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 좌사리도]

백만대군 자리돔 속에서 뽑아낸
긴꼬리벵에돔

▲“이 녀석 얼굴을 보느라 혼쭐이 났습니다.” 좌사리도 벼락바위에서 35cm 긴꼬리벵에돔을 낚은 유규상 씨.

남해안 긴꼬리벵에돔 시즌을 맞아 강원도 태백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튜버 낚시하는팔계형 유규상(쯔리켄 팬그룹) 씨와 함께 지난 6월 29일 통영 좌사리도로 출조했다. 아직 장마가 시작하지 않았지만 좌사리도의 수심 깊은 물골에서 긴꼬리벵에돔이 낚인다는 정황을 포착, 명당자리를 잡기 위해 평일에 이른 시각에 출조를 선택했다.

모기로 악명 높은 벼락바위

통영에서 매일 좌사리도를 오가는 진조호에 오른 시각은 오전 1시30분. 늦게 출조하면 좋은 자리가 없기 때문에 새벽이 아닌 한밤중에 출조를 했다. 낚싯배로 40분을 달려 도착한 좌사리도에는 생각보다 낚시인들이 없었고 운 좋게 좌사리도 벵에돔낚시 명당인 벼락바위에 내릴 수 있었다.
벼락바위는 좌사리도 4개의 섬 중에서 첫 섬 최고 남단에 있는 자리다. 마주보는 둘째 섬 사이로 강한 조류가 흘러서 벵에돔뿐 아니라 돌돔, 참돔, 부시리낚시도 잘 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명당은 대개 한두 가지 단점이 있다. 많은 낚시인들이 매일 내리다 보니 벼락바위에는 악취가 진동했다. 특히 돌돔낚시인들이 미끼로 쓰다가 버린 고둥, 전복, 성게 껍데기가 부패해서 밑밥찌꺼기보다 더 심한 악취를 냈다. 악취만 있다면 다행이지만 벼락바위는 모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바람이 불 때는 모기가 덜 달려들었지만 바람이 멈추는 순간 모기가 달려들어 사정없이 피를 빨았다. 모기 기피제와 모기향을 준비해갔지만 무용지물.

결국 고민 끝에 버려진 박스를 잘게 찢어서 캠핑용 화로(갯바위가 불에 그을리지 않게 조치)에 불을 붙이자 그제야 모기가 덜 달려들었다. 웃긴 사실은 버려진 박스 덕분에 살았지만 멀쩡한 갯바위에 버려진 박스가 있다는 것은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3시간을 버텨 드디어 동이 텄고 모기는 사라졌다. 채비를 하려니 피로가 쏟아졌지만 곧 벵에돔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졸음을 떨쳐냈다.

▲유규상 씨가 오전에 사용한 투제로 구멍찌채비. 쯔리켄의 아시아LC 00를 구멍찌를 사용했다.

▲밑밥에 몰려든 자리돔. 사진의 갈색이 모두 자리돔이다.

▲4호, 5호, 6호 벵에돔바늘. 노리는 벵에돔의 씨알에 맞춰 사용한다.

▲좌사리도 벼락바위(아래)와 둘째 섬 사이의 물골. 이곳으로 큰 씨알의 벵에돔, 돌돔, 참돔이 잘 붙지만 출조 당일에는 조류가 너무 빨라 낚시가 힘들었다.

본류 공략용 투제로 채비로 승부
유규상 씨는 현장에서 밑밥을 갰다. 빵가루 6봉에 크릴 1봉 그리고 조류가 빠른 것을 감안해 건식 집어제를 한 봉을 더 넣었다. 원래 긴꼬리벵에돔만 노린다면 집어제나 빵가루를 조금만 섞고 모두 크릴을 쓰겠지만 남해동부권의 경우 자리돔과 같은 잡어가 많기 때문에크릴을 많이 쓰는 것은 금물이다. 크릴을 썼다가는 자리돔에 전갱이, 고등어, 망상어까지 가세해 완전히 낚시를 망치게 된다. 벵에돔만 노린다면 오직 식물성 미끼만 쓰는 것이 좋으며 긴꼬리벵에돔을 함께 노린다면 밑밥에 크릴 한두 봉을 더 섞어서 긴꼬리벵에돔을 유인하면 된다. 유규상 씨는 쯔리켄의 아시아LC 투제로 구멍찌를 기본으로 목줄에 G6 봉돌 하나를 달고 벵에돔 5호 바늘을 사용해 채비를 꾸렸다. 눈으로 봐도 조류가 꽤 빨랐기에 제로찌낚시를 하지 않고 곧바로 투제로찌 채비를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밑밥을 뿌리자마자 경악할 일이 벌어졌다. 벵에돔낚시 전용으로 작은 주걱이 달린쏠채를 사용해 밑밥을 조금만 뿌렸는데 구름 같은 자리돔이 발밑으로 모이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이러다 조류가 세게 흐르면 흩어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자리돔은 동이 트면서 더 많아졌다. 유규상 씨도 난감한 상황. 그는 “벼락바위처럼 본류가 흐르는 곳은 센 조류 때문에 자리 돔이 떴다가도 빨리 가라앉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큰 고기가 들어오면 자리돔이 뜨는 양이 줄어드는데 오늘은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채비를 멀리 던지고, 빨리 가라앉히고 심지어 반유동 채비로 바꾸고 투제로 계열 중에 침강속도가 가장 빠른 것을 사용해도 빠른 조류에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자리돔에게 모두 미끼를 빼앗기며 피할 방법이 없었다.

