은 국가에 따라, 산업구조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도 곧 선진국 단계에 진입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