▲긴꼬리벵에돔의 매끈한 어체를 보여주는 유규상 씨.

▲뜰채에 담긴 긴꼬리벵에돔.

자리돔 이거 실화냐?
혹자는 ‘자리돔을 극복 못해서 무슨 벵에돔낚시를 한다고 그러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자리돔도 자리돔 나름이다. 보통은 밑밥으로 자리돔과 벵에돔을 분리해서 제로찌만 사용해서도 솎아 낼 수 있지만 본류가 콸콸 흐르는 물골에서 적어도 수 만 마리의 자리돔이 상층과 바닥을 모두 오가면 제아무리 낚시 명인이라도 방법이 없다. 함께 출조한 유규상 씨 역시 쯔리켄 벵에돔토너먼트(WFG) 국내 예선 1위의 실력자로 잡어 분리 정도는 누워서 떡먹기지만 이번 출조에서는 실패했다.

실제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의 유명한 벵에돔낚시인들도 한국의 잡어를 보고 혀를 내두르기 일쑤일정도로 우리나라 잡어는 세계적(?)으로 악명높다. 참고로 긴꼬리벵에돔낚시는 부시리처럼 본류를 타고 들어오는 긴꼬리벵에돔 무리를 상대하는 것이지 일반 벵에돔처럼 암초에 숨은 벵에돔을 밑밥으로 띄워 낚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추자도, 거문도, 제주도의 일부 긴꼬리벵에돔 명당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일반 벵에돔낚시터에서 긴꼬리벵에돔을 낚는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특히 조류를 타고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는 긴꼬리벵에돔을 무한정 기다리는 것도 힘든 일이다.
실제로 남해동부에서 제대로 된 긴꼬리벵에 돔을 낚는 낚시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 고수의 반열에 오른 낚시인들은 6월부터 11월까지 거의 매일 원도권으로 출조하는 마니아 중에 마니아다. 일반 낚시인들이 말하는 25cm 긴꼬리벵에돔은 그냥 일반 벵에돔의 아가미 뚜껑에 검은 줄만 있을 뿐 긴꼬리벵에돔의 습성을 보이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벵에돔 무리에 섞여서 사는 형태다.

조류가 잠깐 바뀐 사이에 입질!
오후 10시가 지나면서 거의 만조가 되었고 11시가 지나자 썰물이 시작하며 조류의 방향이 바뀌었다. 무조건 찬스라고 판단, 모든 밑밥을 뿌리며 자리돔 속에서 벵에돔이 물어주길 기대했다. 오전에는 조류가 바깥으로 빠지는 상황이었지만 썰물이 되자 조류가 밀려들면서 채비를 운영하기도 나아졌다.
유규상 씨는 특별한 기교 없이 정석대로 밑밥으로 최대한 잡어를 분리한 후 조류에 채비를 태워 가라앉혔다. 그렇게만 해도 쏜살같이 움직이는 긴꼬리벵에돔이 있으면 물어주기 때문에 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같은 방법으로 채비를 10번 쯤 흘렸을까? 순식간에 사라지는 구멍찌에 챔질을 하니 눈만 붙은 잔챙이벵에돔이 나왔고 첫 벵에돔에 즐거워할 겨를없이 바로 밑밥을 뿌리고 채비를 던졌다. 이번에도 시원한 입질, 그런데 처음과는 다르게 저항이 만만치 않았고 뜰채까지 대서 올려보니 35cm 긴꼬리벵에돔이 올라왔다. 역시 알고 있는 대로 긴꼬리벵에돔은 조류를 타고 들어와서 잡어 속에서도 무섭게 입질을 했는데 아쉽게도 입질이 연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딱 두 마리를 낚았음에도 불구하고 조류가 오전에 흐르던 방향으로 다시 바뀌고 말았기 때문이다.
너무 짧은 조류에 유규상 씨는 매우 아쉬웠지만 별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이처럼 긴꼬리벵에돔낚시에서는 조류의 형성의 아주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돌돔이나 부시리 역시 20~30분 잠시 흐르는 조류에 입질이 쇄도하는 경우가 많은 데 모두 같은 이치라고 할 수있다.
남해동부의 긴꼬리벵에돔 시즌은 이제 시작이다. 현재는 국도에서 호황을 보이고 있으며 장마나 태풍이 한 차례 지나가 무더위가 시작된다면 야영낚시에서 좋은 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유규상 씨의 구멍찌 케이스.